룸비니에서 印카필라바스투까지 26km 행선
인도와 네팔 미묘한 입장으로
내국인만 통과 가능한 순례길
부처님길임에도 막힌 그 길따라
순례단 행선, 카필라바스투 도착
한국, 인도, 네팔 3국간 외교협상
회주 자승 스님 강력한 요청 물꼬
순례단 실무진, 답사 후 심야처리
초유의 대리비대면 수속 통과 이뤄
상월결사 인도순례단(회주 자승)이 번문욕례(繁文縟禮)를 참고, 사상 초유의 국경 순례길을 통과했다. 아니 만들어 냈다. 부처님 길을 따라 순례하여 불교 중흥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원력 하나로 일궈낸 성과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은 3월 15일 35일차 순례로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를 출발하여 부처님 사리탑이 있는 인도 카필라바스투에 도착했다. 이날 순례는 출발지인 룸비니와, 도착지인 카필라바스투보다 그 과정에 있었던 여정이 더욱 중요했다.
지금까지 모든 순례는 인도와 네팔의 공식 국경도시인 소나울리를 통하여 이루어 진다. 소나울리의 위치는 룸비니에서 동남쪽, 즉 쿠시나가르 방면에 있다.
3월 9일 쿠시나가르를 출발한 순례단도 3월 14일 소나울리를 거쳐 룸비니에서 기원법회를 봉행했다.
그동안 버스 등 차량을 이용한 순례에서는 룸비니에서 쉬라바스티까지 순례하여도 소나울리를 통과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소 돌아가더라도 차량 이동이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성지 중심 순례이기에 길이 주는 의미가 크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길을 따르는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의 순례는 입장이 달랐다.
부처님길 막아버린 인도·네팔 미묘한 입장 차이
네팔 카필라바스투인 틸라우라코트부터 인도 카필라바스투인 피프라흐와까지는 차도로 16km, 걸으면 더욱 가까운 거리기에 이 두 곳 모두가 옛 카필라바스투의 같은 권역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국경이 나뉘고, 현재 지명이 다르고, 국가간 입장이 갈리며 서로 진위 여부까지 논란이 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인도 피프라흐와에서 카필라바스투 유적군과 사리함이 발견되며 쉬라바스티와 인도 카필라바스투를 통하여 룸비니, 네팔 카필라바스투를 여행하는 이들이 늘자 소나울리를 거점도시로 국제공항과 간선도로 등 인프라를 설치한 네팔에서 길을 막았다는 설도 제기한다.
국경분쟁부터 부처님 유적을 둔 양국의 불편한 관계로 쓸데 없는 번문욕례만 늘어, 네팔 출입국의 인파가 몰리는 소나울리에서는 수속에 반나절 이상이 걸리기도 하는게 다반사다. 별도로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의 룸비니 기원대법회에 참여하기 위해 새벽부터 수속을 밟았던 동화사 신도들도 이 같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부처님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 그리고 그 인근 네팔 카필라바스투인 틸라우라코트에서 인도 쉬라바스티로 향하는 서남향 루트는 부처님께서 실제로 걸으신 길이기에 무엇보다 의미가 컸지만 카클라우와(kakrahwa)라는 국경지대를 넘어야 했다.
양국의 미묘한 입장 차이로 마을주민들만 오가는 길이 됐고, 순례는 할 수 없는 끊킨 길을 걷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끊임없는 설득, 순례단이 물꼬 튼 인도·네팔 협조
상월결사 인도순례는 당초 2020년 봉행하려던 데서 코로나로 인하여 펜데믹 종료 무렵인 2022년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준비가 시작됐다. 3년간 국난극복 자비순례와 삼보사찰 천리순례, 평화방생순례를 거쳤지만 한국에서의 순례와 인도에서의 순례는 많은 것에서 달랐다.
박기련 운영지원단장에 따르면 순례단이 가장 우려했던 점은 크게 두가지로, 첫 번째는 타지에서의 숙영과 의료 등 안전문제였으며, 두 번째는 이날 도보로 행선한 카클라우와 루트에서의 국경 문제였다. 두 번째 문제는 양국의 미묘한 외교 문제를 제3자인 한국, 그리고 순례단이 풀기 어려웠기 때문에 난제로 꼽혔다.
순례단은 2022년 6월 답사단장으로 순례단장 원명 스님을 중심으로 답사팀을 꾸려 1차 답사를 진행했으며, 2022년 12월 6일부터 2차 답사를 통해 10일간 세밀한 순례길을 점검했다.
박기련 운영지원단장은 “카클라흐와 국경 통과에서 네팔과 인도 당국 양쪽 모두 한번도 있었던 일이 아니라며 거부를 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당시에 같이 간 인도대사관 영사, 1등서기관, 외교부 재난안전과장과 대승투어 나인성 이사와 저희들 모두 마치 사기꾼 쳐다보듯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박 단장은 “소나울리로 가서 룸비니와 네팔 카필라바스투 등으로 가는 길은 지금 현재의 우리 길이다. 오늘 걸은 룸비니에서 시라바스티 기원정사로 가는 길은 부처님께서 걸으신 길이기에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난국에 회주 자승 스님이 물꼬를 텄다. 회주 스님은 외교부와 대통령실, 인도정부와 네팔정부에 강력히 요청했고, 이날 순례단은 역사적인 발걸음을 하게 됐다.
초유의 대리 비대면 출입국, 순례단 자는 동안 이뤄진 수속
회주 자승 스님의 역할로 한국과 인도, 네팔의 3국이 순례단의 순례에 동의했지만, 실무적으로 어떻게 진행해야 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은 상황이었다.
순례단은 2월 9일 출국 당시에도 카클라우와를 통과할 수 있을지 정확한 확신을 갖지는 못했다. 바로 실무차원의 실행방법 때문이었다. 하지만 3월 10일 박진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됐다”는 연락이 왔다. 순례단이 요청한 ‘대리 비대면 출입국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전세계 모든 나라는 입국과 출국을 대면으로 처리한다. 타인이 입출국 수속을 대신할 수 없고, 출입국사무소 등에서 여권사진과 본인의 실제얼굴을 비교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한국정부의 도움과 한국과 수교 50주년을 맞은 인도정부의 적극적인 협조, 그리고 불교순례를 환영하는 네팔정부의 호응이 이어지며 사상 유래 없는 ‘대리 비대면 출입국’이 이뤄졌다.
순례단 운영지원단의 스텝들은 순례단이 행선을 위해 취침하는 저녁 11시 경 소나울리의 네팔국경 사무소로 갔다. 출국 수속이 가능한 전산시스템이 소나울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네팔정부의 협조로 먼저 스텝들이 순례단의 여권과 명단으로 대리 비대면 출국 수속을 밟았다.
이후 자정을 기다려 당일 수속만 가능한 입국 절차를 소나울리의 인도국경 사무소에서 진행했다. 순례단 행선이 새벽 2시부터 진행되며, 카클라흐와 통과가 새벽 4시경 진행될 예정이기에 촉박함 속에서 수속이 이뤄졌다.
이 같은 절차를 거쳐 순례단은 이날 카클라흐와에서 명단과 얼굴 대조, 간단한 도장을 찍는 과정 만으로 전체 100여 명이 약 40분만에 막혔던 국경을 통과했다. 한국에서는 강영 출입국 담당 영사를 비롯한 인도대사관 직원들이 나와 모든 과정을 도왔다. 국경선을 넘자 인도정부 측의 성대한 환영행사가 이어졌고 사상 초유의 국경 통과에 순례단은 이러한 순례가 가능하게 한 인도정부와 네팔정부에 박수를 보내며 감사를 표했다.
부처님 사리 봉안된 카필라바스투에 당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오가는 소나울리의 길이 아닌 막혀있던 국경선을 넘어서인지, 이날 순례길에서는 경찰이 아닌 군인들이 나와 순례단을 엄호했다. 엄중한 경호를 받은 순례단은 14km를 더 걸어 인도 카필라바스투가 있는 피프라흐와에 당도하여 부처님 사리탑을 참배하고 회향의식을 가졌다.
부처님이 사문유관하고 유년기를 보낸 네팔 카필라바스투로부터 16km 떨어진 곳, 석가족 하녀의 혈통이라는 놀림을 받고 석가족 정벌의 원을 세운 코살라국의 비두다바왕에 의해 멸망한 석가족들이 피난하에 세운 새로운 카필라바스투에는 석가족들이 부처님 입적 후 나온 사리 8분의 1을 받아 세운 사리탑이 있었다.
순례단은 양국 화합의 물꼬를 튼 이날의 순례와 부처님 사리탑, 석가족의 멸망을 담은 카필라바스투를 보며 행의 과보에 대한, 순례로 인한 중흥을 화두로 행선했다. 이날 순례에서는 인도 국경부터 조계종 총무원 총무국장 향림 스님을 비롯하여 승려복지회 무일 스님, 김정호 재무차장, 권대식 교육차장, 정유탁 포교차장 등 9명이 참가하여 특별조로 행선을 함께 했다.
답사단장으로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순례단장 원명 스님은 “부처님이 걸었던 길을 우리가 따라서 걷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걷는 것은 침체되고 있는 한국불교, 그리고 사라진 인도불교를 중흥하겠다는 실천 의지”라며 “안되면 순례 이후 처벌을 받더라도 걷겠다는 간절한 의지가 있었고, 회주 스님과 실무진이 여러 노력을 한 결과 부처님 가피로 그 어려웠던 길이 열렸다. 이는 한국불교, 인도불교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부처님 가피의 첫 신호”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끝으로 “회주 스님이 말씀하신 ‘사부대중이 함께 뜻을 합쳐 불교 중흥을 위해 함께 나서야 된다’는 것을 함께 느끼고, 한국불자들도 하나 하나 마음을 모으자”고 당부했다.
회주 자승 스님은 3월 14일 순례 이후 순례단의 룸비니 대성석가사 참배에서 이날 순례에서 겪은 여러 상황으로 늦게 도착한 동화사 순례단을 만나 “한국불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생을 향해, 국민을 향해,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불교로 거듭나야 한다. 스님과 불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부처님법을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으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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