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라에서 하르푸르까지 24km 행선

도림 스님이 작은부처님을 안고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로 향하고 있다.
도림 스님이 작은부처님을 안고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로 향하고 있다.

인도의 불교 성지 순례는 보통 8대 성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북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UP주)와 비하르주, 네팔에 흩어진 이들 성지를 순례하는 것은 큰 공덕으로 여겨졌다. 룸비니와 보드가야 등 아소카 석주에서 보는 것처럼 아소카 왕이 순례한 기록도 있다.

이중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 정각지 보드가야, 초전법륜지 사르나트, 열반지 쿠시나가르를 특히 4대 성지라고 하며, 기원정사가 있는 쉬라바스티, 부처님이 즐겨찾은 바이샬리, 마가다국의 수도로 죽림정사가 있는 라지기르, 그리고 도리천을 방문하고 어머니 마야데비에게 불법을 설한 후 다시 내려온 상카샤를 포함하여 8대 성지로 여긴다.

회주 자승 스님을 필두로 순례단이 인도의 들판에서 행선을 이어가고 있다. 순례단 동쪽으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회주 자승 스님을 필두로 순례단이 인도의 들판에서 행선을 이어가고 있다. 순례단 동쪽으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이중 룸비니는 인도와 네팔의 국경지대에 있다. 예전에는 인도 영토였으나 현재는 네팔 영토에 있다. 그래서 인도에선 부처님을 인도사람이라 하고, 네팔에선 부처님을 네팔사람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주로 인도 북부에서 전법교화하셨고, 8대 성지 중 나머지 7곳은 모두 인도영토에 있다.

인도 성지 순례는 여러가지 루트가 있지만 어디를 경유하던 그렇기에 네팔에 속한 룸비니를 가는 것은 어렵다. 쉬라바스티에서 룸비니로는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버스로 6시간 가량을 달려야 하며, 쿠시나가르에서는 10시간 가량을 이동한다. 별도의 비자 등 조치가 필요하기도 하다.

새벽 3시경 마을과 마을을 지나는 도로에서 행선을 진행하는 순례단의 모습
새벽 3시경 마을과 마을을 지나는 도로에서 행선을 진행하는 순례단의 모습
새벽 3시경 마을과 마을을 지나는 도로에서 행선을 진행하는 순례단의 모습
새벽 3시경 마을과 마을을 지나는 도로에서 행선을 진행하는 순례단의 모습

이토록 어려운 여정이지만 불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룸비니를 가려고 한다. 부처로의 탄생인 ‘정각’, 전법교화의 시작인 ‘초전법륜’, 깨달음의 완성인 ‘열반’에 비해 ‘탄생’이 주는 의미도 만만찮지 않게 크기 때문이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단(회주 자승)이 3월 11일 룸비니를 향해 직접 걸어가는 이유는 부처님이 걸은 길이기도 하지만, 부처님 탄생이 주는 의미가 상월결사 정신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행본기경>에 등장하는 부처님 탄생게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인도사회에서 신으로 대변되는 종교적 굴레와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물질적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 존귀함을 회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부처님 뿐만 아니라 진리를 깨달은 모든 존재가 신과 인간 사이에서 가장 거룩한 존재라는 선언은 생명 자체의 참가치에 대한 선언이었다.

두번째 휴식지였던 삐쁘라 바하만에서는 사띠야 프라카스 미스라 지방판사(사진 오른쪽)와 수리야 발리 지역경찰 대표가 나와 순례단을 반겼다. 이들은 회주 자승 스님이 쉬는 곳 의자를 내주자 매우 황송한 모습을 보이며 함께 앉아 합장하고 인사했다.
두번째 휴식지였던 삐쁘라 바하만에서는 사띠야 프라카스 미스라 지방판사(사진 오른쪽)와 수리야 발리 지역경찰 대표가 나와 순례단을 반겼다. 이들은 회주 자승 스님이 쉬는 곳 의자를 내주자 매우 황송한 모습을 보이며 함께 앉아 합장하고 인사했다.
아침공양이 진행된 락스미푸르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태극기를 걸고, 바닥에 환영문구를 새기며 순례단을 환영했다.
아침공양이 진행된 락스미푸르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태극기를 걸고, 바닥에 환영문구를 새기며 순례단을 환영했다.

이날 세마라에서 새벽 3시경 출발하여 인더르푸르, 삐프라 바하만을 거쳐 쉬탈라푸르에서 아침공양 후 다시 바카리 비슌푸르를 거쳐 하르푸르에 도착하는 여정은 다른 여느 순례와 다르지 않았다.

새벽에도 나와 약 20km를 함께 행선한 ‘사띠야 프라카스 미스라’ 지방판사를 비롯하여, LED등을 설치하고, 도로를 닦은 마하가즈간지 지역 정부관계자들을 비롯하여, 새벽 4시 회주 스님을 비롯한 순례단에 음료를 제공한 삐프라 바하만에서 마을 주민, 아침공양 장소를 내주고 환영메시지를 길에 새기고 축원한 락스미푸르 마을 주민, 마을 어귀까지 나와 꽃을 뿌리고 그들의 사원을 내준 하르푸르 마을 주민 등 순례단을 향한 애정 어린 관심과 환영의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처님 열반의 길을 따라 행선한 순례단에게 남은 것은 ‘불교 전법포교’에 대한 강렬한 의지다. 3월 10일 108원력문 초안을 공개하는 등 그 의지를 드러낸 순례단은 11일 모든 중생의 행복과 존재가치를 알린 탄생지를 향하는 대목에서도 그 의지를 나타냈다.

7조 성계순 불자는 “새벽에 순례단만 행선할 때는 힘이 들지만, 주민들이 나와 환호해주면 그 힘든 것이 사라진다”며 “룸비니는 2012년에 버스로 간 적이 있지만 이렇게 걸어서 간 적이 없다. 마을과 마을을 다니며 순수한 인도사람들을 직접 만나며 부처님 당시를 떠올리는 것이 이번 순례에서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성계순 불자는 “두발로 걷는 것은 마치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앞으로 이 부처님 가피를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전하는지를 화두로 정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르푸르 마을 어귀에서도 많은 마을 주민들이 나와 꽃을 뿌리며 순례단을 환영했다.
하르푸르 마을 어귀에서도 많은 마을 주민들이 나와 꽃을 뿌리며 순례단을 환영했다.
이날 순례단은 힌두교 사원에서 숙영지를 차렸다. 순례단의 회향의식을 힌두교 사원 관계자가 함께 지켜보고 있다.
이날 순례단은 힌두교 사원에서 숙영지를 차렸다. 순례단의 회향의식을 힌두교 사원 관계자가 함께 지켜보고 있다.

열반지에서 눈물을 쏟은 7조 정유림 불자는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 순례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정유림 불자는 “열반지에서는 부처님에게 창피했다. 참회의 마음에서 울컥하고 계속 눈물이 났다”며 “어제 원력문의 내용을 듣고 이제는 부처님 나라에서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준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부처님 탄생의 의미 같이 많은 이들을 존중하고 함께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상좌인 해인 스님과 함께 정진 중인 6조 정혜 스님은 “부처님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일갈의 의미가 행선을 하다보니 크게 와닿는다. 순간 순간이 거룩하고 모든 것이 이 우주 삼라만상을 다 머금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혜 스님은 “흙이 물을 만나 빚어지고, 불을 만나 구워져 그릇이 되어 내 앞에 오는 인연, 그 속에 도공을 살리고, 대장장이를 살리고, 상점주인을 살리고 많은 인연을 거친 것을 생각한다. 삼라만상 두두물물 하나 하나가 우리 마음 못한게 없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한번 더 마음에 담으면서 부처님 탄생지로 가는 의미를 새기겠다”고 마음을 전했다.

순례단 숙영지에서는 순례단 사부대중이 힘을 합쳐 텐트를 옮기고 궂은 일을 하고 있다.
순례단 숙영지에서는 순례단 사부대중이 힘을 합쳐 텐트를 옮기고 궂은 일을 하고 있다.
땀에 젖은 몸을 이끌고 다른 목마른 이들을 위해 물을 가져다 주는 탄묵 스님. 사부대중이 부처님 탄생지로 향하는 원력을 모으는 순례단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은 3월 14일 네팔 국경을 넘어 룸비니에 도착하여 기도법회를 가진 뒤 3월 15일 다시 인도로 넘어와 카필라바스투를 둘러본다. 이후 3월 20일 쉬라바스티 기원정사에 도착하여 회향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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