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까이푸르에서 라지기르 영축산까지 24km 행선

부처님 당시 장엄함 뒤로
한걸음씩 환희의 발걸음
영축산 향실서 전법 다짐
<법화경> 낭독, 축원 진행

상월결사 인도순례단(회주 자승)은 2월 25일 불법이 융성하게 일어난 옛 마가다국의 수도 라지기르에 당도하여 영축산에 올랐다.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신 영축산 향실에서 회주 자승 스님을 비롯한 순례단이 예불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단(회주 자승)은 2월 25일 불법이 융성하게 일어난 옛 마가다국의 수도 라지기르에 당도하여 영축산에 올랐다.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신 영축산 향실에서 회주 자승 스님을 비롯한 순례단이 예불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영축산 설법단에 오르시자 1250 비구승가가 자리를 잡았다. 천상의 보살과 신장들까지 내려와 모여 들었으니 그야말로 장엄함을 이루었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신 영축산은 신령함과 장엄함으로 불전에 전해진다. 수없이 많음을 의미하는 1250명으로 묘사된 비구스님의 수만 하더라도 그 당시의 장엄함이 느껴진다. 수많은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셨다고 말하는 그곳에 순례단이 당도했다.

이날 순례단은 영축산 향실에서 불법이 다시 일어서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이날 순례단은 영축산 향실에서 불법이 다시 일어서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단(회주 자승)이 2월 25일 법왕의 도시라 불렸던 마가다국의 수도 라지기르에서 불교 중흥을 위한 전법 포교를 다짐, 또 다짐했다.

17일차인 2월 25일의 행선은 여느때보다 조금 일찍인 2시 45분 경 시작했다. 불법이 융성히 일어난 라지기르로 향한다는 마음에 순례단의 몸과 마음이 모두 가벼웠기 때문이다.
17일차인 2월 25일의 행선은 여느때보다 조금 일찍인 2시 45분 경 시작했다. 불법이 융성히 일어난 라지기르로 향한다는 마음에 순례단의 몸과 마음이 모두 가벼웠기 때문이다.
부처님 나라 인도의 새벽별보다 더 밝게 빛나는 순례단의 빛. 앞사람과 뒷사람이 함께 빛을 비추며 어둠을 헤치고 돌로 된 산등성이를 넘어 행선하고 있다. 북부지역으로 갈 수록 평지보다 산이 많아지는 것이 체감되지만 순례단은 함께 의지하며 산을 넘어 행선하고 있다.
부처님 나라 인도의 새벽별보다 더 밝게 빛나는 순례단의 빛. 앞사람과 뒷사람이 함께 빛을 비추며 어둠을 헤치고 돌로 된 산등성이를 넘어 행선하고 있다. 북부지역으로 갈 수록 평지보다 산이 많아지는 것이 체감되지만 순례단은 함께 의지하며 행선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순례단의 행선은 조금 일찍 시작됐다. 순례단 개개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도량석 이후에 움직여달라는 회주 자승 스님의 말이 있었지만, 이날 만큼은 모두 서둘러 행선 준비를 마쳤다. 그 이유는 이날 행선의 목적지가 부처님께서 본격적으로 법을 펼치신 영축산을 비롯해 교단이 일어난 최초의 도량 죽림정사 등이었기 때문이다.

20여 km를 걸은 상태였지만 순례단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 보였다. 마을과 마을을 걸으며 받았던 환영과 목도했던 불심의 가능성이 옛 불교의 중심지 라지기르에서 더 확연히 확인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인도 고대 통일왕조 전 16개국 당시 가장 강성한 국가 중 하나였던 마가다국의 수도 라지기르. 산등성이 마다 있는 성곽은 옛 고도의 규모를 짐작케 했다. 이러한 성곽 사이길로 순례단이 행선하고 있다.
인도 고대 16개국 중 가장 강성한 국가였던 마가다국의 수도 라지기르. 산등성이 마다 있는 성곽은 옛 고도의 규모를 짐작케 했다. 이러한 성곽 사이길로 순례단이 행선하고 있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만들었다는 옛길. 왕사성 내 기거하시라는 왕의 요청에도 부처님은 이를 거절하셨다. 가르침을 받기위해 부처님께 오간 빔비사라 왕의 마차 바퀴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만들었다는 옛길. 왕사성 내 기거하시라는 왕의 요청에도 부처님은 이를 거절하셨다. 가르침을 받기위해 부처님께 오간 빔비사라 왕의 마차 바퀴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왕사성으로 흔히 불리는 라지기르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영산회상'의 영산이 바로 라지기르 그리드라쿠타(영축산)이기 때문이다. 또 최초의 불교사원이라 할수 있는 베누바나비하라(죽림정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원정사가 있는 스라바스티와 더불어 부처님 일화가 가장 많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큰 성문이 36개에 달했다는 왕사성, 라지기르에는 성벽 만이 남아있고 영축산만 외로이 그 영광을 간직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라지기르는 부처님이 마지막 여행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생애 마지막 여행으로 라지기르를 출발해 바이샬리를 거쳐 케살리, 쿠쉬나가르로 떠났다. 그렇기에 라지기르는 살아있는 부처님의 역사 그 자체다.

의왕 용화사에서 온 성지순례팀이 영축산 입구에서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을 환영하고 있다.
의왕 용화사에서 온 성지순례팀이 영축산 입구에서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을 환영하고 있다.
약 20km를 행선 후에 영축산을 오르는 길은 순례단에게 힘든 과정이었지만 신심과 원력으로 한발 한발 정진했다. 영축산 향실까지 이어지는 이 계단길은 빔비사라 왕이 만든 길이라하여 빔비사라왕의길로 불린다.
약 20km를 행선 후에 영축산을 오르는 길은 순례단에게 힘든 과정이었지만 신심과 원력으로 한발 한발 정진했다. 영축산 통도사 오심 스님이 작은부처님을 가슴에 안고 영축산 향실로 향하고 있다. 
중간 휴식장소에서 순례단 스님들이 목마름을 해결하고 있다.
중간 휴식장소에서 순례단 스님들이 목마름을 해결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때 수많은 대중이 모였다는 그 곳은 독수리를 닮은 바위와 단이 남아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불자들이 부처님이 설하셨다는 자리에 올린 꽃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순례단은 그 당시를 회상하듯 영축산 향실에서 <법화경>을 읊었다.

“단지 방편으로 갖가지 길을 보여주었을 뿐이니, 불자가 자기에 맞는 도를 행한다면 반드시 부처를 이루리라. 대중을 위해 이 법화의 가르침을 두루 설해야 하느니라.”

영축산 향실을 참배하는 순례단의 모습. 아침 태양이 떠올라 순례단을 밝게 비추었다. 영축산의 이름을 유래시킨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순례단 뒤편으로 보인다.
영축산 향실을 참배하는 순례단의 모습. 아침 태양이 떠올라 순례단을 밝게 비추었다. 영축산의 이름을 유래시킨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순례단 뒤편으로 보인다.
지혜제일 사리푸트라 존자가 머물렀던 굴에서 불자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하산길에서 한 불자가 부처님상에 이마를 맞추며 예를 올리고 있다.
하산길에서 한 불자가 부처님상에 이마를 맞추며 예를 올리고 있다.

어떤 사람도 그 근본에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설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현재도 계급이 존재하는 인도에서, 그리고 대중 속으로 찾아가는 불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에서 더 절실해 보였다. 그 절실한 마음을 담아 우바이인 7조 조장이태경 보살이 순례단을 대표하여 이를 낭독했다. 

영축산에 머물던 부처님은 갑작스럽게 한 송이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셨다. 마하카샤파만이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 보이신 뜻을 알고 미소 지었다. 시대를 뛰어넘어 그 도량에서 순례단도 마음의 법을 이어 정진할것을 다짐했다.

이날 영축산 향실에서 행선을 회향한 순례단은 죽림정사를 보시하는 등 불교를 후원한 빔비사라왕이 아들에 의해 감옥에 갖히고도 영축산을 바라보던 터를 둘러보고 죽림정사로 향했다.

죽림정사에서 사리풋다와 마하목갈라나, 마하카샤파 등 뛰어난 제자들이 귀의했고 계율이 제정됐다. 그 불제자들의 가르침도 새기며 회주 자승 스님을 비롯한 순례단은 고개를 숙인채 조용히 묵언 속에서 정진을 이어갔다.

부처님은 생애에 각별한 의미가 있는 죽림정사임에도 안주하지 않고 우안거를 세번 지낸 뒤 전법의 길을 떠나셨다. 멀리 1차결집이 행해진 칠엽굴을 지켜본 순례단도 죽림정사에 잠시 머문 뒤 다시 길을 떠났다.

순례단은 자리를 옮겨 라지기르 죽림정사를 참배했다. 대나무숲과 연못으로 구성된 죽림정사는 정갈히 정돈된 모습이었다. 이 곳에서 순례단은 간략한 설명을 들은 뒤 정사를 둘러봤다.
순례단은 자리를 옮겨 라지기르 죽림정사를 참배했다. 대나무숲과 연못으로 구성된 죽림정사는 정갈히 정돈된 모습이었다. 이 곳에서 순례단은 간략한 설명을 들은 뒤 정사를 둘러봤다.

“然後願 恒沙法界無量佛子等 同遊華藏莊嚴海 同入菩提大道場 常逢華嚴佛菩薩 恒蒙諸佛大光明 消滅無量衆罪障 獲得無量大智慧 頓成無上最正覺 廣度法界諸衆生 以報諸佛莫大恩 世世常行菩薩道 究竟圓成薩般若 摩訶般若婆羅蜜”

'원하옵고 원하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계의 모든 불자들이 장엄한 화엄세계를 함께 누리고 더불어 지혜의 대도량에 들게 하소서. 모든 부처님의 대광명과 법계에 가득한 불보살을 항상 뵙게 하시어 한량없는 중생의 죄업을 소멸케 하시고 끝없는 대지혜를 얻어 지니게 하소서. 위없는 최정각을 한순간에 성취하여 넓은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을 제도케 하소서. 부처님의 높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세세생생 보살도를 실천하고 구경에는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여 정토세계를 꼭 이루겠나이다.'

영축산 향실 앞에서 호계원장을 역임한 무상 스님의 축원 속에 순례단은 마음에 제도중생을 새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날 이후 순례단의 남은 여정은 부처님께서 열반을 향해 가신 길과 닮아있다.

순례단은 2월 26일 사리풋다와 마하목갈라나의 고향이자 옛 스승들의 목숨을 건 구법 흔적이 남아 있는 나란다대학을 지나 3월 1일 유마거사 일화가 전해지는 바이샬리, 여성 출가 상징 대림정사로 간다. 여기서 다시 길을 떠나 부처님이 열반하신 쿠쉬나가르로 향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슴에 모신 부처님을 안고 걷고 또 걷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슴에 모신 부처님을 안고 걷고 또 걷는다.
행주좌와 목숨줄 처럼 꼭 손에 쥔 염주는 불제자로서의 다짐이다.
행주좌와 목숨줄 처럼 꼭 손에 쥔 염주는 불제자로서의 다짐이다.
이러한 모든 현실은 순례단이 전법 포교의 원을 새롭게 다지는 하나의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모든 현실은 순례단이 전법 포교의 원을 새롭게 다지는 하나의 계기가 되고 있다.
참담한 현실 속에서 새로운 불교 중흥을 꿈꾸며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은 오늘도 한발 한발 정진한다.
새로운 불교 중흥을 꿈꾸며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은 오늘도 한발 한발 정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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