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중심으로 기술하면서도 고구려·백제·가야·대발해 포함 만주가 우리 강역임을 환기시키고 ‘오가야’ 조목 해외진출 짐작케 해 한반도 일대 각국 역사 기록해 대화왜는 무녕왕에서 비롯됨 서술 1. 고구려와 대발해흔히 사가들은 일연이 ‘세 나라의 빠진 이야기’를 〈삼국유사〉에 담아내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서책이 신라ㆍ경주ㆍ왕실 중심으로 기술됐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신라를 중심으로 기술해 가면서도 고조선과 부여 및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가야와 대발해 등 여러 나라들의 건국이야기를 담아놓고 있다. 이것은 일연이 국사(國師)의 소임을 맡으면서 강화도경의 국립도서관에서 많은 역사서들과 경사자집을 열람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이들 고전들을 깊이 섭렵하고 취사선택해 신라만이
고조선의 홍익인간 이념은 부여의 법사상에도 구현돼 부여는 몽골땅에서 건국돼 몽골족 일부, 지금도 ‘코리’라 불러 해모수 아들, 천제의 아들로 태어나 ‘고’로 성 바꿔, 훗날 ‘고구려’의미 1. 부여의 위치와 주체고조선은 개국 초부터 국가기구의 조직과 법 이념 및 그 기능을 세웠던 것으로 이해된다. 〈삼국유사〉 기이편 ‘고조선’ 조의 언급처럼 단군은 후대의 ‘삼정승’과 같은 최고기관인 풍백(風伯)과 운사(雲師)와 우사(雨師)의 3부 ‘영감’(令監)을 두었고, 그 아래에 후대의 ‘판서’와 같은 주곡(主穀)과 주명(主命)과 주질(主疾)과 주형(主刑)과 주선악(主善惡)을 담당하는 5부 장관(長官)을 두었으며, 그리고 그 아래에 360여 가지 소임을 맡은 ‘하급 관리’를 두어 후대의 국가기관의 모범을 세웠다
한(韓)의 위치 여전히 논란 일연, 고구려 영토 연관 주장 구맥·구이, 고조선 유민 지칭 아홉 곳 위치 대체적 유사 삼한, 요서에서 요동으로 이주분열 이후 삼한 독립적 국가 운영 1. 마한의 위치와 주체한국고대사에서 한(韓)의 위치 비정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남아 있다. 고조선 이후 ‘한후’(韓候)로 명명된 기준(箕準)왕이 세운 한씨(韓氏)조선과 한(韓)은 분명히 다른 민족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국사학자들은 기준(箕準)이 세운 한씨조선과 한(韓)민족을 동일시하려는 이들이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 찬술(1281) 직후 같은 충렬왕 때에 간행된 이승휴의 〈제왕운기〉에 의하면 한반도와 만주지역에는 한(三韓)ㆍ부여ㆍ비류ㆍ신라ㆍ고구려ㆍ남옥저ㆍ북옥저ㆍ예ㆍ맥 등의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이승휴는 〈제
고조선에는 독자적인 ‘문자’가 있었을까? 고조선에서는 기록 전담 관직 운용 신지선인은 종교 소임까지 병행해 고조선의 역사관 남달랐던 일연 기자 사대사상에 반감 갖고 서술 단군조선 자긍심 높이기 위해 위만조선 조목 추가한 일연 스님 1. 고조선의 기록 문화2000여 년 역사를 지녔던 고조선 사람들에게는 과연 독자적인 문자가 있었을까? 그 시대에도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고 살았다면 설사 문자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기록문화는 있지 않았을까? 1988년 경남 의창군 다호리(茶戶里) 고분에서 기원전 1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청동기와 철제 농구 및 제기와 칠기 등과 함께 출토된 ‘다섯 자루 붓’은 중국 한나라 시대에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문자의 필사용 필기구였다. 때문에 이들 붓은 두 나라 사이의
‘고조선’에서 종교와 사상의 지위는? 정치지도층과 종교지도층 같은건 자연현상·지도권위 동일시 까닭 1. 고조선의 통치 방법고조선은 단군조선만으로 이뤄져 있었다. 단군조선은 만주 전역과 한반도의 넓은 강역을 통치한 나라였다. 단군조선을 통치했던 47세계(世系)의 ‘단군’들은 각 지역의 거수(渠帥)에게 거수국(渠帥國)을 위임해 간접 통치하는 지방 분권의 체제로 광대한 제국을 유지했다. 단군조선이 지방분권의 통치체제를 고수한 것은 고조선 출현 이전에 만주 전역과 한반도 지역에 존재했던 성읍국가들(마을연맹체)을 지방정권으로 인정하면서 그들을 결집해 세웠기 때문이다. 전 시대에 광대한 제국의 영역을 다스려 본 경험이 없었던 단군조선은 정복을 통한 ‘지배’의 방식이 아니라 앞선 선진 문명을 통한 지방 정권의 ‘인
‘고조선’의 주체를 어떻게 비정할 것인가? 고조선의 주체, 학자들도 합의 못봐 中·日, 단군조선을 신화로 치부해 고조선의 건국과 해체한(韓)민족이 세운 최초의 나라 이름은 무엇일까?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고조선’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고조선’의 주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고조선의 구성에서 단군조선을 배제하고 기자조선 혹은 위만조선부터 한사군(漢四郡)까지 포함하고 있다. 또 몇몇 학자들은 일본 학자들의 비판을 의식해 기자조선을 제외한 뒤 그 시기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개아지’조선(奇氏朝鮮 혹은 解氏朝鮮)이나 ‘한조선’(韓朝鮮) 또는 ‘예맥조선’(濊貊朝鮮)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해 왔다. 뿐만 아니라 기자(箕子)와 그
건국시조인 단군의 본뜻은 ‘산신’ 민족국조이나 기독교는 우상 취급 조선(朝鮮)은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 이름이다. ‘조선’을 한자 그대로 풀면 ‘고요히 해 뜨는 아침의 나라’이다. 하지만 조선은 ‘목초(牧草) 꼴인 선(蘚)을 따라 이동하며 순록을 치는 부족의 이름’이기도 하다. 순록 유목단계에서는 ‘소욘’(蘚)족과 ‘차아탕’, 즉 ‘조족’(朝族) 또는 ‘코리치’(高麗族)로 불렸다. 이것은 순록유목단계에 진입한 조족(朝族)과 방목하는 선족(鮮族)을 구분한 것이다. 바로 이 유목하는 차아탕, 즉 조족이 선족을 통합해 세운 ‘예맥(濊貊) 단단국(檀檀國)’이 단군조선이라 불린 것이다. 이들 동이족[朝鮮, 濊貊, 韓, 夫餘, 沃沮, 肅愼(靺鞨 또는 ?婁], 즉 북방유목민족은 한족(漢族)과 달리 소리글자를 우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