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기르부터 날란다대학터 거쳐 케웨이까지 28km행선

불교학 新舊현주소 살피다
新날란다대학서 공양 올려
비랍 학장 “이런 순례 최초”

두 수제자 향훈서린 날란다
스승 모시고 도반으로 행선
​​​​​​​부처님 열반 여정따라 정진

회주 자승 스님을 필두로 순례단이 나바 날란다대학을 뒤로 행선에 나서고 있다. 인도 정부가 운영하는 나바 날란다대학은 1947년 인도 공화국 수립과 함께 건립이 추진돼 1951년 날란다대학터 인근에 세워졌다. 현재 불교전문대학으로 위상을 다지고 있다.
회주 자승 스님을 필두로 순례단이 나바 날란다대학을 뒤로 행선에 나서고 있다. 인도 정부가 운영하는 나바 날란다대학은 1947년 인도 공화국 수립과 함께 건립이 추진돼 1951년 날란다대학터 인근에 세워졌다. 현재 불교전문대학으로 위상을 다지고 있다.

지혜의 상징인 ‘연꽃이 있는 곳’의 나란타(那爛陀)로 음사되는 인도 날란다대학은 불교학의 중심지로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꿈의 장소였다. 수많은 구법승들이 이 곳을 향해 길을 떠났고, 현장 스님도 마찬가지였다. <대당서역기>를 지은 현장 스님(602∼664)은 천산북로를 이용해 3년을 걸어 인도 날란다대학에 도착했다. 현장 스님의 목숨을 건 구법(求法)행 결과 중 하나인 <대당서역기>로 인하여 정글에 묻혀 잊혀진 날란다대학은 후대에 발굴된다.

5세기부터 12세기까지 7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수천명의 승려와 학자 등 1만여 명이 머물렀던 그 곳, 부처님이 즐겨 찾았고, 사리풋다와 목갈라나 두 상수제자의 고향이기도 한 그 곳에 상월결사 인도순례단(회주 자승)이 당도했다.

순례단이 유네스코 유적인 날란다대학터에서 행선을 진행하고 있다. 날란다 지역 자체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향훈이 남은 곳이기에 그 의미를 되새기며 행선을 이어갔다. 저 멀리 승원 유적이 보인다.
순례단이 유네스코 유적인 날란다대학터에서 행선을 진행하고 있다. 날란다 지역 자체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향훈이 남은 곳이기에 그 의미를 되새기며 행선을 이어갔다. 저 멀리 승원 유적이 보인다.
날란다대학터를 뒤로 순례단이 행선을 이어가고 있다.
날란다대학터를 뒤로 순례단이 행선을 이어가고 있다.

불교의 역사는 구법과 전법의 역사다. 목숨을 건 구법행과 이를 전하기 위한 전법행이 없다면 불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옛 스승인 구법승들이 그랬듯, 순례단 또한 직접 두발로 걸어 그 역사의 현장에 함께 했다.

라지기르의 숙소에서 출발한 순례단은 약 16km를 걸어 ‘나바 날란다대학’(Nava Nalanda Mahavihara)에서 아침공양을 진행했다. 당초 이날 아침공양은 ‘Ruin of Nalanda’로 표기되는 옛 날란다대학터 인근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도정부가 운영하는 ‘나바(新) 날란다대학’에서 순례단에게 특별히 공양을 올리고 싶다는 요청을 보내 전날 공양장소가 변경됐다.

나바 날란다대학은 인도 초대 대통령 라젠드라 프라삿드 박사가 1951년 옛 날란다대학의 명성을 되살리고자 발의하여 날란다대학터 옆에 세워졌다. 불교전문대학으로 다수의 석‧박사 과정학생들이 인도 고대사와 불교학을 공부하고 있다.

나바 날란다 대학에서는 비랍학장을 비롯한 교수들이 나와 순례단을 환영했다. 순례단의 간편식에 맞춰 토스트 등으로 아침공양을 준비한 이들은 순례단의 행보가 최초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에게 회주 자승 스님은 팔만대장경이 새겨진 기념품을 전달했다. 
나바 날란다 대학에서는 비랍학장을 비롯한 교수들이 나와 순례단을 환영했다. 순례단의 간편식에 맞춰 토스트 등으로 아침공양을 준비한 이들은 순례단의 행보가 최초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에게 회주 자승 스님은 팔만대장경이 새겨진 기념품을 전달했다. 
비랍 학장을 비롯한 나바 날란다대학 교수들이 순례단의 행선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비랍 학장을 비롯한 나바 날란다대학 교수들이 순례단의 행선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나바 날란다대학에서 준비한 공양은 단촐했지만, 보여준 정성은 뜻깊었다. 강당을 비우고 비랍 학장과 교수들이 정문까지 나와 순례단을 맞이했다.

비랍 학장은 “한국에서 100여 스님과 재가자들이 직접 걸어 불교학 터전이었던 이 곳에 방문하신 것은 최초”라며 “이 뜻깊은 순례에 공양을 올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순례단에 아침공양을 올린 그들에게 회주 자승 스님은 팔만대장경판을 본따 만든 기념품을 선물했다.

이날 순례단은 안타깝게도 날란다대학 유적지를 살펴보지는 못했다. 유네스코 유적인 관계로 오전 9시부터 문을 여는 터라 행선 시간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7시경 아침공양 후 순례단은 新날란다대학을 둘러보고 옛 날란다대학터를 먼 발치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순례단이 날란다대학터로 진입하고 있는 모습
순례단이 날란다대학터로 진입하고 있는 모습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향훈이 남아있는 마을 마다 주민들이 합장하고 박수치며 순례단을 환영했다.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향훈이 남아있는 마을 마다 주민들이 합장하고 박수치며 순례단을 환영했다.
날란다대학터를 지난 순례단은 사리풋다와 목갈라나 존자가 그랬듯, 마을과 마을 사이로 난 작은 길에서 행선을 진행했다. 회주 자승 스님을 비롯한 순례단은 구법행과 전법행이 둘이 아님을 직접 행선을 통해 보이고 있다.
날란다대학터를 지난 순례단은 사리풋다와 목갈라나 존자가 그랬듯, 마을과 마을 사이로 난 작은 길에서 행선을 진행했다. 회주 자승 스님을 비롯한 순례단은 구법행과 전법행이 둘이 아님을 직접 행선을 통해 보이고 있다.

‘날란다대’ 있게 한 사리풋다‧목갈라나

후대 번성한 날란다대학의 명성이 부각되지만 부처님 생전에도 날란다 지역은 왕사성으로 향하는 무역로에 위치해 번영을 누리던 곳이었다. 특히 이 곳은 ‘사리불’과 ‘목건련’으로 음사되는 사리풋다와 목갈라나 두 상수제자가 태어나고 입적한 곳이기도 하다.

모든 진리의 길에는 외도가 꼬이기 마련이다. 부처님 재세시 왕사성에는 데바닷타를 추종하는 무리가 그러했고 이들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장외도(執杖外道)로 승단을 자주 위협했다고 한다.

상수제자인 사리풋다와 목갈라나는 그들의 표적이었다. 심한 몽둥이질에 팔다리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찢겨 나간 목갈라나에서 도반인 사리풋다가 다가가 ‘왜 신통력을 쓰지 않았는가’라고 하자 목갈라나는 오히려 자신의 업으로 돌렸다. 출가도 같이 하고 깨달음도 같이 얻은 이 둘은 부처님께 허락을 받은 뒤 사리풋다는 날란다에서 설법 후, 목갈라나는 조금 떨어진 코리가에서 입적했다.

감자를 캐는 인도 농촌주민들이 일하던 손을 놓고 순례단의 행선에 경배했다. 
감자를 캐는 인도 농촌주민들이 일하던 손을 놓고 순례단의 행선에 경배했다. 
이날 행선은 지난 영축산에서 부처님의 법화 가르침을 이어 우바이들도 부처님 이운에 동참했다. 여성들이 부처님을 안고 이운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인도여성들이 합장했다.
이날 행선은 지난 영축산에서 부처님의 법화 가르침을 이어 우바이 우바새들도 부처님 이운에 동참했다.

이후 사리풋다의 스투파가 날란다에 형성되고 이 주변 승원을 바탕으로 발전한 것이 날란다대학이니, 숭고한 상수제자의 뜻이 후대에 이어졌음이다.

순례단 또한 이들의 의지를 잇고 있다. 부처님을 모시고 반목과 질투 없이 서로를 존경하고 아끼면서 당시 승단을 헌신적으로 이끌었던 그들처럼, 스승을 모시고 함께 돕고 존중하며 순례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행선 후반에는 우바이와 우바새가 부처님을 이운했다. 우바이 이태경, 성계순, 정유림 불자와 우바새 정충래, 주윤식, 이영규 불자가 차례로 10km 가량 부처님을 안고 이운했다. 

이날까지 순례단이 이동한 거리는 401km,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향훈이 남아 있는 날란다에 이어 부처님 열반의 여정을 따라 순례단은 계속 정진한다.

 사리풋다와 목갈라나 존자처럼 순례단은 스승을 필두로 도반이 되어 함께 정진한다.
 사리풋다와 목갈라나 존자처럼 순례단은 스승을 필두로 도반이 되어 함께 정진한다.
회주 자승 스님이 두번째 휴식장소에서는 몸이 아픈 이들이 실내에 위치하도록 바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회주 자승 스님이 두번째 휴식장소에서는 몸이 아픈 이들이 실내에 위치하도록 바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순례의 회향은 스승에게 삼배의 예를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부처님 당시 제자들이 전법의 의지를 다졌듯, 행선의 회향과 동시에 새롭게 전법의지를 다지고 있다.
순례의 회향은 스승에게 삼배의 예를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부처님 당시 제자들이 전법의 의지를 다졌듯, 행선의 회향과 동시에 새롭게 전법의지를 다지고 있다.
매일 새벽 2시 30분 경 행선에 앞서 진행되는 발원문 낭독은 순례단의 의지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매일 새벽 2시 30분 경 행선에 앞서 진행되는 발원문 낭독은 순례단의 의지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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