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따뜻하고 정감어린 말씀으로 세상과 함께 했던 법정 스님이 어린왕자 곁으로 가신 지 어언 두 해. 해방둥이 이해인 수녀가 곱다라니 수놓은 시 ‘나를 키우는 말’을 읊조리면서 “태초에 말씀이 있으셨다”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깊은 고요 끝에 나온 첫 말씀에는, 따뜻한 말로 서로 보듬어 안아 세상을 보다 아름답고 환하게 수놓으라는 큰 뜻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날마다 고운 말을 쓰며 사랑하기에도 모
대중 대통령 시절의 일이다. 광양시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청매실농원에 가실 테니 헬기 앉을 자리를 만들라고 했다. 홍쌍리 선생(70)은 전시관 앞 비탈에 흙과 돌을 트럭 3700대 분을 부어 메웠다. 지금 장독대 자리다. 공사를 마치고 나니까 법정 스님이 오셨다. 스님은 “잘 했다. 이제 턱이 있어 됐다”며 “돈 많이 들었지? 빚 많이 졌지? 그래도 앞으로 괜찮을 것이다”고 했다.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느냐는 선생 말에 “그땐 보살이 빚에 깔려 죽을 판인데 그 소리를 어찌하겠나”고 말씀했다. 그때 전시장 올라가는 왼쪽 축대도 새로 쌓았다. 스님은 축대 위에다 항아리를 한 줄로 나란히 놓으라고 일렀다. “그 뒤에 웬 스님이 한 분 오셔서 누가 저렇게 항아리를 일자로 놓으라고 했느냐고 물어요. ‘법정 스님이요.’
경남 울진의 대표절경 하면 불영사계곡을 빼놓을 수 없다. 산세가 인도 천축산과 비슷하다는 천축산 자락의 웅장한 바위와 그 사이로 흐르는 푸른 물의 조화는 천혜의 절경으로 불린다. 그 계곡길을 굽이굽이 따라가면 고즈넉한 불영사의 풍경이 길손을 반갑게 맞이한다. 불영사는 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 말사로 진덕여왕 5년(651년) 의상(義湘) 대사가 창건했다. 금강송 군락지의 숲길을 뒤로 그림 같은 연못 속엔 천축산과 전각들의 그림자가 비친다. 불영사의 연못은 창건 당시 아홉 마리 용을 주문으로 쫒아냈다는 설화가 있을 만큼 깊고 넓다. 이 연못에 서쪽의 부처 모습을 한 바위가 항상 비쳐 불영사(佛影寺)로 불리는 것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평지에 오밀조밀 많은 전각이 자리한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법정 스님은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소음이나 다름없다’고 그러셨어요. 누에가 거친 뽕잎을 먹고 비단실을 뽑아내듯이, 스님은 대장경이라는 커다란 숲에서 해말간 잎들을 모아 유려하고 감성어린 우리말로 불교를 풀어내셨어요. 이웃 종교와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종교 정서로 말씀을 나누셨지요. 천주교 신자들은 법정 스님 말씀을 눈 감고 들으면 마치 수사님 말씀 같다고 했어요. 스님은 봉은사 다래헌과 불일암에 사실 때, 서가 한편에 성모상을 모시고 촛불 공양을 올리곤 하셨어요.” 인터뷰 요청에 조심스럽다며 여러 차례 손사래를 치다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이 아닌 자연인 자격이라면 하겠다며 취재에 응한 속가인연으로 법정 스님 조카 현장 스님(56). 역사를 훑는 안목과 유머감각이 남다르다는 말
“나는 어머니에게 자식으로서 효행을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모이는 집회가 있을 때면 어머니를 대하는 심정으로 나간다. 길상회에 나로서는 파격일 만큼 4년 남짓 꾸준히 나간 것도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보상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마른 나뭇단처럼 가벼웠던 몸’에 나오는 법정 스님 말씀이다. 파리 길상사를 후원하는 일은 유럽에 한국문화를 펼치는 일 어머니는 우리 생명 언덕이자 뿌리라고 하셨던 법정 스님이 남다른 애정을 보인 어머니 모임 길상회 회장이자 맑고 향기롭게 이사였던 법장궁法藏宮, 강정옥 보살(77)과 인사동에 있는 조촐한 카페에서 향이 그윽한 대추차를 앞에 놓고 마주앉았다. 1993년, 파리 길상사 탱화를 그린 재불화가 방혜자 화백과 가까운 지인 한 분이 경복궁 앞에 있는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 보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의 백서’가 되어야 한다.” 법정스님 글 ‘미리 쓰는 유서’에 나오는 말씀이다. 스님 말씀처럼 유서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백서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해답은 이미 스님이 주셨다. 언제 어디서건 순간순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라고.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종교를 뛰어넘어 함께 “제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발을 막 내딛었을 때였어요. 출퇴근하면서 불교방송을 날마다 들었는데 어느 날 법정스님이 ‘맑고 향기롭게’ 시민운동을 하신다는 방송이 나오더라고요. 그 길로 바로 입회를 했어요. 맑고 향기롭게 운동을 시작한 이듬해인 95년이었어요. 처음 한 일이 산에 버려진 쓰레기 줍는 활동이었었어요. 나가보니까 의무봉사활동을 나온 학생들이
다행히 이창숙 박사(72)는 그 사건 뒤로 일을 가려서 했기 때문에 사찰을 덜 받았기에 자료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옛날에는 회람을 등사판에다 밀었잖아요. 74년에 일어난 일이니까, 2005년엔 이미 30년이 넘었잖아요. 한꺼번에 묶어서 책장에 넣어뒀던 걸 꺼내니까, 종이가 바스락 바스락 하더라고요.” 그 때 마음은 지금 마음이 아니고 지금 마음은 그 때 마음이 아니다 2005년 한 해 동안 준비모임을 가지고 관계되었던 바깥사람들 회상에 노조 발기인들이야기와 사건일지를 모아 책을 엮었다. “쓰기가 어렵더라고.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 일을 쓰면 되지.’ 하겠지만 그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 때 마음으로 쓰면 지금 마음이 아니고, 지금 마음으로 쓰면 그 때 그 마음이 또 옅어져요. 서른 몇 살
?저는 법정스님을 뵙기 전까지는 절을 잘 몰랐어요. 절에 가 본 적이 없고 스님하고 얘기를 해 본 적이 없어요. 법정스님은 제가 가장 처음 만난 스님이에요. 금생에.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미국에 이민을 가면 인연 있는 사람들이 마중 나오잖아요. 나중에 일을 할 때 대개 마중 나온 사람과 비슷한 일을 고른대요. 그러니까 맨 처음 누굴 만났느냐가 매우 중요하죠.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제가 행운아에요. 럭키해요. 럭키!” ? 생애 가장 처음 만난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법정 두텁고 딱딱한 겉껍질을 죽을힘을 다해 밀어 올리며 파르라이 새순들이 돋는 사월 중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불교 여성학 1호 박사 일화선一化船 이창숙 박사(72) 일성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민주항쟁 문을 여는 4·19이어서, 1974년
매화는 반만 필 때 운치가 있고, 벚꽃은 활짝 피어나야 여한이 없다 봄볕이 완연하고 벚꽃잎이 눈발처럼 날리는 4월 중순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신춘은평휘호전시장에서 법정스님 길상사 법회 때마다 10년 넘도록 스님을 외호했던 벽파碧坡 홍기은 거사(71)를 만났다. “처음모실 때는 굉장히 깐깐하셨어요. 부처님오신날 극락전 앞에 처마 좌우에 큰 연등을 걸잖아요. 그 연등에다가 ‘법정 대화상’이란 꼬리표를 달아놓은 적이 있었어요. 스님께서 보시고는 ‘저거 왜 달았어?’ 그러세요. ‘모르겠습니다.’고 말씀드리니 ‘떼어요.’ 이러시는 거라. 난처해서 ‘스님들이 붙이신 걸 제가 어찌 뗍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손수 떼어버리셨어요.” 세상에 큰 스님 작은 스님이 어디있냐시던 어른이니 마음이 편치 않으셨으리라. 풀 먹인
웃음을 나누면 두 배, 눈물을 나누면 절반이 웃음을 나누면 두 배 되고 눈물을 나누면 절반되듯 기쁨으로 나누는 우리는 하나, 하나~ 너와 나 서로를 이해하고 너와 나 서로를 용서하며 사랑으로 섬기는 우리는 하나, 하나~ 친구 “스님이 강원도 오두막에 가신 뒤 광주에서 뵌 적이 있었어요. 그때 혼자 사시는 스님이 걱정이 되어 ‘손전화기 하나 사드릴 테니까, 아플 때 전화나 하시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무슨 손전화냐며 손사래를 치시더군요. 스님은 제가 무례하게도 ‘외로우시면 결혼이라도 하시라’는 농담도 건넬 만큼 친근하게 보듬어주시던 정감어린 분이셨어요. 나이가 조금 조금씩 들면서 느끼는데 사람답게 사는 일이, 일상에서 거짓말 덜 하고 남에게 피해 덜 주고 상식에 맞
높고 낮음, 앞서고 뒤섬이 이끌고 받쳐주는 세상 있고 없음은 서로를 낳아주고, 쉽고 어려움은 서로 이루어주며, 길고 짧음은 상대를 드러내주고, 높고 낮음은 서로 다하게 하며, 음과 소리는 서로 화답하고, 앞과 뒤는 서로 뒤따른다. - 가을저녁에 목회 일에 헌신하고 있을 노일경 목사에게 봄이라기에는 아직 일러 따사로운 햇볕이 반갑고 그리운 2월 중순 오후. 한신대 음악감상실에서 만난 월곡교회 담임 노일경 목사(55)는 법정 스님이 보내 주신 글이라며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말씀을 잔잔히 읊는다. 반쯤 감은 그윽한 눈에 스님이 가득했다. “목회란 높고 낮음, 앞서고 뒤섬이 서로가 이어져있음을 일깨워주는 일이거든요. 저는 개신교가 추구하는 성장 동력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지만, 무엇을 위하
“장익 신부, 서강대 신학연구소 소장을 하고 나중에 서강대학교 총장을 했던 서인석 신부 그리고 그 밖에 여러 어른들하고 신학 토론을 하면서, 자연스레 봉은사 나들이 길에 법정 스님에게 소개해드렸어요.” 돈연 스님(66)은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법정 스님과 친교를 쌓는 물꼬도 터드릴 만큼 다른 종교 가르침을 이해하고 소통하려고 애썼다. 70년 대 중반, 베네딕도 수도원에 ‘불교는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이고, 심멸즉종종법멸心滅則種種法滅이라. 마음이 일어나면 가지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모든 법이 사라진다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는 마음법이다. 그런데 당신들은 모든 걸 하느님이 만들었다고 하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나서 함께 탁마를 해보자.’는 편지를 보냈다. 얼마 뒤 베네딕도 수도원
범종은 하루 세 번 울린다. 아침 예불, 점심 마지, 저녁 예불 때. 예외가 있다. 수행자가 입적했을 때 108번을 울린다. 열반 종소리다. 삶을 깊이 되돌아보는 삶과 죽음을 벗어난 소리다. 한 생을 마감하는 장중한 느낌이 담겨 있어 순식간에 산중을 섭섭하고 엄숙하게 이끈다. 출가한 이는 너나들이 이 종소리를 들으며 시공간을 버리고 떠난다. 2010년 3월 11일 오후 1시 51분. 때 아니게 길상사 범종이 울렸다. ‘수행은 겸허와 청빈 그리고 엄숙함과 청정을 주춧돌로 삼는다.’는 법정 스님이 생전에 사신 모습 그대로를 소리에 담아. “집이 워낙 가난해 가지고 초등학교 때부터 나무를 해서 학비를 벌었으니까. ‘쟤는 나무를 해야 학교를 다닐 수 있다.’고 선생님들이 인정을 해줬어요. 그래서 결석을 터놓고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