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하지푸르부터 바이샬리까지 25km 행선

위대한 열반의 여정 시작점
자등명 법등명 설법의 장소
따뜻한 부처님 가르침 따라
한걸음 한걸음 정진 또 정진

여성출가, 재가법사 상징터
사부대중 구분없이 한마음
유물로 남은 인도불교 보며
한국불교 미래 화두로 행선

반결제 맞아 대림정사터서
무주고혼 천도재도 봉행해

불교중흥을 위한 사부대중의 마음을 상징하는 부처님상을 모시고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이 대림정사터를 참배하고 있다.  부처님을 이운하는 오심 스님과 바로 뒤편 회주 자승 스님, 이날 모친 성불화 서춘희 여사 1주기를 맞은 상월심 이태경 불자 등이 따르고 있다.
불교중흥을 위한 사부대중의 마음을 상징하는 부처님상을 모시고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이 대림정사터를 참배하고 있다.  부처님을 이운하는 오심 스님과 바로 뒤편 회주 자승 스님, 이날 모친 성불화 서춘희 여사 1주기를 맞은 상월심 이태경 불자 등이 따르고 있다.
바이샬리까지 행선을 마친 인도순례단이 부처님 사리를 모셨던 근본사리탑터를 뒤로 나오고 있다. 불법이 쇠락하고 부처님 사리는 박물관에 있다. 이 때문일까. 회주 자승 스님은 기단부만 남은 근본사리탑터를 짧게 둘러보고 고개를 숙인채 걸음을 이어갔다. 불법에 의지하라는 부처님 가르침처럼 사부대중이 의지할 것은 부처님이 전한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다. 
바이샬리까지 행선을 마친 인도순례단이 부처님 사리를 모셨던 근본사리탑터를 뒤로 나오고 있다. 불법이 쇠락하고 부처님 사리는 박물관에 있다. 이 때문일까. 회주 자승 스님은 기단부만 남은 근본사리탑터를 짧게 둘러보고 고개를 숙인채 걸음을 이어갔다. 불법에 의지하라는 부처님 가르침처럼 사부대중이 의지할 것은 부처님이 전한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안거를 위해 바이샬리 인근의 벨루와라는 마을로 가셨다. 대나무숲이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죽림촌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부처님은 마지막 안거를 보내셨다. 안거가 끝나자 부처님은 바이샬리에 있던 대중들을 모아 놓고 ‘3개월 후 열반에 들리라’고 선언하시며 그 자리에서 계정혜 삼학을 닦을 것을 당부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을 설하셨다.

부처님의 후대를 위한 가르침이 절실히 새겨진 곳, 부처님이 위대한 열반의 여정 중 가장 중요한 곳, ‘바이샬리’에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이 당도했다.

새벽 행선을 하는 순례단을 새벽 3시경 바이샬리 인근 마을 주민들이 나와 환영하고 있다. 순례단을 환희롭게 하는 것은 유적만 남은 부처님 성지가 아닌,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은 곳들에서 발견되는 불교 중흥의 가능성이다.
새벽 행선을 하는 순례단을 새벽 3시경 바이샬리 인근 마을 주민들이 나와 환영하고 있다. 순례단을 환희롭게 하는 것은 유적만 남은 부처님 성지가 아닌,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은 곳들에서 발견되는 불교 중흥의 가능성이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단(회주 자승)은 3월 1일 옛 파탈리푸트라(현 파트나) 인근 하지푸르에서 바이샬리까지 25km를 행선했다.

부처님은 길에서 나시고, 길에서 법을 전하셨으며, 길에서 열반에 드셨다. 평생 길을 걸으신 부처님을 걱정한 아난 존자에게 부처님은 지금의 불교를 있게 한 위대한 설법을 하셨다.

부처님이 바이샬리의 벨루와에서 설하신 “그대들은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러야 한다.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러야 한다”는 가르침은 중생과 세상을 구제한 부처님 자신에게조차도 귀의하지 말고 그 진리에 귀의하라는 열반의 실질적인 법문이다.

이런 가르침이 서려있는 곳에서 순례단은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불로 삼아 정진했다. 순례의 과정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즐겨 찾아 설법하신 망고동산의 나무와 흐드러지게 핀 목련이 순례단을 반겼다.

순례단이 방일할 때면 경책을 아끼지 않는 회주 자승 스님이 가장 밝게 웃을때가 언제일까. 
순례단이 방일할 때면 경책을 아끼지 않는 회주 자승 스님이 가장 밝게 웃을때가 언제일까. 
인도 마을 주민들에게 염주와 단주 등을 주며 불심을 전할 때다. 특히 아이들이 합장하고 반길 때면 화두를 들고 행선하느라 굳어져있던 표정이 미소로 바뀐다.  
인도 마을 주민들에게 염주와 단주 등을 주며 불심을 전할 때다. 특히 아이들이 합장하고 반길 때면 화두를 들고 행선하느라 굳어져있던 표정이 미소로 바뀐다.  

사부대중이 함께 진리 의지해 정진

인도순례단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깊게 따르고자 이번 순례에 임하고 있다. 법 앞에 부처님 자신조차 귀의처가 아닌 가르침에 개개인의 존귀함을 따르고 수행공동체로서 의식을 함께 나누며 정진하고 있다.

순례단의 스승인 회주 자승 스님도, 순례단을 지원하며 궂은 일을하는 운영지원단의 일꾼들도, 취재하는 기자와 안내하는 경찰들도 예외는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맡은 역할의 본분에 충실하며, 법에 의지해 자신의 자리에서 정진하고 있다.

회주 스님은 대중이 함께 세운 청규를 지키기 위해 숙소에 갈 때까지 빨래를 하지 않고, 순례 과정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한다. 순례단 개개인은 행여 다른 이들의 행선에 방해가 될까 걸음이 힘들어도, 열조차 흐트러뜨리는 것을 경계한다. 새벽 2시, 도량석과 종송 소리에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새벽예불에 동참한다. 5kg으로 지친 상태에서 이운하기에 힘든 작은부처님도 서로가 나눠 이운한다. 부처님이 특정인이 아닌 ‘진리’인 법에 귀의하라는 그 가르침을 오롯이 이어가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형상화한 부처님상을 안고가는 비구니 스님들의 미소가 자애롭다. 부처님 가르침을 잇고 있다는 마음 하나로 무거운 불상을 안고 10km를 행선했다. 
부처님을 형상화한 부처님상을 안고가는 비구니 스님들의 미소가 자애롭다. 부처님 가르침을 잇고 있다는 마음 하나로 무거운 불상을 안고 10km를 행선했다. 
부처님상을 이운하는 중요한 소임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중이 함께 위하며 같은 마음으로 정진하는 것이 순례의 의미다.
부처님상을 이운하는 중요한 소임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중이 함께 위하며 같은 마음으로 정진하는 것이 순례의 의미다.

행선에서 비구니 스님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날 부처님 이운은 비구니 스님들이 나눠 진행했다. 오히려 비구니 스님들은 ‘여성’이라는 별개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 행선지인 바이샬리는 부처님이 여성 출가를 허한 곳이자, 후대에 재가불자의 상징인 유마거사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비구니조인 6조 조장 묘수 스님은 “비구니라고 해서 다르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 부처님 제자로 비구와 비구니, 우바이와 우바새는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3조 조장 법원 스님도 “부처님께서 회향을 위해 마지막으로 들리시며 하신 ‘어떻게 불자들이 행동하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가르침을 걸음마다 화두로 삼았다”고 말했다.

전날까지 부처님을 이운한 재가불자를 대표해 주윤식 조계종 중앙신도회장도 “본분에 충실하고자 하고 있다. 회주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각자가 본분에 충실하면 그 것이 불교중흥”이라고 했다.

사부대중 원력 함께 모아야 불교 산다

이날 순례의 회향은 부처님께서 열반 후 8등분 된 사리를 바이샬리의 리차비족이 봉안한 근본사리탑터에서 진행됐다. 부처님이 전한 가르침, 그 숭고한 불법이 현재 전해지지 않는 인도에서 부처님이 남긴 사리는 파트나 박물관에 유물로 있고, 근본사리탑터는 기단부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날 순례에 대해 순례단장 원명 스님은 “최후의 안거를 하시고 마지막 열반지를 향해 나아가신 바이샬리에 도착한 감회가 남다르다”며 “이 곳에서 비구니 교단이 형성되기도 하고, 대승불교의 가장 중요한 유마거사가 등장했듯이 출가자 일부 만의 법이 아닌 사부대중의 법으로 불교가 이제는 다함께 고민하고,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럴 때만이 인도불교처럼 한국불교가 사라지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상월결사 정신에 담긴 함께 불교를 걱정하고, 함께 전법 포교를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이 회향지인 근본사리탑터를 둘러보고 있다. 근본사리탑의 사리는 파트나 박물관에 있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이 회향지인 근본사리탑터를 둘러보고 있다. 근본사리탑의 사리는 파트나 박물관에 있다. 
이날 순례단은 행선 후반부 3.1절과 인도 독립을 기념해 양국 국기를 함께 들고 행선했다.
이날 순례단은 행선 후반부 3.1절과 인도 독립을 기념해 양국 국기를 함께 들고 행선했다.

종호 스님이 회향지에서 부처님 전에 올린 발원문은 이러한 안타까움을 담아 처절한 반성과 중흥을 위한 사부대중의 마음을 모을 것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회주 자승 비구를 비롯한 비구,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 순례대중은 발원하옵니다. 쇠잔해가는 불법이 중흥하도록 하고, 부처님 가르침이 온 세상 사람들의 의지처이자 나침반이 되도록 하옵소서.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은 사르나트, 보드가야, 영축산을 거쳐 400여 km를 걸어 이 곳 바이샬리에 도착하였습니다. 불법의 중흥은 세상을 이익되게 함에 있고, 우리 모두의 이타 실천행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여지이다. 온 세상이 투쟁과 갈등, 다툼가 불화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발원합니다. 부처님, 순례 21일째로 순례단이 지치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힘내고 기운내어 환희롭게 이 순례를 잘 회향하도록 가피내려 주시옵소서.”

한편,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은 부처님이 걸은 길을 따라 걷고 있다. 특히 라지기르부터 바이샬리를 거쳐 3월 8일 쿠시나가르까지 가는 여정은 ‘위대한 열반’, ‘완전한 열반’으로 일컬어지는 그 여정과 닿아 있다.

이날 도착한 바이샬리는 부처님께서 마지막 하안거를 보내신 곳, 3개월 후 열반하실 것을 말씀하신 곳, 자등명 법등명의 가르침을 설하신 곳이며, 여성 출가를 허락하신 곳이자, 삼처전심 다자탑전분반좌의 가르침과 유마경의 설법지, 근본사리탑 8개 중 1개가 있고, 부처님 입멸 후 100년 후 제2결집이 이뤄진 곳이다.

순례단은 이날 회향 후 순례 반결제를 맞은 조촐한 공양을 가진 뒤 바이샬리 역병을 정화하신 부처님에 감화한 이들이 보시한 대림정사터를 참배한다. 여성출가의 상징이며, 아난존자 스투파와 아소카왕 석주 등도 함께 있는 이곳에서는 비구니 스님들의 소회를 듣는 자리도 마련됐다.

사부대중이 불심을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할 때 불교중흥이 이뤄질 것이란 회주 자승 스님의 말처럼 비구니 스님들이 부처님상을 이운하는 동안 기자들과 스탭들이 본분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
사부대중이 불심을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할 때 불교중흥이 이뤄질 것이란 회주 자승 스님의 말처럼 비구니 스님들이 부처님상을 이운하는 동안 기자들과 스탭들이 본분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
아난존자 스투파와 아소카 석주가 바로 보이는 곳에서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이 상월심 이태경 보살의 모친 1주기와 3.1절 독립운동가,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자, 튀르키예 시리아 지진 희생자 등의 유주 무주 고혼을 천도하는 천도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천도재 중 금강경 독송을 진행하는 스님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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