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마츠야마에 묵으며 그간의 여독을 풀고, 관광이라고 하기엔 조금 무색하지만 근처의 유명한 장소나 먹거리도 즐겼다. 한 달여 가까이 걸었던 습관이 몸에 배여 새벽같이 눈이 떠지고, 가까운 거리는 다 걸어 다니는 것을 보곤 숙소주인이 “아예 고야산까지도 걸어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다시금 흰옷을 입고 순례자로 돌아갈 시간이다.도고온천 본관의 옥상에는 매일 아침 6시 온천의 개장을 알리는 북이 있다. 순례길이 이어지는 온천 앞 삼거리에서 짧게 울리는 북소리를 듣고선 걸음을 시작한다. 상점가는 대부분 닫혀있거나 이제 막 문을
산굽이 계곡 길을 돌아 쿠마고원을 내려오니 길이 일사천리로 이어진다. 쿠마고원 아래의 마츠야마(松山) 시내에만 8개소의 사찰이 모여있고, 또 사찰간의 거리가 멀어 봤자 10km 내외의 편안한 거리다.심지어 46번 죠루리지(淨瑠璃寺)와 47번 야사카지(八坂寺)는 사찰간의 거리가 겨우 400~500m남짓으로 매우 가깝게 붙어있다. 그러다보니 차량으로 순례하는 단체나 개인들이 도보순례 체험을 위해 걷는 경우가 많다. 실제 도보 순례자로서도 가까운 거리가 조금 낯설다.더욱이 마츠야마시는 에히메현의 현청 소재지인데다 예로부터 도고온천(道後溫
45번 사찰 이와야지(岩屋寺)는 시코쿠 88개소 가운데 가장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는 찰소다. 이와야지가 자리잡은 이와야산은 바위 여기저기가 움푹 파인 바위굴이 많은 데서 ‘바위집(이와야)’이란 이름이 붙었다. 특이한 바위 절벽 사이에 안기듯 자리 잡은 이와야지는 그 이름대로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사찰의 연기 설화에는 코보 대사가 수행을 위한 장소를 찾던 중 이 산에서 수행하던 홋케선인(法華仙人)이라는 여성 수행자와 만나게 된다. 오랜 수행 끝에 얻은 신통력으로 산을 지키고 있던 홋케선인은 대사의 수행력과 덕망을 보고선 자신이 관리하
노소도게길을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거친 자갈 시멘트로 포장한 길이 끊기고, 거친 자갈길들이 이어진다. 그래도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정비하기 위해서인지 차가 다닌 바퀴자국이 길 여기저기 나 있었고, 계곡 옆으로도 축대를 쌓아 낙석 등에 대비한 모습도 보인다. 고갯길이라고 하지만, 시코쿠에서는 나름 지대가 높은 지역이라서 해발 3~400m 가량의 야산을 넘는 길인데도 험하지 않아 마음 편히 길을 나아간다.자갈길을 나아가진 얼마 안 되어 갈림길이 나타났다. 하나는 지금껏 걸어온 것과 같은 길이 이어지고, 하나는 얼핏 봐도 가팔라 보이
여느 때와는 다르게 조금 불편한 밤을 보냈다. 당초에 잠자리로 삼았던 대사당이 꽤나 불편해서 야밤에 잠자리를 옮긴 탓이다. 오후 늦게 순례자들에게 들은 정보를 따라 대사당을 관리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서 열쇠를 받았다. 식당 사장님의 알려준 길을 따라 도착한 대사당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듣기로는 대사당 뒤로 넒은 방이 연결 되어 있고, 그곳에 순례자들이 잘 수 있도록 이부자리가 있으며 대여섯 사람은 너끈히 잘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라고 했다. 그러나 도착한 대사당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편안한 장소로는
순례자들에게 무료 숙소 츠야도를 제공하는 ‘토요가하시(十夜ヶ橋)’는 ‘에이토쿠지(永德寺)’라는 사찰의 별명이다. 토요가하시를 우리말로 옮기면 ‘열흘 밤의 다리’라는 뜻이다. 사찰의 연기 설화에 따르면 코보대사가 시코쿠를 돌던 어느 날 마땅한 잠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다리 밑에서 밤을 지새우게 됐는데 그 하룻밤이 마치 열흘 밤과 같이 길게 느껴졌다고 해서 ‘열흘 밤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다리 밑에서 코보대사가 잠을 잔다는 전설에서 시코쿠 순례의 독특한 풍습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다리 위에서는 지팡이를 짚지
밤새 차가워진 산속의 공기는 새벽이 되자 몸이 으슬으슬할 정도로 떨어졌다. 방한 대책으로 몇 없는 옷을 껴입고, 판초우비로 침낭을 감쌌지만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막기 어려웠다. 몇 번을 몸을 뒤척이다 까무룩 잠에 들었다가 먼 새벽동이 틀 무렵 일찌감치 자리를 정리했다. 최대한 몸을 크게 움직여 밤새 굳은 몸을 풀며 부스럭거리고 있으려니, 홋카이도 팀의 텐트에서도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텐트 안에서 아직은 잠에 잠긴 목소리가 들려온다.“박상 잘 잤어? 안 얼어 죽었지?”“살아있어요! 아직 대사님이 올 때가 아니라고 하시던데
41번 류코지(龍光寺)에서 42번 부츠모쿠지(佛木寺)까지는 2.5km 정도의 짧은 거리. 언덕길을 넘어 좌우로 논밭이 펼쳐진 미마(三間)평야를 지나간다. 어딜 보아도 작물들이 잘 자라는 것을 보니 류코지의 창건설화에 오곡의 신이 나올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처음 이곳을 순례할 땐 작렬하는 태양빛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저 땅만 보고 걸어가고 있었다. 다만 사찰간의 거리가 짧다는 것을 위안을 삼고 있던 찰나 길 건너에서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돌아 봤다.“순례자님! 국수 먹고 가세요!”길 건너엔 양로원에서 마침
두 사람이면 꽉 차는 좁은 휴게소에서 4사람의 순례자가 다닥다닥 붙어 잠을 청했다. 우와지마(宇和島)시의 입구에 해당하는 마츠오 터널 위의 순례자 휴게소는 앙증맞은 벽화로 곧잘 시코쿠 순례 서적이나 지도에 등장하는 곳이다.88번에서 1번을 향하는 역순례(逆打ち)를 한다는 초로의 순례자는 아직 밤이 물러가기도 전에 조용히 자리를 정리해 나갔고, 홋카이도 콤비와 나는 6시쯤 되어 부스스 일어났다. 오늘은 33km 정도 떨어진 43번 메이세키지(明石寺)까지가 목표다.예로부터의 순례길은 휴게소를 끼고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지만 하루에 평균
40번 간지자이지(觀自在寺)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사찰 한 켠에 있는 츠야도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40번 사찰은 순례자들을 위해 츠야도(通夜堂)과 슈쿠보(宿坊)을 모두 운영한다. 절에서 운영하는 숙소인 슈쿠보에서 묵을 경우 보통 아침예불에 필수적으로 참석해야 하지만, 이곳 간지자이지는 자율참석이다. 다음 사찰까지 50km가 넘다보니 새벽 일찍 출발하려는 순례자들을 배려해서다.반면 츠야도의 경우 그러한 종교적인 규율에서 자유롭다. 본래 츠야도라는 것은 절에서 철야로 정진하는 이들이 잠깐 눈을 붙이거나, 쉬기 위한 작은 방이기 때문이다
노숙을 하는 날은 으레 새벽 한기에 등이 시려 눈을 뜨게 된다. 아직 가시지 않은 졸음을 붙잡고 침낭 속에서 꾸물대다 부스스 일어난다. 잠시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니 어제의 작은 순례자 마을이 아직 건재하다. 알 수 없는 고양감에 허허 웃고 있으니 여기저기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난다. 마을이 깨어난다.순례자들이 노숙한 휴게소 주변으로는 고요한 새벽이다. 하나 둘 일어난 순례자들이 텐트를 접거나, 배낭을 싸는 등 서로 분주하다. 어제 인사를 나눈 순례자들끼리 어디로 향할지를 묻는다. 어젯밤 소시지를 나눠 먹었던 순례자가 말을 걸어온다.
무엇인가 원인이나 이유가 없이 현상이 일어나는 법은 없다. 아무리 삿갓이 특이하고, 한국인이라고 해도 이렇게 자동차로 이동할 수가 생긴 것은 의아하기 그지없다. 38번 사찰을 뒤로 하고 걸어가려다가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던 할아버지에게 다시 잡히고 말았다.“여기서 지금 차를 타고 가면 39번 엔코지(延光寺)의 납경에 맞게 도착할 수 있는데?”할아버지는 어차피 집에 돌아가려면 지금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게 가장 빠르고, 그 길이 39번과 이어지는 길과 겹치는데다가 39번까지 가는 게 오히려 자택이 가깝다며 다시 내 배낭을 빼앗듯이 붙잡
정신을 차려보니 배낭을 안고서 차에 올라 있었다. 뜬금없는 자동차 오셋타이를 받아 편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지난번에 차로 태워 주겠다고 할 땐 트럭이었는데, 이번에는 평범한 자가용이다. 그래도 차 내부가 큰 편이라 넉넉하게 앉을 수 있었다.“그 삿갓이 참 특이해서 말이지. 그런데 한국 사람일 줄이야!” 할아버지는 지금껏 여러 순례자들을 태워줘 봤지만 외국인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시만토시 근방에 산다는 할아버지는 소일거리삼아 88개소에 들어있는 사찰들을 참배하고는 한다며 종종 순례자들을 “주워서” 태워주고 있다고 했다. 과연, 나
아직 밖이 어슴푸레 한데 난데없는 오토바이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를 조금 넘었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문을 살짝 여니 할머니 한 분이 장바구니를 들고 서있다.“오늘은 순례자님이 묵으셨구만!” 시만토 강을 바라보고 서있는 다케시마 대사당(竹島 大師堂)은 도보순례자들에겐 유명한 숙박 포인트다. 지역에선 오랫동안 주민들이 신행활동의 중심으로 삼아 깨끗이 관리되고 있는 곳이다.관리인을 자처하는 할머니는 대사당에서 묵는 순례자들이 익숙한 듯 거리낌 없이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조금 어안이 벙벙해 있으
새벽 한기에 몸을 뒤척이며 일어났다. 37번에서 7km가량 떨어진 휴게소에서 노숙한 하룻밤. 두 사람이 정원인 휴게소에 세 사람의 순례자가 묵었다. 사람들이 걷는 속도가 고만고만하고, 또 묵는 포인트들이 뻔하다 보니 노숙 순례자들은 자주 마주치게 된다. 어젯밤 같이 묵은 순례자들도 모두 길에서 봤던지 같은 곳에서 하룻밤 같이 묵었던 이들이었다.보름 지나니 신체 밸런스 좋아져걸음도 많이 개선… 변화들 확인자살 시도자들 순례 후 새사람 돼사찰에도 영험담 많은 ‘치유의 길’38번 콘고후쿠지(金剛福寺)는 여기서 부지런히 걸어서 이틀 길.
변기가 고장이거나 사용금지 표시가 붙은 공중화장실의 장애인 칸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원래 공중화장실에서 자는 것은 노숙 순례자들 사이에선 예의가 아니라고 회자되지만, 모두가 그 어떤 시설보다 좋다는 데엔 두말없이 동의한다. 식수, 화장실, 전기, 보온 등 어느 하나 빼놓을 것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어제 자기 전에 지도를 보고 계산한 거리로는 오늘 45km정도를 걸어야한다. 평소 걷는 거리보다는 조금 더 걸어야하기에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출발한다. 일찍 알람을 맞춰뒀지만 내 알람에 스님이 깨실까 걱정해서인지 훨씬 이르게 일어났다.
아침 7시. 숙소에서 순례자들은 36번 쇼류지 산문까지 차로 배웅해 준다고 해서 차를 타기로 한다. 히로시마에서 왔다는 부부와 오카야마에서 왔다는 할아버지, 나까지 4명이 차를 신청했다. 차를 탈 사람들은 9시까지 로비로 모여 달란다.시간이 되어 주차장으로 나간다. 어제 노천탕에서 본 광경이 아침 해에 눈부시게 펼쳐진다. 모두 멋진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노라니 차에 시동을 걸던 직원이 설명한다.“저기 멀리 보이는 곶이 24번 사찰이 있는 무로토입니다.”모두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서로를 쳐다보며 말한다.“그 말은 우리가 모두 저기서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싸고 츠야도를 청소한다. 벽에 붙은 주의문에 눈이 간다. ‘화기엄금’, ‘츠야도는 깨끗이 써주세요’ 등의 글들 사이로 조그맣게 ‘바퀴벌레 주의’라고 적혀있다. 어쩐지 새벽에 으슬으슬해서 일어났을 때 커다란 바퀴 한 마리가 내 신발 위에 있더라니….청소를 마치고 화장실을 갈 겸 나와서 사찰을 슬슬 둘러본다. 셋케이지는 코보 대사가 세운 절로 처음 이름은 코후쿠지(高福寺)였다고 한다. 전국시대에 임제종의 고승인 켓포 화상(月峰和尙)이 중창하면서 선종 사찰이 되었다. 셋케이지는 시코쿠 88개소 중에 단 3곳뿐인 선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 일단 점심을 대충 먹고서 참배하기로 했다. 납경소 옆으로 붙어있는휴게소에 짐을 풀어 놓고 아까 받은 과자들을 꺼내 먹기로 한다. 마침 휴게소에 차를 마실 수 있게 마련되어 있다.시원한 차를 뽑아 먹으며 보니 작은 나무 그릇 안에 과자가 또 한가득 들어있다. 순례자들에게 간식으로 보시하는 과자라고 쓰여 있었다. 몇 개를 골라 와서 아까 받은 과자들과 함께하니 적당히 요깃거리는 돼 보였다.日 3대 문수도량 ‘치쿠린지’선재동자 합장 동상 바라보며구법 향한 열정·원력 되새겨순례길서 만난 일본 어르신사정 듣자 1천엔
이른 아침의 서늘한 냉기에 등이 시려 일어났다. 유리문 밖으로 나란히 서있는 무덤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죽은 자들의 옆에서 일어나는 산 자라니, 참 재미있는 경험이다. 잠시 무덤가로 걸어 나가 주변을 둘러 봤다. 아침 이슬로 묘비들이 반들거리는 것을 보려니 순간 티베트의 스승, 뒤좀 린포체의 고사가 생각났다.뒤좀 린포체가 프랑스로 설법을 위해 왔을 때의 일이다. 뒤좀 린포체와 시자 스님이 프랑스의 마을길을 지나다가 공동묘지를 보았다. 대리석에 조각을 해서 아름답게 만든 묘비들을 보곤 시자가 말했다.“여기 사람들은 정말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