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쉬브람푸르부터 바부아까지 26km 행선
순례 6일차를 맞은 순례단에 반가운 가족이 찾아왔다.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후예인 석가족들이다. 석가족들은 한국불자들의 방문으로 이 지역의 불심이 크게 융성할 것이라며 기대와 함께 감사를 표했다.
순례단은 2월 14일 6일차 순례를 진행했다. 이날 순례 일정은 쉬브람푸르부터 바부아까지 약 26km로 아와카라, 짠다 등 마을을 거쳤다. 순례 과정은 5일 차와 같았다. 비하르주 경찰들의 안내 속에 경건한 마음으로 진행됐다.
숙영지인 바부아는 비교적 큰 도시였다. 전통시장과 로터리까지 수많은 오토바이와 트럭, 버스 등으로 복잡했다. 많은 이들로 번잡한 도시였지만 중간중간 스님들을 향해 합장하고 인사하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이유가 있었다. 바부아에 석가족 집성촌이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님들이 바부아에서 묵는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은 크라켓 경기장에 마련된 숙영지에 뒤늦게 찾아와 꽃공양을 올렸다.
현재 순례단 순례 경로 인근의 비하르주 수도 파트나를 비롯해 맨프리, 파르카와드, 이이따, 유피주의 상카시아, 이타와 등지에는 석가족 집성촌이 있다. 이들은 2000년대 YBS(Youth Buddhist Society 청년 불자 사회)를 구성하며 불교부흥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들의 방문은 순례단에 미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총도감 호산 스님을 비롯한 대표 스님들이 급작스럽게 전체 순례단을 대신하여 공양을 받았다.
바부아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석가족 람져스 쿠스와하 씨는 “이렇게 멀리 한국에서 순례단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석가족 마을을 한국불자들이 지나가서 너무나 기쁘다”며 “이 길을 따라 부처님도 예전에 지나갔다. 부처님 법이 인도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한국에서 그 법을 이어 다시 인도에 가져다 준 것 같아 감사하다. 불자들이 별로 없었지만, 많이 늘어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런 방문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비엔 모리야 씨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다음에 이 마을 길을 통해서 사르나트로 가셔서 처음으로 전법하셨다. 석가모니 부처님에서 시작된 법이 돌고 돌아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니 너무나 힘이 난다”고 말했다.
현재 석가족의 연원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바부아도 인도측 카필라바스투인 피브라히와로부터 300여km가 떨어져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아직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후예를 자처하며 불자로서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인도에서 확인됐다.
이날 순례에는 라지 모리, 니게츠마 모리 형제도 불교기를 들고 동참했다. 이들은 “어제 새드푸르 마을에서 동참한 외삼촌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며 “같은 불자로서 한국불자들이 가는 길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회적 소수인 이들에게 한국불자들의 순례는 천군만마와 같은 힘이 되는 것 같아 보였다. 인도 현지에서의 전법 포교는 순례단의 행선 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총도감 호산 스님은 “어제 400여 명의 불자들이 있다는 새드푸르부터 이 지역까지 많은 이들의 환대를 받았다. 오늘 방문한 석가족 분들이 지역 불심이 활성화 된다고 하니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순례에서는 배앓이와 족저근막염 등으로 3명의 몸이 불편한 이들이 일부구간 차량에 탑승해 이동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회주 자승 스님은 2월 13일 저녁예불 후 특별히 당부했다. 자승 스님은 “음식은 숫자가 줄어도 좋으니 익힌 음식으로 내길 바란다. 도량석 전부터 일찍일어난 사람들은 수면이 부족한 이들을 위해 조용히 움직이도록 배려해달라”며 “많은 환자들이 속출하는 상당히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다. 우리 간에 서로 서로 신경 써주고 위로해주고 도와주고, 걱정해줘서 단 한명의 탈락자도 없이 모든 이들이 순례를 마칠수 있도록 협조하자. 걸어서 못가면 휠체어를 타고, 휠체어를 못타면 앰블런스를 타고라도 단 한명도 낙오 없이 서로 서로 배려속에서 완주 해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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