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빠옥선원에 도착한지 16번째 날(2012년 2월 6일)이다. 아침 참선을 마치고 긴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아침 6시, 사방은 어둑어둑한데 계단 아래 구석의 맨 바닥에 두 여성 불자가 쪼그려 앉아 합장하고 있다. 공부를 마치고 내려오는 스님들에게 공경을 표하려는 것이다. 빠옥총림은 마을에서 먼 산 중턱에 있는데 이른 아침부터 올라 온 것이다.스님들의 개인처소가 모여 있는 꾸띠 사이로 지나가니 한 스님이 나를 향해 뭐라고 이야기한다. 이제는 무슨 뜻인지 바로 안다. 스님께 다가가 찻잔을 두 손으로 받들어 드렸다. 이전에 이러한
오늘은 빠옥 선원에 도착한지 14번째 날(2012년 2월 4일)이다. 간단히 씻고 올라갔다. 새벽 좌선에 집중이 잘 되어 끝나고도 한참을 더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다시 아침 공양 후 오전 좌선 1시간 45분도 금방 지나가 버렸다.이후에는 인터뷰 시간이다. 수행 점검 스님께 14일째 호흡관을 하고 있는데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마음은 안정되고 고요하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아직 맑고 명료해지지는 않았음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스님은 계속 호흡관을 닦으라고 한다.빠옥 선원에서는 선정 시 나타나는 ‘니미따(nimitta)’를 중요하게
오늘은 빠옥 선원에 도착한지 12번째 날(2012년 2월 2일)이다. 같은 방을 쓰는 요기가 새벽 기상시간을 알리는 긴 목어소리가 나기 전에 조용히 나가는 것까지 알아차린다. 하지만 이후 목어소리를 듣지 못하고 다시 깊은 잠에 떨어졌다. 간신히 옆방 요기들의 채비하는 움직임이 느껴져 일어나 물세수를 마치고 선방에 올랐다.간밤 〈청정도론〉을 보며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관계를 점검하면서 도표를 몇 개 그려보며 잠들었다. 같은 방의 젊은 요기는 불 켜고 잠시 기록하는 나를 두고 잠이 바로 든다. 그리고 새벽 3시 30분 이전에 조용히 일어
오늘은 빠옥 선원에 도착한지 11번째 날(2012년 2월 1일)이다. 간밤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잤다. 현재의 공부와 관련하여 확인 차 호흡 수행에 관한 경전을 또한 잠깐 들여다본다. 같은 방의 한국 요기는 쉐오민 선원에서 출가하여 탁발도 하는 등 약 3개월 수행을 했다. 하지만 이곳으로 떠나올 때 비구계를 반납하는 환계 의식을 하고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왔다고 한다. 31살의 나이답지 않게 좌선에 열심이고 진지하다. 그는 3시 30분 새벽 좌선을 알리는 긴 목어 소리가 울리기 전에 일어나 선방에 오른다. 끝나는 6시에 다른 사람
오늘은 이곳에 도착한지 아홉 번째 날(2012년 1월 30일)이다. 간밤에 오후 8시가 넘어 잠들었던 것 같다. 총림 진료실에서 처방받은 미얀마 기침약의 약기운이 강해서 인지 금방 졸렸다. 새벽 3시 30분 긴 목어소리를 들으면서도 일어나지 못했다. 아침공양 시간까지 넘기고 말았다. 대신 점심 공양시간은 조금 일찍 나갔다. 입구에서 미얀마 재가자들이 출가스님들이 발우를 들고 들어오면 발우를 손으로 받아들어 다시 돌려드리는 의식을 치른다. 혹시 발우에 함께 할 생명체나 잔식(殘食) 등과 관련해 율을 범할 소지를 재가자가 대신 해 드린
간밤은 혼자 잤다. 2인1실의 방사에서 스페인 요기가 떠났기 때문이다. 밤 9시 좌선을 마치고 방에 돌아와 한 밤중까지 〈청정도론〉과 사무색정에 대해 다시 살펴보았다. 늦게까지 전등을 켜 놓아도 상관없다.〈청정도론〉은 마하시 선원에 있을 때 인도에서 같이 공부했던 옷따라 스님이 자신이 영역하여 영국에서 수행자들을 지도한다며 주었다. 사무색정 모두에 편(遍, Kasia)과 상(相, nimitta)이 쓰인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것이 실제 수행에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제고하면서 잠들었다.선정과 위빠사나에서 이 두 용어는 중
오늘은 미얀마 수행처에 빠옥 총림의 일곱째 날(2012년 1월 28일)이다. 3시 30분 전에 일어나 불을 켜지 않고 어둠 속에서 선방에 오를 준비를 하고 올랐다. 오늘은 6일간 숙소를 함께했던 스페인 요기가 이곳을 떠난다. 아침 공양 마치고 한국 스님의 꾸띠에 들러 커피 한 잔과 치약을 가지고 빨리 돌아왔다. 스페인 요기를 환송하면서 언제 다시 이 수행처에 올 것이냐 물으니 그는 곧바로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신비이고, 현재는 선물이다(The past is history, the future is a mystery, the p
점심을 적게 먹고 노랑색 가사를 입은 스님이 나와 있었다. 당연히 스리랑카 출신 스님인줄 알고 질문 한 가지 하려 했는데 베트남 스님이다. 미얀마의 밤색 가사와 달라 스리랑카의 한 종파로 착각했다. 이 스님은 베트남이 대승권이지만 많은 불교도들이 자신과 같이 대승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을 벗어나 초기불교로 기울어지고 있다고 한다.자신 또한 법랍 10년이고 대승에 속하지만 옷만 대승이지 마음은 초기불교의 상좌부라고 설명한다. 대승불교는 역사적인 관점이나 철학적인 관점에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불교라고 한다. 관련한 이런저런 설명을
선방 대청소로 좌선을 멈추고 일찍 내려오다 한국 스님들과 만났다. 같이 석양을 보러 산등성이를 타고 산꼭대기에 올랐다. 정상에 이르니 이미 미얀마 스님들이 몇 명이 나와서 쉬고 있었다. 전경이 드넓게 펼쳐진 정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선원 공양물에 관한 화제로도 이어졌다. 그런데 공양물 가운데 칼집 낸 사과와 과일에 대해서는 계율 상의 이유가 아닌 먹기 좋게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또한 재가자들이 사탕수수즙을 보시한 것에 모두 감동의 이야기를 나눴다. 중간 휴식 때 근처 마을의 사람들이 사탕수수를 즙을 내서
수행 점검 인터뷰 시간에 스님이 지도해 준대로, 자리를 잡고 출입식염 중심의 사마타를 시도 해보려한다. 그런데 바로 이전의 마하시 선원에서 한 달 동안 훈련된 ‘알아차림 행법’ 때문인지 자꾸 바깥의 새소리나 바람에 나뭇잎 나부끼는 소리 등을 따라 알아차리려는 습관이 나온다.인터뷰 때 호흡 이외에는 모두 무시(ignore)하라는 지도에 따라 계속해서 호흡에만 주의를 되돌리려 하지만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 등에도 계속 알아차림이 일어난다. 중간 경행 시간에 보니 한 유럽인이 특별한 좌구에 앉아 참선하고 있었다. 중간 휴식 시간에 유럽 요
생활 중 비로소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팔재계의 불음(不淫)과 오계의 불사음(不邪淫)의 차이를 알았다. 원어도 다르다. 어제 빠옥 총림에 도착해 곧바로 주지 스님 사무실(Sangha Office)에서 입방절차를 행했다. 주지 스님은 나에게 삼귀의와 오계와 팔재계를 빠알리어로 선창하며 따라하게 했다. 익숙한 예경문이기에 잘 따라하니 반색한다.원래 포살일은 출가비구가 매월 2회인데 비해 재가자는 4회이다. 날짜로는 8·14·15·23·29·30일로, ‘육재일(六齋日)’이라고 이름한다. 여덟 계에 따른 청정한 생활을 한다는
빠옥 총림에 도착한지 둘째 날(2012년 1월 23일)이다. 어제 선원 입방 절차에서 주지 스님이 선원 일과표를 주면서 직접 설명해 주었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일상의 일과는 앞선 마하시 선원과 다소 차이가 있다.마하시 선원에서는 단체 좌선 후 경행이 한 시간씩 배정됐다면 빠옥선원은 인터뷰와 함께 오전 9~10시와 오후 2~3시정도로 약 2시간이다. 마하시가 1시간 단위라면 빠옥은 1시간 30분 단위로 좌선에 집중하도록 했다.빠옥의 일정은 위빠사나를 위한 선정과 사마타를 중시한 시간 안배다. 아무래도 선정과 사마타는 앉고 일어서는 입
제방 수행처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도력이나 법력이 있는 스승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한 스승이 있다하면 거리를 상관하지 않고 편의시설도 상관하지 않는다. 아무리 선방 프로그램이 좋고 선원의 시설 또한 좋다고 하더라도 배울 만한 스승이 없다면 찾지 않는다. 촉각을 세워 스승을 찾는 사람은 절실하다. 스승의 무게를 귀신처럼 안다. 인도나 미얀마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스승을 찾아 사람들은 모이게 된다. 그리고 선택한 스승에 자신을 던져 보고 맡겨 본다.빠옥총림의 빠옥 선원장 스님은 1934년에 태어나 10세에 사미로 출가하였다. 이후 경론
빠옥 총림 첫째 날인 2012년 1월 22일. 드디어 종착지 몰라민에 도착했다. 몰라민은 미얀마 남쪽 몬주에 있고, 몬주는 미얀마 역사에서 불교의 출발과 함께한다는 중요성이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택시 운전수라고 왔는데 알고 보니 택시가 아니라 오토바이이다. 오토바이 앞에 나의 큰 가방을 발로 밀어붙이고 뒤에는 나를 태운 채 신나게 달렸다.1000여 명 상주하며 수행정진아찐나 스님이 선원장 맡으면서세계적 수행 도량으로 발전해“道人 1명이 만 중생구제” 실감무거운 가방이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지만 약 15~20여 분만에 무사히 총림에
며칠 전부터 원래 목표였던 몰라민의 빠옥 선원을 위해 마하시를 떠날 준비를 하였다. 먼저 마하시 선원에서 출간된 법문자료가 어떠한 것인지를 파악하여 가능한 모두 구입하였다. 또한 선원의 발전을 위해 보시를 하였다. 물론 보시는 자율이지 의무사항은 아니다. 오래 머물며 마하시의 시설과 제공되는 음식을 누린 것이다.보통 이곳에서 보시는 대중공양이다. 대중들이 같이할 수 있는 공양비용을 내면 공양청에서 알아서 특별한 공양을 준비해 준다. 많은 미얀마 보시자들이 공양을 올리고 공양청 입구에서 합장하며 대중을 맞이하고 있음을 보아 왔다. 그
현지 탐방에서 익명성은 도움이 된다. 미얀마 수행처에서 내 자신이 불교학 전공자라는 것과 인도 유학으로 상좌부 불교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숨겼다. 그래야만 많은 것을 새롭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하시 선원에서도 20여 일이 지났건만 서로 인사도 하고 가끔 이야기도 하지만 나 또한 한국의 젊은 스님, 노스님의 법명과 사찰 이름을 묻지 않았다. 물어보려면 나부터 먼저 소개하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선원 입구의 명단 게시판에 의무적으로 이름을 적게 되어 있다. 하지만 나의 지정 숙소인 4호실 칸에 ‘J. H. CHO’로 적어
마하시 선원은 마하시 사야도(Mahs Saydaw, 1904~1982) 스님과 관련한다. 선원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스님의 일대기를 대략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마하시 사야도 스님은 1904년 북부 미얀마의 세잇쿤(Seikkhun) 마을에서 농부의 자녀으로 태어났다. 같은 마을의 사찰에 12살의 나이로 출가해 신 소바나(Shin Sobhana, 상서로운 자)라는 법명을 받았다.다시 20세에 구족계를 받은 후 4년 동안 정부의 공인 시험의 과정을 모두 통과하였다. 다시 유명한 만달레이를 거쳐 남부 미얀마 몰메인(Moulme
오후불식 수행환경과 선풍다음은 마하시 입방 15번째 날(2011년 12월 28일)의 기록이다. 오후불식 때문인지 기진맥진하다. 오후불식하는 스님들이 더 존경스러워진다. 갑자기 초기경전인 이 생각난다. 이곳 스님들 가운데 뚱뚱하고 기름기가 흐르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모두 깡마른 느낌이다. 스리랑카 등지에서 가끔 비대한 몸을 가진 스님들을 보는데 오후불식이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다.마하시 도량에는 현재 약 500여 명의 대중이 상주한다. 상수 스님은 자띨라(Jalita) 스님이며 외국인 감독 스님(Warden)과 관리 스
마하시 선원에 입방한지 일곱 번째 날(2011년 12월 20일)과 열여덟 번째 날(12월 31일)의 〈수행일지〉는 출가와 수계의식에 관한 기록이다.싱가포르 출신 스님은 항상 즐거운 표정이며 역동적이다. 다른 사람의 사소한 일이라도 이것저것 관여하며 도와주기를 좋아한다. 75세인 말레이시아 출신 스님과도 친하다. 같은 중국계로서 싱가포르 스님이 말레이시아 스님을 늘 곁에서 돌봐준다. 말레이시아 스님은 자신의 구족계 수계증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한다.8호실의 젊은 한국 스님이 엊그제 연달아 입방한 한국인 두 명이 출가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난 2011년 머물렀던 마하시 선원에서의 9번째 날(12월 22일)과 그 다음 날은 미얀마 선지식의 다비식을 볼 수 있었다. 점심 공양을 마친 후 나오는 길에 선원장 스님의 정인(淨人, 속인으로서 사찰에서 살며 승려의 시중을 드는 사람)이 오후 큰스님 다비식이 있다고 알려준다. 선방에 올라가 좌선하다가 오후 3시 즈음에 내려와 기다리는 정인을 따라갔다.도심지라지만 공원과 논밭을 통과하여 다비장에 도착하였다. 대략 40여분 가는 동안 다비식에 대해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았다. 큰스님 다비식은 7일장이라 한다. 일반 스님들의 경우는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