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손강 지류 따라 체나리부터 사사람까지 30km 행선

“부루나여, 그들이 너를 죽이면 어찌 하겠느냐.”

“저는 그들을 어질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수행자는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저들이 그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수난파란타국으로 전법을 떠나는 설법제일 부루나 존자와 부처님의 대화다. 부루나 존자는 부처님의 격려를 받고 수난파란타국으로 건너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전법에 매진했다. 전법포교에 있어 크고 작은 난관, 특히 어떤 경우는 목숨까지도 걸어야 함을 보여주는 일화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단(회주 자승)이 2월 16일 지나온 길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험난했다. 새벽 움푹움푹 파인 인도의 제방길을 걷고, 수많은 트럭들이 달리는 고속도로 위를 지나기도 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회주 자승 스님을 비롯한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회주 자승 스님을 비롯한 
제방길로 순례단이 행선을 진행하고 있다.
제방길로 순례단이 행선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행선은 체나리에서부터 삘키, 로흐따스를 지나 아침공양 후 단부르와를 거쳐 사사람에 도착하는 30km 구간에서 펼쳐졌다. 특히 이날 행선길은 갠지스강 남쪽강인 손강의 지류를 따라 만들어진 제방길 위에서 진행됐다.

인도의 제방길은 우리의 제방길과는 상황이 달랐다. 마치 비포장도로처럼 1m 간격으로 움푹움푹 파인 곳들이 존재했다. 흔히 있는 한국의 가로등 불빛이나 시골마을이어도 있는 등조차 없는 칠흑같은 어둠이 펼쳐졌다. 이른 새벽부터 행선에 나선 순례단이 서로의 랜턴 불빛에 의지해 행선을 이어갔지만 위태로운 순간이 펼쳐졌다.

아침공양 전 마지막 휴게장소인 필키 마을에서는 순례단이 행선하고 있던 제방길 쪽으로 무전이 급히 호출됐다. 한 스님이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딘 것이다. 다행이 이마가 조금 다친 정도에서 끝이 났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침공양 장소까지는 14km.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며 약 4시간을 이렇게 걸어 아침공양 장소인 한 경찰서에 도착하자, 여명이 움트고 있었다.

해가 뜨자 순례단을 반긴건 인도사람들의 식용기름 재료로 키워지는 유채꽃과 넓게 펼쳐진 밀밭이었다. 새벽의 어려움을 뒤로 인도의 드넓은 자연풍경은 순례 중의 피로를 가시게 했다.

이어 손강 지류를 따라 25km 행선한 순례단은 ‘그랜드 트렁크 로드’로 불리는 인도 북동부 간선도로에 올랐다.

그랜드 트렁크 로드에서 공사현장 구간을 순례단이 지나가고 있다.
그랜드 트렁크 로드에서 공사현장 구간을 순례단이 지나가고 있다.
그랜드 트렁크 로드에서 현대차 영업소를 지나자 직원들이 마중 나와 박수를 치고 있다.
그랜드 트렁크 로드에서 현대차 영업소를 지나자 직원들이 마중 나와 박수를 치고 있다.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등으로 이어지는 이 간선도로에는 수많은 트럭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순례단을 엄호하고, 교통정리를 했던 인도경찰들이 다시 나섰다. 경찰들의 개입으로 이 간선도로는 순례단이 건너는 동안 잠시 흐름이 멈췄다.

이후 동쪽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순례단은 5km 가량 행선을 이어갔다. 인도경찰들이 통제했지만 십수톤은 되어 보이는 트럭들이 씽씽 옆으로 달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위험해 보였다. 하지만 순례단은 부루나 존자와 같이 초연했다.

봉암사 수좌 스님으로 이번 순례에 동참한 5조 시관 스님은 “조건이 좋으면 더 좋을수록 불평불만이 쌓이는게 사람의 마음”이라며 “한국의 선방에서도 간혹 그런 분들이 있다. 수행하는 많은 스님들이 이 곳에서 하루만이라도 같이 행선한다면 수행 중에 나오는 불만 같은 마음티끌이 싹 사라지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위험한 순간을 뒤로 순례단은 사사람에 위치한 숙소에 당도했다. 텐트 안으로 바람과 함께 들이닥치는 먼지, 그리고 텐트 안을 가득 채우는 인도 한낮의 열기 등에서 하루라도 벗어난 순례단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순례단이 이날 회향지 숙소에서 회향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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