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출가재일 맞아 특별 순례…케웨이부터 나가르나우사까지 26km 행선
부처님은 삼계의 모든 중생을 인도하여 가르치신 위대한 스승이지만, 태어나면서의 삶이 그렇지는 않았다. 전륜성왕의 길과 출가자의 길에서 부처님은 출가를 택했고 이후 성도하니 출가한 순간의 의미가 그만큼 크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요한 의미만큼 부처님의 길을 따라 걷는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이 출가재일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은 남달랐다. 특히 순례단의 스승인 회주 자승 스님의 경책과 격려로 좀 더 특별한 출가재일을 맞이했다.
회주 자승 스님은 2월 26일 저녁예불 후 다시 대중 앞에 섰다. 회주 스님이 순례단 대중 앞에서 대중생활의 주요한 대소사를 알리기 위해 말 한 적은 있지만 이날은 조금 달랐다. 출가재일을 앞두고 방일해질 수 있는 순례단의 마음을 다잡고, 순례의 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 스님은 예불이 끝나자 직접 마이크를 달라고 하여 잡았다.
회주 스님은 먼저 순례단의 묵언 수행에 대해 서릿발 같은 경책을 날렸다. 스님은 “구업을 짓지 않기 위해 하는 수행이 바로 묵언 수행”이라며 “수행은 지켜야지, 목에 묵언이라는 푯말을 걸고서 똑같이 앉아서 히히덕 거리고 있으면 그게 무슨 묵언 수행인가”라고 순례단을 지적했다.
인도순례단에서는 26일 묵언표를 받은 조석주 불자까지 총 6명의 스님과 재가자가 묵언수행을 하고 있다. 사르나트에서 회주 자승 스님에게 덕조 스님과 노현 스님, 백금선 불자 등 3명의 출재가자가 묵언표를 받은 후 묵언이 필요하다 생각되는 이들은 회주 스님 재가 후 묵언하고 있다. 순례가 19일차에 접어들며 대중생활 속에 이러한 발심도 다소 무뎌지기 마련, 스님은 대중이 들뜬 시점에서 가르침을 내렸다.
회주 자승 스님은 “묵언을 하겠다는 사람이 스스로 말 섞이는 자리를 피해서 기도하고 생각하고 해야 묵언이지, 떠들어 대는 자리에 앉아 같이 웃고 틈 나는대로 휴대폰 열어 카톡 다하고 하면 묵언수행을 무엇하러 하는가”라고 말했다.
회주 스님의 가르침은 마음이 흔들릴 때 어깨를 때리는 장군죽비와 같았다. 회주 스님의 경책에 순례단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훌륭한 스승은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가르침을 끝내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해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따뜻한 격려로 용기를 북돋는다. 서릿발 같은 경책을 내리던 회주 스님의 목소리는 다소 부드러워졌다. 회주 스님은 묵언 중 피치못하게 의사를 전할 상황이 생기는 경우에는 각 조장에게 문자 등을 활용한 필담으로 의사를 전하라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회주 스님은 “주변에서도 묵언수행을 하는 이들을 도와달라. 다시 심기일전하여 수행 정진하자”고 대중에게 따뜻한 어조로 당부했다.
묵언 수행에 대한 경책이 끝나자 회주 스님은 2월 27일 출가재일에 대한 말을 이어갔다. 회주 스님의 어조는 다시 차가워졌다. 불교의 뼈아픈 현실은 따뜻하게 격려로만 해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0년 전 쯤 동아일보 칼럼에 ‘수녀님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걱정글이 실렸다. 우리나라에는 신부님, 목사님, 비구 스님, 비구니 스님도 있는데 딱 찝어서 수녀님이 줄어든다는 글이었다. 그 요체는 사회에 봉사하고 기여하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머지 성직자들은 머냐…(밖에서 보았을 때) 호화호식 하고 산다는 것 아니겠나. 수녀님들이 사회 어두운 곳에 손길을 뻗치고 있는데 그 수가 줄어드니 국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회주 스님의 가르침은 오래 전 읽은 한 글로 시작됐다. 스님의 경책은 단지 순례단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 전체에 하는 말 같았다.
회주 스님은 “우리 비구 비구니도 사회 어렵고 힘든 곳에 얼마든지 봉사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는데, 그 조건을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회에 필요하지 않는 불교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열심히 기도한들 사회는 우리 스님들이 줄던 말던 관심이 없다”고 개탄했다.
스님은 이어 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목소리는 묵언수행과 달리 좀 더 강해졌다.
“사회에 기여하는 성직자가 필요해. 우리는 사찰을 지켜나갈 후손들이 필요하지만 사회에서는 어둡고 힘없는 곳에 돌봐줄 손길이 필요해. 우리는 두 가지를 다 놓치고 있어. 우리들의 안일함이 잘못이야. 출가해서 여러 인연에 얽히고 섥혀 주지하는 사람은 주지하면서 근심걱정 없이, 선방에서 정진하는 사람은 한철 보내며 근심걱정 없이, 그러는 가운데 사회에서는 우리에게 바라는게 하나도 없게 됐다.”
회주 스님의 말 속에는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불교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출가자로서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회주 스님은 “출가재일을 앞두고 우리 순례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며 27일 진행되는 순례를 앞두고 대중들에게 화두를 건네며 대중발언을 마무리했다.
엄한 경책을 날린 회주 스님은 다시 대중들의 마음이 방일할까, 보통 예불 이후 삼배의 예로 끝내던 것을 일배만 받고 끝냈다.
순례단을 이끄는 스승의 경책이 있던 차라 순례단의 2월 27일 행선은 달랐다. 이른 새벽부터 출가재일 특별발원문을 함께 낭독하며 마음을 모으고, 회향 때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출가의 의미를 되새겼다.
포교원장 범해 스님을 대표로 순례단은 “부처님께서는 미혹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출가하셨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중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출가하셨다”며 “저희는 하루하루 출가의 의미를 되새기겠다. 이 발원 공덕으로 일체 중생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소서”라고 발원했다.
특히 스님들은 마을을 지나가며 출가자로서의 위의를 보이고, 정진했다. 모두가 묵언은 아니었지만, 성찰과 각오를 다지는 가운데 서로가 말을 아꼈다.
이날 순례는 다른날과 달리 휴식시간을 자주 가졌다. 회주 자승 스님부터 순례단 대부분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승으로서 대중을 이끄는 회주 스님과 또 그런 회주 스님을 필두로 따르는 순례단은 느리지만 꿋꿋하게 두발로 계속 정진했다.
이러한 스님들의 마음을 받아 재가자들도 삼보를 호지하고 중흥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작은부처님을 이운한 강덕순 불자는 “회주 스님께서 앞에서 가장 열심히 정진하셔서 대중들은 나태해질 수가 없다. 때마다 가르침을 주셔서 전생에 큰 복을 지었다고 생각한다”며 “순례단의 순례로 인하여 그 무엇보다 인도와 한국에서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함께 작은부처님을 이운한 8조 정충래 조장도 “부처님을 모시고 스승에게 가르침을 듣는 것은 큰 행운”이라며 “스쳐지나가는 인도의 인연들이 조금 더 나아진 생활을 하고, 한국에서도 불자들의 원력이 모여 소외된 이웃들이 행복해지는 삶을 살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순례단이 출가재일 순례에 앞서 발원한 발원문이다.
출가재일 발원문
일체중생의 근기 따라 깨달음으로 이끄시는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지성으로 귀명하옵니다. 우리 상월결사 인도순례자들은 부처님 전에 모여 출가하신 날의 감격과 환희를 떠올리며 저희들의 서원을 담아 발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미혹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출가하셨습니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중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출가하셨습니다.
부처님! 지금까지 저희들은 욕심과 자신만의 견해에 사로잡혀 화택과 같은 집에 묶여 살아왔습니다.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저희들도 부처님 출가의 길을 따라 장애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서원합니다.
세상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신 부처님!
저희는 지금부터 하루하루 출가의 의미를 되새기겠습니다. 나태하고 안주하기보다 높이 비상하겠습니다. 망설이고 두리번거리기보다 진일보하겠습니다. 조그마한 나에 갇혀 살기보다 큰 나로 살아가겠습니다. 이 발원 공덕으로 저희들의 삶과 일체 중생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소서. 이 순례의 길 끝에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어 걸림이 없이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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