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동양의 모나리자’로 일컬어지는, 물에 비친 달과 대나무를 배경으로 반가부좌한 아름다운 관음보살을 그린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림을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라고 하는데, 한국 불화 중에서도 특히 고려 불화를 대표하며 종교미술의 정수라고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고려 불화는 대략 160여 점으로서, 그 중에서 40여 점이 수월관음도일 정도로 고려 시기 불교 신앙에서 수월관음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였다고 할 수 있다.우선, 고려수월관음도의 대략적인 화면구성은 재난과
비로자나부처님(毘盧遮那佛)은 사찰의 비로전(毘盧殿) 또는 화엄전(華嚴殿)에 주존으로 모셔지며, 대적광전(大寂光殿)이나 대광명전(大光明殿)에는 법신(法身)으로서의 비로자나부처를 중심으로 좌우에 보신(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응신(應身) 석가모니불을 봉안한다.흔히들 비로자나여래를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광명(光明)의 부처라 칭하며, 범어 바이로차나(vairocana)의 뜻이 ‘광명’이라고 한다. 그래서 밀교에서는 ‘대일여래(大日如來)’라고 부른다. 대승불교의 여러 부처님들 중에서 비교적 늦게 탄생한 비로자나여래의 기원에
석가모니 부처님에 이어서 정각을 이룬 이들을 ‘아라한(Arhat, 阿羅漢)’, 일반적으로 ‘나한’이라고 칭한다. 나한은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란 의미를 지니며, 석가모니의 열반부터 미륵부처가 나타나 중생을 제도할 때까지 이 세상의 불법을 수호할 위임을 받은 분들이다. 나한이란 말은 본래 석가모니를 부른 존칭이었으나, 〈비나야 대품〉 등의 초기불전에 의하면 사르나트(녹야원 설법 혹은 초전법륜)에서의 첫 설법을 함께한 다섯 수행자인 카운디누야·밥파·밧디야·마하나마·아쉬바지트가 깨달음을 얻어 석가를 포함한 여섯 사람의 아라한이
지난 연재에서 인간의 윤리와 효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빛을 발휘한 불교 경전이 〈부모은중경〉이며, 이를 그림으로 도해한 것이 ‘부모은중경변상’이라고 하였다. 또한 효와 조상숭배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의식행위를 꼽는다면 아마도 ‘수륙재(水陸齋)’일 것이다. 수륙재는 죽은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행해진 의식으로, 이때 봉안하는 불화라고 하여 수륙화(水陸畵), 수륙회도(水陸會圖)가 있다. 또한 아귀(餓鬼)에게 감로(甘露, amrta, 阿密젠多)를 베풀어 극락 왕생케 한다는 의미에서 시아귀도(施餓鬼圖), 감로도(甘露圖)라고 하
백중기도와 추석 차례를 지내면서 “불교에서는 ‘효’를 언제부터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하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가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폐불 사건 등 일련의 탄압을 겪으면서 생존을 위해 효를 불교에 접목시켰을까? 사실 여러 종교들 중에서 불교만큼 조상에 대한 효를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도 없을 것이다. 불교와 효의 관계에 대해서 찾아보면 이미 초기 불교시대부터 여러 경전들에서 가정과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덕목이나 윤리개념이 적혀있다. 먼저 가장 이른 사례로 팔리어 장경의 〈맛지마 니까야〉의 한역본에 해당하는 〈
불법을 지키는 여러 신들 중에서 으뜸을 꼽는다면 범천과 제석천일 것이다. 조선 불화의 〈신중도〉 속에서 범천과 제석천은 상위의 신으로서 자리하고, 그 아래에 위태천이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인 구조이다. 지난 글들에서는 제석천과 위태천의 기원과 불교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에 관해서 이야기하였다. 그렇다면 석가모니 부처님 재세 시기부터 부처님을 보필하거나 협시의 역할을 하였던 범천은 어떠한 기원과 인연을 가지고 있을까?범천(梵天)은 아리아인의 종교 브라만교에서 만물을 성장시키는 절대자 브라흐마(Brahma)가 불교의 호법신으로 수용된
지난 연재에는 불교의 수호신들을 그린 ‘신중도(神衆圖)’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날개 달린 투구를 쓴 위태천(韋天)에 관해서 이야기하였다. 위태천의 기원을 인도 전통의 전쟁의 신 ‘스칸다’에서 찾았었는데, 그렇다면 불교를 보호하고 전파하는 호법신들 중에서 다른 종교나 문화권에서 차용되어 불교에 자리 잡은 신이 또 있을까 궁금해진다.‘신중도’에서 위태천만큼 비중을 차지하는 신이 제석천과 범천이라 할 수 있다. 제석천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본생담(本生譚, Jataka)’부터 싯다르타로서의 생애를 이야기한 불
몇 해 전 겨울,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 학예사 키라 씨와 함께 조계사와 불교중앙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중앙아시아 불교미술 연구자인 그녀는 한국의 불교미술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도상을 가리키며 그리스 신화의 전쟁과 승리의 신 니케(Nike)와 매우 흡사한 이 신상은 누구냐고 물었었다. 니케의 날개가 등이 아닌 머리에 쓴 투구에 달린 이 신은 과연 누구일까? 이미 독자들은 이 글을 읽으며 그 모습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바로 ‘위태천(韋?天)’이다.위태천은 범어인 ‘스칸다(Skanda)’를 음차해서 사건타
몇 해 전의 겨울 길거리에 나가면 사자머리, 곰머리, 토끼머리 모양의 털모자를 쓰고 각 짐승의 앞발 모양을 한 끈을 목 언저리에 묶은 어린아이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이를 보면서 나는 헤라클레스 도상의 재유행이라며, 역시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말했었다.머리에 사자머리 가죽을 모자처럼 쓰고 있는 모습은 멀리는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 조각과 동전으로 볼 수 있으며, 가까이는 경주 석굴암의 건달바상 또는 불교회화에서 건달바를 표현한 그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와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함께 사찰에 갈 때면 주지 스님께서 주실 빨간 사탕과 약과를 먹을 생각에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그러나 고진감래라고 하였듯이 반드시 거쳐야 할 무서운 통과의례가 있었는데, 바로 일주문을 지나 무시무시한 사천왕상을 거쳐 가야 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숨을 참고 뛰어가거나, 할머니의 등에 업혀서 자는 척 두 눈을 꼭 감고 사천왕을 쳐다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통과의 방법이었다.어린 시절의 필자는 왜 이렇게 무섭게 생긴 모습으로 사천왕이 절의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계신지 늘 불만이었다. 사천왕은 어디에서 오셨을까? 처음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죄와 욕심에 묻혀서 사는 중생들은 살아서는 관세음보살을 찾고, 죽어서는 지장보살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불교회화를 공부한지 근 20년이 된 지금에서야 그 숨은 뜻을 이해하게 된 나는 할머니의 지혜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도대체 지장보살은 어떤 보살이시며, 늘 함께 다니는 승려와 무섭게 생긴 왕은 누구인지 매우 궁금할 것이라 생각한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여래가 이 세상에 올 때까지 부처가 없는 세상에 머물면서 육도(六道)의 중생들을 제도하는 역할을 담당한 대비보살이다.
지난 2017, 2018년 극장가에서는 이승과 저승, 과거와 현재, 죄와 벌, 인과 연에 관한 영화 ‘신과 함께’가 큰 인기를 얻었었다. 영화에는 저승사자, 염라대왕을 비롯한 지옥의 시왕, 판관, 성주신 등이 등장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왕과 관련된 경전인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 이하 〈시왕경〉)〉을 떠올리며, 시왕의 명칭과 각각의 시왕에 속하는 지옥과 재판하는 죄목의 종류를 경전의 내용과 비교하느라 머릿속이 무척이나 부산했던 기억이 있다.영화 ‘신과 함께’ 1편과 2편 모두 큰 흥행을 한 이유에는 당연히 출연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