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갔으면 절을 해야 한다. 그래서 대웅전을 찾는데 간월암 편액만 보인다.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다. 갯벌 지나 올라온 곳에서 본 사철나무 건너 팽나무 뒤 종무소 빼고는 가장 큰 전각이다. 안에서 나는 스님의 운율이 작은 섬을 두루 돌아 안면도 넘어 서해바다까지 갈 기운이 느껴지지만, 일단 조심스레 문을 연다. 고개 숙여 서 있던 사람들이 바람결을 느낀 듯 얼굴을 든다. 보살님이 손을 젓는다. 문턱 넘어 한 발짝도 디디지 못하고 바람소리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분히 문을 닫는다.오랜 바람에 씻겨 나간 단청들이 빛바래 보인다기보다 나무
“부귀영화는 한바탕 춘몽(春夢)이요, 백년간 탐한 물건도 하루아침에 티끌이 됩니다. 팔만사천의 번뇌망상을 다스려주는 약은 부처님 법뿐입니다.”2008년 10월 19일 약천사 남북통일 약사여래대불 점안법회에서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지관 스님의 법문이라는데, 이유는 그해 유독 심했던 연예인들의 자살 때문이란다. 그 자리에서 “육신이 아프면 약방에 가면 그만이지만, 법신이 병들면 부처님이 45년간 설하신 법문이 가장 위대한 약이 될 것”이라며 불법에 귀의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는데, 높이 13m의 우람한 청동대불 앞에서 소원을 비는
인도 겸 차도를 따라가다 끝자락에 다다르기까지 금강사가 보이질 않는다. 널찍한 나무계단 위 小金剛(소금강) 표지석을 이고 있는 ‘대한민국 명승 제1호 명주 청학동 소금강’ 받침돌 뒤편도 단풍 든 나무로 벽을 치고 있다. 이제 경운기도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좁은 등산로로 들어가야 한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산행 차림에 당황하는데, 즐거운 탄성이 나온다. 도시 인근 산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다람쥐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환경오염에 민감해 청정 지역에 가야만 만날 수 있다는 귀염둥이가 상쾌한 공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깊고 그윽한
화계사 이름을 처음 들은 건 1998년 TV 다큐멘터리 ‘만행’을 보았을 때였다. 관심을 두었던 건 벽안(碧眼)의 스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면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는 직업의식의 발동이었는데, 실제로 섭외에 성공한 출판사는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제목으로 대박을 쳤다.현각 스님은 숭산 스님과의 인연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처음 만났을 때 스님은 ‘당신은 누구세요’라고 물으셨습니다. ‘제 이름은 폴’이라고 대답하자 스님은 ‘그건 당신 몸의 이름입니다. 당신의 진짜 이름을 알고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땐 정말로 큰
네비게이션을 켜지 않은 차는 10년 전 기억을 더듬어 말티재로 들어선다. 청주에서 법주사까지 빨리 가려면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데, IC까지 멀어 국도로 간단다.높다는 마루의 준말 ‘말’과 고개라는 ‘티’를 합한 말티재 길이 난 건,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인도에 다녀온 의신조사가 법주사를 세우기 위해 우거진 산림을 헤치고 걸었기 때문이었을까? 이후 속세와 분리되었다는 속리산 안에 항시 법이 머물러 있다는 사찰을 찾아가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길은 넓어지고 단단해졌을까?박석재라고도 불리는 꼬부랑길은 고려 태조 왕건이 법주사로 행차
‘도심 속 명산’은 연간 800만 명이 다녀간다는 북한산을 빛내주는 수식어다. 서울시 다섯 개 구와 경기도 세 개 시를 아우르고 있는 북한산 정상 백운대는 836m로 고양시 땅이고, 노고산 정상은 487m로 양주시에 속한다. 이처럼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좀 어지러운데, 인간의 구획이 있기 전인 중생대 쥐라기 그러니까 약 1억 6000만년 전 거대한 화강암체로 시작되어 오늘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숲이 인간의 영역에 갇힌 꼴은 아닐까?그래서 언젠가 수정되어야 할 문구라고 여기며 효자계곡에서 발원한 물이 수풀
작년 ‘다큐 3일’에서 골굴사를 보았다. 가보지 않았지만 낯설지 않았다. 언젠가 접했던 영상들이 기억이 났다. 한국의 소림사 혹은 둔황석굴이라는 수식어 때문이었다. 두 군데 다 답사하지 못한 아쉬움 한 군데 방문으로 갈증을 풀고 싶었다.낮은 담장 바깥으로 삐죽 나온 차량 통제용 스텐 자바라 대문 멀리 일주문이 보이는 것 같아 서둘러 걸으려는데, 욱신거린 듯 멈칫한다. 발차기, 주먹 지르기 모습을 하고 있는 스님 조각상들이 여느 절에서 찾으려고 했던 고요를 날려버린다. 그런데 오히려 안온해지는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안식을
황톳빛 벽에 둥근 기와로 물결을 만든 뒤 빨간 벽돌로 지붕을 얹은 담장과 우윳빛 벽에 일자형 기와로 책장 풍경을 펼친 뒤 처마를 얹어 마감을 한 담장 사이가 입구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아도 일주문 형상을 찾을 수 없다. 평지가 많은 나주에서 가장 높은 금성산 자락이라고 해도 도로와 인접해 그런가 갸우뚱하면서도 입장 신고식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어 좀 더 서성인다. 그때 담장 안쪽 두 나무가 발길을 잡아끈다. 언젠가 염주가 될 수도 있는 씨를 풍선처럼 안고 있는 모감주나무와 녹색을 띤 미래의 염주 열매를 달고 있는 보리자나
전통 패턴이 바뀐 예측 불가의 날씨로 곤혹스러운 계절, 좋은 날을 만들기 위해 절로 향하는 발걸음이 갑자기 무거워진다. 차단기를 지나 군포 2경으로 불리는 수리사를 오르는데 지난 폭우로 쓸려간 돌들이 길 옆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로 흙과 시멘트 간격이 드러나 있어 붕괴 두려움도 일고, 마르지 않은 숲에 갇힌 게 답답해 한바탕 폭포수라도 쏟아낼 듯한 음험한 기운에 움찔한다. 그래서 주문을 외운다.“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수리사 가는 길이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다. 어린 시절 소원을 이루고 싶을 때 마법처럼 입에 담
개운사(開運寺)에 가려고 마음먹은 뒤 의미를 찾는데 목에 걸린 가시를 삼킨 듯 개운하게 걸리지 않는다. 여기서 ‘개운하게’는 순한글 형용사이기에 접점이 없다. 그러다 서평 기사에서 ‘전심개운법(轉心改運法)’을 접한다. 마음을 전환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다는 말로서 정해진 운명으로 살 것인가, 운명을 바꾸어 깨달은 자 부처님처럼 행복하게 살 것인가, 그 시작과 끝은 마음을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자가 달라 연결이 어렵다.안암역에서 내려 골목길보다는 넓고 대로보다는 좁은 찻길을 따라 일주문 앞에 다다
선운사를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시인 혹은 가수가 된다. 백제의 고승 검단 스님이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선운(禪雲)’이라 지었다는데, ‘선’에는 고운 마음으로 착하게 베풀며 수행하다 보면 고요한 상태에 이르러 온전히 삶을 성찰할 수 있어서일까? 그래서 아름다운 절창들이, 파가지 못하는 애절한 그리움들이 널리 회자되는 것일까?하지만 아는 이들은 알고 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
인터넷 지도대로 해운대역 2번 출구에서 해운정사를 찾아 올라간다. 빽빽한 도심 사이로 또 인간만의 영역이 생기는 공사 현장을 건너보며 답답증이 밀려왔지만 무심히 가다듬으려 애쓴다. 우리가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확장의 본성을 냉철하게 성찰하기에는 이미 지구가 존폐 기로에서 뜨겁다.경사 낮은 비탈을 올라 일주문 앞에 섰는데, 지나온 길이 무색하게 드높은 계단이 하늘로 이어지고 있다. ‘108’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나 싶어 하나, 둘, 세어 보지만 곧 잊는다. 사찰 경계에 있는 듯한 주택가 빈 터 군데군데에서 하얀 꽃들이 수북하게 이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