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으로 문명기행을 시작한다. 혹자는 “왜 하필이면 기독교 성지인 이스라엘로 순례를 가느냐”고 하지만, 필자는 도리어 “왜 그곳에 가면 안되느냐”고 되묻는다. 이웃종교를 이해하고 포용할 때에 비로소 우리가 가야할 길과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번 기행을 위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비롯한 몇 편의 종교영화와 ‘인디애나 존스’, ‘아라비아의 로맨스’ 등의 상업영화와 심지어 드라마 ‘미생’까지 섭렵했다. 또한 구약과 신약성경을 비롯한 사막교부의 저작들과 이슬람 관련 서적 들을 탐독했다. 아는 만큼 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비행기로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에 도착해 숙소로 향했다. 언덕위에 자리한 호텔에서 바라다보는 밤하늘의 별빛들이 모두 지상으로 내려와 야경을 이루는 듯,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다음날 새벽 우린 요르단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이자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애나 존스 - 성배의 성전’의 무대로 유명한 페트라 유적지로 향한다. 가는 길은 가도 가도 끝없는 황량한 사막과 불모지이다. 이따금 몽롱한 가운데 푸른 호수가 보이지만 그것은 허망한 신기루일 따름이다. 얼마나 많은 대상들과 수도자들이 헛된 신기루의 유혹에
아스완을 떠나 나일강을 옆에 끼고 내달려 룩소르로 향한다. 중간의 검문소에서 멋진 터번을 두른 이집트 현지인 할아버지와 빵을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마치 이집트 신화 속에서 방금 나온 듯 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마치 외계인과 같았을 것이다.한참을 달리다 휴게소에서 쉬는데 뒤란으로 가니 토기에 콩죽이 잘 익어가고 있다. 현지인 기사와 가이드랑 함께 그 맛있는 콩죽에 빵을 곁들여 최고의 점심을 함께하였다. 역시 여행의 묘미는 현지인의 맛집 탐방에 있다. 토기에 물을 받아 자연냉각시키는 일종의 정수기 물맛도 압권이다.
드디어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의 문명기행을 떠난다. 미국 갱스터랩의 선구자인 투팍(2PAC)의 ‘변화(Change)’라는 노래가 있다. 그 마지막에 홀로 독백하듯이 “어떤 것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Something’s will never change)”라고 노래한다. 그 ‘어떤 것’ 중 하나가 바로 스님들의 이웃종교 탐방도 들어갈 듯 하다. 그 변화의 중심에 바로 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많은 이들이 우려와 걱정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문명의 발상지나 한때 세계를 지배한 제국들은 반드시 가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오늘은 부탄의 상징이자 최고 성지인 탁상곰파 사원을 순레하는 날이다. 부푼 기대를 안고 출발해 사원 입구에서 의식을 치룬 후에 산행을 시작했다. 부탄은 사원을 ‘종’이나 ‘라캉’ 혹은 ‘곰파’라고 부른다. 종은 요새형 사원을, 라캉은 사찰과 법당의 의미를 가진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사원을 의미한다. 반면 곰파는 은둔의 사원으로 계곡이나 절벽 등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자리한다.탁상곰파는 부탄 최고의 불교성지이자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곳이 부탄불교의 개조인 파드마 삼바바와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드마 삼바바가 두 번째
하교길의 아이들을 보며 순례단 지도법사 설정 스님께서 뭐라도 좀 사 먹이고 싶다고 하셨다. 아이들을 자애하는 자비덕화도 있지만 당신도 동진 출가자여서 짠한 마음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동자승이 많은 치미 라캉 사원 입구의 작은 가게에서 아침 등굣길의 아이들에게 과자를 사 주기로 하였다.마침 부탄 전통복장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손에는 도시락을 든 채 학교에 가려한다. 모두들 불러 모아 과자며 사탕을 나눠 주었다.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줄을 쭉 늘어선 채 초롱한 눈빛으로 함께한다. 그 아이들의 싱그러운 재잘거림과
아침에 눈을 뜨니 상쾌하고 개운한 느낌이다. 고원의 신선한 공기와 청정한 환경 때문일 것이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이 실로 얼마만인가 싶을 정도이다. 창문 너머로 봄의 대향연이 펼쳐지고 시원한 바람이 두 뺨을 스친다. 이렇게 살아서 수행하며 순례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먼저 한국의 무문관과 비슷한 팀푸 시내에서 멀지않은 체리사원을 찾았다. 이 사원은 티베트 까규파의 본산인 랑룽사원의 18대 승원장인 샵드룽 나왕 남걀에 의해 1620년에 세워졌다. 그는 티베트를 떠나 부탄으로 17대 승원장의 유해를 모시
은둔과 신비의 나라 부탄은 내 오랜 염원이자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은 곳이었다. 순백의 히말라야 설산 아래 잊혀진 ‘샴발라’ 이상향과도 같은 부탄. 세계 행복지수 부동의 1위를 지켜오는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지난 2017년 봄에 ‘설정 스님과 함께하는 태국, 부탄 성지순례’를 가졌다.1350년경에 건립된 아유타야 왕국은 수코타이에 이어 시암왕국의 두 번째 수도가 된 곳이다. 아유타야는 18세기에 버마인에 의해 파괴되고 약탈되면서 폐허로 변했다. 그럼에도 1991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서깊은 도시이다. 우리 일행
카일라스 코라길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신비의 구게왕국으로 향했다. 창탕고원으로 가는 길은 험하고 아찔하기만 하다. 해발 5000m의 길이 끝도 없다. 우리의 목적지인 자다마을은 자타토림과 구게왕국 유적지로 유명한 곳이다. 가는 길에 구름도 쉬어간다는 5510m의 아이라고개 정상에 올라 자다토림의 장관을 조망한다. 말 그대로 흙산이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흙의 숲인데, 마치 화성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신비한 풍경이다. 미국 그랜드캐넌에 버금가는 웅장한 자연은 신과 자연의 합작품이자, 흙이 빚은 조각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어둠 속에서도 장엄한 카일라스 북면은 순백의 영혼으로 빛나고 있었다. 새벽 3시경 손전등을 들고 공중 화장실에 볼 일을 보러 나왔다가 “오, 카일라스여!”라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난생 처음 접하는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카일라스 북면의 설산이 어둔 밤의 빛처럼 휘황한 자태를 뽐내며 무언의 설법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해발 5,210m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의 대향연에 넋을 빼앗긴 채, 그저 침묵하며 경외와 찬탄을 다할 따름이다. 온 우주에 오직 나 하나만이 이 성스러운 밤에 깨어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미 힌두 순례자
시가체의 상징이자 판첸라마가 주석하는 타쉴룬포 사원을 참배하며 실로 만감이 교차한다. 타쉴룬포 사원은 옛 모습 그대로이나 주인 없이 박제된 느낌이다. 언제나 옛 영화를 되찾아 빛과 희망으로 되살아날지 모르겠다. 그날이 오면 초모랑마가 춤을 추고 알룽창포 강물 또한 힘차게 울부짖으며 노래하리라!시가체를 떠나 샤카사(薩迦寺)로 가는 버스안에서 예불과 반야심경, 그리고 축원을 올렸다. 아울러 이번 순례의 마음을 다지는 발원문을 봉독하였다. 비록 사원에서 할 수는 없지만, 그 어느 곳인들 법당이 아니겠는가 싶다.샤카사는 샤카파의 성소로 몽
카일라스 수미산이여! 그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에 담은 채 열망했던 순간이던가! 몇 번이고 라싸까지 가서 수미산으로의 순례를 시도하다가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드디어 ‘영진 스님과 함께하는 수미산 순례’를 만들어 80여 명의 스님들과 함께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례의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사실 교육원장이었던 현응 스님께서 해인사 주지로 가시는 바람에 졸지에 교육원장 직무대행을 맡게 되었다. 그래서 행자교육 회향식도 치러야 하고 보름간이나 자리를 비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례에 함께한 것은 이번 기회가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