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개척해나가기 위해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바쁜 일상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가다 보면 건강에 좋다는 운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가운데 ‘웃음을 잃지 않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웃는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하니 너무 시시하게 들리나요? 예부터 웃음이 보약, 웃음이 명약이라는 말도 있지요.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얼굴에 언제나 미소가 가득한 사람은 남들보다 건강하다는 의사의 소견도 있습니다. 하
자존감은 자아존중감을 줄인 말입니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입니다. 자존감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을 두고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합니다. 모든 생명 있는 존재는 소중하고, 고귀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독불장군처럼 자기만을 내세우거나 최고라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이 세상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유일한 존재요, 고귀한 존재입니다. 요즘 사람들
자비(慈悲)는 다른 사람을 크게 온전히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연민의 마음이 더해진 마음을 자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비를 실천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그리고 남을 찬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행복한 삶이 어디에서 올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으로부터 평온하고 행복한 자기 마음에서 옵니다. 그 다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한 삶이 펼쳐집니다.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면 친절과 찬탄을 습관화하는 것입니다.매일 한번 누구에게든지 친절을 베풀고,
이 지구상에 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명체가 본능적으로 안고 있는 본래 성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행복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정작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행복을 원한다면 마음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이러한 생명의 법칙, 마음의 법칙을 깨닫고 있다면 누구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법칙을 알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제대로 알고 생활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마음의 법칙을 모르는 자는 건강을 바
우리는 일생의 삼분의 일은 잠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잠은 내일을 위한 휴식이기에 꼭 필요한 행위입니다.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나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은 저에게 묻습니다.“하루에 몇 시간을 자면 좋습니까?”저마다 생체리듬이 다르기 때문에 꼭 몇 시간을 자야 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학자들은 7시간이나 8시간 정도 자면 좋다고 합니다. 할 일이 많은 사람은 잠을 아껴 깨어있는 시간을 늘려야겠지요.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무서울 정도로 잠을 많이 자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일어나 앉아라. 잠을 자서 그대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제 아무리 복잡한 일일지라도 결국 마음의 문제로 귀착(歸着)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어려운 일도 모두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자신을 모르고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문제를 발생시키는 일이 허다합니다. 나 자신은 곧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곧 존재의 중심입니다. 우리의 삶은 마음으로써 일체의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마음은 이 우주의 중심이며. 나라는 것은 무한한 우주 속에 떠 있는 하나의 중심점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란 놈은 꽤나 다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대로 다스
모든 사람은 저 나름대로 재능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이 세상이 나의 재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장자〉에 보면 ‘쓸모없는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치 없는 것은 없습니다. 휘어진 나무는 휘어진 대로 가치가 있고, 생채기가 있는 나무는 그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꼭 궁전의 대들보가 되어야 하고, 웅장한 집의 대들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쓸모가 없어서 산을 지킨다는 것은 쓰임이 없어 생명을 보전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쓰임이 없다고 하지만, 나무는 그
요즈음 사람들은 도전 정신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너무 쉽게 인생을 포기해 버립니다. 천하의 명검도 쇠 덩어리를 수없이 연마한 끝에 나온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쉬지 않고 연마하는 가운데 자신의 뜻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선사들이 공부를 할 때는 죽을 각오로 합니다. ‘이만하면 되겠지’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갈 수 없는 곳까지 나아가는 것이 선사들의 공부입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하는 것입니다. 백 자나 되는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합니다. 자신이
모든 사람은 저 나름대로 재능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이 세상이 나의 재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장자〉에 보면 ‘쓸모없는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습니다.이 세상에 가치 없는 것은 없습니다. 휘어진 나무는 휘어진 대로 가치가 있고, 생채기가 있는 나무는 그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꼭 궁전의 대들보가 되어야 하고, 웅장한 집의 대들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쓸모가 없어서 산을 지킨다는 것은 쓰임이 없어 생명을 보전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쓰임이 없다고 하지만, 나무는 그 자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소식은 이웃나라까지 알려졌습니다. 하루는 빔비사라왕이 숲 속에서 명상에 잠겨있는 싯다르타를 찾아왔습니다. “태자가 출가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놀랐소. 태자처럼 젊고 기품 있는 사람이 사문이 되어 고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까운 일이오. 나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이 어떻겠소. 마음에 드는 땅을 드리고 편히 살 수 있도록 해 드리겠소.”그러나 싯다르타 태자는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저는 이미 세상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출가한 몸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이 있어 출가를 하셨소?”“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에서
우리를 괴로움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주변사람들과 사물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집착 때문입니다. 즉 괴로움이란 우리가 집착하는 고통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을 살펴보면 대부분 ‘내 것’이라는 집착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사물을 대하게 되면 좋다거나 나쁘다는 생각, 또 즐겁다거나 괴롭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어리석은 사람들은 물질에 대해 집착하고 근심하기 때문에 물질로부터 떠날 수가 없습니다. 물질에 대해 사랑하고 기뻐하며 소유하고
우리는 사물을 볼 때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견해로 봅니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갖고 대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가정에서, 학교와 사회에서 학습한 것이 내 견해의 일부를 차지할 것입니다. 새끼줄을 보고 뱀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육안입니다. 뱀을 뱀으로 보아야 하는데, 뱀을 새끼줄로 보는 견해를 가졌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에는 육안과 심안(心眼)이 있습니다. 육안은 육체적인 눈이요, 심안은 마음의 눈입니다. 심안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가진 눈입니다. 심안으로 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