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야수다라의 손을 놓고 목련을 따라 아버지 석가모니에게로 떠난 라후라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남은 식구들은 홀로 된 야수다라를 어떻게 달래었을까. 결론적으로 우리가 상식으로 듣고 아는 이야기보다 〈석보상절〉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전개가 유려하고 드라마틱하다. 정반왕의 야수다라 달래기 정반왕이 야수의 마음을 눅이리라 하시어 즉시 나라의 고관들을 모아서 말씀하셨다. “금륜왕의 아들이 출가하러 떠나니 그대들의 아들 각각 하나씩 보내 나의 손자 라후라를 좇아가게 하라.” 하시니 즉시 쉰 명의 아이가 모이거늘 라후라 따라가서 부처께
〈석보상절〉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오늘 야수다라의 심금을 울리는 이 장면에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야수다라의 진솔하고 논리 정연한 반박에 목련과 시어머니 대애도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지금 상황은 라후라를 출가시키게 데려오라는 석가모니의 명을 받은 목련이 대애도를 찾아가 설득하는 중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야수다라의 대답은 이러하다.야수다라의 완판승야수다라께서 말씀하셨다.“여래께서 태자 시절에 나를 아내 삼으셨을 때 내가 태자를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하여 한 번도 소홀한 일이 없었습니다. 부인이
드디어 ‘봄부터 가슴조이며 기다리던 내 누님 같은’ 〈석보상절〉 제6권을 읽는다. 사실 연재는 〈석보상절〉 제3권보다 6권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3권을 연재하면서 그동안 중간본이라고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팔상도의 내용에 충실하고 현전하는 첫 번째 책이라는 가치를 넘어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 석가모니의 출생과 출가 그리고 고행에 충실한 서사인지 새삼 알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 석보상절 제4권이 전하지 않아 남아있는 〈월인석보〉 제4권을 읽어보았다. 우리의 예상대로 팔상도 중 여섯 번째 ‘수하항마’의 내용으로
이번 회차에서 현전하는 〈석보상절〉 첫 번째 책 제3권을 다 읽는다. 모두 24권인데 현재 10권만 전한다. 3권의 내용은 팔상도의 두 번째 ‘비람강생’의 관상가 이야기부터 세 번째 ‘사문유관’, 네 번째 ‘유성출가’, 다섯 번째 ‘설산수도’까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석보상절 4권이 발견된다면 팔상도 여섯 번째 그림인 ‘수하항마’의 이야기로 이어질 것을 우리는 유추할 수 있다. 마침 나는 이번 이야기의 무대인 수자타 마을을 30년에 걸쳐 두 번 다녀왔다. 처음 1990년 당시 인도를 갔을 때는 수자타 마을까지 가는 경우는 더욱
이제 싯달타 태자가 6년 동안 고행을 하고 정각에 이르는 〈석보상절〉 제3권의 클라이맥스를 찬찬히 읽어보기로 한다. 다음 이야기는 태자가 정각을 이룬 후 제천이 이바지 하는 내용으로 현전하는 첫 번째 〈석보상절〉 제3권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석보상절〉 제4권이 아니라 제6권이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권차이기도 하다. 제권에는 마치 조선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처럼 살아있는 대화체가 진진하게 펼쳐져 있다. ‘야수다라와 목건련’, ‘야수다라와 대애도’, ‘석가모니와 라훌라’의 대화는 눈물과 웃음을 참기
이번 연재부터는 터키에서 쓰게 되었다. 이슬람 국가에서 쓰는 불교 이야기라니 멋지지 않은가. 터키에서 한국학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국립 에르지예스대 한국어문학과에 오니 박사 연구원들이 불교에 관심이 많다고 직접 찾아와 이야기한다. 이슬람 사회에서 미래 불교학자가 탄생할까. 마침 석가모니의 아들 라훌라 출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이 글에서는 6이라는 숫자가 의미심장하다. 불교에서 6이라는 숫자는 ‘6년 고행’, ‘육도(六道)윤회’, ‘육바라밀’에서 나타난다. 여기서 6년의 의미는 태자의 출가에 맞춰 아들 라훌라가 그 6년 뒤 출생이
싯달타 태자의 출가는 빈 말만 붙들고 돌아온 마부에 의해 기정사실화 되고 부왕은 결국 다섯 비구를 엄선해 따라가게 한다. 태자는 욕계와 색계를 넘어 무색계의 선정을 닦는 스승을 찾아 6년간 수행을 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마부 차닉 귀환과 가족의 미련차닉이 보관을 가지고 돌아오니 왕이 보시고 땅에 엎어지며 우시고 구이는 말의 고개를 안고 우셨다. 오십칠장태자의 보관(寶冠)이 오거늘 아버님 보시고 땅에 엎어지며 우시니마부 건특이 오거늘 왕비 구이 보시고 말 고개를 안고 우시니처음 〈석보상절〉을 읽을 때 ‘차닉이’와 ‘건특이’ 이야기가
이제 〈석보상절〉 제3권 석가모니의 팔상 중에서 ‘도솔래의, 비람강생, 사문유관, 유성출가’를 거쳐 다섯 번째 ‘설산수도’에 대하여 읽을 차례이다. 30여 년 전에 인도에 불교 무식자로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우연히 부처님 성지를 다니게 되었다. 그때 깨달음을 이루고 교화한 곳이 눈덮인 ‘설산’과 거리가 먼 마가다국에 속했던 보드가야와 라즈기르였다. 놀랍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였다. 아니 왜 설산이 없단 말인가. 뼈만 앙상한 라호르박물관의 고행상은 히말라야 얼음산에서 수행하신 것이 아니란 말인가. 오늘 그 ‘설산’의 의미를 되새겨보
오소만이라는 잠의 신이 아름다운 채녀들을 잠들게 한 뒤 추하고 적나라한 모습을 목도한 태자는 아름다움이 환영이나 환상에 불과한 꿈같이 덧없는 것이라 갈파한다. 그리고 출가를 실행한다. 그때 이미 태자의 출가를 알고 내려온 여러 천신들이 그를 호위하며 장엄하는 모습이 스펙타클한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정거천과 태자의 출가 선언그때 정거천이 허공에 와서 태자께 사뢰었다. “가사이다. 시절이어이다. 세간에 오래 즐거이 계시지 못하시리니 오늘날 일체 제천이 원하옵건대 출가하시어 성인의 도리를 배우시기를 바라나이다.”그때 태자께서 일어나실
출가에 관련하여 세 번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제 드디어 출가를 하는 날이 다가왔다. ‘출가(出家)’는 그야말로 ‘집을 떠나는 일’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출(家出)과도 비슷한데 불교에서는 ‘번뇌에 얽매인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수행 생활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우바새, 우바이처럼 세간의 불자인 ’재가(在家)‘의 대립어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집을 떠난다. 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가출하고 싶었다. 화가인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숨도 못 쉬는 집안에서 자란 나는 정말 혼자이고 싶었다. 게다가 당시 집이 서울에 있다
살아가면서 인생의 결단을 내리기까지 고민을 치열하게 한 적이 있던가 생각해 본다. 나의 경우 결혼이 그랬던 것 같다. 30대 중반까지 독신을 고집하였다. 어느 날 내 걱정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는 친척의 한 마디가 자극이 되었다. 아니 우리 식구 발 뻗고 편히 사는데 왜 친척이 잠을 못 자나. 20세기말 만해도 여자는 20대에 시집가서 아이를 낳는 것이 빠를수록 좋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남들보다 한 10년 늦게 결혼해서 딸을 낳았다.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이다. 가끔 악지식이 인생의 선지식이 되는 경우가 있다. 먼
싯달타 태자는 드디어 사대문 밖 중 마지막 북문에 나가 ‘노병사(老病死)’를 관찰하고 시름에 겨웠던 원인의 결과를 해결할 열쇠를 찾는다. 그것은 곧 출가한 비구 스님 사문을 만나는 일이다. 이제 북쪽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거천이 비구 스님 차림으로 멋지게 걸어가서 태자가 한 눈에 반하게 할 차례이다. 그동안 절을 기웃거리며 절밥을 먹은지 서른 해 남짓에 많은 스님들의 출가동기를 듣기도 하고 〈삼국유사〉 등에서 고승대덕의 이야기를 살피게 되었다.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삼국유사〉 효선 편의 스토리텔링은 모두 편부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