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바상 기원, 반인반신 ‘헤라클레스’

부처님을 호위하는 호법신 ‘건달바’
도상 대부분은 사자머리 가죽 둘러
네메아 사자 잡은 헤라클레스 근원
알렉산더대왕 동방 원정으로 전래

몇 해 전의 겨울 길거리에 나가면 사자머리, 곰머리, 토끼머리 모양의 털모자를 쓰고 각 짐승의 앞발 모양을 한 끈을 목 언저리에 묶은 어린아이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이를 보면서 나는 헤라클레스 도상의 재유행이라며, 역시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머리에 사자머리 가죽을 모자처럼 쓰고 있는 모습은 멀리는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 조각과 동전으로 볼 수 있으며, 가까이는 경주 석굴암의 건달바상 또는 불교회화에서 건달바를 표현한 그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와 불교에서 팔부신중의 하나로 알려진 건달바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매우 궁금하리라 생각한다.

헤라클레스(Hercules, Herakles)는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 기원전 140년경에 활동한 그리스의 학자)가 저술한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와 미케네의 공주 알크메네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그리스의 영웅이자 힘과 용기의 상징이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 여신의 질투에 의해 미케네의 왕위를 아버지가 다른 동복형제 에우류스테우스(Eurystheus)에게 빼앗기고, 에우류스테우스의 신하가 되어 그가 내린 12가지의 힘든 노역을 부여받는다. 그 첫 번째 노역이 네메아의 사자를 잡아 오라는 것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네메아 사자의 가죽이 칼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서 늘 들고 다니는 긴 몽둥이로 사자를 때려잡아 그 가죽을 벗겨 갑옷 대신 뒤집어쓰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이나 여러 조각상으로 표현된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를 들고 사자 가죽을 어깨에 걸치거나 머리에 쓴 모습으로 특징되며, 이때 사자의 앞발을 모자의 끈처럼 묶어서 목에 고정한 모양을 미술사에서는 ‘헤라클레스 매듭’이라고 부른다. 

반인반신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이미 기원전부터 많은 제왕들이 자신들의 모습과 동일시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으며, 알렉산더 대왕을 비롯한 여러 왕들은 자신들의 치세와 업적을 기록할 동전이나 조각상에 헤라클레스의 상징적인 모습을 차용해서 제작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알렉산더대왕 은화(기원전 336~323 경 주조)나 폰투스 왕국의 미트라테스 6세의 두상(기원 후 1세기 경 제작)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왕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헤라클레스 도상의 유행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지중해를 거쳐 서아시아, 그리고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아시아에까지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헤라클레스와 건달바의 만남과 전파과정을 살펴보기에 앞서, 불교에서 건달바는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건달바(Gandharva)는 건달박(健達縛), 건달바(楢達婆), 언달바(彦達婆), 건답화(楢沓和), 헌달박(럗達縛) 등으로 음사되며, 번역하면 심향행(尋香行), 심향(尋香), 식향(食香), 후향(?香) 등의 뜻을 지닌다. 건달바는 인도의 신화에서 별자리를 조정하던 신으로서 불교에 차용되어 팔부중(八部衆)의 하나가 되었으며, 긴나라와 함께 제석천(帝釋天)의 음악을 담당하는 신으로서, 보산(寶山)에 기거하고 있다고 한다. 향기를 찾는다는 뜻의 건달바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만 취하므로 이같이 불리며, 항상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에 나타나 정법을 찬탄하고 불교를 수호한다.

건달바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은 아마도 〈쌍윳다니까야〉 ‘건달바품(Gandhabbasayutta)’이다. 내용은 이렇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자들이 건달바 무리에 속하는 하늘 사람들인가? 뿌리 향기에 사는 하늘 사람이 있으며, 향기로운 나무 심에 사는 하늘 사람이 있으며, 향기로운 나무 속껍질에 사는 하늘 사람이 있으며, 향기로운 나무 겉껍질에 사는 하늘 사람이 있으며, 향기로운 새싹에 사는 하늘 사람이 있으며, 향기로운 나뭇잎에 사는 하늘 사람이 있으며, 향기로운 꽃에 사는 하늘 사람이 있으며, 향기로운 열매에 사는 하늘 사람이 있으며, 향기로운 수액에 사는 하늘 사람이 있으며, 향기로운 향기에 사는 하늘 사람이 있다. 이러한 자들을 건달바 무리에 속하는 하늘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제1권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건달바왕조에는 건달바의 공덕과 중생을 위한 업적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다시 또 한량없는 건달바왕이 있었다. 지국건달바왕(持國乾達波王)은 제1 단바라밀로서 자재한 방편으로 일체중생을 포상하는 성일체중생해탈문을 얻었고, 수광건달바왕(樹光乾達波王)은 제2 계바라밀로서 널리 일체공덕장엄을 보고 일체공덕장엄해탈문을 얻고, 정목건달바왕(淨目乾達波王)은 제3 인욕바라밀로서 일체중생들의 근심과 걱정을 줄게 하여 출생환희장해탈문을 얻고, 화관건달바왕(華冠乾達波王)은 제4 정진바라밀로서 중생들의 삿된 견해를 끊게 하여 영단일체중생사견흑해탈문을 얻고, 희보보음건달바왕(喜步普音乾達波王)은 제5 선정바라밀로서 시원한 구름을 큰 우주에 덮어 보음택일체중생해탈문을 얻고, 락요동미목건달바왕(樂搖動美目乾達波王)은 제6 반야바라밀로서 넓고 큰 묘호신(妙好身)을 얻어 일체를 안락케하는 일체획안락해탈문을 얻고, 묘음사자당건달바왕(妙音師子幢乾達波王)은 제7 방편바라밀로서 위대한 명칭을 널리 드날려 대명칭보해탈문을 얻고, 보방보광명건달바왕(普放寶光明乾達波王)은 제8 원바라밀로서 일체를 환희스럽게 하여 환희광명청정신해탈문을 얻고, 금강수화당건달바왕(金剛樹華幢乾達波王)은 제9 력바라밀로서 널리 일체나무들을 자영(慈榮)하여 보는 자들로 하여금 기쁘게 하는 견자환희해탈을 얻고, 보현장엄건달바왕(普現莊嚴乾達波王)은 제10 지혜바라밀로서 모든 부처님의 경계에 잘 들어가 중생들을 안락케 하여 여중생안락해탈문을 얻었다.”

또한 〈경률이상(經律異相)〉에는 “…옛날 목련이 설산에 가서 여러 귀신과 용·야차·아수라·건달바 등을 교화하였다. 그때 한 건달바신이 있었는데 칠보로 만든 궁전에서 살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게 아주 뛰어났다. 몸의 형상도 단정하며 총명하고 특수하였지만, 사람의 몸에 개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의 언급한 몇몇의 경전들을 통해서 건달바가 향기를 취하며 중생을 위해서 공덕을 쌓고 사람의 몸에 개의 머리를 하였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있었으나, 갑옷을 입고 사자 머리를 머리에 쓰거나 어깨에 걸치고 있다는 도상적 특징은 어느 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존하는 유물을 통해서 헤라클레스 도상이 건달바에 차용되는 과정을 추정하면 가장 먼저 기원전 4세기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헤라클레스와 자신을 동일시한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원 후 제작된 아프가니스탄 핫다의 ‘타파 슈투르’ 감실 V2에서 어깨에 사자가죽을 걸치고 금강좌를 든 채 부처님의 옆에 자리한 헤라클레스를 통해서 불교의 호법신으로 유입된 초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기원 후 3~4세기 간다라 지역의 금강역사에 헤라클레스의 이미지가 완전히 수용된 다수의 사례들이 현존하고 있다. 사자의 머리가죽을 쓴 건달바는 오늘날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쿠차의 키질석굴과 투르판의 베제클릭석굴, 감숙성의 돈황석굴, 맥적산석굴 등에서 벽화와 소조상으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예로는 석굴암 건달바 부조를 비롯하여 경주 남산의 동서 삼층석탑, 경주 담엄사터출토 석탑 기단부의 건달바상, 프랑스 기메뮤지엄 소장 고려 계유명(癸酉銘) 청동 건달바상, 다수의 조선 불화 등에서 무수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늘, 불교 미술의 포용력과 국제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리스신화의 헤라클레스가 불교의 건달바에 차용되어 동아시아의 끝 한반도에서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신기하고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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