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승이 오늘 법을 쓰는 것은 진실하고 바르게 이루어 놓기도 하고 부수어 버리기도 하며 마음대로 신통 변화를 부려 모든 경계에 들어가되 어디서나 아무 일이 없어서 산승의 경계를 바꿀 수가 없느니라. 다만 와서 구하는 자가 있으면 나는 곧 그를 알아보나 그는 나를 알지 못한다. 내가 몇 가지 옷을 입으면 학인은 옷을 보고 알음알이를 내어 한 결 같이 나의 말에 말려들고 마느니라. 괴롭도다. 눈멀어 안목 없는 머리 깎은 사람들이 내가 입은 옷을 붙잡고 푸르다, 노랗다, 붉다, 희다, 색깔만 인식하느니라. 내가 옷을 벗어버리고 청정한 법
“대덕들이여! 그대들이 바랑과 똥자루인 몸뚱이를 짊어지고 옆길로 내달리며 부처를 구하고 법을 구하니 지금 이렇게 내달리며 구하는 그것이 누구인지 아는가? 거침없이 활발하게 돌아다니지만 뿌리도 줄기도 없느니라. 손에 쥐어 모으려 해도 모아지지 않고 떨어 흩으려 해도 흩어지지 않느니라. 구하지 않으면 눈앞에 있어 신령스러운 소리가 귓속에 들어오니 만약 사람들이 이것을 믿지 못하면 평생 헛수고만 할 뿐이니라.여러분! 한 찰나에 바로 화장세계에 들어가며, 비로자나국토에 들어가며, 해탈국토에 들어가며, 신통국토에 들어가며, 청정국토에 들어가
“여러분, 진정한 도심(道心)은 대단히 어렵고 불법(佛法)은 그윽하고 현묘한 것이지만 알고 나면 별것 아니니라. 산승이 종일 말해 주어도 배우는 사람들이 모두 주의하지 않고 천 번 만 번 발바닥으로 땅만 밟고 다니면서 깜깜해 뭐가 뭔지 모르느니라. 아무런 형체나 모양이 없는 것이 밝고 뚜렷하게 홀로 비추고 있건만 배우는 사람들이 믿지 못하고 언어 문자로 이해하려 하나니라. 반백 년 오십 년이 넘도록 옆길로만 빠져 죽은 시체를 짊어지고 짚신이 닳도록 천하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짚신 값을 갚아야 할 날이 있으리라.대덕들이여, 산승이 밖으
“대덕들이여,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색신(色身)은 무상한 것이니라. 지라, 위, 간, 쓸개와 머리카락, 털, 손톱, 이빨 따위도 오직 모든 법이 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니라.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쉬어진 곳을 보리수(菩提樹)라 하는 것이고, 한 생각 마음이 쉬지 못한 곳을 무명수(無明樹)라 하는 것이니라. 무명은 머무는 곳이 없고, 무명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니라. 그대들이 만약 생각 생각 마음이 쉬어지지 못하면 문득 무명수 위에 올라가 4생6도에 들어가서 털 나고 뿔 달린 축생이 되고 말 것이니라. 그대들이 만약 쉬
“여러분! 그대들이 지금 눈앞에서 쓰고 있는 것이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으니라. 그런데도 믿지 아니하고 밖으로 향해 찾아 헤맨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밖에서 구할 법이 없고 안에서도 얻을 법이 없느니라. 그대들이 산승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취하는 것이, 찾는 마음 쉬어 아무 일 없는 것만 못하느니라. 이미 일어난 것은 계속되지 않도록 하고 일어나지 않은 것은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10년 행각하는 것보다 낫느니라. 산승의 견처로는 이러쿵저러쿵 말할 게 없느니라. 다만 평소 하는 대로 옷 입고
“산승에게는 남에게 줄 법이 하나도 없다. 그저 병을 치료해 주고 속박을 풀어 줄 뿐이니라. 그대들, 제방에서 도를 닦는 이들이여, 시험 삼아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말고 나와 보라. 내 그대들과 법을 논하고 싶으니라. 10년이나 5년이나 모두 한 사람도 없었느니라. 다 풀과 대나무 잎사귀에 붙어사는 정령이나 들판의 여우, 도깨비들이어서 온갖 똥 덩어리 위에서 어지럽게 씹어댈 뿐이니라. 눈먼 바보들이여, 저 시방의 시주물만 헛되이 소비하면서 ‘나는 출가한 사람이다’하여 그릇된 견해만 지어내고 있느니라. 그대들에게 말해 주었느니라. ‘부
“여러분, 그대들이 만약 법에 맞는 견해를 얻으려면 남의 속임수에 당해서는 안 되느니라. 안으로든 밖으로든 만나면 그냥 죽여 버려야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며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며 부모를 만나면 부모도 죽이며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 버려야 비로소 해탈을 얻을 수 있느니라. 어떤 경계에도 구속되지 않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자재하게 되어야 하느니라. 제방에서 도를 배우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고 찾아와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느니라. 산승은 이곳에서 처음부터
“여러분! 출가를 한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도를 배우는 일이니라. 산승의 경우 지난날에 일찍이 계율에 마음을 두어 보았고 경전이나 논에서도 찾아보았느니라. 그러다가 나중에 이러한 것이 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며 약에 대한 설명인 줄 알고, 마침내 한꺼번에 다 던져버리고 바로 도를 찾아 선을 참구(參究)하였느니라. 그런 후에 큰 선지식을 만나 뵙고 도를 보는 눈이 분명해져서 비로소 천하 큰 선지식들이 그릇된 것과 바른 것을 제대로 깨달았는가를 알 수 있게 되었느니라. 그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면서 알고 나온 것이 아니
“오직 여러분들의 눈앞에 지금 법문을 듣고 있는 사람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으며, 삼악도 지옥에 들어가더라도 꽃밭에서 노는 것처럼 하며, 아귀도나 축생도에 들어가도 아무런 과보를 받지 않나니 무엇 때문에 그런가? 싫어 꺼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대들이 만약 성인을 좋아하고 범부를 싫어한다면 나고 죽는 생사의 바다 속에 떴다 잠겼다 할 것이니라. 번뇌는 마음을 말미암아 있는 것이라 마음이 없으면(無心) 번뇌가 어찌 구속하리오. 애써 분별하여 상(相)을 취하지 않는다면 잠깐 사이에 저절로 도를 얻으
“여러분! 참된 부처님은 모양이 없고 참된 법도 모양이 없느니라. 그대들이 다만 허깨비를 두고 마음대로 모양을 만들고 있으니 설사 그렇게 해 얻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들여우나 도깨비 같은 것일 뿐이니라. 참된 부처가 아니고 외도의 견해니라. 무릇 진정으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부처도 취하지 아니하며, 보살이나 나한도 취하지 아니 하며, 삼계의 뛰어난 경지도 취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멀리 모든 것을 벗어나 사물에 구속되지 말아야 하느니라. 하늘과 땅이 뒤집힌다 해도 나는 더 이상 의심치 않으며,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이 눈앞에 나
“그대들은 부처님이 여섯 가지 신통이 있어 불가사의하다 하나니 그렇다면 일체 모든 천신이나 신선, 아수라와 힘센 귀신도 신통이 있으니 이들도 부처란 말인가?여러분, 착각하지 말라. 저 아수라들이 제석천왕과 전쟁을 하여 패배하고, 팔만사천 권속을 거느리고 연뿌리 속 실구멍으로 들어가 숨었다 하니 아수라도 성인인가? 내가 이러한 예를 드는 것은 모두 전생의 업으로 얻은 신통(業通)이거나 어떤 조건에 의지한 신통(依通)일 뿐이니라. 무릇 부처님의 6신통은 그런 것이 아니니라. 색(色)의 경계에 들어가도 색에 미혹되지 않고, 소리(聲)의
어떤 머리 깎은 비구들은 부처가 되기까지는 3아승지겁 동안을 수행해서 과보(果報)가 원만해져야 비로소 도(道)를 이룰 수 있다 하나니 여러분, 그대들이 만약 ‘부처는 최후에 마지막으로 얻는 것’이라 말할진대 어째서 석가모니는 80년 후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사이에서 옆으로 누워 돌아가셨으며, 그 부처님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하나니 부처님도 우리와 같이 나고 죽는 것이 다르지 않느니라.그대들이 ‘32상과 80종호가 부처다’하는데 그렇다면 전륜성왕도 응당 여래일 것이니라. 분명히 알라 허깨비일 뿐이니라.옛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