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는 부처님이 깨친 중도와 한국 화두선 명상의 가치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누구든지 부처님이 깨달은 중도를 공부하여 정견을 세우고, 화두선이든 호흡명상이든 지속적으로 꾸준히 생활화해 나가면 마음이 밝아지고 고요해져 나날이 좋은날이 될 수 있다. 세상에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치유 명상과 깨달음 명상세계적인 명상 붐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명상 수련법이 나오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참선 명상에 대한 정견을 세워야 한다. 참선 명상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눠진다.첫째, 나의 스트레스 해소와 심신의 건강을 위한
마음의 평화와 치유가 절실한 현대 생활인에게 참선 명상은 참으로 고귀한 선물이다.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며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자기 중심을 잡고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으려면 정신이 깨어있어야 한다.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선 명상이 바로 정신을 깨어있게 하는 것이다. 오늘은 지난 호에 안내드린 ‘나를 바로 보는 하루 5분 명상’인 나바오 참선 명상을 시작한 이에게 도움이 될 몇 가지를 말씀드리려 한다. 잘 알아 두어야 흔들림 없이 참선 명상을 생활화하여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
오늘은 마음의 평안과 행복이 절실한 현대 생활인에게 참선 명상을 쉽게 시작하는 방법으로 하루 5분 참선 명상하는 ‘나바오 명상(나를 바로 보는 5분 명상)’을 소개한다. 명상, 하루 5분으로 시작하기이제 참선 명상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종교를 초월하여 참선 명상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참으로 반갑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참선 명상을 시작하려는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바쁜 일상생활과 스마트폰과 동영상, TV, 게임 등 인터넷과 미디어의 자극에 익숙한 현대인이 고요히 내면을 바라
오늘은 현대 재가 생활인들이 참선 명상을 바르고 쉽게 시작하는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자. 왜 불교 명상을 해야 하는가?현대인은 지식 정보화시대에 경쟁 본위로 살며 늘 초조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20세기 일제 식민지 강점기와 민족 분단과 전쟁, 기아와 보릿고개를 넘어 산업화, 도시화, 민주화를 거치며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는 지금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시대 상황에 직면하여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고통 속에서도 깨달음을 통해 영원한 행복의 길을 알려준 불교를 공부하면 삶의
우리는 앞에서 참선 명상은 내 안의 평화와 지혜를 밝히는 길임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참선 명상을 잘못하면 고요함을 좋아하고 시끄러움을 싫어하는 양변에 떨어져 마음의 평화를 이루기가 어렵다. 그래서 바른 가치관인 정견(正見)을 세우고 참선 명상을 해야 한다. 오늘은 바른 참선 명상으로 안내하는 정견 세우기 중에 재가 생활 수행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상생활에서 참선 명상하는 법, 생활과 수행의 일치에 대하여 알아보자.재가 생활인은 먼저 본업에 충실해야 참선 명상을 업(業)으로 하는 출가 수행자라면 수행과 전법이 본분사이니 참으로 큰
명상하면 흔히 눈을 감고 고요한 곳에서 하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많다. 남방불교 승가의 위빠사나 사마타 명상법에서는 대체로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라 한다. 반면에 북방 불교의 화두 명상(간화선)에서는 반드시 눈을 뜨고 하라 한다. 이 때문에 명상을 처음 배우는 분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왜 화두 명상에서는 반드시 눈을 뜨고 하라 할까? 이것은 단순한 것 같지만, 사실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오늘은 이 문제를 알아보자. 왜 명상은 눈을 감고하는가?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에 들어 깨달음을 성취할 때 ‘새벽별을 보고 깨쳤
현대인의 큰 괴로움 중 하나가 시끄러움, 소음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도시에 산다. 도시의 미세 먼지와 함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시끄러움일 것이다. 특히 아파트나 공동 주택의 층간 소음은 심각한 사회 문제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고요함이 절실한 현대인 시끄러운 소음에 시달리는 도시의 현대인들에겐 한적한 전원생활이나 자연 속의 캠핑 또는 산사에서 템플스테이 같은 것이 로망이다. 우리는 흔히 고요한 곳을 가면 ‘절간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사찰, 절은 조용한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현대인들이 시끄럽고 번잡한 도시 생활을 하면서도
‘간화선은 최상승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화두 참선이 깨달음에 가장 빠른 길이라는 말이다. 깨달음을 수행하는 불자라면 누구나 빠른 깨달음으로 생사의 괴로움에서 해탈하고자 한다. 어째서 화두선은 생사 해탈의 가장 빠른 길이라 하는가? 오늘은 이 이야기를 살펴보자. 중도에 근거한 수행법은 다 좋다불교 경전에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바로 깨달음을 성취하는 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온다. 또 깨치는 방법도 너무나 다양하다. 하지만, 불교에서 깨달음은 중도(中道)이다. 부처님은 깨치고 첫 설법에서 당신이 중도를 깨쳤다는 중도대선언을 하였
참선 명상은 고달픈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준다. 참선 명상에는 그런 치유의 힘이 있다. 이것은 오직 체험해야만 알 수 있다. 세계적인 명상붐으로 다양한 명상법 중에 가장 빠르고 깊은 효과를 체험할 수 있는 화두 참선에 대한 관심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참선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관련 책이나 유튜브 영상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는 조계종 스님들을 중심으로 화두 참선법을 일관되게 말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재가 법사나 일부 스님들이 화두 없이 참선을 말하는 것이다. 같은 불교와 참선을 말하면서
교황의 화두?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때 언론방송은 그 소식을 연일 크게 보도하였다. 한 뉴스의 제목이 재미있었다. ‘교황의 화두, 약자 먼저’였다. 화두라는 말은 불교 선종에서 나왔다. 화두(話頭)란 ‘말 머리’ 또는 ‘말’이란 뜻이다. 말은 말인데 ‘말 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진 말’이다. ‘뜰 앞에 잣나무’, ‘이 몸덩이 끌고 다니는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등의 화두는 선사들이 쓰는 말로 번뇌에 휩싸인 중생이 망상을 멈추고 자기를 바로 보라고 하는 말이다. 선문에는 1700가지 화두가 규칙으로 정해져
우리에게 윤회는 너무나 익숙하고 공감되는 생사관이다. 윤회 이야기는 사랑과 함께 영화나 드라마, 음악에서도 자주 접하는 주제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윤회는 종교를 막론하고 수용하고 있는 생사관으로 보인다. 유교의 제사나 불교의 49재는 거의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지금은 천주교에서도 49재를 지낸다. 아시아인들이 생사 윤회를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시간관 때문이다.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고 보고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간다고 본다.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 늙고 죽으면 그 영혼이 다음 세상에 태어날 것이라고
죽음의 괴로움은 인간의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에 두려움을 느낀다. 아무리 부자여도 권력이 많고 부귀영화를 누릴지라도 죽음의 괴로움은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종교에서는 죽음 이후 다시 태어나는 윤회나 죽어서 천국이나 지옥 가는 사후 세계를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깨치고 첫 설법인 〈초전법륜경〉에서 당신은 “중도(中道)를 깨달아 죽지 않는 불사(不死)의 문을 열었다”고 설하셨다. 이것이 부처님의 중도대선언이다. 죽지 않는 문을 열어 보임은 부처님이 우리 인류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부처님은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