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악귀’는 대본의 완성도면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은희 작가가 대본을 썼다. ‘악귀’는 악귀에 씐 구산영(김태리)과 악귀를 볼 수 있는 민속학자 염해상(오정세)이 악귀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파헤쳐가는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 드라마다. 염해상은 구산영의 아버지에게 씌었던 악귀가 딸인 구산영에게 옮겨간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애초 악귀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염해상의 할머니인 나병희(김해숙)가 악귀를 만들었다. 1958년 나병희는 남편 염승옥과 함께 가난한 집안의 자매인 이목단과
올해 방영된 드라마 중 단연 군계일학은 디즈니+ 오리지널에서 공개된 ‘무빙’이다. ‘무빙’의 장르는 뭐라고 딱 꼬집을 수가 없다. 하늘을 날고, 재생능력이 있고, 오감이 발달한 초능력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히어로물이다. 히어로들이 초능력을 쓰면서 다툰다는 점에서는 액션영화이다. 그런가 하면, 초능력자들이 정신적으로는 미숙한 청소년이라는 점에서는 성장영화로 봐도 무방하고, 초능력이 대물림되고 2대의 가족사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족영화로 봐도 무방하며, 초능력자들이 서로의 비밀을 알아가면서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로
올해 여름 이윤옥 평론가가 〈이청준 평전〉을 발간했다. 이윤옥 평론가는 “인문학적인 질문을 하게 하고 인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하게 하는 작가가 바로 이청준”이라며 평전 출간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청준 작가는 꾸준히 불교에 관심을 보이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주목할 만한 불교문학의 성취를 남겼다. ‘다시 태어나는 말’은 초의 선사의 동다송(東茶頌)이 언어 정신의 타락상을 넘어서는 한 지경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소리꾼 누이를 찾아다니는 남자의 이야기와 초의 스님의 다도(茶道)에는 동일하게 ‘마음을 뜨겁게
가을이 되면 즐겨 듣는 아트록 노래 두 곡이 있다. 한 곡은 스트롭스(Strawbs)의 ‘가을(Autumn)’이고, 다른 한 곡은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의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가을(Spring, Summer, Winter And Fall)’이다. 두 곡을 듣다가 필자는 다른 계절과 달리 가을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는 두 개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됐다. ‘Autumn’은 ‘말라가는’ 내지는 ‘건조해지는’이라는 의미의 고대 프랑스어인 ‘Autumpne’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16세기 이전에는
여름산의 수목(樹木)들을 보고 있으면 생명력 넘치는 짙은 녹음 때문인지 식물성을 버리고 동물성에 귀속된 것만 같다. 무더운 여름이 되면 필자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사진)의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책장에서 꺼내서 읽는다. 〈금오신화〉가 중국의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금오신화〉가 〈전등신화〉보다 심원하다고 할 수 있다. 가령, 같은 명혼(冥婚)이라는 소재를 차용해도 〈전등신화〉는 흥미를 유발하는 데 그치는 반면 〈금오신화〉는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여주에 가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스님이 살고 있습니다.그런 스님의 우란분재에 저는 어머님의 천도를 맡겼습니다.스님의 염불에 따라 어머님의 신위가 연기로 사라질 때, 그 연기에 취해 배롱나무 붉은 꽃잎이 가늘게 떨렸습니다.사랑이여, 저의 마음속 붉은 꽃잎은 언제 어디서 무슨 연기에 취해 떨렸을까요.송기원의 ‘붉은 꽃잎’ 전문이다. 필자의 졸작 〈염주〉에 인용했던 시편이기도 하다. 작가의 어머니가 작가의 투옥 기간 중 자살한 사실로 비춰봤을 때 이 시는 실제 벌어진 일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유추된다.송기원 작가는 〈안으로의 여행〉
모든 디스토피아 서사는 계급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흔히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우리들〉을 꼽는다.이 작품들은 모든 것이 감시되고 통제되는 사회의 폐해를 꼬집고 있다. 〈우리들〉의 주인공은 단일제국에 복무하는 수많은 번호 중의 하나인 ‘D-503’이다. 단일제국에서는 내밀한 사랑조차도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1984〉의 배경이 되는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도 국민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택배기사
앙드레 말로는 대표적인 20세기 프랑스 작가로 장 지오노(Jean Giono)를 꼽았고, 헨리 밀러는 “프랑스와도 바꿀 수 없는 작가”라고 장 지오노를 칭송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장 지오노의 말년 작품이다. 이야기는 프랑스에 사는 한 젊은이가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부피에는 혼자 황무지에 살면서 도토리나무를 심었다. 도토리 10만 개를 심었는데, 나무로 자란 것은 1만 그루였다. 그렇게 34년 동안 나무를 심었더니 황무지는 수십만 그루의 떡갈나무 숲으로 바뀌었고 개울이 흐르고 새가 모여드는 생명의
‘돼지의 왕’ ‘더 글로리’ ‘모범택시’ ‘약한 영웅’ ‘인간 수업’ ‘구해줘’ ‘펜트하우스’ ‘학교 2015’ ‘경이로운 소문’ 등 최근 학교폭력을 제재로 다룬 드라마가 봇물 터지듯 방영되고 있다. 이는 여러 연예인이 가해자로 지목되고, ‘학폭투’(학교폭력 미투)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됐다는 방증일 것이다.학교폭력을 제재로 다룬 드라마 중 완성도 면에서 ‘돼지의 왕’과 ‘더 글로리’가 가장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작품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학교폭력을 진행되고 있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물의 길’은 주제적인 측면에서 다소 실망스럽다. SF의 새 장을 연 ‘아바타’ 발표 이후 13년 만에 발표된 후속작인 이 영화는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 부부의 가족이 지구인들의 공격에 저항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전편이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후속작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바타의 전작이 놀라웠던 것은 SF의 신기술을 보여줬던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심원한 주제를 긴장감 있는 서사에 잘 용해했기 때문이다. 전작의 서사는 미국의 형성 과정에서 이뤄진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을 기초로 하고
‘브로커’는 일본 감독(고레에다 히로카즈)이 연출한 한국영화이다. 이 영화를 한국영화라고 정의하는 이유는 한국배우들이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어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송강호는 이 영화로 한국인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가족이라는 화두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영화는 우성이라는 아이가 베이비 박스 시설에 버려지면서 시작된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송강호)과 시설에서 일하는 동수(강동원)가 우성을 몰래 데려가고, 이튿날, 소영(이지은)이 자신의 아이를 찾으러온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우성을 잘 키
배우 이정재가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헌트’는 소재부터 흥미롭다. 전두환 정권 당시 안기부 내 해외팀과 국내팀의 반목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망명을 신청한 북한 고위 관리로부터 안기부 내에 스파이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해외팀 박평호(이정재) 차장과 국내팀 김정도(정우성) 차장은 스파이인 ‘동림’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영화제목이 헌트인 이유는 해외팀과 국내팀 둘 다 사냥꾼이 되지 못하면 사냥감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헌트’는 시종일관 긴장감이 유지되는데, 이는 ‘누가 동림인가?’ 하는 의문에서 비롯된다고 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