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설하신 ‘부모님 은혜’

초기불교부터 ‘孝’ 덕목 명시돼
불교 대표 ‘孝經’ 〈부모은중경〉
10가지 부모 은혜 설하고 있어

돈황 막고굴에 관련 벽화 확인
부처님 설법 아래에 경전 도해
‘십은변상’ 변화… 韓에도 정착

북송 시대에 제작된 ‘불설보부모은중경변상’으로 감숙성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경전에 있는 10가지 은혜를 도상화한 ‘십은변상’에 앞선 초기 ‘부모은중변상’ 도상을 보여주고 있다.

백중기도와 추석 차례를 지내면서 “불교에서는 ‘효’를 언제부터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하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가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폐불 사건 등 일련의 탄압을 겪으면서 생존을 위해 효를 불교에 접목시켰을까? 사실 여러 종교들 중에서 불교만큼 조상에 대한 효를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도 없을 것이다. 

불교와 효의 관계에 대해서 찾아보면 이미 초기 불교시대부터 여러 경전들에서 가정과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덕목이나 윤리개념이 적혀있다. 먼저 가장 이른 사례로 팔리어 장경의 〈맛지마 니까야〉의 한역본에 해당하는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 어른을 공경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는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중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고 있는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에서는 굶주린 부모를 위해 자신의 피와 살을 부모님께 봉양한 수사제(須?提) 태자의 이야기를 첫 장에 싣고 있다. 이 외에도 〈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佛昇恂利天爲母說法經)〉 〈불설부모은난보경(佛說父母恩難報經)〉 등 수 많은 경전들에서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기 이전부터 인간의 윤리와 효에 관해서 중요시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효를 설한 불교 경전 중에서 가장 집약되고 발전된 경전을 꼽는다면 불교 경전 속의 ‘효경(孝經)’이라 칭해지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일 것이다. 이 경전은 〈은중경(恩重經)〉 〈불설부모은중경(佛說父母恩重經)〉 〈불설보부모은중경(佛說報父母恩重經)〉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일반적으로 〈부모은중경〉은 쿠마라지바(鳩摩羅什)가 한역하였다고 하지만, 중국에서 당나라(唐代) 때 찬술되어 전래된 불경으로 ‘위경(僞經)’이다. 〈부모은중경〉 경전이 성립된 초기부터 서로 다른 이본(異本)들이 존재하는데, 대략 다섯 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경전 성립의 초기에는 부분 개정과 일부 내용을 더하거나 빼는 정도의 변화만을 보이다가 점차 부모의 은혜를 강조하고, 더 나아가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었다. 따라서 경전의 명칭도 내용 변화에 맞추어 〈부모은중경〉에서 〈불설부모은중경〉으로 다시 보은을 강조하기 위해서 〈불설대보부모은중경〉으로 바뀌었다. 

〈부모은중경〉의 대략적인 내용은 부처님께서 어머니가 자식을 잉태하여 열 달 동안 겪는 10가지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출산하고 양육하면서 자식에게 베푸는 열 가지의 은혜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신 이야기이다. 특히 열 가지 은혜는 변상판화의 삽화로 가장 많이 제작됐다.

그 내용은 △아기를 배고 지켜준 은혜 △해산할 때의 은혜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은 은혜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을 먹여주신 은혜 △마른자리 골라 아기 눕히신 은혜 △젖을 먹여 길러주신 은혜 △더러운 것을 깨끗이 빨아주신 은혜 △멀리 떠난 자식을 걱정해주시는 은혜 △자식을 위해 나쁜 일도 하신 은혜 △끝까지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는 은혜이다. 그리고 경전의 후반부에는 한량없는 은혜를 갚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부모님의 희생과 은혜를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한 ‘부모은중경변상’의 변화와 흐름을 간략히 살펴보겠다. ‘부모은중경변상’은 현존 가장 이른 사례가 중당(中唐, 781~848) 시기에 조영된 돈황(敦煌) 막고굴(莫高窟) 238굴에 그려져 있으며, 이후 중당부터 오대북송(中唐~五代宋代)까지 막고굴 156굴·170굴·449굴에 벽화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돈황 막고굴 17굴에서 출토된 비단에 그려진 2점의 작품까지 돈황 지역에서 모두 6점의 ‘부모은중경변상’이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돈황 출토의 작품들은 모두 일반적인 설법도의 화면구성에 화면의 좌우와 하단에 경전의 내용 일부를 도해하였다. 또한 11세기 경 제작된 서하(西夏)의 하라호토에서 출토된 ‘불설부모은중경판화(TK119)’ 역시 중앙의 부처님을 중심으로 은혜와 보은에 대한 내용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12~13세기 사천성(四川省) 보정산(寶頂山) 대족석굴(大足石窟)의 ‘부모은중경변상’은 경전의 내용이 화면의 중심에 도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을 거쳐 정형화된 ‘부모은중경변상’의 도상들을 확인할 수 있다. 대족석굴에서 등장한 열 가지 은혜를 표현한 ‘십은변상(十恩變相)’은 고려와 조선 ‘부모은중경변상’의 ‘십은변상’과 그 명칭 및 도상표현에 있어 매우 유사하여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더하여 대족석굴에서부터 함께 표현되는 지옥 장면이 이후 간행되는 ‘부모은중경변상’에 지속적으로 꾸준히 나타난다는 점에서 고려와 조선 ‘부모은중경변상’의 기원을 짐작하게 한다. 

용연사 소장 ‘대보부모은중경변상판화’으로 고려시대에 제작됐다. 〈부모은중경〉 중 ‘제6 유포양육은’의 내용을 도상화했다.

우리나라에 〈부모은중경〉이 유입된 시기는 통일 신라시기로 추정하지만,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부모은중경〉은 고려 고종 37년(1250)의 〈부모은중경〉이다. 이후 판본으로 충렬왕 26년(1300)에 간행된 〈불설부모은중경〉과 우왕 4년(1378)에 간행된 3종의 〈불설대보부모은중경〉 등 고려 시대에는 〈부모은중경〉과 관련된 총 4종의 목판본이 있다.  

고려의 〈부모은중경〉 중에서 관련 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사례가 1378년(고려 禑王 4년)에 제작된 용연사 소장본이다. 처음 제작 시에는 ‘십은변상’이 각 장마다 총 열 장면으로 분리되어 제작된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제6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제7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제8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제9 심가체휼은(深加體恤恩)’ ‘제10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의 다섯 장면만이 전해진다. 

위의 다섯 장면 중에서 ‘제6 유포양육은’을 살펴보면 세로 21.8㎝, 가로 10.0㎝의 직사각형 화면의 윗부분에는 집안의 의자에 앉아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으며, 화면의 아랫부분에는 경전의 내용이 6행이 세로 방향으로 적혀있다. 경전은 해당 내용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여섯째 젖 먹여 양육하신 은혜. 어머님 크신 은혜 땅에다 견줄까, 아버님 높은 은덕 하늘에 비길까, 높고 큰 부모의 은공 천지와 같으니, 부모의 은혜 역시 그러하다, 눈 못쓴다고 싫어하지 않고, 손발 걸린다고 미워하지 않고, 배 갈라 낳은 친자식, 종일 아껴 더욱 어여삐 여기신다.(第六哺乳養育恩 頌曰 慈母像大地, 嚴父配於天, 覆載恩同等, 父娘恩亦然, 不憎無怒目, 不嫌手足攣, 誕腹親生子, 終日惜兼憐)”

〈부모은중경〉은 중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 널리 보급되었고, 나라마다 많은 유통본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에서는 주로 필사본으로 유포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 이후부터 공덕을 위해 목판본이 많이 간행되어 널리 유통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더불어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전래된 이후 11세기 초에는 판본을 제작할 정도로 이미 국내에 널리 대중화되어 유통되었다는 점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삽화를 곁들인 판본이 많이 간행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언해본이 출판되기도 하였다. 

〈부모은중경〉은 수십 종의 판본이 전해진다. 이를 단순히 효도가 강조된 조선시대에 불교를 전파하려고 하였던 노력의 일환으로만 이해하기 보다는 이미 불교성립의 초기부터 있어왔던 인간의 윤리와 효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빛을 발휘한 결과로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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