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천, 부처께 간곡히 법을 청하다

브라만교 ‘브라흐마’가 호법신으로
색계 초선천 부여… 제석천의 상위
불교경전 ‘범천권청’ 일화로 유명해

설법 주저하는 부처에게 청법 장면
도상화돼 중앙아시아를 거쳐 전래돼?
韓천신형 범천 〈불설다라니경〉 영향

범천이 석가모니 부처님에서 설법을 청하는 ‘범천권청’을 표현한 도상. 시크리에서 출토됐으며 2~3세기 간다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파키스탄 라호르 뮤지엄에 소장돼 있다.

불법을 지키는 여러 신들 중에서 으뜸을 꼽는다면 범천과 제석천일 것이다. 조선 불화의 〈신중도〉 속에서 범천과 제석천은 상위의 신으로서 자리하고, 그 아래에 위태천이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인 구조이다. 지난 글들에서는 제석천과 위태천의 기원과 불교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에 관해서 이야기하였다. 그렇다면 석가모니 부처님 재세 시기부터 부처님을 보필하거나 협시의 역할을 하였던 범천은 어떠한 기원과 인연을 가지고 있을까?

범천(梵天)은 아리아인의 종교 브라만교에서 만물을 성장시키는 절대자 브라흐마(Brahma)가 불교의 호법신으로 수용된 것이다. <베다(Veda)>에 의하면 브라흐마는 황금알에서 태어나 땅과 그 위의 모든 것을 차례로 창조했다고 하며, 혹은 비슈누의 배꼽에서 피어난 연꽃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불교에서 범천은 몰라함마(沒羅含摩), 범마(梵摩), 범왕(梵王), 대범천왕(大梵天王), 시기(尸棄), 세주(世主)라고도 하며, 불교의 우주관에서 색계 초선천(初禪天)의 위치를 부여받았다. 색계 초선천은 제석천이 머무르는 욕계 도리천(恂利天)의 위에 있어, 위계로 본다면 제석천보다 높다.

불교 경전에서 범천은 제석천과 함께 정법을 보호하는 신으로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올 적마다 반드시 제일 먼저 설법을 청한다. 그런데 현존하는 조선불화에서의 범천은 제석천이나 위태천보다 어떠한 고유한 특징이나 위상이 매우 약하다. 

브라만교 최고의 신 브라흐마가 불교에 차용된 후 호법신 범천으로서 어떠한 역할과 위상을 가졌는지도 궁금하다. 범천은 싯다르다 태자의 탄생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에 이르는 고사를 담은 불전(佛傳)의 모든 장면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교사에 가장 뚜렷한 역할을 한 것을 꼽는다면 ‘범천권청(梵天勸請)’일 것이다. 불전에 전해지는 ‘범천권청’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다.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얻은 석가모니 부처님은 처음 당신이 깨달은 진리가 너무 난해하고 심오하여 일반 사람들의 이해가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염려한 나머지 전도와 설법을 주저하셨다. 이때 범천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만약 진리를 설하지 않는다면 그 훌륭한 가르침이 세상에 묻혀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근심과 걱정에 잠겨 생과 사에 시달리다 영원히 구원의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라며 설법을 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범천의 간청을 받아들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함께 고행 수도를 했던 다섯 비구에게 가장 먼저 법을 설하기 위하여, 우루빌바에서 출발하여 바라나시 교외의 리쉬 파타나에 있는 녹야원까지 200Km가 넘는 먼 여정에 올랐다. 긴 여정을 마치고 리쉬 파타나에서 행해진 석가모니의 첫 설법이 바로  ‘초전법륜(初轉法輪)’ 혹은 ‘사르나트 설법’, ‘녹야원 설법’ 등으로 칭해지는 것이며, 불교회화의 불전도에서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널리 알려진 장면이다. 

불교의 개시와 전도에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된 범천권청이 기록된 경전을 살펴보면, 팔리어 경전에서는 〈맛지마니까야(Majjhima-Nikya)〉 〈쌍윳따니까야(Sayutta-Nikya)〉 〈디가니까야(Dgha-Nikya)〉 등이다. 또한 한역 경전에서는 〈근본설일체유부비내야(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장아함경(長阿含經)〉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 〈보요경(普曜經)〉 〈불소행찬(佛所行讚)〉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 〈불본행경(佛本行經)〉  등 다수의 경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증일아함경〉에 기록된 범천권청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갈타국(摩竭陀國)의 도량나무 밑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도를 얻은 지 오래지 않았는데, 이렇게 생각하셨다. ‘내가 얻은 매우 깊은 이 법은 밝히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며, 깨달아 알기 어렵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설령 내가 남을 위해 이 묘한 법을 연설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받아 주지 않거나 또 받들어 실천하지 않으면, 부질없이 수고롭고 손해만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것이 좋겠다. 어찌 꼭 설법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때 범천왕은 멀리 범천에서 여래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마치 역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것 같은 짧은 시간에 범천에서 사라져서 보이지 않더니 곧 세존 앞에 나타나 머리를 조아려 세존의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범천이 세존께 아뢰었다. 

“여래(如來)·지진(至眞)·등정각(等正覺)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시면 마땅히 법보를 연설하시는데, 지금 그 법을 연설하지 않고 계십니다. 오직 바라건대 여래께서는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심오한 법을 널리 연설하소서. 그리고 이 중생들의 근기(根器)는 제도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만일 법을 듣지 못한다면 영원히 법안을 잃게 되어 이들은 분명 법에서 버려진 아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의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태어남·늙음·병듦·죽음에 시달리고 있지만, 근기는 이미 성숙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법을 듣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만다면, 그 또한 애달프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부디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저들을 위하여 설법해 주소서.”

파키스탄 라호르 뮤지엄 소장의 2~3세기 경 스투파의 기단 부분에 묘사된 부조는 위 경전의 내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중앙에 가부좌를 취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두 손을 합장하고 법을 청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한 범천이 보이며, 왼쪽에는 머리에 터번을 두른 제석천을 확인할 수 있다. 

간다라 지역에서 브라만교의 청년 수행자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된 범천은 이후 중앙아시아지역에서 석가의 탄생, 범천권청, 열반의 장면에 소라 모양의 상투(螺槌形)를 틀은 나이든 수행자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러한 도상은 중국에 전해져 6세기경까지 유행하였으나, 당대(唐代, 618~970)부터 범천은 제왕과 같은 복식을 갖추고 흰색의 불자(拂子)를 든 모습으로 좌우에 범천녀(梵天女)를 거느린 형상으로 묘사되었다. 

당대 이후 신중사상과 불교의식들이 성행하면서 점차 제왕형 범천도상이 정형화되었고, 라계형 범천은 거의 사라져 갔다. 원대(元代)와 명대(明代)에는 범천과 제석천이 제왕의 모습으로 수륙화의 여러 신들 중에 포함이 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석굴암에서 8세기 범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생김새가 젊은 수행자나 소라 모양의 상투를 튼 늙은 수행자 혹은 중국의 제왕형 범천이 아닌 천의를 걸친 천신형에 가깝다. 이러한 천신형 범천의 출현은 간다라나 중국과 다른 도상적 특징으로서 통일신라 시기에 유행한 〈불설다라니집경(佛說?羅尼集經)〉의 영향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불설다라니집경〉의 관련 내용은 이렇다. 

“보살의 오른쪽 행랑에는 범마천을 안치하되, 온몸이 흰색이고 귀에 보배 귀걸이를 했으며, 목에 칠보의 영락을 두르고 양탄자 위에 서 있다. 오른손은 팔을 구부려 어깨 위로 향하여 손에 흰 불자를 잡고 왼손은 팔을 편 채 손에 조관(逗罐)을 잡고 있으며, 허리 밑으로 아침 노을빛 치마를 입고 화려한 비단 그물과 수로 장식한 의복을 입고 있다. 그 범천은 몸에 자색(紫色) 가사를 입고 꽃으로 만든 관을 머리에 쓰고 파기광(悽箕光)을 내고 있으며 손과 발과 손목에는 모두 보배팔찌를 두르고 있다.” 

석굴암에 조각된 범천은 위 경전과 동일하게 귀걸이와 영락을 두르고 양탄자 위에 시립해 있으며, 오른손을 구부려 불자를 잡고 왼손은 팔을 펴 조관을 들고 있어 석굴암 범천의 도상학적 근거를 〈불설다라니집경〉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후 범천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천신형으로 고정화되었으며, 시기와 지역에 따라서 이마에 제3의 눈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신중도에서 범천은 독립적이지도 그리고 비중도 크지 않지만, 만약에 범천이 석가모니께 설법을 청하지 않았다면 불교는 개시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범천은 자신이 할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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