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비로자나불 관련 도상

화엄·비로전 주존 비로자나불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광명 부처
배화교 신 ‘아후라 마즈다’ 기원?
도상화 4~5세기… 돈황 등 전파
석남사 비로자나좌상 세계 最古
밀교 영향으로 지권인 수인 정착

14세기 제작된 고려불화 ‘비로자나삼존도.’ 독일 쾰른 동아시아박물관 소장돼 있다. 고려부터 조선 후기까지 정형화돼 내려오는 지권인을 취한 부처형 비로자나의 가장 이른 사례이다.

비로자나부처님(毘盧遮那佛)은 사찰의 비로전(毘盧殿) 또는 화엄전(華嚴殿)에 주존으로 모셔지며, 대적광전(大寂光殿)이나 대광명전(大光明殿)에는 법신(法身)으로서의 비로자나부처를 중심으로 좌우에 보신(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응신(應身) 석가모니불을 봉안한다.

흔히들 비로자나여래를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광명(光明)의 부처라 칭하며, 범어 바이로차나(vairocana)의 뜻이 ‘광명’이라고 한다. 그래서 밀교에서는 ‘대일여래(大日如來)’라고 부른다. 

대승불교의 여러 부처님들 중에서 비교적 늦게 탄생한 비로자나여래의 기원에 대해서 몇 가지 의견이 있는데, 이종교간의 영향과 도상 교류의 측면에서 기원전 6~7세기 이란에서 탄생한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拜火敎, 壹敎, Mazdaism)의 광명의 신이며 완전한 선과 진리의 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그 기원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아후라 마즈다와 ‘광명의 부처님’ 그리고 ‘법 자체인 부처님’ 비로자나를 나란히 놓고 본다면 정말 공감되는 의견이다.

동아시아불교에서 비로자나불은 밀교와 화엄종의 주존으로서 밀교의 〈금강정경(金剛頂經)〉은 670~690년경 인도 동남부지역에서 성립되었으며, 〈화엄경(華嚴經)〉은 4세기 중엽 중앙아시아지역에서 여러 경전이 합쳐져 완본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화엄경〉의 원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으로서, 몇 종류가 전해지고 있다.

먼저 418~420년 경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Buddhabhadra, 覺賢)가 한역한 60권 34품의 〈화엄경〉과 695~699년 경 실차난타(實叉難陀, Siksananda)가 한역한 80권 39품의 〈화엄경〉, 45품의 티베트어 〈화엄경〉 등이 전해지고 있다. 방대한 양의 〈화엄경〉 전권이 산스크리트어로 현존하지는 않으나, 보살의 수행단계를 적은 십지품(十地品)과 선재동자(善財童子)와 55선지식을 다룬 입법계품(入法界品)이 산스크리트어본으로 전해지고 있어 〈화엄경〉 중에서 가장 먼저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5세기 초 한역된 60권 〈화엄경〉에서는 설주(說主) 비로자나부처님을 노사나불로 한역하였는데, 현존 가장 이른 모습에 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신장성 위구르자치구 쿠차(龜玆, Kucha)지역의 키질(克孜爾, Kizil)석굴과 인근의 석굴에서 4세기 말~5세기 초에 조성된 벽화 및 소조상 7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형상은 비로자나의 법신에 부처의 세계·여러 천인들·삼계육도(三界六道) 등을 표현하고 있으며, 아직 보처보살을 갖추거나 대좌나 호법신중들을 구성하고 있지는 않다.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비로자나여래의 형상이 도해된 시기는 4세기 말~5세기 초 중앙아시아 지역을 거쳐, 5세기 중엽~6세기 말 돈황(敦煌)석굴, 운강(雲岡)석굴, 용문(龍門)석굴 등의 지역으로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766년에 제작된 명문이 확인된 석남사(石南寺)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비로자나여래의 가장 이른 사례로서, 늦어도 8세기경부터 비로자나부처님이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모습을 살펴보면 대좌에 가부좌를 취한 채 두 손을 가슴까지 들어 왼손 검지를 오른손이 감싸는 형태인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비로자나의 수인을 취한 것이다. 석남사의 석조비로자나여래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일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기년명 비로자나불상이기도 하다.

비로자나불상의 도상의 변화를 보면 중국에서는 5세기부터 8세기까지 설법인 또는 시무외·여원인을 한 비로자나불상이 조성되었지만, 7세기 말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이 완성되면서 밀교 도상의 영향을 받아 8세기 이후부터는 지권인을 취하고 화려한 보관을 쓴 보살형 비로자나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원래 지권인은 〈금강정경〉의 주존인 대일여래의 수인으로서 능히 암흑을 깨치고 광명의 세계로 이끈다는 뜻에서 보리인도제일지인(菩提印導第一之印)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신라 화엄종에서는 8세기부터 지권인을 한 부처님 모습의 비로자나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하여 9세기부터 크게 유행하였고,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부처형 비로자나로 정형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로자나부처의 형상과 수인 변화를 정리하면 초기의 비로자나불상은 일반형 수인을 한 부처형이었으며, 이후 밀교의 영향으로 보관을 쓴 지권인의 보살형 비로자나와 불상형의 비로자나 두 형식이 공존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라에 전해진 화엄종에서의 비로자나부처는 지권인을 취한 불상형을 적극적으로 조성하였다. 

한국 불교회화에서 묘사되는 비로자나여래는 어떠한 모습을 취하고 계시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비로자나부처는 화엄종의 주존으로서, 그림으로 표현될 때 응신인 석가모니부처와 같은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을 보처보살로 거느리며 설법도에서도 석가설법도와 동일한 화면구성을 갖춘다. 

비로자나불화로 현존 가장 이른 사례에 해당하는 고려 14세기의 ‘비로자나삼존도’는 중앙의 사자좌에 지권인을 취한 부처형 비로자나여래가 가부좌하고 있으며, 좌측에 여의를 든 보현보살과 우측에 연꽃을 든 문수보살이 협시로 그려져 있다(그림 3). 한국 불화에서 묘사된 비로자나 관련 그림은 ‘비로자나삼존도’ 이외에 ‘비로자나오존도’ ‘비로자나설법도’ ‘삼신불도’ ‘오불회도’ ‘화엄경변상도’ 등이 있다. 

‘비로자나오존도’는 비로자나삼존의 구성에 아난과 가섭이 더하여지는 도상으로서, 전각 내에 모셔지는 그림보다는 1750년에 제작된 예산 대련사의 사례처럼 괘불화의 형태로 조성된 경우가 많다. ‘비로자나후불도’로 불리기도 하는 ‘비로자나설법도’는 석가설법도와 같은 화면구성으로 그려지는데, 〈화엄경〉을 설하는 첫 번째 장소인 보광명전과 두 번째 장소인 적멸도랑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삼신불도’는 중앙의 비로자나를 중심으로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을 함께 그리는데, 조선 불화의 경우 18세기는 3폭에 나누어서 각각 세 분의 부처를 그렸으나 19세기 이후 1폭에 세 여래 모두를 묘사하였다. 또한 ‘오불회도’는 삼신불에 삼세불인 아미타여래·석가여래·약사여래를 그린 그림으로서 중복되는 석가모니는 한 번만 묘사하여 다섯 분의 여래를 도해한 그림이다. 

마지막 ‘화엄경변상도’는 앞서 언급한 60권 〈화엄경〉과 80권 〈화엄경〉의 내용을 비로자나가 설주로서 설하는 장소에 따라서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로 구분하여 그린 것으로, 장황하고 어려운 경전의 내용을 형상으로 변화시킨 말 그대로의 ‘경변상도(經變相圖)’이다. 아마도 1770년에 제작된 송광사의 ‘화엄경변상도’와 1810년에 제작된 통도사의 ‘화엄경변상도’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복잡한 7처8회 혹은 7처9회 등의 경전 내용은 이야기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비로자나부처님을 생각하고자 한다. 비로자나부처님은 때와 장소 및 사람 등에 따라 그때그때 가변적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신다고 한다.

미혹에 결박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심으로 생각하고 정진하며 맑은 믿음으로 의심하지 않으면 어디에서든지 비로자나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이 순간을 굳건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원하는 그리고 필요한 곳에 나투시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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