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육광보살' 조합… 韓 독창적 도상

‘지장삼부경’ 바탕해 도상 조성
조선 代 ‘지장육광보살도’ 유행
육광보살, 중생 고통 덜고 교화
당시 지장·시왕 신앙 확인 단초

일본 엔가쿠지 소장 고려불화 ‘지장보살도’.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표현된 현존 가장 빠른 사례이다.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죄와 욕심에 묻혀서 사는 중생들은 살아서는 관세음보살을 찾고, 죽어서는 지장보살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불교회화를 공부한지 근 20년이 된 지금에서야 그 숨은 뜻을 이해하게 된 나는 할머니의 지혜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도대체 지장보살은 어떤 보살이시며, 늘 함께 다니는 승려와 무섭게 생긴 왕은 누구인지 매우 궁금할 것이라 생각한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여래가 이 세상에 올 때까지 부처가 없는 세상에 머물면서 육도(六道)의 중생들을 제도하는 역할을 담당한 대비보살이다. 지장보살과 관련된 경전에는 ‘지장삼부경(地藏三部經)’으로 불리는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지장보살십륜경(地藏菩薩十輪經)〉,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이 있으며, 그 밖에 〈지장보살청문법신찬(地藏菩薩請問法身讚)〉, 지난 글에서 살펴본 〈시왕경〉 등을 포함한 다양한 경전들과 전적들이 존재한다. 

지장보살에 대한 신앙과 경전이 다양해지면서, 도상 역시 조각과 회화작품을 통해 다양하게 발전하여왔다. 지장보살 도상은 초당(初唐) 시기에 출현하였으며, 그 예가 정관(貞觀) 2년 628년에 조성된 섬서성(陝西省) 관중(關中) 삼현(彬縣) 대불사석굴(大佛寺石窟) 천불동(千佛洞) Q130호의 지장보살상과 영하회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의 고원(固原) 수미산석굴(須彌山石窟) 105굴의 지장보살이다. 대불사 지장보살상의 경우 안면이 훼손되어 구체적인 용모를 확인 할 수 없지만, 수미산의 경우 삭발한 사문형의 지장보살이 왼쪽 다리를 의자에 얹고 오른쪽 다리를 내리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초기의 지장보살상은 삭발한 사문형 지장의 단독상으로 조성이 되다가 경전이 다양하게 편찬되면서 관음보살, 지옥관련 인물 등 다른 존상과 함께 표현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회화의 경우 경전의 내용과 도상을 조각보다 자세하게 묘사하기에 용이하였기 때문에 ‘지장보살도’, ‘지장육광보살도’, ‘지장시왕도’, ‘지옥변상도’ 등으로 세분화되어 근대까지 제작되었다. 

위에 언급한 지장관련 회화 중에서 ‘지장육광보살도’는 현재까지도 조선불화만의 도상적 특징이라 알려져 왔다. ‘지장육광보살도’의 일반적인 화면구성은 일본 요다데라(與田寺) 소장의 15세기 제작 〈지장육광보살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화면의 중앙에 지장보살이 자리하고 그 좌우로 지장보살의 협시인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그려지며, 그 위로 좌우 각 삼존씩 모두 육존의 육광보살이 묘사된다. 물론 앞서 언급한 도상들 이외에 시왕 또는 여러 보살들이 추가되는 사례도 있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지장육광보살도는 전하는 것이 없어서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없다. 다만 지장육광보살도는 현존하는 유물로 볼 때 조선 전기에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여, 19세기 말까지 꾸준히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장보살의 좌우에 시립해 있는 육광보살은 〈시왕경〉에 의하면, 지장보살을 도와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추측해보면 지장육광보살도가 조선시대에 성행한 이유는 지장과 시왕관련 신앙의 대중화와 더불어 내세의 구원을 기원하는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육광보살이 묘사된 그림은 화면을 구성하는 도상을 기준으로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일본 요다데라 소장의 15세기 제작 〈지장육광보살도〉와 같은 유형이다. 이 그림의 화면구성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여 좌우에 육광보살, 지장보살의 협시인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배치되어 있다. 조선 초기부터 성립된 이러한 화면구성은 19세기 제작의 화암사와 화엄사의 〈지장육광보살도〉의 사례처럼 범천과 제석천이 추가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도상이 추가되거나 탈락되는 조선말기 불화의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앞의 첫 번째 유형의 그림에 사천왕이 추가된 경우이다. 16세기 제작의 일본 호슈인(寶壽院) 소장 〈지장육광보살도〉와 네즈미술관 소장 〈지장육광보살도〉가 대표적인 사례로서, 사천왕상이 지장육광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구씩 배치되어 있는 구도이다.  

세 번째는, 첫 번째의 화면구성에 지옥의 시왕이 묘사된 나나츠데라(七寺)의 그림과 같은 경우로서, 지장육광보살에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이 표현된 가장 성행한 유형이다. 일반적으로 ‘지장시왕도’라 부르는 그림이다.

그런데 조선 지장육광보살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한 폭에 지장보살과 육광보살이 결합된 지장육광보살도는 중국 및 일본에서는 현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장육광보살도’는 한국불화만의 독자적인 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지장보살의 협시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묘사되는 도상 역시 한국불화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엔가쿠지(圓覺寺)소장 14세기 고려불화 〈지장보살도〉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표현된 현존 가장 이른 사례이다. 물론 돈황 출토 오대북송(五代北宋)시기 〈아미타여래와 지장시왕도〉의 예처럼 도명존자가 묘사된 중국 불화는 적지 않지만, 무독귀왕도 함께 그려진 그림은 아직까지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육신충(陸信忠)이 그린 교토 로잔지(廬山寺) 소장의 남송 13세기 〈지장보살도〉와 오오사카 고센지(弘川寺) 소장 〈지장시왕도〉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지옥의 사자로 보이는 인물이 묘사되어 있다. 만약 이 인물을 무독귀왕으로 본다면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동시에 등장하는 도상의 원류를 중국에 둘 수 있겠지만, 이 도상은 감제사자의 모습에 훨씬 가깝다. 

명부세계와 관련된 경전 및 전적류에서 무독귀왕은 〈지장보살본원경〉와 〈유가집요염구시식의(瑜伽集要焰口施食儀)〉에 그리고 도명존자는 〈환혼기(還魂記)〉와 〈마니경하부찬(摩尼經下部?)〉을 포함한 몇몇 문헌에 각기 따로 등장하지만,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함께 등장하는 경전은 찾지 못하였다.

그런데 〈시왕경〉의 내용 중에 언급되지 않은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경전의 내용을 판각한 고려 1236년 해인사 〈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판화〉에 묘사되어 있어 주목된다. 해인사본을 살펴보면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은 육광보살의 뒤에 표현되어 있으며, 그 뒤를 이어서 제1 진광대왕을 비롯한 시왕들이 시립하고 있다. 이처럼 경전의 어디에도 묘사되지 않은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은 1574년 황해도 흥률사간(興栗寺刊) 〈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판화〉에서도 그 존재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정리해보면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함께 표현된 사례는 고려시대의 〈지장보살도〉와 고려와 조선의 〈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판화〉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러한 도상 구성은 근대까지도 지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언제부터 어떠한 이유로 지장보살과 함께 표현되기 시작하였는지에 관한 명확한 연구는 아직 없다. 다만, 중국과는 다른 우리 조선만의 독자적인 도상이 확립되어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있을 뿐이다. 

한국불화에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함께 묘사된 도상이 일반적인 반면에,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곧 조선 불화의 독창성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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