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법의 출현과 그 기반선의 시작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는 방식으로 채택한 것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이 때문에 선의 역사는 불교와 함께 비롯되었다. 이후로 인도불교에서 선의 역할은 다양한 불교의 전개에 공통하는 수행의 행위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추구하는 근원적인 기능으로 전개되었다. 그것은 선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성격으로, 인간의 마음에 내재하는 사유의 속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 결과 인도불교의 역사에서는 항상 점수의 측면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수해의 경지에 대해서도 차제적인 탐구가 깊이 천착되었다.이러한 인도선의
1. 선교차별에서 선교융합으로한국의 선종사에서 신라 말기 선법의 수입시기에 선법을 정착시키려는 과정에서는 선교차별(禪敎差別)의 모색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가지산문(迦智山門)의 도의(道義)가 승통 지원(智遠)에게 제기한 무념무수(無念無修)의 문답, 사굴산문(?素?)의 범일(梵日)이 제기한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 성주산문(聖住山門)의 무염(無染)이 제기한 무설토론(無舌土論) 등은 처음으로 소개하는 선법을 홍보하려는 궁여지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선과 교의 관계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동은 고려 중기에 이르러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
1. 선종의 논쟁선의 종지에 대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이고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불리문자(不離文字) 교내별전(敎內別傳)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언설과 문자의 방편을 통해서 정법안장이 전승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언설과 문자는 선의 종지를 표현하고 전수하는 방식으로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이와 같은 언설과 문자로 이루어진 선문헌에는 선의 교의(敎義)를 비롯하여 선의 역사·문화·수행·행위·문답 등 다양한 소재가 담겨 있다.따라서 선종의 역사와 사상과 문화는 선의 문헌을 벗어나서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1. 〈통록촬요〉의 출현조선시대 선종의 상황은 배불정책이라는 시대적인 영향으로부터 초연할 수 없었다. 그 영향으로 조선 초기에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로 쇠퇴시기를 맞이하는 과정이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전등법맥의 의식이 싹텄던 것이 주목된다. 그 일례를 들어보면 〈통록촬요(通錄撮要)〉가 1529년에 숭묵(崇?)에 의하여 전남 광양 백운산 만수암에서 간행되었는데, 여기에는 벽송 지엄(碧松智嚴, 1464~1534)의 발문이 붙어 있다. 본 문헌이 주목되는 것은 전등의 법맥이 희미해져 가던 시대에 중국 찬술의 문헌을 수입하여 한국
1. 조동선풍의 형성당나라 말기 9세기 중엽에 동산 양개(洞山 良价, 807~869)와 그의 문하인 조산 본적(曹山本寂, 840~901) 및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을 중심으로 형성된 조동종(曹洞宗)은 한국 및 일본에서 오늘날까지 면면하게 전승되어 오고 있다. 〈경덕전등록〉에는 동산 양개의 법사로서 26명의 이름이 전한다. 이들 가운데 조동종의 교단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운거 도응과 조산 본적이다. 도응은 동산 양개를 15년 동안 모시고, 입적한 이후에도 탈상할 때까지 2년을 더 동산에 머물러 총 17년 동안 동산에 주
1. 백운 경한신라 말기 지리산(智異山) 화상 및 고려 초기에 혜조국사(慧照國師) 담진(曇眞)을 통해서 수입된 중국 선종의 임제종은 고려 중기까지는 그다지 큰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눌 이후로 임제종 계통에서 출현한 간화선법의 보편화가 이루어지면서 점차 나름대로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이르러 원나라를 통하여 백운 경한(白雲景閑), 태고 보우(太古普愚), 나옹 혜근(懶翁惠勤, 1320~1376) 등 일군의 선자들에 의하여 재차 임제종의 선법이 수입되면서 조선시대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선의 주도적인 세력으로
고려 후기부터 한국 선법에서는 전등 법맥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그 배경은 송 대에 출현한 수많은 전등사서(傳燈史書)의 수입과 함께 해동선법의 법맥에 대한 자각이 싹트면서 비롯되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일찍이 진각 혜심(眞覺慧諶, 1178~1234)이 〈선문염송〉에서 송 대의 전등사서와 공안집(公案集), 선어록(禪語錄) 등에서 공안을 발췌하여 편찬한 것에서부터 찾아볼 수가 있다. 이들 전등법맥에 대한 인식이 한국선의 경우만이 아니라 일찍이 중국선종에서도 선종의 형성과 그 전승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1. 전등계보의 성립
중국선종에서 출현한 선종오가의 선리가 고려시대 선법에 수용됨으로써 그 변용과 함께 새롭게 전개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은 고려시대 선 문헌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드러나 있다.선종오가로서 가장 먼저 수용된 위앙종의 선리에 대해서는 원상법(圓相法)과 관련된 법어가 정리되어 저술로 출현하였다. 곧 지겸(志謙, 1145~1229)이 1219년에 집성한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이 그것이다. 원상과 관련된 기연어구에 대한 법어를 선어록에서 발췌한 것인데, 남양 혜충(南陽慧忠, ?~775)과 관련된 것으로부터 목암 선경(
한국 선종사에서 신라시대 및 고려 초기는 선법의 수입기 및 정착기에 해당한다. 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선법의 수입은 10세기 말까지는 중국의 선종오가의 전래가 있었고, 아울러 구산문의 형성과 그 전개가 이루어졌다. 그런 까닭에 10세기 말까지는 본격적인 발전이라기보다는 선법의 수용이라는 특징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후 고려시대에는 이것과 비교하여 몇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한 선법의 전개가 출현하였다. 사굴산문과 가지산문의 전승과 함께 구산문의 면면한 전승, 문자선 및 간화선의 방법을 통한 새로운 선수행법의 도입, 지눌의 저
1. 고려시대의 선교관한국의 선종사에서 고려시대는 이전 시대에 수입ㆍ전승된 선법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시기에 해당한다. 곧 사굴산문(?素山門)과 가지산문(迦智山門)을 중심으로 구산문이 고려말기까지 면면히 전승되었는가 하면, 새로운 선수행법으로 간화선(看話禪)이 도입되었으며, 보조 지눌(普照 知訥)로부터 비롯된 선리에 대한 저술 및 진각 혜심(眞覺 慧諶)으로부터 비롯된 순수 조사어록이 출현하였고, 공안선(公案禪)과 문자선(文字禪)의 유행으로 인하여 선리와 수행에 대한 이해의 확장이 이루어졌으며, 전등사서의 수입과 편찬에 근거
간화선의 수행법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어 온 화두 가운데 하나가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이다. 여기에서는 무자를 의심하여 잠시도 간단(間斷)이 없이 의심이 지속되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을 망각할 경우에는 화두수행에 병폐가 발생한다. 그에 대한 내용은 대혜 종고(大慧宗苑, 1089~1163)로부터 구체적인 몇 가지 항목으로 제기되었다.무자화두의 참구에 대한 이와 같은 주의사항이 선병(禪病)의 개념으로 고려에 전승된 것은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 무렵이었는데, 지눌의 경우에 거기에 약간의 변화가 나타났다
1. 공안의 출현공안선(公案禪)은 공안에 대하여 기록하고 사유하며 참구하고 전승하는 것으로써 선수행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공안(公案)은 경론 내지 선어록 등에서 발췌한 일화를 중심으로 형성된 일단의 내용을 일컫는다. 이 경우에 공안은 납자 자신이 임의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고래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선지식과 납자 사이에서 문답의 주제로 활용하거나 가르침의 소재로 활용하면서 여러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유행되어 오면서 보편적인 의미가 확보된 경우에 해당한다. 곧 불조가 개시해준 불법의 도리 그 자체를 의미하는 까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