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물 에너지, 봉황은 바람 에너지미국의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등의 저서에서 “신은 에너지의 의인화다”라는 명제로 신화에 접근하고 해석했다. “신이란 삶과 우주 만유에 작용하는 근원적 에너지나 가치체계를 의인화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이 명제는 한국산사 장엄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용, 봉황 등의 상상 속 서수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에 보면 환웅은 우사(雨師), 운사(雲師), 풍백(風伯)을 포함해 3000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고 홍익인간의
격자살문, 빗살문, 띠살문, 솟을살문‘창호(窓戶)’는 ‘창’과 ‘호’를 합친 말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창과 문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설명한다. 특히 〈명문국어사전〉에서는 ‘창과 지겟문의 총칭’이라 정의하고 있다. ‘지겟문’은 또 무엇인가? ‘창’의 개념은 선명한데 비해 ‘호’의 개념은 낯설다. ‘호(戶)’의 갑골문을 보면 외닫이문처럼 생겼다. 〈명문국어사전〉에서 ‘호’의 개념으로 설명한 ‘지겟문’이 외닫이 외짝문이다. 하지만 ‘호’는 ‘문(門)’과는 또 다르다. ‘문’은 대문, 중문처럼 외부에서 외부로 드나드는 경계에 설치하고,
닫집, 집 속의 집한국산사 법당은 삼단으로 구성한다. 한 법당에 의식단을 상단, 중단, 하단의 세 곳에 마련해 둔다. 상단은 정면 중앙의 의식단으로 불상을 모신다. 불상 뒤엔 후불벽을 세워 영산회상도와 같은 후불불화를 건다. 중단은 향우측인 동쪽 의식단이다. 호법신중을 봉안한다. 하단은 향좌측인 서쪽 의식단으로 영가 위패를 올려둔다. 법당 상단에 최고 최선의 불교장엄이 결집한다. 불상과 불화, 불단, 닫집, 단청 등 법당장엄의 핵심요소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된다. 그곳에 당대 제일의 예술역량이 결합하여 종교예술의 꽃을 피운다. 예술은
백흥암 불단, 한국산사 불단의 백미백흥암은 팔공산에 깃든 비구니 도량이다. 도량은 청정하며 삼엄하다. 부처님오신날과 백중날(음력 7월 보름), 1년에 두 차례만 대중에게 산문을 개방한다. 폐쇄성과 삼엄함은 수행 사찰이 지닌 엄격함의 면모다. 극락전은 청정도량 백흥암의 중심 불전이다. 대세지보살-아미타불-관세음보살의 아미타삼존을 모셨다. 1643년에 중수한 조선 중기 건물이다. 그곳에 일찍부터 나라의 보물로 지정한 목조 불단이 있다. 법당인 극락전보다 18년이나 앞서 1968년에 보물로 지정했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것은 백흥암
소나무로 만든 10m 넘는 대형 불단통도사 대웅전은 가람의 상로전 영역에 있는 통도사의 중심 법당이다. 대웅전은 1645년에 중수한 건물로서 ‘사리각’, ‘대법당’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건물의 동서남북 네 면에 편액을 하나씩 달고 있다. 동-대웅전, 남-금강계단, 서-대방광전, 북-적멸보궁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성소이자 수계 공간인 석조건축 금강계단과 유기적 일체를 이룬 독특한 성격의 법당이다.대웅전은 일주문-천왕문-불이문에 이르는 가람의 중심축인 동서 축선에 3×3칸의 법당 건물을 세우고, 중심축에 수직인 남북 축선에
경패는 경전 보관함에 단 꼬리표부처님께서 45년간 설법하신 가르침은 방대하다. 경장과 율장, 논장의 세 광주리에 담아서 오늘에 전한다. 경, 율, 논 세 광주리에 담은 부처님 가르침과 그 해설의 일체가 대장경이다.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은 팔만에 이른다. 대장경 원판이 온전히 남아 있는 세계 유일 경판이다. 경판 수가 8만1천258매에 이른다. 옛사람들은 인쇄물로 펴낸 방대한 대장경을 어떻게 분류해서 보관하였을까? 세계 최초의 목판대장경은 10세기 말 북송에서 제작한 ‘칙판대장경’이다. ‘칙판대장경’은 황제의 명으로 새긴 대장경이라는
16나한의 소의경전은 〈법주기〉나한(羅漢)은 범어 아르한(Arhan)의 음역인 아라한의 줄임말이다. 아라한은 부처님의 제자로서 수행을 통해 일체의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은 성자다. 공양 받아 마땅한 성인으로서 ‘응공(應供)’으로도 부르고, 진리에 상응하는 분으로 ‘응진(應眞)’, 깨달음을 얻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 ‘무학(無學)’으로도 부른다. 더욱이 부처님으로부터 미래 세상에 부처로 수기를 받으신 분이기도 하다. 제자 중 사리불은 화광여래, 목건련은 전단향여래, 교진여 등 500아라한은 보명여래로 이미 수기 받으셨다. 다만
윤장대 돌리면 경전 독송 공덕부처님의 가르침을 ‘법(法)’이라 한다. 범어로는 ‘다르마’라 하고, 빨리어로는 ‘담마’라 부른다. 부처님의 설법을 일러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고 표현한다. ‘전법륜(轉法輪)’의 한자어가 그 의미다. 법은 ‘삼장(三藏)’에 갈무리하고 있다. 삼장은 ‘트리피타카(tripitaka)’로서 ‘세 개의 광주리’다. 세 개의 광주리는 경장과 율장, 논장이다. 세 광주리에 담은 경, 율, 논 일체를 ‘대장경’, 또는 ‘일체경’이라 칭한다. 대장경은 〈화엄경〉, 〈아함경〉, 〈반야경〉 등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
사찰편액은 하나의 불국정토 상징‘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라는 문장이 있다. 추사 김정희가 쓴 글이다. 글과 학문을 깊이 익힌 사람에게서 저절로 묻어나는 내면의 향기를 이른다. 18세기 프랑스 박물학자 뷔퐁이 말했다. “글이 곧 사람이다” 이때의 글의 의미는 문장이다. 사람이 쓰는 글씨 속에도 저마다의 개성과 삶의 태도가 밴다. 글씨에 미묘한 기운이 있고, 표정이 있다. 글도 생명력이 있어 살아 꿈틀거린다. 당대 최고 수준의 글은 명필의 글을 모은 법첩(法帖)이나 금석문의 비첩(碑帖)에 전해진다. 법첩과 비첩은 서예 교과서로
업경대는 거울, 업칭대는 저울중생은 무명의 무지로부터 온갖 갈애를 일으킨다. 몸과 입과 뜻으로 업을 짓고 쌓는다. 업은 범어로 ‘카르마(Karma)’라고 하고, 한자로는 ‘갈마(哲磨)’라 한다. 행하다, 짓는다는 뜻이다. 몸과 입, 마음으로 행한 모든 것이 업의 종자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업의 종자는 성장하고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한 과보가 뒤따른다. 선한 행은 선업으로, 악한 행은 악업으로 작동하여 업의 차별에 따라 지옥, 인간, 천(天) 등의 삼계육도를 윤회한다. 불교의 업에는 자신이 짓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자업자득, 혹은 윤회
883년에 제작한 쌍둥이 비로자나불법신 비로자나불은 진리 그 자체다. 우주만유에 깃든 근본원리로서 형상이나 소리로 찾을 수 없다. 〈금강경〉 제26 ‘법신비상분’에서는 몸의 형상으로나 음성으로 부처님을 구하면 그것은 사도행이라 여래를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왜 교설에도 어긋나게 법신의 형상을 만드는 것일까? 2005년 화마로 소실된 양양 낙산사 동종(1469년) 명문에 그 구절이 있었다. ‘이인중생지목시 이생기신(以因衆生之目視 而生其信)’, “중생은 눈으로 직접 봐야만 믿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불상은 흙으로도, 돌로도,
전국 10여 곳의 지장삼존 시왕상어둠은 빛의 부재이고, 밝음은 어둠의 부재다. 지옥이라 부르는 어둠의 세계가 있다. ‘지옥’은 말 그대로 ‘땅 속 감옥’이다. 어둠 속에도 욕망과 물질이 남아있는 한 삶의 원리는 작동한다. 어둠의 세계를 다스리는 관청이 있고, 빛을 던지려는 자비의 힘도 동시에 상주한다. 어두운 세계의 관청이 ‘명부(冥府)’이다. ‘명’은 어둠이고, ‘부’는 관청이다. 명부에 중생 저마다의 죄업에 상응하는 10명의 대왕이 상주한다. 심판대에 세우고 죄업을 판가름하는 판관과 사자 등의 관료 체제도 갖춘다. 그 곳 지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