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발라’는 모두 가슴에 있다

거대 바위산 조성된 구게왕국
번창하다 돌연 패망 ‘미스테리’
星湖 마나사로바 호수서 작별을

카일라스 코라길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신비의 구게왕국으로 향했다. 창탕고원으로 가는 길은 험하고 아찔하기만 하다. 해발 5000m의 길이 끝도 없다. 우리의 목적지인 자다마을은 자타토림과 구게왕국 유적지로 유명한 곳이다. 

가는 길에 구름도 쉬어간다는 5510m의 아이라고개 정상에 올라 자다토림의 장관을 조망한다. 말 그대로 흙산이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흙의 숲인데, 마치 화성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신비한 풍경이다. 미국 그랜드캐넌에 버금가는 웅장한 자연은 신과 자연의 합작품이자, 흙이 빚은 조각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자다마을은 앞으로는 수트레이강이 흐르고 사방으로 흙산의 토림계곡이 병풍처럼 둘러친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도시다. 특히 저녁 무렵 석양빛에 토림이 물들어가는 모습은 자못 몽환적이고 신비하면서 아름답기 그지없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18km 떨어진 자부랑 마을의 구게왕국 유적지로 향했다. 가는 길의 양편에는 토림이 산맥을 이룬 채 장엄하게 자리한다. 이 협곡은 ‘다와쫑’이라고 하는데 ‘달의 계곡’이라는 의미다. 실제, 달밤에 보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4월 보름의 달 밝은 밤에는 다와쫑 계곡에 길이 하나 나타나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이상향인 ‘샴발라’로 통한다고 한다. 아니, 샴발라는 각자의 가슴에 있다.

유적지에 다다르니 거대한 바위산 형태의 구게왕국 유적이 장엄하고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 거대한 바위산이 곧 하나의 왕국으로 궁궐이자 사원이며, 백성들의 거주지이자 생활터전이 되었다. 아침 햇살이 떠오를 적에 바위산 머리부터 황금빛으로 점차 물들어가는 모습은 단연 압권이 아닐 수 없다. 신비의 왕국이 아침 햇살에 다시 깨어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구게왕국의 불교는 제2대 왕인 코레가 왕위를 버리고 불경 번역과 사원건축의 불사를 진행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인도의 유명한 학승인 아티샤가 왕의 초청으로 구게왕국에 와서 최초의 사원인 토링사를 창건하고 불전 번역을 한 것도 이 즈음이다. 이때 티베트 불교에 ‘샴발라’라는 이상향의 전설도 생긴다. 허물어지고 퇴락한 구게왕국의 유적지에는 1000여 개의 토굴과 445칸의 건축물, 그리고 58개의 요새와 28기의 불탑과 네 갈래의 비밀통로를 갖추고 있다.

옛날 이 왕국은 실크로드와 차마고도가 교차하는 무역과 교통의 요충지로 사금과 암염의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번영을 구가했다. 그런 서부 티베트의 맹주인 구게왕국이 어느 날 갑자기 연기처럼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것은 하나의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다. 보통 천재지변설과 이슬람 침공설 등이 있는데, 1630년 라다크 왕국의 침공으로 왕국이 함락되고 전멸을 당해 멸망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특히 밀교적인 불교회화 작품은 단연 압권이다.

구게왕국의 마지막 왕이 오랜 공성에 지쳐 백성을 구하고자 바위산 꼭대기의 왕궁에서 투신해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마치 백제 멸망 시 부여 낙화암에서 꽃처럼 투신한 민초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처럼 망국의 왕과 민초는 서럽고 한스러운 정한(情恨)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그들 유민들은 자신들이 영원한 이상향으로 믿던 ‘샴발라’를 찾아 그렇게 숨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구게왕국 유적을 돌아보고는 조금 일찍 내려와 자부랑 마을의 차관에 들렀다. 그 곳에서 티베트 현지인들과 함께 그들의 주식인 뚝바(비빔면) 한 그릇과 따뜻한 텐차(紺茶)를 함께 마셨다. 예토와 정토, 현세와 샴발라가 모두 이 한 그릇의 밥과 차에 있는 듯 하다. 그러니 밥이 곧 법(法)이고, 하늘(食爲天) 이다.

구게왕국을 돌아보고 자다마을로 돌아와 최초 사원인 토링사에 들러 순례 회향식을 가졌다. 모두들 뿌듯하고 행복한 얼굴과 마음들이다. 지도법사 영진 스님과 대중스님들의 신심과 원력 그리고 자비덕화에 감사할 따름이다. 돌아오는 길에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더니 무지개가 나타난다. 우리 순례의 원만회향을 축하하는 하늘의 선물인 듯하다. 모두들 내려 무지개를 배경으로 꽃보다 더 아름다운 스님들이 웃음꽃을 피운다. 그대로 화장찰해다!

다르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는 귀호(鬼湖)인 락샤스탈 호수와 성호(聖湖)인 마나사로바 호수를 보러 나섰다. 먼저 락샤스탈 호수에 갔는데 음산한 구름 아래 바다처럼 파도가 세차다. 이곳은 염호로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죽은 호수와 같다. 이 호수는 마나사로바 호수와 물길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물길이 만들어진 것은 어느 물고기 한 마리의 노력 때문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마나사로바 호수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치우사원에 올랐다. 티베트의 성자인 파드마 삼바바가 은거 수행한 동굴로 그의 발자국이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멀리 아름다운 순백의 설산인 나미모나니산(7694m)이 자리하고, 그 품안에 성스러운 마나사로바 호수가 그림처럼 신비하게 자리한다. 마나사로바 호수는 해발 4586m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담수호로, 티베트에서는 나무쵸, 암드록쵸와 더불어 3대 성호(聖湖)로 손꼽힌다. 

마야부인이 이곳에서 목욕재계하고 태몽을 꾼 후에 부처님을 낳았다는 설화가 전해지며 일명 ‘우주의 자궁’으로 신성시 된다. 근자에는 인도의 국부인 마하트마 간디의 유해가 그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뿌려졌다고 한다. 마나사로바 호숫가로 다가가 성수로 머리를 씻고 한 모금 마셔보았다. 무언가가 숙세의 죄업을 정화한 채 전혀 다른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다. 

이제는 뒤돌아선 채 떠나야 할 순간이다. 우리는 성산 카일라스와 성호 마나사로바 호수에게 안녕(Goodbye)을 고하지만, 그들은 도리어 ‘안녕(Hello)’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리고 우리를 처음 본 듯이 빙그레 미소지으며 두 팔 벌려 맞이해준다. 짜시달레, 카일라스! 내 생애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의 꽃이여, 섬광같은 깨달음이여, 가없는 자비와 행복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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