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라스, 내 영원한 사랑이여!

샤카사서 천축구법승 추모재 봉행
절 지붕 위 악기 소리 진한 여운
천신만고 끝에 선 카일라스 ‘감동’

시가체의 상징이자 판첸라마가 주석하는 타쉴룬포 사원을 참배하며 실로 만감이 교차한다. 타쉴룬포 사원은 옛 모습 그대로이나 주인 없이 박제된 느낌이다. 언제나 옛 영화를 되찾아 빛과 희망으로 되살아날지 모르겠다. 그날이 오면 초모랑마가 춤을 추고 알룽창포 강물 또한 힘차게 울부짖으며 노래하리라!

시가체를 떠나 샤카사(薩迦寺)로 가는 버스안에서 예불과 반야심경, 그리고 축원을 올렸다. 아울러 이번 순례의 마음을 다지는 발원문을 봉독하였다. 비록 사원에서 할 수는 없지만, 그 어느 곳인들 법당이 아니겠는가 싶다.

샤카사는 샤카파의 성소로 몽골제국 시기에는 쿠빌라이의 왕사로 책봉되어 더욱 번창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우리에게는 충선왕이 이곳까지 유폐된 적이 있어 더욱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때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저 티베트 설산을 넘어 망명하던 어떤 이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동안 티베트 절에서 아무런 의식도 하지 못한지라, 샤카사에서 천축구법승을 추모하는 추모재를 가졌다. 추모재 후에 위패를 불사르며 선사(先師) 스님들의 구도열과 위법망구의 정신을 이어나갈 것을 서원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샤카사 지붕 위로 애잔한 악기소리가 널리 울려 퍼지면서 진한 마음의 여운을 남긴다. 

샤카를 지나 사가와 파양을 지나며 이틀에 거쳐 티베트고원을 가로질러 카일라스 수미산이 있는 다르첸까지 험난한 여정이 이어진다. 해발 4000~5000m에 이르는 험난한 코스로 설산과 함께 맑은 호수와 험준한 고개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어느 고갯마루에 잠시 내려 둘러본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초록의 들판과 청록색의 호수, 그리고 오색의 타르쵸와 지천으로 피어난 들꽃으로 인해 마치 화장찰해를 방불케 한다. 여기 이 허접한 꽃들의 축제는 그야말로 화엄세상이다. 그 위로 스님들이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다움을 증명한다. 

드디어 천상낙원이라는 아리(阿里) 지역에 들어선다. 이곳은 ‘아리랑(阿里狼)’이라는 자생 여우로 유명한데, 내겐 우리 민요인 아리랑이 이곳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본시 강원도 사람인지라 정한을 담아 아리랑 한 소절을 흥얼거려 본다. 그러다가 우리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마나사로바(瑪旁雍措) 호수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전망대에 다다랐다.

저 멀리 순백의 나미모나니산이 장엄하게 자리하고, 그 품에 성호(聖湖) 마나사로바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 드디어 마야왕비께서 목욕후 태몽을 꾸었다는 그 성스런 마나사로바 호수에 왔노라. 어찌 환희스럽고 찬탄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다만 경외와 존중의 한 마음으로 오체투지의 예를 드려본다.

호수 입구에서 기념품을 파는 티베트 아낙네의 어린 아기가 강보에 쌓인 채로 고개를 내밀며 빙그레 미소 짓는다. 그 순간 아이의 눈동자에서 또 다른 마나사로바 호수와 같은 맑고 아름다운 영혼을 마주한다. 아니 태양과 달과 별빛이 그 안에 살아 숨쉬는 듯 하다. 그 검은 눈동자속에는 영원의 빛이 함께한다.

드디어 우리는 우주의 중심인 성산(聖山) 카일라스 입구의 다르첸 마을(4,650m)에 다다랐다. 그러나 수미산은 구름에 가리운 채 좀처럼 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찌 그리 쉽게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 보이련만, 아쉽고 애타는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오직 보여주십사 기도하며 서원을 할 따름이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카일라스 코라 순례길 여장을 꾸려 출발지로 향했다. 그런데 도착함과 동시에 수미산이 제 스스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며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는다. 카일라스의 그 웅혼하고 신비스런 자태에 넋이 나간 채, 다만 행복의 충격과 황홀한 감격에 겨워 눈물로 수희찬탄할 따름이다.

이곳에서 카일라스 코라 순례를 부처님께 고하는 고불식을 가졌다. 예불과 반야심경을 합송하고 일진 스님이 발원문을 봉독했다. 그리고 사방으로 빙 둘러앉아 잠시 입정의 시간을 가졌다. 우주의 중심인 히말라야 카일라스의 허공과 구름 그리고 바람이 침묵한 채, 우리와 더불어 하나되는 느낌이다. 이 순간, 내가 여기 있음에 그저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다. 방선 후 지도법사 영진 스님의 법문은 마치 수미산이 직접 설법을 하는 듯, 모두의 가슴속에 진한 감동과 희열로 함께한다. 아니 내 안에 수미산이 들어와 어느새 자리하는 듯 하다. 

이제 카일라스 코라 순례의 첫 발을 내딛는다. 코라길은 총 52Km로 다르첸에서 시작해 5,640m의 돌마라 패스를 넘는 여정으로 2박 3일이 소요된다. 첫째 날은 다라푹 사원(5,210m)까지 12Km를 걸어야 한다. 작은 티베트식 불탑의 종을 울리면서 코라 순례 길은 시작된다. 서쪽면의 카일라스를 오른쪽에 두고 거대한 협곡사이로 난 완만한 오르막길을 걷는다. 오체투지로 순례를 하는 티베트인들의 간절한 신심과 원력에, 그 환한 미소에 감동과 환희가 함께한다.

순례길에 만난 ‘마못’이란 다람쥐를 닮은 앙증맞은 모습에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되고, ‘창’이라는 동물의 뜀박질 모습에 감동하곤 한다. 절벽 위 작은 사원은 한번쯤은 목숨 걸고 정진하고픈 마음을 절로 일으킨다. 부처님처럼 맨발로 수미산 대지를 걷는 어느 비구니 스님의 뒷모습은 그림 같고 자못 감동적이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목적지인 다라푹 사원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도착했다. 카일라스 북면이 그 웅장한 자태와 위엄을 뽐내며 우리 일행을 맞아준다. 마치 “잘 했네, 정말 수고했어”라며 그 너른 가슴에 안아주는 느낌이다. 다라푹 사원 근처의 새로 지은 롯지에 여장을 풀고, 뒷편 전망대에 올라 장엄한 카일라스의 북면과 마주한다. 불현듯 두 눈에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면서 그 자리에서 엎드려 통곡이라도 하고픈 심정이다. 

카일라스 북면의 장엄하고 신령스런 기운이 내 안에 들어와 마침내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그렇게 내 안에 자리한 카일라스는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더불어 함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 카일라스여! 내 영원한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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