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보석 같은 탁상 사원이여!

산행 끝에 만나는 탁상 곰파
파드마 삼바바 수행처 ‘유명’
낭마파 전해진 부탄의 시발

진광 스님이 스케치한 탁상 곰파 전경.

오늘은 부탄의 상징이자 최고 성지인 탁상곰파 사원을 순레하는 날이다. 부푼 기대를 안고 출발해 사원 입구에서 의식을 치룬 후에 산행을 시작했다. 부탄은 사원을 ‘종’이나 ‘라캉’ 혹은 ‘곰파’라고 부른다. 종은 요새형 사원을, 라캉은 사찰과 법당의 의미를 가진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사원을 의미한다. 반면 곰파는 은둔의 사원으로 계곡이나 절벽 등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자리한다.

탁상곰파는 부탄 최고의 불교성지이자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곳이 부탄불교의 개조인 파드마 삼바바와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드마 삼바바가 두 번째 부탄에 올 적에 암호랑이를 타고 날아서 이곳에 왔다고 한다. 그리고 인근의 악마와 도깨비들을 모두 조복시킨 후에 현재의 탁상곰파가 있는 이 바위산의 동굴에서 석달 간 머물며 긴 명상에 들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부탄에 티베트 불교의 낭마파가 전해지고 부탄 역사의 출발점이 된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탁상은 ‘호랑이 둥지’라는 의미이다. 파드마 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 마치 새처럼 날아왔기 때문에 ‘둥지’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멀리서 바라봐도 높은 산속의 절벽에 위태로이 걸려있는 탁상곰파는 마치 새의 둥지와 같아 보인다. 어찌 저리 험한 곳에 사원을 세웠는지 그 안목과 신심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탁상곰파까지 가는 유일한 방법은 두 발로 걷기이다. 그게 힘들면 조랑말의 네 다리를 빌려서라도 올라야 한다. 거친 산길이니 해발 2600m에서 시작해 탁상곰파가 자리한 3140m까지 가려면 족히 2시간 가량이 걸린다. 

선방에서 수도 정진하는 스님들은 포행으로 단련된 체력이 있겠지만, 서울에서 행정을 하는 수도승(首都僧)인지라 산에 오르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연신 ‘관세음보살’이라고 탄식이 절로 난다. 칠순이 훨씬 넘은 지도법사 설정 스님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고 있다. 그러니 스님께서 “수행자가 매양 본분사를 잊고 딴 짓을 하니 그리 살이 찌고 힘든 것이다”는 준엄한 질책과 호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정말이지 부끄럽고 욕되어 죽을 지경이다.

그런 까닭에 일종의 오기가 생겨 죽을힘으로 안간힘을 쓰며 묵묵히 올랐다. 산을 오르는 이는 정상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발밑을 보며 부단히 올라가야 정상에 이를 수 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산중턱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숨 쉬어간다. 

여기서 바라보면 탁상곰파가 바로 손에 잡힐 듯이 보이건만,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돌계단이 끝도 없이 오르내리는 난관이 남았는지라 한숨이 절로난다. 게다가 설정 스님께서는 어디까지 가셨는지 도통 보이지 않는지라 더욱 난감한 상황이다. 근처에 해발 2940m에 위치한 카페테리아 겸 전망대가 있어 커피 한잔하고 쉬어가고 싶지만 그냥 쉬지않고 계속 걸어 올라갔다.

깎아진 낭떠러지의 아슬아슬한 돌계단을 조심스레 밟고 내려가니 갑자기 거대한 폭포수가 우렁찬 포효 소리를 내며 장쾌하게 떨어진다. 마치 이백의 ‘망여산폭포’라는 시의 “삼천 자 높은 곳의 물이 세차게 떨어지니, 마치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 하네(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와 같다.

다시 도저히 못 오를 것 같은 돌계단을 기어서 올라 드디어 탁상곰파에 도착했다. 그런데 경비원이 고생했다며 “네가 1등으로 도착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인가. 내 앞에 얼마나 많았는데 그리고 지도법사 스님은 대체 어디 계시단 말인가! 허탈하고 황망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알고보니 일행 모두가 카페테리아에 들려 차를 마신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나만 홀로 기를 쓰고 미친 듯이 올라온 것이다. 이기고도 진 것만 같은 이 기분은 대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오랜 기다림 끝에 대중이 모두 올라와 대전(大殿)으로 향했다. 순례대중이 한 마음으로 의식을 봉행하고 지도법사 설정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다. “산승이 출가한지 60여 년이 지났건만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허송세월하며 절밥을 축낸지라 부끄럽고 욕되기만 함이라. 후학들은 산승을 거울삼아 위법망구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지도법사 스님의 말씀에 온 대중이 숙연해지며 울컥해 곳곳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야말로 이번 순례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 할 만한 명법문이 아닐 수 없다.

전설적인 수행자인 밀라레빠와 파드마 삼바바가 수행 정진한 유서 깊은 탁상곰파에서의 한나절은 세상의 일평생과 비견할 만 하다. 마치 한 생을 다 살아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곳이라면 평생을 걸고 수행정진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젠 돌아서 내려 가야할 시간이다. 하산하는 길에 어디선가 호랑이의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여 자꾸만 고개 돌려 사원을 바라보게 된다.

탁상곰파를 순례한 후에 숙소로 돌아와 휴식하다가 저녁 공양 후 모두 모여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자신의 생과 수행에 있어 가장 의미 있고 아름다운 순간이자 대전환의 시간이 되었노라고 한다. 대중 스님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고 모두들 영원을 본 듯한 행복한 마음들이다. 모두가 제2, 제3의 밀라레빠나 파드마 삼바바처럼 수행정진해 세상의 빛과 목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