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 돌다리 聖·俗을 이어주다

팀부 시내 인근 체리사원 참배
사원 돌다리서 ‘조주석교’ 참구
부탄 특유 요새형 사원들 ‘눈길’

체리사원 입구의 돌다리. 성과 속 가교역할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니 상쾌하고 개운한 느낌이다. 고원의 신선한 공기와 청정한 환경 때문일 것이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이 실로 얼마만인가 싶을 정도이다. 창문 너머로 봄의 대향연이 펼쳐지고 시원한 바람이 두 뺨을 스친다. 이렇게 살아서 수행하며 순례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먼저 한국의 무문관과 비슷한 팀푸 시내에서 멀지않은 체리사원을 찾았다. 이 사원은 티베트 까규파의 본산인 랑룽사원의 18대 승원장인 샵드룽 나왕 남걀에 의해 1620년에 세워졌다. 그는 티베트를 떠나 부탄으로 17대 승원장의 유해를 모시고 들어와 이 사원을 건립한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6년간 수도하면서 부탄 전역의 통일에 위업을 달성해 낼 구상을 마쳤다. 그리고 티베트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사원과 요새가 결합된 형태인 종(Dzong)이라는 독특한 사원 건축을 고안해 낸다. 그리고 1627년 심토카종을 시작으로 부탄 전역에 요새 형태의 사원들을 건립한다. 이는 사원이 군사적 요새이자 관공서이며 경제적 중심으로 자리잡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체리사원 입구에는 작은 시내를 건너는 너무나 예쁜 돌다리가 있다. 이 돌다리가 사원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듯하다. 수많은 벽돌을 정성스레 쌓아 이토록 멋진 돌다리를 만든 이들의 피땀 어린 노고와 신심에 찬탄하고 싶다. 

<벽암록> 52칙에 ‘조주석교(趙州石橋)’라는 화두가 있다. 한 스님이 “어떤 것이 조주의 돌다리 입니까”라고 묻자, 조주 선사가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지”라고 대답했다. 어디 나귀와 말 뿐이겠는가, 온갖 중생을 모두 건너게 하는 것이리라. 그 다리 가운데에 선채 시냇물을 바라보니, 도리어 ‘다리가 흘러가고 물은 흐르지 않는(橋流水不流)’ 듯 한 생각이 든다.

돌다리를 지나 오색의 타르쵸가 휘날리는 불탑을 둘러보고는 호젓한 산길을 따라 체리사원으로 향한다. 이곳의 부탄 스님들은 마치 평지를 걷는 듯 비호처럼 날렵한데, 우리 일행은 그야말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헐떡인다. 1시간여의 산행 끝에 드디어 체리사원에 도착했다. 산기슭에 그림처럼 자리해 그야말로 선경을 방불케 한다. 이런 곳이라면 금새 도를 이룰 것 같은 천하명당이다. 

사원 입구에 견공 석상이 하나 있는데 쇠줄로 묶여있는 것이 이채롭다. 어차피 석상이라 움직이지 못 하는데 굳이 목줄을 매달아 놓았는지 모르겠다. 모든 억압의 사슬과 굴레를 벗어나야 비로소 대자유인이 됨을 상징하는가 보다.

사원의 2층 법당에는 은으로 된 스투파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17대 승원장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다. 스투파를 배경으로 푸른 하늘이 창대하고 가없다. 사원 주위로는 토굴 수행터가 자리하는데 저 곳에서라면 금방 도를 이룰 것만 같다. 

이젠 부탄 제2의 도시로 ‘겨울의 수도’ 기능을 한 푸나카로 향한다. 푸나카로 가기 위해서는 해발 3130m의 도출라 패스를 넘어야 한다. 도출라 고개 정상에는 108탑이 순백의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우뚝 자리한다. 108탑을 돌며 저 마다의 소원을 비는 부탄인의 모습이 성스럽다. 순례단도 그들 뒤를 따라 탑돌이를 하며 저마다의 소원을 빌어본다.

아쉽게도 구름에 가려 히말라야 연봉의 장엄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어찌 그리 쉽게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가 있으랴. 그래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림으로만 히말라야 연봉을 그려보며 돌아오는 길에는 친견할 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어본다. 

드디어 ‘어머니의 강’이라 불리는 포추 강의 두 물주기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그림같은 푸나카 종에 다다랐다. 강에 놓인 현수교를 건너면 작은 요새라고 불리는 푸나카종이 자리한다. 푸나카종은 1328년에 창건됐지만 현재의 범선 모양을 갖춘 것은 1637년 샵드룽에 의해서 였다. 해발 1300m 정도에 위치하여 겨울에도 따뜻해 겨울이오면 부탄불교의 본부가 팀푸에서 이곳으로 이전한다. 또한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손꼽힌다.

푸나카 종은 샵드룽이 건축설계를 단 하루만에 마쳤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온다. 특히 이곳은 부탄 전역의 수많은 종들 중에서도 역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역대 국왕들의 즉위식은 물론이고 왕실의 주요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근자에는 제 5대 국왕부부의 결혼식도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현재 500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다.

푸나카종을 참배하고 나와 사원 근처의 현지인들이 사는 곳을 둘러봤다. 부탄인의 맑고 고운 마음과 담백한 삶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작은 가게집에서 과자와 사탕을 사다가 스님들과 나눠 먹는 재미도 있는 여행의 추억이다. 순례단을 이끄는 설정 스님께서 선인장을 만지시다 가시에 찔리시는 바람에 걱정이 많았다. 부탄 동진 스님들을 만나서인지 옛 시절로 돌아가 갑자기 개구쟁이 동자승이 되셨다. 그래도 “괜찮다, 까딱없다”고 하신다.

푸나카 외곽의 산기슭에 위치한 아름다운 호텔에 들어 저녁을 먹고 휴식한다. 누군가 정성으로 만들어 보시한 스투파와 오색 타르쵸가 진리의 말씀을 하늘로 전한다. 그러면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또한 밤새워 팔만대장경을 설하는 듯 하다. 

잠 못드는 나그네도 침묵한 채로 양 볼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그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포시 미소 지어본다. 부처님과 진리의 말씀, 그리고 중생들과 내 삶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마스테(Nama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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