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음마다 나를 내려놓다

카일라스 북면 설산 감동받아
돌마라고개 고행길 자신 반추
순례 끝자락엔 성취감이 가득

어둠 속에서도 장엄한 카일라스 북면은 순백의 영혼으로 빛나고 있었다. 새벽 3시경 손전등을  들고 공중 화장실에 볼 일을 보러 나왔다가 “오, 카일라스여!”라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난생 처음 접하는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카일라스 북면의 설산이 어둔 밤의 빛처럼 휘황한 자태를 뽐내며 무언의 설법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해발 5,210m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의 대향연에 넋을 빼앗긴 채, 그저 침묵하며 경외와 찬탄을 다할 따름이다. 온 우주에 오직 나 하나만이 이 성스러운 밤에 깨어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미 힌두 순례자들이 시바신을 찬탄하며 기도와 명상을 하고 있다. 나도 그 옆에 조용히 정좌하고 내 안에 수미산 하나 들여 놓는다. 정말이지 이 순간,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의 충격과 전율에 사로잡혀 행복한 마음이다.

아침 공양 후 대중공사가 벌어졌다. 안전을 위해 하산할건지 아니면 계속 순례를 이어갈 건지 결정하기 위함이다. 난상토론 끝에 스님 개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기기로 하여 11명의 스님들은 하산을 하고, 나머지는 4개조로 나누어 순례를 계속하기로 하였다. 솔직히 그 순간에 내 안의 악마가 “너도 내려가, 그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어”라는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소임자인지라 길에서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중단 없는 전진을 선택했다.

둘째 날의 여정은 카일라스 순례길 중에 가장 어렵다는 돌마라 고개(5,640m)를 넘는 난코스이다. 끝도 없는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문득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라는 옛 시조가 생각이 난다. 다만 가고 또한 가다보면 어느새 내 발밑에 서리라 다짐하며 순레길에 오른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세 걸음에 한번 쉬던 것이, 한걸음 떼어 놓기가 그야말로 천근만근에 속수무책이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좀처럼 따라주지 않는지라, 지난날의 허물과 나태를 돌이켜 반성하게 된다. 해탈고개에 이르러서 옷가지며 온갖 물품을 내려놓은 자리에, 내 지난 과거의 허물과 욕망의 찌꺼기들을 함께 내려놓아 버렸다. 중국의 작가 위화(余華)는 그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活着)’에서 “인생이란 무거운 등짐을 진채, 머나 먼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그러니 가고 또한 갈 따름이다.

‘부모효경점(父母孝敬点)’에 이르러 입적하신 원담 노스님과, 은사이신 법장 스님, 그리고 친부모님의 명복과 왕생을 빌었다. 아울러 진관, 흥륜, 수연 노스님과 태연, 명선 스님 등을 기억하고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은사이신 법장 스님께서는 지금, 여기에 항상하는 허공과 바람으로 함께 하시리라 믿는다. 

돌마라 고개 못 미쳐서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을 때였다. 어떤 비구니 스님이 천천히 걸어가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성스럽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다만 화두 하나를 든 채 묵묵히 걷는 스님의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나고, 그동안 꼼짝도 않던 카일라스가 스님의 발걸음에 맞춰 조금씩 움직이는 듯 하다. 

이에 졸시 하나를 지어 찬탄하노니 “수천 수만의 히말라야 설산마다/ 수천 수만의 우담바라 피어나고/ 수천 수만의 연꽃마다/ 수천 수만의 부처라네.// 그 가운데 한 스님의/ 가이없는 저 발자국,/ 한발 두발 자국마다/ 연꽃들이 피어나네// 한 스님의 발길이여,/ 온 우주가 깨어나서/ 연꽃송이 피어나고/ 수미산이 함께 걷네” 나는 한 비구니 스님과 그의 발걸음에서 수미산보다 더 크나 큰 자비와 평화, 그리고 그 순간에 찰나에서 영원을 보았노라!

돌마라 고개에 이르는 길은 그야말로 고난과 역경의 순례길이다. 몇 번이고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드디어 마지막 젖 먹던 힘을 내어 돌마라 고개 정상(5,640m)에 올랐다. 마치 천상의 화원이나 혹은 화장찰해에 이른 느낌이다. 순백의 설산아래 오색의 타르쵸가  펄럭이니 그 곳에 누운 채, 벅찬 감격과 희열에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정말이지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겠다는 마음이다. 내 자신에게 “정말 수고했어, 사랑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돌마라 고개 정상에서 법련사 진경스님이 감격에 겨워 대중들에게 찬불가 한 자락을 멋지게 노래한다. “부처님, 부처님! 자비하신 부처님! 저 이제 합장하오니 이 원을 들으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 노래와 카일라스가 어우러져 감동과 환희심이 이는 최고의 무대였다.

이제 다시금 하산할 시간이다. 양희은의 ‘한계령’처럼 카일라스는 이제 내게 내려가라고 한다. 다시 한번 돌마라 고개의 풍광을 360도 파노라마로 내 가슴에 영원히 저정한 채 내리막길을 따라 하산한다. 마치 미당 서정주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이란 시처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않게’ 수미산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왠지 가슴 한 켠이 텅빈 충만으로 행복하기만 하다.

늦은 점심 후 알룽창포 강줄기를 따라 산책하듯 돌길을 걸어서 밀라레빠가 수행하던 쥬틀북 사원(4,810m)에 도착해 근처 숙소에서 여장을 풀었다. 모든 이들의 얼굴과 가슴마다 무언가 필생의 일을 성취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격과 환희, 그리고 감사와 찬탄이 함께한다. 카일라스 영봉은 얼굴을 감춘 채 구름 속에 자리한다.

마지막 날은 알룽창포 강을 따라 산책하듯이 한결 편하고 수월한 순례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순례 종착지에 도착해 마니석 담장 앞에서 감동과 눈물의 회향식을 가졌다. 순례 대중스님네 모두가 카일라스 코라 순례를 무사히 마친 감격과 희열에 서로 부둥켜안고 펑펑 눈물을 흘린다. 이는 오직 스스로 경험함으로써 느낄 수 있을 뿐, 감히 그대에게 가져다줄 수는 없는 것이다. 저마다 가슴 속에 카일라스 수미산 하나씩 담아가니 더 없이 행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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