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본분(本分)

“여러분! 출가를 한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도를 배우는 일이니라. 산승의 경우 지난날에 일찍이 계율에 마음을 두어 보았고 경전이나 논에서도 찾아보았느니라. 그러다가 나중에 이러한 것이 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며 약에 대한 설명인 줄 알고, 마침내 한꺼번에 다 던져버리고 바로 도를 찾아 선을 참구(參究)하였느니라. 그런 후에 큰 선지식을 만나 뵙고 도를 보는 눈이 분명해져서 비로소 천하 큰 선지식들이 그릇된 것과 바른 것을 제대로 깨달았는가를 알 수 있게 되었느니라. 그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면서 알고 나온 것이 아니니 체험하며 연구해 연마하다가 하루아침에 스스로 깨달은 것이니라.”

선수행에 자주 쓰는 말에 ‘본분(本分)’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대로 새기면 본래의 자기 몫이라는 뜻인데 본래면목, 본분가풍 혹은 본분가업 등 여러 가지 말로 본분을 강조한다.

임제는 이 장에 와서 새삼스레 본분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본분납승이 해야 할 일은 도를 닦는 일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출가자가 이 본분을 망각하면 출가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임제는 출가 후의 자기 수행의 경력을 간략히 말하고 있다. 처음 율장을 연구하다가 다시 경론을 연구해 삼장(三藏)을 이수한 후 본격적으로 선수행에 임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른바 사교입선(捨敎入禪)의 행로를 거친 경력이다.

황벽에게 세 번 방망이를 맞은(三度被打) 후 대우에게 갔다 다시 황벽에게 돌아와 황벽의 법을 이었다. 위앙종을 연 영우를 참방한 적도 있었으며, 854년에 하북(河北) 진주성(鎭州城)의 동남쪽에 있는 호타하반(埃審河畔)에 임제원(臨濟院)을 건립하고 선법을 크게 선양하면서 천하에 이름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의 주장은 참다운 도를 바로 배우라는 것이었다.

중국의 선종이 오가칠종(五家七宗)으로 번창했지만 그 중 임제종이 가장 번성했다. 당대(唐代)에 생긴 여러 선종이 송대(宋代)에 들어오면서 임제종을 제외한 다른 선종은 쇠미해지고 임제종만 남아 번창하면서 다른 종파들을 흡수해버린 경향을 보였다. 원(元) · 명대(明代)에 이르기까지 임제종은 종풍을 드날렸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임제종 선맥(禪脈)이 계승되어 선수행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고려시대 태고 보우(太古 普愚ㆍ1301~1382), 나옹 혜근(懶翁 慧勤ㆍ1320~1376) 등이 중국에서 임제선을 받아 온 이후 임제선 일색으로 선법이 흘러내려 왔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임제문중 인천지안목(臨濟門中 人天之眼目)’이라는 말을 즐겨 써왔다.

선종을 표방하는 지금의 조계종도 종명(宗名)은 육조 혜능의 조계에서 따온 것이지만 선의 뿌리는 임제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근대의 선사들은 거의 임제의 후손임을 내세우고 있다. 스님들이 입적했을 때도 망축(亡祝)을 하면서 ‘황매산하(黃梅山下) 친전불조지심인(親傳佛祖之心印) 임제문중(臨濟門中) 영작인천지안목(永作人天之眼目)’이라고 읊는다. “황매산 밑에서 친히 부처님과 조사들의 심인을 전해 받고 임제 문중에서 길이 인천의 안목이 되소서”하는 축원이다.

이처럼 임제의 비중은 후대에 와서 더욱 커져 임제가 선을 대표하고 진정한 선수행은 임제 종지를 터득하는 데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깨달음을 빨리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선은 이 문제에 착안하여 단도직입적인 방법을 제시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임제 종풍이 으뜸간다고 여겨온 것은 선종 후대의 역사적인 사실이다. 강물이나 바다가 위치에 따라 수심(水深)이 다르고 산도 봉우리의 높이가 다르듯이 깨달음에도 깊이의 차이가 있다고 본것이다. 일례로 아라한의 경계와 보살의 경계가 다르다고 보았고 부처님의 경계와 보살의 경계가 다르다고 보았다. 깨달음 자체가 인간의 가장 깊은 체험이라고 할 때 체험의 정도가 엷고 깊은 차별이 있다고 본 것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