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무위진인(無位眞人)

“오직 여러분들의 눈앞에 지금 법문을 듣고 있는 사람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으며, 삼악도 지옥에 들어가더라도 꽃밭에서 노는 것처럼 하며, 아귀도나 축생도에 들어가도 아무런 과보를 받지 않나니 무엇 때문에 그런가? 싫어 꺼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대들이 만약 성인을 좋아하고 범부를 싫어한다면 나고 죽는 생사의 바다 속에 떴다 잠겼다 할 것이니라. 번뇌는 마음을 말미암아 있는 것이라 마음이 없으면(無心) 번뇌가 어찌 구속하리오. 애써 분별하여 상(相)을 취하지 않는다면 잠깐 사이에 저절로 도를 얻으리라. 그대들이 엉뚱한 길에서 허둥지둥 헤매며 배우려 한다면 3아승지겁이 지나도록 공부해도 마침내 생사윤회로 돌아가고 말 것이니, 아무 일 없이 총림의 좌선하는 자리에 가부좌하고 앉는 것만 못 할 것이니라.”

이 장에 와서도 가만히 무위진인(無位眞人) 이야기를 다시 꺼내 말하고 있다. 지금 눈앞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사람이 무위진인이다. 꼴이 없고 틀이 없는 사람으로 불성(佛性) 자체를 지칭하는 이른바 ‘한 물건’이다.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물에 들어가도 빠져 가라앉지 않아 외부의 어떤 상황에도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는 것이다. 〈선가귀감〉 첫 구절과 〈금강경오가해서설〉 첫 구절에도 ‘한 물건이 여기에 있다(有一物於此)’ 하고 소개되어 나오는 그것이다. ‘본래 신령스럽고 밝지만 생겨나지 않으며 없어지지도 않아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하였고 또 ‘이름도 모양도 없되 고금을 꿰뚫고 하늘과 땅보다 먼저이면서 시작이 없고 하늘과 땅보다 나중이면서도 끝이 없다’ 하였다.

이것을 원상(圓相)으로 그려놓고 송(頌)을 지어 원상송(圓相頌)이라 했다.

古佛未生前 옛 부처 나기 전에

凝然一相圓 한 모양이 엉키어 둥글었네

釋迦猶未會 석가도 오히려 몰랐거늘

迦葉豈能傳 가섭이 어찌 능히 전하랴

이 원상을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이 남양 혜충(南陽 慧忠ㆍ?~775)이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마조 도일(馬祖道一ㆍ709~788)이 먼저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물론 두 사람이 같은 시대를 살았다. 혜충의 출생연도가 밝혀지지 않아 누가 연장자였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혜충은 육조 혜능의 제자이고 마조는 남약 회양의 아래인 육조 2세이다.

〈경덕전등록〉에 수록된 〈경산도흠전(徑山道欽)〉에 나오는 이야기에는 마조가 경산에게 편지를 써 보냈는데 편지 안에는 글이 없고 원상 하나만 그려져 있었다. 편지를 뜯어본 경산이 원상 안에 점을 하나 찍어 다시 봉하여 마조에게 보냈다. 이 이야기를 혜충국사가 전해 듣고 “경산이 마조에게 속았구나”고 말했다 한다.

〈선문염송설화〉 165칙에는 어떤 학인이 찾아왔을 때 마조가 원상 하나를 그려 놓고 말했다.

“들어와도 때리고 들어오지 않아도 때릴 것이다”

그러자 학인이 원상 안으로 바로 들어왔고 마조는 그를 때렸다. 학인이 말했다.

“스님은 저를 때리시면 안 됩니다”

마조는 주장자에 기대어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원상(o) 곧 동그라미로 표시되는 ‘한 물건’을 임제는 무위진인과 무의도인(無依道人)으로 표현했다. 이 사람이 지옥이나 아귀 축생 등 3악도에 들어가도 과보가 없다고 하면서 임제는 상(相)을 분별함이 없는 무심(無心)에 돌아갈 것을 재촉한다. 무심하다면 어찌 번뇌에 구속되리오 하고 일갈하고 있다. 이 말의 저변에는 돈오(頓悟)하면 돈수(頓修)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임제의 종지가 깔려있다. 임제뿐만 아니라 선사들의 법문은 직설(直說)이다. 복잡한 곡담(曲談)을 싫어하고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말한다. 임제의 직설은 압축되고 압축되어 언어를 뛰어넘는 ‘할(喝)’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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