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무위(無爲)와 유위(有爲)

“산승에게는 남에게 줄 법이 하나도 없다. 그저 병을 치료해 주고 속박을 풀어 줄 뿐이니라. 그대들, 제방에서 도를 닦는 이들이여, 시험 삼아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말고 나와 보라. 내 그대들과 법을 논하고 싶으니라. 10년이나 5년이나 모두 한 사람도 없었느니라. 다 풀과 대나무 잎사귀에 붙어사는 정령이나 들판의 여우, 도깨비들이어서 온갖 똥 덩어리 위에서 어지럽게 씹어댈 뿐이니라. 눈먼 바보들이여, 저 시방의 시주물만 헛되이 소비하면서 ‘나는 출가한 사람이다’하여 그릇된 견해만 지어내고 있느니라. 그대들에게 말해 주었느니라. ‘부처도 없고 법도 없으며,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렇게 옆길로만 쏘다니며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눈먼 바보들이여, 머리 위에 또 머리를 얹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이니라. 도대체 그대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임제가 ‘남에게 줄 법이 하나도 없다’ 한 것은 바꾸어 말하면 ‘얻을 수 있는 법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이는 황벽의 〈전심법요〉에 나오는 말이다. 수행이라는 것이 자신이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약을 먹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줄 법이 없고 얻을 법이 없는데 무엇을 깨닫는다는 말인가? 〈전심법요〉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오직 바로 당장에 자기 마음이 본래 부처이며 얻을 수 있는 법이 하나도 없고 닦을 수 있는 수행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단박에 깨닫는다면 이것이 곧 위없는 최상의 도이며, 바로 진여불(眞如佛)이다.”

이것을 모르는 것을 임제는 눈먼 바보라고 한 것이다.

배휴(裴休)가 황벽(黃蘗)에게 물은 말이 있다.

“혜능(惠能) 스님은 경전을 몰랐는데 어떻게 법의(法衣)를 전해 받아 육조가 되었으며, 신수(神秀) 스님은 500명의 대중을 가르치는 교수사(敎授師)의 소임을 맡아 32본(本)의 경론(經論)을 강의할 수 있었는데 왜 법의를 전해 받지 못했습니까?”

이 말에 답하기를 “신수 스님은 마음이 있었기(有心) 때문이니 이는 유위(有爲)의 법으로써 닦고 깨닫는 것을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니라.”

도(道)를 닦을 때는 무위심(無爲心)으로 닦는다고 한다. 무위심은 곧 무상심(無相心)이다. 마음속에 어떤 관념적인 생각이 들어있지 않은 것을 말한다. 육조 스님은 〈금강경해의〉 서(序)에서 〈금강경〉을 두고 “무상(無相)으로 종(宗)을 삼고 무주(無住)로 체(體)를 삼으며 묘유(妙有)로 용(用)을 삼는다.” 하였다.

또 육조 이전인 우두 법융(牛頭 法融ㆍ594~657) 때부터 강조한 무심합도문(無心合道門)이 있었다. 그가 남긴 말에 “적절히 마음을 쓸 때는 적절히 무심을 쓰라(恰恰用心時 恰恰無心用)”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무심이라 말하는 것이 유심과 다르지 않다(今說無心處 不與有心殊)” 하였다. 무심합도를 주장하면서도 무심이 유심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무심을 유심과 상대적으로 대치하여 분별심으로 보지 말라는 말이다. 선(禪)에서 그렇게 자주 쓴 무심이라는 말이 교리적으로 보면 탐(貪)ㆍ진(瞋)ㆍ치(痴) 삼독 등 번뇌가 없는 마음이다.

우리나라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도 수선(修禪)의 방법으로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 무심합도문을 주장하였다. 지눌은 조종(祖宗)의 무심합도가 정혜에 구애되지 않는다(祖宗無心合道者 不爲定慧所拘也)고 하였다. 그는 무심을 설명하기를 무심이란 심체(心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심중에 물(物)이 없는 것이 무심이니 마치 병 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것을 빈 병이라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또 유심은 괴로운 것이지만 무심은 스스로 즐거운 것이라 하였다. 임제의 사구송(四句頌)에도 무심을 강조한 법문이 있다.

若人修道道不行 만약 사람이 도를 닦는다 하면 도는 닦아지지 않는다.
萬般邪境競頭生 온갖 삿된 경계만 다투어 생길 뿐이다
智劍出來無一物 지혜의 칼을 꺼내 아무것도 남기기 말고 베어버려야
明頭未顯暗頭明 밝음이 안 나타나도 어둠이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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