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수행…참된 불자 되는 길

간화선vs위빠사나 분별 말고
인연따라 생활화하는 게 최고
하루 5분 좌선과 공부로 시작
마침내 영원한 행복 가는 길

해인사 성철스님 사리탑 앞에서 좌선하는 불자들.
해인사 성철스님 사리탑 앞에서 좌선하는 불자들.

그동안 우리는 부처님이 깨친 중도와 한국 화두선 명상의 가치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누구든지 부처님이 깨달은 중도를 공부하여 정견을 세우고, 화두선이든 호흡명상이든 지속적으로 꾸준히 생활화해 나가면 마음이 밝아지고 고요해져 나날이 좋은날이 될 수 있다. 세상에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치유 명상과 깨달음 명상

세계적인 명상 붐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명상 수련법이 나오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참선 명상에 대한 정견을 세워야 한다. 참선 명상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눠진다.

첫째, 나의 스트레스 해소와 심신의 건강을 위한 치유 명상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MBSR, MBCT 등이 이런 치유 명상에 속한다. 스트레스 감소와 몸과 마음 건강을 위한 치유 명상은 현대인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이러한 치유 명상 프로그램은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게 체계화되고 프로그램화되어 대학 병원과 심리상담사들에 의해 전파되고 있다. 스트레스와 우울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이러한 치유 명상은 귀중한 선물이다. 알콜이나 약물에 의지하여 스트레스와 우울을 해소하다가 명상을 익혀서 스스로 자기 치유를 통해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런데 불교의 근본 중도에서 보면 이러한 치유 명상도 한계가 있다. 어떤 한계인가? 치유 명상은 ‘내가 있다’는 유아(有我)의 입장에서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 회복에 목적이 있다. 내가 겪는 스트레스와 초조 불안 우울을 명상으로 치유하여 심신의 건강 회복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있다’는 견해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삶의 괴로움을 비롯하여 늙음과 병, 죽음의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치유 명상은 스트레스와 우울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만, 인간의 근본 문제인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완전히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치유 명상은 일시적인 행복을 위한 명상이라 하겠다.  

둘째, 생사의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깨달음 명상이 바로 불교의 간화선과 위빠사나(사마타) 참선 명상이다. 북방의 대표 수행법인 간화선과 남방의 위빠사나는 화두에 집중하느냐, 호흡에 집중하느냐 하는 방법만 다르지 중도 삼매를 체험하는 원리는 같다. 우리 마음을 화두에 집중하여 일체의 번뇌망상을 없애는 것이 화두선, 간화선이다. 위빠사나(사마타)도 호흡에 집중하여 번뇌망상을 완전히 비우는 깨달음으로 가는 것이다. 간화선이 좋으니 위빠사나가 좋으니 분별하지 말고 인연이 되는대로 하나를 정해서 부지런히 생활화하는 것이 최고다. 

간화선과 위빠사나와 같은 불교의 깨달음 명상은 스트레스와 우울 등 괴로움을 일으키는 일체의 번뇌망상을 비우고 비워서 청정한 즐거움,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한다. 불교의 깨달음 명상은 ‘내가 있다’는 근본 망상을 완전히 비울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정진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있다’는 전제에서 나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치유 명상과는 차원이 다른 명상이다. 깨달음 명상과 치유 명상은 명상하는 자세나 방법이 비슷하게 보여도 목적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깨달음 명상은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완전히 없애는 영원한 행복의 길이다.

그러므로 깨달음 명상을 하게 되면 스트레스와 우울을 유발하는 일체의 분별망상을 완전히 없애는 길이니 치유 명상의 효과도 누리면서 죽음의 괴로움마저 영원히 벗어나니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명상이라 하겠다. 부처님이 깨치고 우리에게 알려주신 불교의 깨달음 명상은 인류문명사에서 최고의 선물이다. 밖으로 하나님이나 절대신에 의지하지 않고, 알콜이나 약물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 마음을 바르게 닦아 초조 불안 등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영원히 벗어나 대자유를 누릴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길이 어디에 있는가?

고양 흥국사 흥국선원에서 좌선 명상하는 불자들.
고양 흥국사 흥국선원에서 좌선 명상하는 불자들.

중도 정견이 확고해야 마구니 장애도 극복한다

인류 문명사에서 최고의 선물, 깨달음 명상은 영원한 행복으로 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길이지만, 이 길을 바르게 가려면 불교를 공부해서 정견(正見)을 세우고 해야 한다. 이것이 좀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하고 이 깨달음의 길에 대하여 팔만대장경이라는 방대한 가르침을 주셨기 때문에 초보자들이 불교를 공부하는데 실로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초기경전과 대승경전, 그리고 조사어록에는 서로 모순되거나 사유로서는 알 수 없는 파격으로 가득하니 참으로 공부하기가 어렵다. 

까닭에 불교 교단과 지도자들은 불교 명상에 입문하는 초보자들에게 쉽게 불교를 이해하여 정견을 세우고 참선 명상 수행하도록 바르게 안내하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선문(禪門)에서는 바른 선지식을 만나라 한다. 가까이에 선지식을 만나지 못한다면 반드시 경전과 조사어록을 선지식으로 삼아 정견을 세우고 참선 명상을 해야 한다. 

만약 정견을 갖추지 않고 참선 명상을 하게 되면 공부 중에 여러 가지 역경계와 순경계, 혼침과 산란, 신비한 마구니 경계를 만나 바른 깨달음으로 가기가 어렵다. 특히 마구니 경계에 주의해야 한다. 참선 명상에 입문하여 꾸준히 하다 보면 번뇌망상이 쉬어지면서 의식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는데 그때 무심코 신비한 어떤 경계가 나타날 수 있다. 

불교에 정견이 서있지 못하면 이런 신비한 경계에 집착하게 되어 우리 마음에 작난(作亂)이 일어난다. 필자의 경우 황금빛 불덩이가 눈앞에 나타나는 신비한 경계를 만난 적이 있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럴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이런 신비한 경계를 공부가 잘 되어서 나타나는 경계로 착각해서 머물거나 안주하게 되면 마구니가 되어 온갖 기이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주변에 이러한 마구니 경계에 휘둘리어 깨달았다는 착각에 빠져 마구니 행각을 하거나 외도로 빠지는 분들이 적지 않다. 참으로 경계해야 한다.  

화두선이든 호흡 명상이든 어떤 경우든지 화두나 호흡에 의식이 집중하여 또렷또렷하게 화두나 호흡에 깨어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화두나 호흡을 놓쳐버리면 이런 신비한 경계가 나타나 마치 그것이 공부를 잘해서 나타난 경계인줄 착각에 빠져버릴 수 있는 것이다.   

불교의 깨달음 명상을 하여 생사의 괴로움을 떠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려면 반드시 불교 공부해서 정견을 세우고 해야 한다. 부처님 깨달음 세계가 중도연기(中道緣起), 무아(無我)라는 정견이 확고해야 참선 명상 과정에서 나타나는 온갖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멈추지 않고 앞으로 바르게 나아가 마침내 깨달아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하루 5분 참선명상으로 시작하자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이다. 생사의 괴로움을 멈추고 영원한 행복으로 가는 깨달음 명상도 하루 5분 좌선으로 시작해보자. 매일 5분 규칙적으로 좌선 명상을 하면서 선지식의 경전과 선어록 법문을 듣고 공부하여 정견을 세워나가자. 그렇게 매일매일 부처님 말씀을 새기고 참선 명상을 통해서 체험하고 실천해 나가면 마침내 영원한 행복으로 가는 것이다. 

꼭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정견을 세우고 참선 명상을 생활화해 나간다면 공부한 만큼 마음이 밝아지고 편안해지며 행복해진다. 이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지은대로 받는다. 

부처님이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모진 고행(苦行)도 중단하고 마침내 명상을 통해서 깨달은 중도를 공부해서 정견을 세우면 누구나 영원한 행복이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자기 마음을 부지런히 닦고 밝혀서 저 하늘의 태양처럼 환해지면 일상생활이 그대로 밝아지고 편안해져 수행 아닌 것이 없게 된다. 이런 이가 바로 생활 수행자이고 진정한 부처님 제자이다. 
이렇게 정견을 세우고 생활에서 수행하는 불자에게는 어떤 어려움도 능히 극복할 지혜와 힘이 나온다.〈끝〉

▶한줄 요약 
간화선과 위빠사나와 같은 불교의 깨달음 명상은 스트레스와 우울 등 괴로움을 일으키는 일체의 번뇌망상을 비우고 비워서 청정한 즐거움,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한다. 불교의 깨달음 명상은 ‘내가 있다’는 근본 망상을 완전히 비울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정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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