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가 악귀를 불렀다

SBS 드라마 ‘악귀’는 대본의 완성도면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은희 작가가 대본을 썼다. 

‘악귀’는 악귀에 씐 구산영(김태리)과 악귀를 볼 수 있는 민속학자 염해상(오정세)이 악귀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파헤쳐가는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 드라마다. 

염해상은 구산영의 아버지에게 씌었던 악귀가 딸인 구산영에게 옮겨간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애초 악귀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염해상의 할머니인 나병희(김해숙)가 악귀를 만들었다. 1958년 나병희는 남편 염승옥과 함께 가난한 집안의 자매인 이목단과 이향이를 살인 교사했다. 목단과 향이를 직접 살해한 것은 최만월이라는 무당이다.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이유는 집안에 악귀인 태자귀가 씌게 되면 대대로 부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악귀의 마력에 힘입어 중현상사는 중현캐피털로 거듭나면서 사세가 커지지만, 악귀의 저주도 3대까지 계승되어서 장자들을 사지(死地)로 내몰았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마. 그때 회사는 기로에 있었어. 우리가 아니었다면 네가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었을 것 같아.”  

나병희가 손자인 염해상을 벌레 보듯이 하면서 내뱉는 대사이다. ‘악귀’는 오컬트 드라마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그 내용은 자본가의 탐욕을 비판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속 염씨 가문은 목단과 향이를 제물로 삼아서 일어선 탐욕의 가문이다. 하지만 불길처럼 치솟는 탐욕으로 말미암아 염씨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나병희는 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남편과 아들의 죽음까지도 감내한다. 악귀와 거래한 나병희의 모습은 메피스토의 유혹에 넘어간 파우스트와 다르지 않다. 나병희가 악귀와 손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삼독번뇌(三毒煩惱), 즉, 탐욕(貪), 분노(瞋), 어리석음(痴)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 속 향이가 악귀가 된 이유 역시 삼독번뇌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삼독번뇌는 삼계의 모든 번뇌를 포섭한다. 번뇌가 중생의 마음을 해치는 것이 마치 독사의 독과 같아서 삼독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법화경〉에 이르길 “마음에는 세 가지 때가 있다. 탐하여 구하는 욕심, 성을 내고 화를 내는 진심, 그리고 미련하여 어리석은 마음이 그것이다. 이것이 모든 슬픔과 근심의 근본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탐, 진, 치를 멸한 사람은 가장 정확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욕심이 없는 상태에서, 분노가 일지 않는 고요한 마음에서, 어리석음이 걷힌 지혜의 눈으로 현실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판단하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염씨 가문이 악귀를 만든 이유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염씨 가문은 악귀의 노예가 되어서 대대로 과보를 받아야 했다. 악귀 들렸다가 본래의 평상심을 되찾은 구산영의 모습은 “삼독의 불이 모두 꺼져버리면 해탈 열반에 이른다”는 〈아함경〉의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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