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양산 통도사 대웅전 불단

불단 제작연대와 제작자 기록 남겨
조성기록 등에 불단을 ‘탁자’로 호칭
청판에 180자 불단 조성기록 발견
중단에 기린, 인면어, 천마, 용 투조

소나무로 만든 10m 넘는 대형 불단
통도사 대웅전은 가람의 상로전 영역에 있는 통도사의 중심 법당이다. 대웅전은 1645년에 중수한 건물로서 ‘사리각’, ‘대법당’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건물의 동서남북 네 면에 편액을 하나씩 달고 있다. 동-대웅전, 남-금강계단, 서-대방광전, 북-적멸보궁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성소이자 수계 공간인 석조건축 금강계단과 유기적 일체를 이룬 독특한 성격의 법당이다.

대웅전은 일주문-천왕문-불이문에 이르는 가람의 중심축인 동서 축선에 3×3칸의 법당 건물을 세우고, 중심축에 수직인 남북 축선에 금강계단을 향한 3×2칸의 배향건축을 결합한 형태다. 즉 동향의 3×3칸 법당의 향우측에 3×2칸의 남향 배향시설을 덧붙인 건축이다. 그래서 동서축에서 바라보면 정면 5칸, 측면 3칸이고, 보조축인 남북 축선에서 보면 정면 3칸, 측면 5칸인 건물이 된다. 그러한 건축 구조에 의해 대웅전엔 서로 직교하는 두 개의 지붕 용마루가 나타난다. 축이 직교하는 용마루 중앙에 범자 ‘옴’을 여섯 면에 새긴 청동 보주탑을 올려 뒀다. 보주탑은 진리를 설하는 법의 집으로서의 법당을 상징한다. 또한 바라보는 방위에 따라 독특한 상부 지붕의 입면이 나타난다.

북측 적멸보궁 편액 방향을 제외한 동, 남, 서 세 측면의 정면에선 지붕의 용마루와 함께 목조건축의 측면에 생기는 합각면을 동시에 볼 수 있다.

통도사 대웅전 불단은 북측 금강계단의 부처님 진신사리에 헌공 올리는 공양 예경단 시설로서 동서 방향으로 길게 배치했다.

대웅전 북측 2칸 전부 불단이 차지할 정도의 대형 불단이다. 대웅전 동서방향 길이가 불단의 가로 길이다. 그래서 불단의 길이가 10m를 넘는다. 금강계단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까닭에 불단 위에 불상을 모시지 않았다. 단지 불단 높이의 북측 벽면에 가로로 긴 유리창을 내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향해 예배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상판이 텅 비어 있는 대형 불단의 원형을 보여준다. 불단은 통상 두 가지 기능성을 갖는다. 하나는 불상 봉안 시설의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육법공양을 위한 공양예경단의 기능이다. 통도사 대웅전의 경우 전적으로 공양예경을 위해 조성된 특별한 사례이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는 대구 용연사 적멸보궁, 강원도 고성 건봉사 적멸보궁, 정선 정암사 적멸보궁 등에서도 불상을 모시지 않은 불단 형식을 볼 수 있다. 그 원형은 통도사 대웅전 불단이다.

통도사 대웅전 불단은 하대, 중대, 상대의 삼단 형식을 갖춘 대형 불단이다. 길이 10.4m, 폭 2.5m, 높이 1.9m에 이른다. 불단 제작에 사용한 나무는 소나무이다.

후불벽을 세우지 않아 불단의 뒷면은 전체가 개방돼 있어 특별하다. 측면의 좁은 통로로 몸을 숙여 들어가 개방된 뒷면을 보면 불단 내부구조를 직관적으로 살필 수 있다. 뒷면에는 불단에 오르내릴 수 있는 목제 사다리도 설치돼 있다. 불단의 중심인 중대는 대개가 3단 형태이다. 하지만 통도사 대웅전 불단의 중단은 1단으로만 구성했다. 중단 위엔 천판을 얹었다. 하지만 불단에서 차지하는 중단의 크기 비중은 부각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하대와 상대는 각각 2단으로 구성했다. 하대는 기단부와 청판을 가설한 하단으로, 상대는 상단과 그 위에 보탁을 올려 2단을 이루게 했다. 상대의 상단과 보탁 두 곳 모두에는 두께 10cm에 이르는 천판을 올려 뒀다. 불단구조를 아래서부터 살펴보면 (하대) 기단-하단, (중대) 중단-중단천판, (상대) 상단-상단천판-보탁-보탁천판의 여덟 층위를 이룬다. 불단 높이 190cm 중에서 하대 높이는 76cm, 중대는 32cm, 상대는 82cm를 차지한다.

대목 상징 스님이 1646년에 제작
2021년 통도사 대웅전 불단 정밀조사 과정에 중단의 향우측 세 번째 청판 뒷면에서 불단 조성기록 묵서 180여 글자가 발견됐다.

묵서에 의하면 불단은 대웅전 중수를 마친 1645년 9월에 조성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1646년 2월 8일에 마친 것으로 파악됐다.

불단 조성은 대화사 진희 비구의 주도하에 탁자 대목(卓子 大木)은 운수납자 상징 비구, 부목은 광현 비구, 화주는 대선사 각천 비구 등이 맡아 진행했다. 불단 조성연대와 조성 주체가 명확하게 밝혀졌다. 그것은 대단히 드문 일이다.

불단에는 또 함풍 8년(1858년)에 새긴 320여 자의 〈탁자장식연기문(卓子粧?緣起文)〉 금속판도 중대 천판 앞면 중앙에 붙어 있다. 금속판은 구리와 아연이 주성분인 구리판이다. 연기문은 호운과 도언이 쓴 문장으로 철물 시주, 수공(手工) 시주자 등을 밝히고 모든 중생의 성불을 발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주목할 만한 언급이 있다. 그것은 불단을 ‘탁자(卓子)’라고 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탁자’의 개념은 촛대, 향로의 배치와 꽃, 과일 공양 등 불단의 공양 의식단으로서의 실용 목적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불단을 ‘탁자’라고 기록한 사례는 대구 동화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대웅전 불단 묵서 기록에서도 볼 수 있다. 통도사 대웅전 불단에서 구리 금속판 장식은 중대, 상대에 있는 세 천판에 두루 부착돼 있다. 중대 천판엔 7개, 상대 천판엔 6개, 보탁 천판엔 3개 장식했다. 새긴 문양은 꽃, 구름, 범자 등이다. 금속판의 범자 장엄은 정법계진언 ‘옴람’으로 청정한 마음을 상징한다.

불단의 하대는 굳건하고 힘이 있다. 통도사 대웅전 불단이 가진 강한 개성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하단을 7칸으로 나누는 8개의 검은 족대가 인상적이다. 힘이 들어간 사자 앞발의 형세다. 상부의 하중을 받아내는 투박하고 억센 힘의 의지가 조형에 고스란히 담겼다. 하단 안쪽에 벽면처럼 길게 이어 붙인 두께 3.8cm 청판도 눈길을 끈다. 청판은 하단 안쪽 면에 시설해서 가림막 역할을 한다. 청판에 표현한 장엄형식도 조각이 아닌 평면회화다. 꽃과 넝쿨을 결합한 보상화를 그렸다. 하단의 상부엔 청판보다 작은 또 하나의 가림판을 시설했다. 12cm 높이의 가림판엔 휘장 문양의 장식띠를 그려 가림막의 기능성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높이 20cm에 이르는 기단부는 대단히 튼실한 느낌이다. 두텁고 묵직하다. 기단부엔 용을 조각했다. 기단에 새긴 용은 모두 8개체다. 족대의 8개 발이 내려진 곳마다 용을 새겨 배치했다. 용은 고부조로 입체감 있게 깊게 새겼다. 용의 입에서 좌우로 넝쿨이 뻗어 나간다. 넝쿨에는 생명 에너지가 담겼다. 이웃한 용의 입에서 나온 넝쿨끼리 팔짱 끼듯 서로를 칭칭 감았다. 연대의 힘으로 강력한 수호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불단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것은 하단 가림막에 채색한 넝쿨문과 상통한다. 조각과 평면회화가 일의적으로 통일돼 있다.

통도사 대웅전 불단 중단의 조형 모음(중단의 10칸 조형 중 8칸 조형을 짝맞춰 재구성함).
통도사 대웅전 불단 중단의 조형 모음(중단의 10칸 조형 중 8칸 조형을 짝맞춰 재구성함).
통도사 대웅전 불단 부분.
통도사 대웅전 불단 부분.
통도사 대웅전 불단에 부착한 금속판 장식과 조성기록.
통도사 대웅전 불단에 부착한 금속판 장식과 조성기록.

 

한 단의 중단에 완성도 높은 조형
통도사 불단의 중대는 한 단만으로 구성했다. 한 단을 10개의 칸으로 구획했다. 한 칸의 크기는 평균 가로 90cm, 세로 20cm이다. 조형은 5, 6번 칸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배치했다. 중대는 한 단에 지나지 않지만 각 칸의 청판에 베푼 조각은 감탄을 자아낸다. 조형 소재의 구성과 배치, 조각의 예술적 표현력, 색채 운용 등에서 완성도 높은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다. 중단의 조형소재 구성을 살펴보면 1-10번: 사람 얼굴 가진 물고기(인면어)+기린, 2-9번: 용+기린, 3-8번: 인면어+ 천마, 4-7번: 용+ 기린, 5-6번: 수생생물(물고기, 개구리, 게, 거북이, 학 등) 등으로 구성하여 대칭의 구도로 배치했다. 중대의 모든 청판에는 꽃과 넝쿨을 결합한 보상화 조형을 바탕 조각으로 새겼다. 좌우에 배치한 기린, 인면어, 용, 천마 등은 모두 중앙을 향해 이동한다.

통도사 불단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조형은 중단의 네 곳 청판 조형에 등장하는 인면어다. 인면어는 종종 아미타불께서 중생구제를 위해 나투시는 변화의 몸, 곧 변화신(變化身)으로서 ‘아미타어’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와는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진사 안료의 붉은색이 기조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군청에서 풀어 낸 청색 몸을 가진 인면어 조형의 파격은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부처와 법의 자리인 중앙으로 향하는 청색 물고기의 스토리는 대단히 동화적이고 애니메이션 같은 판타지의 세계 그 자체다. 한국산사 불단 조형이 가진 특별한 미감은 이러한 신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판타지에 기반한다. 찬찬히 살펴보면 서쪽에서 중앙으로 향하는 인면어는 머리 스타일과 생김으로 보아 여성성을 갖췄고, 동쪽에서 중앙으로 향하는 인면어는 남성성을 갖춰 엄숙함 속에서도 긴장을 푸는 해학과 재치를 발휘한다. 더구나 중앙으로 향하는 모든 기린, 인면어, 용, 천마들은 저마다의 몸통에, 때론 얼굴 앞에 금빛 씨방을 가진 주홍색 꽃을 달고 있다. 왜 활짝 핀 꽃을 장식하였을까? 상서로움과 기쁨의 길상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부처께서 설하시는 법문 자리로 가는 길, 환희지의 꽃이 저절로 피기 마련이다. 저 붉은 꽃은 진리와 자비의 감로로 향하는 환희의 꽃이다. 그래서 꽃이 활짝 피었다.

중단과 상단의 조형은 투조로 조각했다. 조형 위에 조형을 조각하고, 조형 아래에 또 조형을 새겼다. 조형이 깊고 심층적이며 서로 얽히고설켰다. 바느질처럼 조형의 선들이 누비고, 감치고, 공그르고, 뜨고, 휘갑친다. 선들이 꿈틀거림으로, 리듬감으로 살아있다. 그 속을 바람을 가르듯 기린이 달리고, 천마가 내달리고, 용이 휘몰아쳐 가고, 넝쿨의 선율 따라 봉황은 몸을 눕혀 비상하고, 인면어는 유유히 미소 지으며 간다. 중앙엔 수중 생명들이 공존과 상생의 대합창을 열었다. 통도사 대웅전 불단 조형 속에 불이(不二)와 상즉입(相卽入)의 원융세계를 펼쳐 놓았다. 불단 위는 텅 비어 광대하고 고요하다.

▶ 한줄 요약
통도사 대웅전 불단은 전적으로 공양예경을 위해 조성된 특별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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