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독서의 장소였던 사찰 “세종(世宗)이 처음으로 집현전(集賢殿)을 설치하여 문학(文學)하는 선비들을 모아 놓고, 아침저녁으로 맞아서 자문하였다. 그러고도 오히려 문학이 진작되지 못할까 염려하여 그중에서 젊고 총명한 자를 선발하여 절에 가서 글을 읽게 하였으며, 공궤(供饋)를 매우 풍족하게 해 주었다. 정통(正統) 임술년(1442, 세종24)에 평양(平陽) 박인수(朴仁?), 고령(高靈) 신범옹(申泛翁), 한산(韓山) 이청보(李淸甫), 창녕(昌寧) 성근보(成謹甫), 적촌(赤村) 하중장(河仲章), 연안(延安) 이백옥(李伯玉)이 명을 받고 삼각산(三角山) 진관사(津寬寺)에서 글을 읽었는데, 공부를 무척 부지런히 하였고, 시(詩)를 주고받는 것도 쉬지 않았다. 그 당시에 승려 일암(一菴)이 항상 수행하면서 그 글
2014.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