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사 下

▲ 직지사로 들어가는 ‘동국제일 가람 황악산문’. 김종직은 직지사에서 소나무·삼나무 숲에 자신의 선비정신을 빗대어 시를 지었다.
푸른 소나무 같은 선비정신

점필재 김종직의 시는 한가한 선비들의 절 나들이 풍경이다. 훈훈한 바람에 보리가 익어가는 4월쯤이 시간적인 배경이다. 제목에 언급 되었듯이 그 나들이 길의 주역에는 군수가 끼어 있다. 직지사가 속해 있는 김천 지역의 군수와 어울리는 지인들일지니, 고위급의 행차다. 그래서 스님은 손님을 맞이하고 새벽에는 죽을 쑤어 바친 듯하다.

선비들에게 절에서의 하룻밤은 풍류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만, 그 속에 고매한 정신의 탐구가 있으니 놀이가 전부인 것만도 아니다. 특히 김종직은 직지사에서 가까운 선산에서 아버지 김숙자로부터 글을 배우며 자랐다. 김숙자는 고려 유학의 맥을 이은 길재선생의 제자다.

아무튼 김종직은 이날 직지사에서 어릴 적 글 읽던 추억을 떠올리며 여전히 무성한 소나무 삼나무 숲에 자신의 선비정신을 빗대고 있다. 30년 전의 글 읽던 학동이 이제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대학자가 되어 소나무 같은 기상을 떨치고 있음이다.

 

동화십재구미진(東華十載久迷津)

금일선방안각건(今日禪房岸角巾)

상후오비혼탈엽(霜後烏渾脫葉)

월중앙와점생린(月中鴦瓦漸生鱗)

전반향세한경촉(篆盤香細寒更促)

불탑등혼연어진(佛榻燈昏軟語眞)

만이석천청불매(滿耳石泉淸不寐)

명조기내답홍진(明朝其奈踏紅塵)

 

10년 동안 동화에서 오래 길을 헤매다가

오늘날에 선방에서 각건이 비스듬하네.

서리 뒤의 오비는 잎이 모두 졌는데

달빛 속의 원앙와는 차츰 비늘을 번득인다.

전반의 향이 쇠잔하여 찬 밤을 재촉하고

불탑에 등불이 어두운데 부드러운

말이 진정이네.

귀에 가득한 돌샘물 소리 맑아

잠 못 들거니

내일 아침에 어찌 다시 험한 세상을 밟으랴.

 〈속동문선(屬東文選)〉 제8권에 전하는 이 칠언율시(七言律詩)의 제목은 ‘숙직지사여선원동부(宿直旨寺與善源同賦)’이다. 조위(曺偉 1453~1503)의 작품이다. 조위는 김종직과도 상당히 친교가 두터웠다. 그는 7세 때 이미 시를 지어 주위를 놀라게 했으며 성종 때 실시한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첫 번째로 선발되기도 했다. 사가독서란 임금이 직접 명하여 휴식을 취하며 독서에 전념토록 하는 일종의 특별휴가 제도로 상당한 학문과 문장의 성취를 이룬 유망주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영광이기도 했다. 조위는 국문학사적으로 최초의 유배가사의 효시로 꼽히는 ‘만분가(萬憤歌)’를 지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인물이다.

 

직지사의 밤풍경 그리고 깨우침

시를 보면 조위는 친근한 김선원이라는 사람과 함께 직지사에 와서 묵으며 시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김선원이 어떤 인물인지는 김종직의 〈점필재문집〉 제1권에 나오는 ‘죽은 친구 김선원 보에 대한 애사(亡友金善源甫哀辭)를 통해 알 수 있다. 글에서 김종직은 어릴 때 김선원과 더불어 황악산 능여사(能如寺)에서 함께 글을 읽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능여사(암)는 직지사에 딸린 암자였으나 6.25때 불타 없어졌다.

아무튼 조위는 김선원과 함께 직지사를 방문해 유숙하며 이 시를 지었다. 시의 전반적인 흐름을 통해 조위는 상당히 불교에 호의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첫 구절 ‘10년 동안 동화에서 오래 길을 헤매다가’라는 표현은 유학의 길에서 오랜 시간을 헤매고 다닌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여간 당당하지 않다. 동화(東華)란 유학을 하는 관료라는 의미다. 당나라 때 한림학사(翰林學士)가 처음 임명될 때에 동화문(東華門)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동화’는 유학자의 등용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유학의 길을 떠돌다가 직지사로 온 시인이 직접 참선에 들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함련과 미련에서 시는 선방에 앉아 수행하는 자의 눈으로 전개된다. 서리 뒤에 나뭇잎이 다 지고 원앙처럼 암수가 어울려진 기왓장은 달빛을 받아 물고기 비늘처럼 번들거린다. 그렇게 밤은 깊어 그윽하게 타들어 가는 향이 더욱 밤을 재촉하고 탑의 등불도 어두워지는 시간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점점 부드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종의 깨우침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게 직지사의 밤이 깊어 새벽을 향해 가는데, 돌샘물 소리 가득한 직지사의 밤 풍경 속에서 조위는 내일 아침 다시 번뇌로 들끓는 세상으로 갈 일이 까마득하기만 하다.

 

이월금릉설반소(二月金陵雪半消)

신파명옥출송교(新波鳴玉出松橋)

우연승흥래유처(偶然乘興來遊處)

계영천운만학요(桂影穿雲萬壑遙)

 

이월의 금릉 당 눈은 반쯤 녹았고

새 물길 옥 같은 소리로

소나무다리를 흐르네.

우연히 흥겹게 놀 곳을 찾아오니

계수나무 그림자 구름을 뚫고

골짜기 가득 노래 소리일세.

 

16세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부제학에 이르렀던 이정(李楨 ?~?)의 문집 〈구암선생문집(龜巖先生文集) 제1권 속집에 전하는 칠언절구다. 제목은 ‘유직지사 정미(遊直指寺 丁未)’로 되어 있으니 정미년에 직지사에서 묵으며 쓴 듯하다.

계절적인 배경은 2월이다. 아직 추운 때인데 직지사가 있는 금릉 땅에는 눈이 반쯤 녹았다는 서술로 시가 시작된다.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암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곧바로 시냇물이 풀려 소나무 다리 아래로 옥구슬 같은 소리를 내며 흐른다는 표현이 나오니, 눈 녹아 흐르는 물소리로 청각을 자극한다. 물론 ‘눈이 녹은 물’은 무명번뇌를 버린 뒤의 깨달은 경지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흥겹게 놀 만한 곳을 찾아 온 풍류를 내비치며 직지사 계곡의 봄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 즉 본래불성을 향해 곧바로 손가락을 가리킨다는 직지사. 진리의 원음으로 곧바로 들어가는 수행의 역사로 이어온 직지사에서 선비들은 자신의 ‘그릇’에 알맞은 나름대로의 견처(見處)를 확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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