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전쟁 때 건봉사는 대부분 폐허가 되었지만 불이문만은 유일하게 화를 면했다.
허균이 건봉사에서 지은 시에서 시적 반전이자 허균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대목은 “어찌 마음 씻고 참선 배워 인간의 노병사를 마치지 않는가?”라는 부분이다. 허망한 명리를 따라 다니지 말고 불성을 찾아 자유로운 길을 가라는 건봉사 스님의 충고를 듣는 대목인 것이다.

그러나 이후 시의 전개를 보면 허균은 스님의 충고를 슬쩍 비켜간다. 그는 조선전기의 경직된 도학주의 문학에서 보다 개성적이고 자유분방한 문학을 지향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건봉사라는 공간은 ‘인격의 완성’이라 할 성불을 추구하는 공간이기보다는 인간이 범접하기 어려운 이상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내일이면 떠나야 할 현실을 들춰냈다. 그 시의 말미는 다음과 같다.

 

초창산문역이별(?山門亦離別)

명조불서척공장(明朝拂曙擲杖)

하인갱방원통경(何人更訪圓通境)

은해연공월일편(銀海連空月一片)

 

서글퍼라 산문에서도 이별해야 하니

내일 아침 새벽을 떨치고

지팡이를 들어야 하리.

누가 다시 원통의 지역을 찾으랴

하늘에 잇닿은 은빛 바다에

한 조각달이 떠있네.

 

역사속의 절, 오늘의 깨침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봉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이고 깨달음의 공간이다. 건봉사에서 선비들이 시심을 열고 느끼는 것이 바로 역사속의 건봉사이고 건봉사 속의 깨달음인 것이다. 간성 현감으로 좌천되어 왔던 택당 이식 역시 누구보다 건봉사를 자주 찾았고 거기서 마음을 다스렸다.

 

봉석총림구(鳳石叢林舊)

봉방겁화여(蜂房劫火餘)

삼년동군리(三年東郡吏)

일탑반승거(一榻半僧居)

설창초분간(雪漲初分磵)

송량정만주(松凉正滿廚)

귀참호계반(歸?虎溪畔)

위이갱주저(爲爾更躊躇)

 

총림의 옛 터 건봉사 바윗돌

병화를 이겨낸 벌집 같은 승방

동쪽 벼슬 생활 3년에

반은 승려인 듯 한자리 얻어 살았네.

눈 녹아 산골 물 불어나기 시작하고

서늘한 솔 기운 공양간에 가득한데

조랑말타고 호계를 건너려 하다

그대로 인해 다시 주저 되는구나.

 

시의 내용으로 보아 이식은 간성에 현감으로 있는 동안 건봉사를 자주 찾았다. 그래서 ‘반은 승려인 듯’ 하다고 술회할 정도다. 그러므로 건봉사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스스로 지방관리 생활에서 오는 객고를 절의 풍경 속에서 풀었을 것이다.

이식은 시의 전반부에 건봉사의 역사성을 드러내며 거기에 자신의 역사를 오버랩 시켰다. 자신은 간성 현감으로 삼년을 지내면서 반은 승려인 듯 절에서 방 한 칸 얻어 자주 찾아 왔다는 것은 곧 자신의 역사인 것이다.

시의 후반부는 눈이 녹아 산골 물이 불어나는 모습과 공양 간에 서늘한 솔 기운이 가득하다는 설명으로 시작되는데, 계절이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계절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처지가 변하여 이제 지방관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때가 되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다음에 이어지는 호계는 중국 여산 동림사에 있는 계곡의 이름이다. 여산은 장시성(江西省) 구강시(九江市)에 남쪽에 있다. 1996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으로 등재한 명소다. 여산에 동림사가 있는데 혜원(334~416) 스님이 서기 386년경에 창건했다. 혜원 스님은 30년 이상을 산문 밖을 나가지 않고 수행에 몰두 했다. 손님을 배웅할 때도 절 앞의 호계라는 계곡을 건너지 않았다. 그래서 여산의 호계는 수행에 몰두하는 수행자와 세속과 의 경계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염불소리 가득한 도량

건봉사의 가장 큰 역사적 의미는 신라 때부터 이어져 오는 만일염불결사다. 19세기를 대표하는 고문(古文)의 한 사람인 홍길주(洪吉周 1786~1841)는 금강산 유람길에 건봉사에 들러 놀랄만한 장면을 목격했다. 만일염불회다. 그가 건봉사에 들린 것은 1811년 전후로 1802년에 결성된 만일염불회가 이어지고 있던 때였다.

유학자로서의 깊은 지식을 갖춘 선비 홍길주는 건봉사 만일염불 결사를 보고 감동을 받지만, 동참 승려가 30여명에서 절반으로 줄어 든 현실을 비꼬기도 하고 불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선비의 자세를 철저히 지키면서. 그의 문집 〈현수갑고(峴首甲藁)〉 하권에 ‘건봉사만일염불회’라는 시가 있다.

 

일일나무아미불(一日南無阿彌佛)

이일나무아미불(二日南無阿彌佛)

일일만년도만일(日日萬念到萬日)

변화억신개응출(變化億身皆應出)

삼천삼백일미만(三千三百日未滿)

삼십승여십육칠(三十僧餘十六七)

백발체단견가사(白髮剃短肩袈裟)

당종격고성부절(撞鐘擊鼓聲不絶)

이심무불염무익(爾心無佛念無益)

이심유불불염길(爾心有佛不念吉)

아유일부논어서(我有一部論語書)

욕독삼만육천일(欲讀三萬六千日)

 

첫째 날도 나무아미타불

둘째 날도 나무이미타불

날마다 만 번 씩 염불하여 만일에 이르면

억의 화신이 응하여 나타난다네.

삼천삼백일도 차지 않았건만

서른 명 승려 중 남은 이는 열 예닐곱

짧게 깍은 백발에 어깨에 걸친 가사

종치고 북치는 소리 끊이지 않네.

마음속에 부처 없으면 염불해도 득이 없고

마음속에 부처 있으면

염불하지 않아도 길하다네.

나에게는 한 질의 논어가 있으니

삼만 육천일 동안 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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