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 건너 몇 개울이 놓였을까?
쌍계 건너 몇 개울이 놓였을까?
  • 임연태 시인
  • 승인 2014.12.12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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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上

▲ 쌍계사 진감국사 탑비. 남효온은 최치원의 진감국사대공탑 비문을 읽고 난 술회를 장시로 남겼다.
범패와 차 역사가 시작된 곳

하동 쌍계사는 지리산을 대표하는 고찰 중 하나다. 722년 대비(大悲)와 삼범(三法) 두 스님이 당나라에서 육조 혜능 스님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와서 옥천사(玉泉寺)를 창건한 것이 오늘날 쌍계사의 연원이라고 전한다. 정상은 정수리 뼈 즉 사리의 일종이다.

840년 진감(眞鑑) 선사가 당나라에서 신감(神鑑) 선사의 법을 잇고 돌아왔는데, 옥천사 옛터에 육조 스님의 영당을 짓고 절을 확장했다. 또 진감 선사는 이곳에서 범패를 가르쳤는데 그 소식을 들은 스님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쌍계사는 대찰의 면모를 이어왔을 터이나 많은 사료가 전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쌍계사는 최근에 총림으로 지정되어 그 역사적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치원이 글을 짓고 글씨를 쓴 진감국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를 비롯 9점의 보물과 20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범패가 시작된 곳이고 차 재배가 이루어진 곳이란 점에서 쌍계사는 남다른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쌍계사 진감국사대공탑비는 최치원의 사산비명 중의 하나로 그 문체와 서체 모두가 매우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절 입구 큰 바위에 새겨진 ‘쌍계석문(쌍계석문)’이라는 글씨도 최치원이 쓴 것으로 전해져 쌍계사 시문(詩文) 가운데는 최치원과 관련된 시문이 많다. 물론 지리산이라는 명산을 배경으로 하는 쌍계사는 산천경개를 유람하는 선비들에게도 각광받는 코스였다.

 

불일직부천장계(佛日直俯千丈磎)

한애초벽재유로(寒崖?壁?有路)

풍진불도연하로(風塵不到烟霞老)

동부창창석색고(洞府蒼蒼石色古)

동망향로폭포수(東望香爐瀑布水)

비류란쇄심여무(飛流亂灑深如霧)

백일회미홀처창(白日晦迷忽悽愴)

천풍삽삽취비우(天風颯颯吹飛雨)

학사구적청태몰(學士舊跡靑苔沒)

진결불전심독고(眞訣不傳心獨苦)

학거산공일월심(鶴去山空日月深)

사아묘연사현포(使我杳然思玄圃)

 

불일봉 올라서 천 길 계곡 굽어보니

찬 비탈 험한 벼랑 길 겨우 나 있더라.

세상 풍진 이르지 않고 안개만 자욱한데

아득한 골짜기에 돌 빛만 예스럽네.

동으로 향로봉 폭포수 바라보니

어지러이 뿌리는 물 짙은 안개 낀 듯하네.

대낮도 어두우니 마음 문득 쓸쓸하고

높은 바람 솔솔 불어 비를 불어 날리누나.

학사의 옛 자취 이끼 속에 묻혀 있고

참 비결 전하지 않으니 마음만 괴롭구나.

학은 가고 빈 산에 세월만 깊으니

내 마음 아득히 현포를 생각케 하네.

 

미수(眉?) 허목(許穆 1595~1682)의 문집 〈미수기언(眉?記言)〉 별집 제1권에 수록된 이 시는 허목이 쌍계사와 지리산을 답사하며 썼다. 그래서 제목의 자리에 “경진년 9월 3일에 화개동(花開洞)으로부터 쌍계사 석문을 보고 이어 불일봉(佛日峯)에 올라 청학동(靑鶴洞) 폭포를 구경하면서 느낀 회포를 쓰다”라고 적혀 있다.

시는 지리산의 장관을 두루 관람하며 신선의 세상을 그려보는 시심을 수려하게 드러내고 있다. 후반부의 ‘학사의 옛 자취’는 최치원을 말하는 것인데, 최치원 역시 가야산에서 신선이 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문장으로 남아 있는 최치원의 행적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은 최치원의 진감국사대공탑 비문을 읽고 난 술회를 30구의 장시로 남겼다. 그의 문집 〈추강집〉 제2권에 실린 ‘쌍계사 비문을 읽고’의 후반부를 보자.

 

차방문자자공시(此邦文字自公始)

청구학사공위수(靑丘學士公爲首)

팔영루평장죽간(八詠樓平長竹竿)

중정락엽일슬후(中庭落葉一膝厚)

청학고비고연공(靑鶴高飛故淵空)

쌍계석풍초림망(雙溪夕風抄林莽)

오가문장비장재(吾家文章非長才)

찬인공교졸구부(讚人工巧拙鳩婦)

승운공덕부가묵(僧云公德不可默)

강위각화무염추(强爲刻?無鹽醜)

이 나라 문장이 공으로부터 시작되고

우리나라 학사 중에 공이 첫머리라네.

팔영루는 평평한데 대나무 가지 길고

뜰 가운데 낙엽은 무릎까지 쌓였구나.

푸른 학 높이 날아가 옛 못 비었는데

쌍계의 저녁 바람 나무숲을 스쳐 가네.

나의 문장 솜씨는 훌륭한 재능 아니라

남의 재주 칭찬하기엔 서툴기 그지없네.

공의 덕 묵힐 수 없노라 스님이 말하며

더없이 못난 글귀를 억지로 새기누나.

 

시편에 드러나듯 남효온은 최치원의 글과 글씨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무딘 글재주로 칭송하기조차 부끄럽다는 겸양을 보인다.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5)의 경우 쌍계사의 스님들과 교류가 많았던가 보다. 그의 문집 〈월사집〉 제18권에 쌍계사를 그리워하는 시가 보인다. ‘지리산 승려 의준(義俊)의 시축에 적힌 시에 차운하여 산으로 돌아가는 그를 전송하다’를 제목으로 두수가 수록됐는데 앞의 절구 한 수가 빼어나다.

 

천재고운대필제(千載孤雲大筆題)

추풍귀흥일고려(秋風歸興一枯藜)

요지만학쟁류처(遙知萬壑爭流處)

도진쌍계우기계(渡盡雙溪又幾溪)

 

천년 전 고운이 대필로 써 두었느니

가을바람 부는 이때 다시 가고 싶구나.

멀리서도 안다네

일만 계곡 다투어 흐르는 곳.

쌍계를 건너면

또 몇 개울이 앞에 놓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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