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사 上

▲ 조계종 제25교구본사인 남양주 봉선사 경내 모습.
세조의 능침사찰로 사격 일신

봉선사(奉先寺)는 고려 광종 때의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에 의해 운악사(雲岳寺)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는데 그 역사적 자취는 기록이 없어 희미하다. 그러나 15세기 중엽 인근에 조선 세조의 능인 광릉(光陵)이 들어서고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크게 사찰을 중창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른바 능침사찰로 정해지면서 희미하던 법등이 큰 빛을 발하게 된 셈이다.

세조와 정희왕후는 불심이 깊었다. 세조의 능침사찰로 봉선사를 중창한 나라에서는 절에 전답과 노비 그리고 돈을 내렸으며 세조를 위한 천도재도 크게 베풀었다. 세조의 아들 예종은 절의 현판을 친필로 써서 하사했다. 절의 이름은 ‘선왕의 능을 받들어 모신다(奉護先王之陵)’는 뜻에서 따 온 것이다.

이후 봉선사는 명종 때 전국 교종사찰을 관장하는 교종수사찰로 그 사세가 확대되었다.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던 명종 7년(1552년)에는 봉선사에서 승과고시인 교종시가 열려 국가적으로 인정받는 교종 승려들이 배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정왕후의 시대가 막을 내리며 불교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봉선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임진왜란은 절을 더욱 피폐시켰고 스님들은 스러진 자리에 다시 불사를 일으켜 당우를 복원했다. 역사의 흐름은 성주괴공의 연속인 것이다.

봉선사가 보잘 것 없는 사찰일 때와는 달리 고관대작 선비들의 발길이 이어진 것은 당연히 세조의 능이 들어선 이후부터다. 공무를 이유로 오는 선비들도 있고 유람삼아 지나는 길에 들린 선비도 있었을 것이다.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다간 세조의 유혼이 조석예불을 하고 있을 봉선사에 들린 선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선침옹령악(仙寢擁靈嶽)

격림린보방(隔林隣寶坊)

착락송계리(錯落松桂裏)

의관재소당(衣冠齋小堂)

설납출시전(雪衲出詩?)

낭음진려망(朗吟塵慮亡)

추고상기중(秋高霜氣重)

산과퇴반향(山果堆盤香)

요단서초흘(瑤壇瑞醮訖)

귀로식선방(歸路息禪房)

 

왕릉은 신령스런 산에 에워싸여

저 건너 숲은 절집과 이웃했네.

새들은 소나무 계수나무 숲에서 울고

의관한 관리는 작은 집에서 재계하네.

흰 옷 입은 스님은 시 지을 종이 꺼내어

낭랑하게 읊조리니 망상이 사라지네.

가을 하늘 높아 서리 기운 싸늘하고

쟁반에 놓인 과일 향기롭구나.

잘 꾸민 제단에서 맛있는 공양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선방에서 쉬도다.

 

〈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시다. 〈어우집후집〉 제1권에 실려 있으며 제목은 ‘광릉재실증봉선사승덕균(光陵齋室贈奉先寺僧德均)’이다. 광릉 재실에 갔다가 봉선사의 덕균 스님을 위해 써준 시라는 의미다.

시의 내용도 제사를 위한 공무로 광릉에 가서 능을 살피고 제사를 받들고 음식을 먹고 절에서 하룻밤 자는 일정까지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무미건조하게 하루 일정을 기록한 게 아니다. 광릉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숲 속의 새와 작은 재궁에서 제사를 준비하는 관리의 대비는 맑고 엄숙하다. 의관을 차려입은 관리의 행동과 시를 지어 읊는 스님의 행동 또한 아주 명징하게 그려지고 있다. 높은 가을 하늘과 향기로운 과일의 이미지도 맑게 대비되고 있다. 그렇게 상응하는 이미지들로 조용히 치러지는 하루의 일과를 담아내는 것이니 작가의 시적 재능이 탁월하다. 돌아오는 길 봉선사에서 하룻밤 쉬는 대목으로 시를 종결하니 차분한 결구가 되었다.

 

 

하룻밤 묵으며 시를 나누는 운치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도 공무로 광릉에 왔다가 봉선사에서 하룻밤 자게 되었는데 가는 길에 동행한 장유(張維 1578~1638)가 지은 시에 차운하여 시를 썼다. 관직을 맡은 선비들이 광릉을 들러 서로 시를 주고받은 것인데 그 무대가 광릉과 봉선사인 것이다.

 

비각교산리(閣喬山裏)

단청환련양(丹靑煥?梁)

백령조숙숙(百靈朝肅肅)

만목옹창창(萬木擁蒼蒼)

태석간신수(苔石看神獸)

총림과불향(叢林過佛香)

청시홀유증(淸詩忽有贈)

백수돈생광(白首頓生光)

 

교산 속에 정자각이 서 있거니와

단청의 빛 기둥 들보 환히 빛나네.

백 신령이 엄숙하게 조회를 하고

만 나무가 울창하게 에워싸 있네.

이끼 낀 돌 신수들의 모습 보이고

총림에는 불전 향기 스쳐 지나네.

맑은 시를 그대가 홀연 보여 주시니

흰머리의 내겐 문득 광영스럽네.

 

김상헌의 문집 〈청음집〉제4권에 실린 이 5언율시의 제목은 ‘광릉(光陵)을 봉심(奉審)한 뒤에 봉선사(奉先寺)에서 묵으며 동행한 판서 장지국(張持國)의 운에 차운하다’이다. 장지국은 장유를 말하는 것이다.

청음 김상헌이 광릉에서 볼 일을 보고 봉선사에 묵으며 장유의 시에 차운한 작품은 광릉과 봉선사를 수호하는 신령들을 빽빽한 나무숲으로 묘사하여 묘한 설득력을 얻는다. 거기에 능침의 석물들이 능을 보호를 하고 있으니 선왕의 능침은 안전할 수밖에 없다.

불단에 피워놓은 향으로 봉선사의 청정성을 강조하고 시를 지어 보여주는 동행이 있어 마음은 더욱 흡족한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세도록 살고 있는 자신은 동료가 보여 주는 시 한 수에도 복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를 다 겪은 김상헌이고 보면 더 이상 거친 세파가 없을 정도로 곡절의 날들을 살았다. 전국을 누비며 전쟁을 치러야 했던 그는 많은 시를 남겼고 민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러므로 세조의 광릉에서 능침과 사찰을 둘 아니게 보며 서로 보호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가슴 가득 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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