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봉사 上

▲ 조선 선비들은 관동팔경과 금강산 유람을 하며 건봉사를 지나다녔기에 건봉사를 주제로 한 시를 남기곤 했다. 건봉사 적멸보궁에 세워진 부처님 치아사리탑
염불만일회의 도량

건봉사(乾鳳寺)는 신라고찰이다. 아도화상이 처음 절을 짓고 원각사라 이름 지은 것이 건봉사 역사의 시작이다. 758년(경덕왕 17)에 발징(發徵)화상이 중건하고 정신(貞信) 양순(良順) 스님 등과 함께 염불만일회를 결사하면서 절의 면모가 일신 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건봉사의 만일염불결사는 규모가 대단히 커서 스님 31명과 재가불자 1820명이 동참했다고 한다. 건봉사 염불만일회에 참여했던 염불승 31명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 극락왕생했다는 이야기는 신라시대 정토신앙이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임진왜란 이후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찾아 온 부처님 치아사리를 모시면서 건봉사는 다시 사격이 확장 되었다. 1802년(순조2)부터 32년간 지속된 제2차 염불만일회를 통해 다시 정토신앙의 중심이 되었으나 거듭되는 화재로 절의 규모는 확장되지 못했다. 건봉사는 한국전쟁 이후 40여 년 동안 민간인 출입통제지역에 갇혀 있었으며 1989년 이후 출입이 허용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건봉사는 염불만일회라는 거대한 염불결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불교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 고찰이다. 문학적인 측면에서는 위치가 강원도에서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목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조선 선비들의 경우 관동팔경과 금강산 유람을 하며 건봉사를 지나다녔으므로 건봉사를 주제로 한 시를 남기곤 했다. 그래서 건봉사를 주제로 한 시편들의 대부분이 고찰의 경치나 역사 유적을 읊은 것이다.

 

노승행주지고암(老僧行住只孤菴)

미대산광어대람(眉帶山光語帶嵐)

금일위수망반일(今日爲誰忙半日)

백두정절배심참(白頭旌節倍心慙)

 

노승이 머무는 곳 다만 외로운 암자

눈썹은 산 빛, 말씀은 아지랑이를 두른 듯

오늘 반나절 무얼 그리 바빴나?

흰머리 절도사 노릇 부끄러운 맘 더하네.

 

이명한(李明漢 1595~1645)은 1639년에 강원 관찰사에 제수되고 이듬해 금강산을 유람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건봉사에서 이 시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제목은 ‘관해의 운을 빌어 건봉사 노승에게 주다[次觀海韻 贈乾鳳老僧]’. 이명한의 문집 〈백주집(白州集)〉 제4권에 실려 있다. 관해의 운을 빌었다는 것은 관해(觀海) 이민구(李敏求 1589~1670)가 금강산 유람을 하며 지은 〈동유록(東遊錄)〉에 실린 시 ‘모우하유점 증동행승(冒雨下楡岾 贈同行僧)’의 운자를 빌어다 썼다는 의미다.

시에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건봉사 암자의 노스님이고 한 사람은 시를 짓는 이명한 자신이다. 첫 구절의 외로운 암자는 건봉사에 소속된 암자이거나 독립된 스님의 거처를 의미한다. 이 고요한 산사에 당도한 시인은 비록 절도사의 신분이지만, 무상한 인생을 놓고 보면 한갓 중생에 불과하다.

고요한 암자에 거처하는 노스님은 눈썹이 산 빛을 닮아 있고 말씨마저 아지랑이처럼 신비롭다. 초세간적 공간에서 만난 출세간의 풍모를 보는 시인은 허망한 세속의 일로 분주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산사라는 공간은 그것을 보고 느끼는 자체로 일종의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동남월출해운심(東南月出海雲深)

고사삼송협로음(古寺杉松夾路陰)

오여노승동불매(吾與老僧同不寐)

불전잔촉조고음(佛前殘燭照孤吟)

 

동남쪽 달 떠오른 구름 낀 바다

고찰의 삼나무 소나무에 그늘져 좁은 길

이 몸과 노승은 함께 잠 못 이루고

부처님 앞 촛불 외로운 읊조림 비추네.

 

이 역시 이명한의 시인데 앞의 시와 같은 때에 건봉사에서 쓴 것이다. 제목은 ‘건봉사 문상인의 시축에 쓰다(乾鳳寺 書文上人軸)’이다. 앞의 시가 건봉사에 도착하여 풍경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술회한 것이라면, 이 시는 늦은 밤이 시간적인 무대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신의 외로움을 생의 무상함에 담아내고 있다.

첫 구와 둘째 구에서 묘사되는 달이 뜬 산사와 구름 낀 바다, 무성한 삼나무 소나무 그늘로 인해 좁아져 보이는 길의 대비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애환을 닮아 있다. 그리하여 자신도 노승도 단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심경은 결구에서 극에 달해 고독과 근심을 타고 남은 촛불[殘燭]과 외로운 신음소리[孤吟]로 일체화 하고 있다. 시인은 건봉사에서 하루를 묵으며 벼슬살이의 덧없음과 인생의 무상을 아주 절실하게 느낀 듯하다.

무상 일깨우는 물소리 바람소리

이인엽(李寅燁 1656~1710)의 경우도 금강산을 유람하는 길에 건봉사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시를 남겼다. 그는 36세 되던 해(1691년) 가을에 건봉사를 거쳐 금강산을 유람하고 12월에 전라도로 암행어사를 제수 받았다고 한다.

 

야숙백운사(夜宿白雲寺)

한종시자면(寒鍾時自鳴)

전임유간고(殿臨幽澗古)

월도상방명(月到上方明)

산취의삼윤(山翠衣衫潤)

풍천침점청(風泉枕?淸)

고등급불매(孤燈伋不寐)

만예청추성(萬壑聽秋聲)

 

잠 든 산사엔 흰 구름 떠 있고

차가운 종소리 때 되어 절로 우네.

전각에 임한 옛 골짜기 그윽하고

달은 높이 떠올라 밝구나.

적삼에 젖어드는 푸른 산

대자리에 누워 바람 소리 물소리 듣네.

외로운 등불에 잠들지 못하는데

계곡 가득 가을소리 들리네.

 

이인엽의 문집 〈회와시고(晦窩詩稿)〉에 실린 이 시도 가을밤의 고즈넉한 건봉사 풍경과 그 속에서 세간의 덧없음을 느끼는 선비의 심정이 토로되어 있다. 산사는 그 풍경 안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수행이 되어버리는 그런 곳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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