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 타고 내리는 게 있듯이 되는 것도 법 안되는 것도 법입니다. 안되는 건 되기 위해서 안되는 거니까 그것을 재료로 삼아야지 항상 그것을 업으로 삼고 또는 병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항상 병고에서, 애고(哀苦)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그래서 부처님들은 “어이구!” 예전에 선지식의 제자들께서 “나는 아주 시끄럽고 공부를 못 하겠으니까 산으로 토굴을 묻고 올라가야겠습니다.” 하니까 “너 그러면 땅도 딛지 말고 옷도 입지 말고 먹지도 말고…, 하하하, 남의 꽃을 보고 좋아하지도 말고 아예 물도 마시지 말고, 그렇게 해라. 아이, 토굴을 짓더라도 남의 나무를 꺾어다가 지어야 하니까 그것도 남의 거를 왜 갖다가 짓고서 공부를 하려고 그러느냐?” 그런 말씀에 홀연히 깨쳐서 토
일체제불의 마음은 항상 내 마음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의 안테나를 세워 놔야 일체제불의 마음이 내 마음을 통해서 불이 들어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집이 부족해서 쌀쌀하고 추운 날도 이렇게 여러분들을 바깥에 서 계시게 해서 죄송한 마음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한자리를 하게 됐고 이렇게 더불어 같이 한 찰나에 한자리를 하고 한 찰나에 떨어지고 한 찰나에 한마음이 되고, 이렇게 묘한 법을 우리가 한자리에 도반으로서 같이 공부하게 된 것을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으로 태어나서 우리가 이 도리를 모르고 간다면 세세생생에 이 자리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를 여러분이 더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면은 걸어온 발자취가 없듯이 우리가 지금
‘이건 불법이 아니라 삿된 마음이고 망상이기 때문에 끊어야지.’ 한다면 자기 마음 깨닫기는 영영 그른 겁니다. 사람이 참사람이 되려면 이런 데도 엎드러져 보고 저런 데도 업드러져보고 이런 데도 들어가 보고 저런데도 들어가 봐야 합니다. ? 어느 게 참 불법인지 모르겠습니다 문) 요즘은 종교도 너무 다양해지고 불교 내에서도 너무 많은 종파들이 있어서 어느 것이 참 불법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인들보다 더 흉악한 행을 하는 종교인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야 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답) 아무리 사람이 죽고 또 나고, 떴다 가라앉았다 떴다 가라앉았다 하지마는 이 진리만은 절대로 변동을 시킬 수 없고 그대로 여여하고 그대로 부동하죠. 그러니 우리 자체가 그렇게 살림살이에 하
그저 남의 거친 것만 보지 마세요. 내 가기도 지금 바쁩니다. 거친 걸 보면 거친 대로 주인공에 맡겨놓고 보는 게 없이 보고 듣는 게 없이 듣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을. 내가 있으니 보고 듣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시라 이겁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2(남): 제가 공부를 해나가다 보니 직장도 뭐, 특별히 목표를 세워서 출세를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마저도 자연스럽게 놔지고, 또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어떻게 돼야 한다는 그런 욕심도 ‘그냥 자기 업대로 인연 따라 살겠지.’ 하고 놔지고 와이프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놔졌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떤 변화가 왔느냐 하면, 제가 환자여서 지금 현재도 불편하면서도 환자라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그냥 평소에 생활을 하
우리가 수련한다는 것은 맡겨놓는 작업입니다. 숙명통 컴퓨터에 입력되어 악업 선업이 자꾸 나오는데 지금 현실에 나오면 나오는 대로 거기다 되놓으면 앞서의 것이 없어지고 또 놓으면 또 없어지고 또 놓고 이래야만이 내 마음이 스스로 밝아져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소립니다. 우리가 사는 데는 한 달, 한 달이 있고 날이 있지만 여러분과 같이 앉았던 때가 바로 이 자리라고 봅니다. 사람은 항상 날짜를 따지고 월을 따지고 년을 따지고 하지만, 불바퀴는 시공이 없이 항상 여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불바퀴라는 그 자체가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평상시에 살아나가는 것이 그대로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자나깨나 말입니다. 여러분 중에 화두 참구가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여러분이
지금은 훌떡 넘어서야 할 세상입니다. 수박을 놓고 ‘이게 뭣고.’ 하기 이전에 그냥 무조건 수박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우물쭈물하다가 자전거에 치이듯이 우물쭈물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대로 잘라 먹고 넘어가라 이겁니다. 한결같은 믿음으로 공부하고 싶어요 문) 공부를 해나가다 보니 자신에 대한 믿음이 많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확실히 믿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없어지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결같은 믿음으로 공부를 할 수 있을는지요. 답) 우리는 생각하는 데에 이게 금방 믿었다가도 다른 큰 일이 생기면은 금방 그 믿었던 마음이 변하죠. 변할 때 그 지장이 얼마나 있는지 몰라요. 그거 모르실 거예요. 핏줄이 이렇게 돌다가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고
죽어야 나를 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죽은 세상으로, 관 속으로 들어가는 놈이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고 이것 참견하고 저것 참견하고 한다면 어떻게 죽은 세상의 맛을 보겠습니까. ? 그래서 마음이 죽으라고 했습니다. 몸이 죽으라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주인공에다 놓고 일임하면 마음이 죽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의 세계, 저승길 들어가는 길이에요. 죽은 사람의 이치를 모르고 산 사람을 어떻게 건집니까. ? ? 가을과 봄은 많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살기 좋은 때죠. 우리가 공부하는 것도 덥고 춥고를 떠나서 그렇게 봄을 기다리는 길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어떤 얘기를 들었는데 혹시라도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할까 봐 한마디 얘기하고 질문을 받겠습니
자기 마음을 가지고 왜 마음대로 못하십니까. 들어오는 대로 죽든지 살든지 그까짓 거 내팽겨쳐 버린다면 왜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못하겠습니까. 왜 마음 도리를 알아야 하는 것인지요 문) 우리가 세상을 사는 데는 자기 양심에 거리낌 없이 바르게 살아가면 될 것 같은데 왜 이 마음 도리를 알아야 하는 것인지요. 답) 사람이 말입니다, 자기 정신이 없으면 무효예요. 육신이 무효예요. 송장이 된단 말입니다. 정신과 그 자기 마음, 이렇게 해서 총동원해서 같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은 언제나 빼놓고 자기 마음, 자기가 이 의식 속에서 나오는 걸 마음이라고 그러고 그냥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물질세계의 50%만 가지고 사는 폭이 되죠, 자기가 알기를. 본래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이 아니게끔 지금
사람이 별거 아닌 거 가지고도 이 천지를 획득할 수가 있고, 그저 규모가 큰 거를 향해서 간다고 해서 크게 깨치는 게 아니에요. 자기 발 밑에서 깨쳐야 됩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그러니까 내가 항상 그러죠. 과거 미래 현재를 한데 합쳐서 떡을 세 켜만 해놓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으면은 많은 대로 일곱 켜를 해놓고, 많으면은 아홉 켜를 해놓더라도 그저 세 켜만 해놓고 해도 되고, 또 세 켜를 못 해놓으면 한 켜만 해놔도 초, 향 그리고 다기물, 큰 그릇에 물 떠서 상 옆에 하나 놓고, 너무 섭섭하걸랑 과일 세 가지를 한데 합쳐서 한 그릇에 놓고 그러고 지내면 벌써 조상들은 법당에 들어오면 어디부터 보는 줄 아십니까? 스님네들 마음부터 봅니다. 그러면 스님네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수박을 화두로 삼아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이거를 굴리다 보면은 그 속에 씨가 들었는지, 맛이 어떤지 도저히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거, 그게 뭐가 그리 겁납니까? 오늘 죽은들 어떻고 내일 죽은들 어떻고 모레 죽은들 어떻고 안 죽은들 어떻고, 뭐가 걱정입니까? 그냥 그대로 수박을 용기 있게 깨뜨려서 먹어볼 수 있는 그런 계기가 필요합니다. 여러분과 또 같이 한자리를 하게 됐습니다. 이제 그 더운 여름은 지나가고 가을로 접어드는군요. 우리 마음자리는 항상 사철이 따로 없듯이, 공부하는 데도 서로 도반으로서 같이 열심히 해봅시다. 우리는 이 마음이라는 정신계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리만큼 그렇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공부를 하지
무슨 일이든 부처가 있다면 할 거고 부처가 없다면 못할 거 아닙니까. 그렇게 편안하게 생활을 살아라 이겁니다. 물에 파도가 치면 파도 치는 대로 잔잔하면 잔잔한 대로 어떠한 용도에 위기가 닥쳐온다 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주처에 놓고 갈 수 있다면 그건 최고예요. 문제가 있든 없든 관할 수 있으려면 문)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그 문제 해결을 위해서 간절하게 관하게 되는데 문젯거리가 없을 때는 관하는 것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문제가 있거나 없거나 평상시에 늘 관하는 게 일상화 될 수 있겠는지요? 답)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공부하라고 그러죠. 와선이나 입선이나 좌선이나 행선이나 둘이 아니라고요. 항상, 하다못해 변소에 똥을 누러가도 참선이라고요.
자기가 마음대로 가지고 할 수 있는 자기 보배! 그런데 여러분이 원래 주장자가 있어서 보배가 그렇게 나오는데 자꾸 딴 생각이 나오게 옆댕이에서 꿰져요. 그러니까 거기에 속지 마라. 나오는 대로 무조건 거기다 맡기고 살자 이겁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그러니 여러분이 이거부터 알아야 되지 않나…. 내가 벗어나야 아무 데고 가도 간 흔적이 없죠. 그렇죠? 그런데 벗어나지 못하면 흔적이 남죠. 아, 요기 한 발짝만 떼어도 벌써 흔적이 나오는데 어딜 갑니까? 그러니까 ‘창살 없는 감옥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 고에서 벗어나라, 벗어나라.’ 부처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습니까? 거기서 더 말하라는 겁니까? 벽은 쳤는데요, 봇장이 울리는 건 여러분이지 어떡합니까? 그러니 여러분도 좀 더 이것을
관습으로 인해서 내가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입력돼서 컴퓨터에 나오니까 자유스럽게 살 수 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창살 없는 감옥에서 벗어나야 된다 이 소립니다. 이렇게 형제 법우님들하고 같이 한자리를 하게 된 것도 벌써 몇 달 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모든 것을 볼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행으로부터, 그 작용으로부터 발전을 시키고 이 세상을 조절해 나가는 바로 지구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마음 하나 잘 먹으면 이 세계를 다 조절할 수 있고, 또 우리나라를 유지시키고 개발시키고 좀 더 평화롭게 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것이고, 우리가 마음 하나 잘 먹지 못하면 평화가 아니라 괴로움과 여러 가지의 불미스러운 일들을 낳게 되겠죠. 여러분이 더 잘 아시겠지만, 우리
그저 의심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여러분을 의심하면 누구를 믿습니까. 못났든 잘났든, 궁하든 부자든 자기가 자기를 믿어야 합니다. 자기 정신계의 참자기를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나라도 돌볼수 있게 됩니다. 환생하신 조상에게 천도재가 의미 있나요 문) 우리가 천도재를 지내는데 이미 다시 환생하신 조상님들에게도 그 천도재가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답) 옛날에 어머니는 노망하시고 그 아들이 죽었더랍니다. 죽어서 그 어머니가 제사를 지내 주게끔 되어 있어서 제사를 해마다 그렇게 아드님을 위해서 지냈더랍니다. 근데 아들이 어느 정승의 집안으로 다시 태어나서 아주 잘사는데도 그 아들이 해마다 같은 날 꿈을 꾸면은 그 노인네가 그냥 부엌에 들어가서 일을 하시면서 그 밥을 꼭 그렇
여러분이 진짜로 어항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면 아주 반드시 ‘마음은 체가 없구나. 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됐다가 저게 됐다가 마음대로 자유자재할 수 있구나.’ 하는 거를 느끼고 알아서 실천을 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복이라는 것은 남이 농사지어 놓은 데 가서 ‘한 됫박 주시오.’ 하고 얻어먹는 것이고, 공덕이라는 것은 아까도 얘기했듯이, 전체가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해서 같이 서로서로 빈 데를 도와주는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두 손가락으로 집는 거하고 열 손가락이 다 한데 합쳐서 드는 거하고 차이가 얼마큼 나는지 모릅니다. 이 마음의 도리, 마음의 섭류는 우주 삼천대천세계, 즉 과거 현재 미래를 같이, 전체가 돌아가는 법계를 한 손으로 들 수가 있어서 이게
물에도 소용돌이가 있고 허공 바람 속에도 소용돌이가 있고 마음의 불 속에도 소용돌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 소용돌이를 한 계단, 두 계단, 세 계단 넘어서야만이 우리의 마음을 자유스럽게 쓸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께서 이렇게 한자리를 해 주시는 것을 보니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비가 오거나 그러면 여러분이 안 오실 줄 알았더니, 가죽 속에 물이 들어갈 리가 있느냐 하고 이렇게 오신 것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합니다. 정말 여러분의 마음은 산천초목과 더불어 우주 전체를 한마음으로 둥글릴 수 있는 그런 능력들을 다 가지신 것 같습니다. 참 감개무량합니다. 옛날에 이런 얘기가 있죠. 비하고는 관계없는 말이지마는, 어떤 집에 초상이 났는데 그 집에
몸 떨어지기 전에 이 마음도리를 알아야 될텐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분별에서 헤어나지 못하신다면 영원히 위로는 묵은 빚도 갚지 못하고 아래로도 주지 못하게 되고 세세생생에 항상 고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주인공과 계합하기 위한 실천행은 문)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달아 주인공에 계합이 되려면 어떤 실천행을 해야 되겠습니까. 답) 우리가 이 진리를 탐구하는 데는 열심히, 어떠한 것도 보지 말고 어떠한 분별을 가져서도 아니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분별을 하면은 통달을 못한다.” 하셨습니다. 벌레 속에 들어가도 어리석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고, 또 돼지 속에 들어가도 어리석다는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삼독이나 역시 일체 번뇌 망상, 이 속에서도 걸림이 없고 분별이 없어야 합니다. 누가 죽
부처님의마음과 조상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 풀 한 포기의 마음이 둘이 아니게 모두 합쳐서 나의 마음속에 찰나찰나 들고 나시니 어찌 내가 당당치 않으리오. (지난 호에 이어서) 모두가 그렇게 돌아가는 그 자체를, 즐거워도 즐거워하지도 말고 거기에 착 놓고 ‘이 즐거움도 거기서 즐겁게 나오게 했구나. 또 괴로움도 거기서 괴롭게 나오게 했구나. 모두가 그놈한테서 나온 거로구나!’ 이러면서 지켜보시라 이겁니다. 팥죽 속에서 팥죽 방울이 다 나온 거지 팥죽이 없는데 어떻게 팥죽 방울이 나오겠습니까, 네? 그러니 그렇게 팥죽 방울이 많이 나와서 꺼지고 일어나고 꺼지고 일어나고 꺼지고 일어나고 그러듯이, 여러분의 살림살이가 다 팥죽 솥에서 팥죽 끓듯 하는 살림살이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먹고 싸 버리고,
마음 한 번 잘못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남을 이익하게 하는 일은 하시고, 악한 마음이 나올 때는 근본에다 놓고 한번 굴려서 다시 좋은 마음으로 나오게끔 다스리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과 더불어 광명선원 신축 건물 착공식을 한마음으로 한 몸으로 이렇게 같이 행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왜 이 세상에 나서 이렇게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 흙을 파내도 흙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물도 말없이 흐르고, 봄이 오면 말없이 잎이 푸르르게 나오고 꽃이 피는가 하면 가을이 되어 저절로 낙엽이 져서 떨어지곤 하지요. 이 무상의 도리를 여러분이 알아야만 이 세상을 살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무상의 도리다’ 한다면 무심의 도리도 알아야 합
진짜로 내 몸뚱이 하나와 더불어 같이 그냥 송두리째 죽고 산다 뭐, 괴롭다 괴롭지 않다를 다 당신 주인공에다 일임해 버리면 죽고 사는 것도 아랑곳 없어요. 그럼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인데 걱정할 게 뭐 있습니까. 좀 허허 웃고 사세요. 좀 더 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길은 문) 직장 생활이 바빠서 절에 나가기는 힘들지만 나름대로 참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정진하고 있습니다. 좀 더 쉽게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답)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한테 모든 걸 주인공에 맡기고 살아라, 맡겨 놔라 이럽니다. ‘맡기고 살아라.’ 이러면 여러분이 더 실감이 날 거 같아서 맡기라고 그랬습니다. 한군데다 맡겨라. 한군데다 믿고 맡겨라. 믿지 못하면은 맡길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무조건 맡겨라.’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