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모든 것을 한마음 주인공에 맡기고 살아가세요

▲ 그림 최주현

그저 남의 거친 것만 보지 마세요.
내 가기도 지금 바쁩니다.
거친 걸 보면 거친 대로 주인공에 맡겨놓고
보는 게 없이 보고 듣는 게 없이 듣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을.
내가 있으니 보고 듣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시라 이겁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2(남): 제가 공부를 해나가다 보니 직장도 뭐, 특별히 목표를 세워서 출세를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마저도 자연스럽게 놔지고, 또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어떻게 돼야 한다는 그런 욕심도 ‘그냥 자기 업대로 인연 따라 살겠지.’ 하고 놔지고 와이프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놔졌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떤 변화가 왔느냐 하면, 제가 환자여서 지금 현재도 불편하면서도 환자라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그냥 평소에 생활을 하다가 오르막 길이든지 내리막 길이든지, 현실에 부닥쳐서야 ‘아 참, 내가 아프지.’ 하고 그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게 무슨 도리인지 지금도 의정이 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병도 그렇고 또, 직장 일에도, 무관심한 건 아니었지만 주어진 여건을 소화만 해 나갔는데도, 역시 또 생각보다 빠른 진급을 했습니다, 금년 7월에요.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안달을 해도 잘 안되더니 그냥 맡겨 버리고 생활을 하다 보니까 되더군요. 이것이 맡기는 도리인지, 그래서 진급도 이렇게 해서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환자라는 생각과 자기를 비하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넘어지면 어떡하나, 차를 못 타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염려하는 버릇이 없어져서 경우에 따라서 자가용이 없으면 좌석버스도 타고 그렇게 생활을 합니다, 불편하면서도.

요즘 많이 생각하는 의문이 뭐냐 하면, 도대체 등산하다 넘어진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어디 눈에 보이는 상처 부위가 있어서 진행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다리가 가늘어지는 것인지, 그렇다면 이것은 현세의 어떤 업이 아니라 전생에서 제가 무슨 업을 지어 가지고 온 모양인데, 이게 무슨 업으로 내가 이렇게 되는지, 그리고 또 이렇게 녹여 나가다 보면 그 업도 금생에 녹여져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지 이 부분이 참 궁금해서 큰스님께 여쭤 보고자 나왔습니다.

큰스님: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과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두 부부 사이에서 몸 하나를 받아서 내 영혼과 인연의 줄을 다 끌고 한데 합쳐집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 됩니다. 그런데 그 과거의 인연들이 전부 내 배낭 속에 있습니다, 지금 모두가. 그러니 과거는 없어요. 그래 배낭 속에 있어 가지고 배낭 속에서 과거에 지은 업이 그냥 나오는 겁니다, 그대로. 몸으로 반영되기도 하고, 괴로움으로 반영되기도 하고, 애고로 반영되기도 하고, 유전성으로도 되고 영계성으로도 되고 아주 뭐 복잡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녹이려면 모든 것에, 아까 얘기한 거와 마찬가지로 무조건 이유를 붙이지 마세요. 거기서 나온 거니까 무조건 거기서 해결할 수밖엔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맡겨 놓고, 거기서만이 해결을 할 수 있고, 거기서만이 낫게 할 수 있고, 낫게 해서 끌고 다니는 것도 거기서만이 할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까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그렇게 자기 한마음 주인공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 가세요. 이열치열이란 말도 있죠. 거기다 놓으면 거기서 해결이 나는 겁니다. 모든 게 녹아지고요.

그것이, 즉 말하자면 인과로 인한 업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모두 관습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그게. 업이 달리 생기는 게 아닙니다. 모두 살아온 관습 때문에 엄청난 문제가 벌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문제도 세포 하나하나에 중생들이 들어 있으면서 악이면 악으로 갚으려고 하고, 선이면 선으로 갚으려고 두서없이 나오는데 그 나오는 중생들의 의식은 좋고 나쁜 걸 몰라요. 그러니까 사람이 다스려야 된단 얘깁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모든 것은 한마음이다. 한마음 주인공만이 해결할 수 있다.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거기서 해결을 한다.’ 이러면 원수졌던 마음이 그냥 까맣게 잊혀지고 그냥 하나로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뭐 특별히 우뚝 솟는 거는 없다 하지만 차차차차 그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정말이지 밝은 세상을 사시게 됩니다.
아까도 질문할 때에 나의 과거를 물었지마는, 내가 이렇게 대답하려고 했습니다. “나는 모르는 걸 배워서 모릅니다.” 이렇게 하려고 했는데 여러분을 위해서 그냥 그렇게 얘기했던 겁니다. 어저께가 따로 있고 오늘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은 그대로 그대로 돌아갑니다.

질문자3(남): 간단하게 여쭙겠습니다. 그 동안 큰스님께서 늘 가르쳐 주신 대로 모든 걸 맡겨 가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타나는 경계마다 모든 걸 주인공한테 맡겨 가면서 맡긴다는 사이 없이 생활을 해 오고 있는데, 제가 한 가지 의정나는 것은 그 동안 건건이 나타나는 경계를 주인공에 맡겨 가면서 그것이 또 관(觀)한다는 개념에서 이루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늘 하면서 감사하게 생활하고 있는데요, 요즘 제 생활 속에 갑자기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들이 밀려오니까 저의 힘이 부족해서 해결이 안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가슴속에 큰 응어리가 져서 풀어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우선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 낱낱이 오는 그런 경계인 줄은 압니다마는, 한꺼번에 밀려왔을 때 그 낱낱의 문제가 어떻게 하면 해결될 수 있는가 하는 그런 말씀을 여쭙고 싶습니다.

큰스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나하나 실험을 하고 체험을 하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가다가 보면, 몰아서 닥치는 것도 댁이 공부하는 데에 테스트해 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봅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작은 거나 큰 거나 엄청 많은 거나 둘이 아닙니다. 하나가 풀어지면 다 풀어지게 돼 있습니다. 댁도 그런 상황이죠. 그러니까 여러 개가 나타나든, 용도에 따라서 그냥 쫙 오든, 하나가 오든 쬐그만 게 오든 그것은 모두가 똑같습니다, 작용하는 것은. 어렵게 생각을 하고 어이구, 여기도 오고 여기도 오고 여기도 오고 이러는구나. 팥죽 속에서 팥죽이 끓어서 팥죽 방울이 온갖 군데에서 나오는데 그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자3(남):
하나죠?
큰스님: 네, 하나죠. 그러니까 다 끓었으면 불만 끄면 금방 아닙니까? 허허허. 그런데 뭐 그렇게 여러 가지 얘기를 합니까? 짐승 몸을 가졌을 때는 모두가 잡아먹히고 잡아먹고 이렇게 살던 습이 있겠지만, 인간으로 돼 가지고는 정신을 뺏기느냐 뺏느냐에 달려 있는 겁니다, 정신을요. 지금은 정신을 뺏어 먹는 시대다 이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게 알아야 안 뺏기고, 알아야 모두 굴리죠.
엊그저께도 차를 타고 가면서 보니까 찻길이, 가는 길이 있으면 오는 길이 있습디다. 가는 길과 오는 길, 양면이 다 작용을 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런데 태어난 것도 생각 없고, 가서 죽는 것도 생각 없고 지금 가고 있는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런데 가는 것이라면 다시 돌아서 오는 것도 생각해야 이것이 핀트가 맞아지죠. 그래서 ‘시발점과 종점이 둘이 아니다. 정신계와 육신이 둘이 아니다. 동쪽과 서쪽이 둘이 아니다. 넓게 본다면 여자와 남자가 둘이 아니다. 모습은 다를지언정 어찌 마음이야 둘이겠는가?’ 이런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나 아닌 나’와 지금 ‘현상의 나’가 바로 같이 작용을 할 줄 알아야, 모든 일체 만법을 굴릴 수 있고 자동적으로 자유스럽게 들이고 낼 줄 아는 것입니다. ‘나’를 발견 못한다면…. 그래서 ‘나 아닌 나’는 부(父)라고 하고 지금 ‘현상의 나’는 자(子)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와 자가 상봉을 해야 작용을 하고 이끌어 간다 이겁니다.

몇 달 됐지마는 L.A.에 갔을 때, 하버드 대학에 있는 박사나 그 외에 석사 학위나 박사 학위 받으려고 논문을 쓰고 있는 생물학자니 철학자니 과학자니 뭐, 많은 분야의 사람들에게서, 나한테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질문에 대답을 해 주면서 토론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아주 아래 위가 딱 맞게, 그냥 그 논문이 잘 써지더라는 거죠.
하여튼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저녁이 아침이고 아침이 저녁이다, 저녁과 아침이, 24시간이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생각을 했는데 내일 아침에 생각이 났다, 이러더라도 끊어진 게 아닙니다. 그냥 맞붙어 버린 겁니다. 삼천 년 전이나 오늘이나 똑같이 오늘인 것입니다. 그와 같이 삼천 년 후도 오늘이요, 삼천 년 전도 오늘입니다. 오늘도 화(化)해서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고 있으니 그게 바로 무엇입니까? 찰나찰나 나오는 대로 작용을 일으키고 나가는 것이 인간 아닙니까?

옛날에 어떤 조사가 있었는데 제자들을 데리고 탁발을 하러 나갔습니다. 탁발을 하면서 성문 앞을 지나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자기 은사가 생전 그러지 않더니 아주 슬픈 내색을 하는 겁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아주 슬프게 말입니다. 그래서 ‘참, 내가 여직껏 은사 스님을 모셔왔어도 우시는 일이 없고 슬퍼하시는 일이 없었는데 저게 무슨 일인가?’ 해서 여쭸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아니다, 이따가 얘기하마.” 그러고 가시거든요. 얼마쯤 가다가 보니까 나무에서 참새들이 재잘거리는 소릴 듣고선 아니, 화창하게 웃으시더라 이겁니다. 아주 화창하게 웃으시니까 “아니, 또 웃으시는 건 무슨 까닭입니까. 생전 울고 웃는 것을 못 봤는데 아니, 그것은 또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물으니 “그래, 가서 얘기하마.” 그러면서 처소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저녁 공양을 하고 나서 아까 있었던 일을 끄집어내서 여쭤 봤습니다. 여쭤 보니까 글쎄, 성문 바깥으로 지나가는데 아주 그냥 말라 빼들어진 귀신이, 즉 말하자면 아귀가 앉아서 있다가 그 스님을 보더니 달려들어선 매달리며 살려 달라고 그냥 애원을 하거든요. 애원을 하길래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아, 성 안으로 밥 얻으러 간 어머니가 오백 년이 되도록 안 나온다는 겁니다. 허허허. 그러니까 스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으니…. 내 어떤 땐 웃음이 나옵니다. “스님께선 꼭 그럭하실 수 있으니 성 안으로 들어가셔서 우리 어머니를 만나시걸랑은 우리 어머니한테, 이 아들이 성 바깥에서 이렇게 빼들어져서 말라 죽기 직전에 있으니 그렇게 일러 달라.”고 하거든요.

제자들이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니까, 그래서 성 안으로 들어가서 그 어머니를 만나서 그런 얘기를 하니까 “자기도 오백 년이 되도록 밥 한 술 얻질 못해서 빼들어져서 말라 죽기 직전에 있어 나가지 못했노라고 일러 달라.”고 하더랍니다. 허허허. 그래서 그 스님께서 탁발한 밥을 좀 나눠 줘서 먹이고 나니까 아, 싱싱해져서 바깥으로 나와 가지고 그만 상봉을 했죠. “아들과 어머니가 천지가 상봉을 하듯이 상봉을 해서 그렇게 좋은 일이 있었단다.” 이러시거든요. “그럼 아까 왜 우셨습니까?” 하니까 “하도 애원을 하는데 불쌍해서 그랬느니라.” 이러고, “웃음은 왜 웃으셨습니까?” 하니까 웃으면서 하는 소리가 “글쎄 이것 좀 들어 봐라. 내가 전자에 입산을 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아, 내 자식놈이 발목을 쥐고선 그냥 못 가게 해 가지고, 나 죽이고 떠나라고 하도 그러길래 그냥 못하고 그러다가 어떻게 죽어서 사대를 벗고 돌아다니다가 이제 이렇게 입산을 했느니라.”이러거든요. “그러는데 아, 가다 보니까 그 참새가 바로 과거의 내 아들 녀석이 아니더냐? 그래서 너무 반가와서 웃었느니라.” 이러거든요.

그러니 그 모두가 비유해서 말해 놓은 것이지만, 비유가 아니라 진짜입니다. 진짜인데 반을 못 보니까, 못 보는 사람한테 뭐라고 말을 합니까? 그러니까 반 얘기만 한 거죠. 그래 몸은 성 밖에서 제자들과 같이 있으면서 성 안으로 들어가 그렇게 했다니 말입니다. 허허허. 그러니까 어떤 때는 “스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럴 때 그 생각을 하고 웃습니다. 하여튼 이것이 우리가 그냥 왔다 갔다만 하는 그런 공부가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거짓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공부를 하신다면 마음으로 빛보다 더 빠르게 달나라에 가서 한쪽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고, 전체를 들을 수 있고, 또는 시시각각으로 화해서 나투기도 할 수 있고, 진드기 하나도 버리지 않고 내가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원하면 한마음이 돼 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평발이라고 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평발이다! 지렁이가 발이 없지만 지렁이 발 하나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그렇게 할 수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예를 들어서, 지금은 모르지만 내가 만약을 얘기하는 겁니다. 내가 달나라에 가서 저 달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는지 그것을 알았다 한다면 여러분한테 얘기를 해야만 옳겠습니까? 그 얘기를 하면 귀신이 됩니다. 허허허…. 그리고 또 모자라는 사람으로 아주 그냥 돌아가 버립니다. 그러니까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모르는 척 이렇게 하면서 함이 없이 여러분의 그 괴로움을 덜어 주고 같이 해 주고, 아픔도 내 아픔과 같이 해 주고, 이렇게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이 공부입니다.
실천이 없다면 학술적으로나 또는 지식적으로나, 또는 과학적으로 해 봐도 공덕이 안 됩니다. 과학도 지금 물질과학으로 이렇게 한다면 아니 되고 정신의학이 돼야 하고, 정신과학이 돼야 하는 겁니다. 모두가 정신이 빠지면 안 되는 거죠. 아니, 하다못해 맷돌을 하나 돌리려고 해도 심봉을 꽂아야 맷돌을 굴릴 수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물질을 맷돌에 넣고 가는 것도 심봉을 꽂아야만 갈립니다. 그런데 심봉도 안 꽂고선 “갈려 나와라, 갈려 나와라.” 하고 바깥으로 쳐들고 빌고 온통 야단들을 하니 그게 어떻게 공덕이 돼서 갈려 나옵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공부를 해서 우리 한국뿐 아니라, 세계뿐 아니라 우주적으로도 모두가 실상의 그 실천을 그대로 평등공법(平等空法)으로 하시길 바라면서, 또 팔수레공법으로…, 허허허…, 모두가 이렇게 잘해 나가시길 바라죠. 그러면 다 살리느냐? 그게 아닙니다. 죽는 게 있어야 살아 나오는 게 있고, 또 죽는 게 있으면 살아 나오는 게 있고, 이게 원리입니다. 상대성 원리요. 이 상대성 원리의 인연의 끈이 달려 가지고 온통 그 끈을 왜 벗어나지 못하느냐? 엊그저께도 내가 그랬지만 거미줄에 얽힌 발목을 빼지 못해서 애쓰고들 있지 않습니까? 따지고 보면 거미줄이 뭡니까? 그것도 표현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으로 지어 가지고, 꿈을 꾸고도 그것이 석연치 않아서 온통 야단들을 하거든요.

이사를 가도 이사 잘못 가면 뭐가 잘못된다고 해서 날짜를 생각을 안 하나. 아니, 혼인을 해도 그렇질 않은가. 서로 좋으면 하는 거지 뭐 궁합이 따로 있습니까? 만날 그렇게 요만한 거 하나서부터 큰 거까지 걱정하는 걸로 그냥 인생이 끝나 버리는 거죠. 그러니 그러한 걱정들을 마시고 좀 활달하고 자유스러운 끝을 보시길 바랍니다. 내내 끝간 데 없이 이 진리는 그렇게 지금, 과거나 미래나 현실로 돌아가면서도 현실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듣는 거, 보는 거, 말하는 거, 만나는 거, 먹는 거 모두 어디 고정된 게 하나나 있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이렇게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는 이 진리를 타파하고 물리가 탁 터진다면, 하나가 터지면 백 가지, 천 가지, 만 가지가 다 터지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하시길 바라면서 한마디 말씀드릴 것은, 우리가 이 모습을 가지고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그저 남의 거친 것만 보지 마세요. 내 가기도 지금 바쁩니다. 그러니까 거친 걸 보면 거친 대로 거기다가 맡겨 놓고 보는 게 없이 보시도록 하십시오. 듣는 게 없이 듣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가 이 세상에 나왔으니까 내 탓이지 왜 남의 탓입니까? 내가 있으니까 내가 보는 거죠. 내가 있으니까 듣는 거지. 잘못된 것도 내가 있으니까 본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내 탓으로 돌리시라 이겁니다. 모든 것은 내 탓입니다.

그러니까 마음도 하나로 뭉쳐야 우리가 앞으로 젊은 세대들을 이끌어 가는 데 앞장서죠. 모두 여러분이 앞장서셔야…. 우리가 지금 속은 비고 겉만 꽉 차 가지고, 지금 정치도 모두가 그렇게 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문제가 생기는 원인도 거기 있고, 속이 텅텅 빈 나라가 되는 것도 그러한 문제 때문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 가지만은 칭찬할 만합니다. 본받을 만하고요. 남의 거 거저 먹지 않겠다는 사상 말입니다. 그전에 어려서도 그런 걸 많이 봤습니다. 물건을 접시에다 담아 가면, 그 접시를 그냥 보내는 일이 없습니다. 그거 한 가지를 보더라도 그렇고요. 또는 밥을 먹어도, 물론 불교의 발우공양에서 배워 간 공깃밥이지마는 그거를 먹을 때마다 “감사합니다.” 하고 먹는 겁니다. 그리고 남의 탓이 적고요. 악랄하게 했다 할지라도 악랄하게 하면 했지 탓은 안 한다 이겁니다. 허허허…. 죽으면 죽었지 내가 그렇게 어벙하게 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걸 그렇게, 수박을 놓고 “이게 뭣고?” 하고 돌아가지 말고 칼이 있으면 칼로 탁 잘라서 그냥 먹는 겁니다. 그러면 내세에 그 수박씨가 다시 나와도, 수박으로 다시 나와도 여전히 그 맛은 알 겁니다. 지금 한 생에 알아 놓으면 세세생생입니다. 죽으면 그만이 아닙니다. 지금 알아 놔야 요다음의 생에서도 또 뚜껑만 열면 그냥 모두 술술 나오죠. 그래야 세계가 평등해지고 모두 꽃이 피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그렇게 모두 공부들을 하고 가시기 때문에 평등해지려고 합디다. 허허허….

사회자: 대단히 감사합니다.

큰스님: 예, 하여튼 여러분 정신을 남한테 뺏기지 않도록 하시고 열심히 공부들 하시길 바랍니다.

※위 법문은 1991년 11월 3일 법형제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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