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털털이로 살면 아무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 그림 최주현

자기 마음을 가지고 왜 마음대로 못하십니까.
들어오는 대로 죽든지 살든지 그까짓 거 내팽겨쳐 버린다면
왜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못하겠습니까.

왜 마음 도리를 알아야 하는 것인지요

문)
우리가 세상을 사는 데는 자기 양심에 거리낌 없이 바르게 살아가면 될 것 같은데 왜 이 마음 도리를 알아야 하는 것인지요.

답) 사람이 말입니다, 자기 정신이 없으면 무효예요. 육신이 무효예요. 송장이 된단 말입니다. 정신과 그 자기 마음, 이렇게 해서 총동원해서 같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은 언제나 빼놓고 자기 마음, 자기가 이 의식 속에서 나오는 걸 마음이라고 그러고 그냥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물질세계의 50%만 가지고 사는 폭이 되죠, 자기가 알기를.
본래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이 아니게끔 지금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생각에 자기가 그냥 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영화배우들이 감독에 의해서 모든 거를 소임을 맡아 가지고 영화 탈렌트가 돼야 되는데, 감독은 쑥 빼 버리고 자기 자유껏 할 수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감독이라는 자체에 정신세계의 참자기가 있고 지금 물질세계의 현 자기가 있어요. 그런데 둘이 아니게끔 같이 지금 운용을 하고 있고 생활을 하고 있고 이러면서도 자기가 그거를 납득을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납득하기 위해서 공부는 해야죠. 정신세계를 모르면 우리는 지금 현 시대에 앞으로 점점 살기가 점점 급박해져요.

지금 모든 게 과학이 발전이 됐다 이렇게 해도, 로케트가 올라가고 컴퓨터가 이렇게 저렇게 되고, 놀라운 일들이 많지만, 예를 들어서 비행기가 간다 이러면 그냥 나온 대로 이게 컴퓨터에 의해서 조정을 해야 하지만 내가 마음먹는 대로 비행기가 움죽거린다면 그건 첨단의 일이에요. 이 공부가 그러한 공부예요. 자기 자유자재권을 얻기 위해서요. 지금 우리가 바로 이 중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중세계를 굴릴 수가 없죠. 중세계가 요렇게 이 컵이라면 아니, 이 중세계가 버스라면은 버스 속에 다 타고 여러분이 다녀도 버스가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모르죠? 그 버스 안에서 벗어나야 자유인의 권리가 있는 거죠. 그런데 버스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권리가 없는 거예요, 자유 권리가. 그런 거와 같이 우리가 정신계에 집중을 안 하고 모른다면은 물질계에도 발전이 못 돼요.

그리고 과학이다 이러는 것도 과학이라는 이름 안에 테두리가 있어서 요거는 요렇고 요건 요렇고, 즉 말하자면은 과학이라는 테두리에 덮여 있는 뚜껑이 덮여 있기만 한 게 아니거든요. 이건 고정된 게 하나도 없다고 그랬죠. 보는 것도 듣는 것도. 그러니까 글로 써 놓는 거는 고정된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과학의 뚜껑을 파헤쳐야 진짜 과학이 나올 수 있어요. 자유, 자유권의 과학이요. 이 모두를 여러분이, 지금 한창 자라가는 젊은 세대들이 이 도리를 모른다면은, 앞으로 드문드문 그런 사람들이 세계 속에서 나온다면은 그걸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어요.

예전에 내가 한 스무 살 가까이 왔을 때 그, 접시 비행기가 뜨고 그랬어요. 그럴 때 난 생각했어요. 뭘 생각했느냐 하면은 접시 비행기는 자유권을 가진 그 마음으로써 그대로 움죽거리는구나 하는 거를요. 그러니 우리가 그 세계를 넘어볼 수도 없고 점프를 해서 넘어갈 수도 없는 거죠. 여러분은 어렵게만 생각하는데 이것을 풀어나가는 데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여기 앉아서 댁의 집을 내다보는 거나, 저 우주 세계를 내다보는 거나 똑 같아요. 맞먹어요. 시공을 초월했어요. 이 마음은 체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심안의 눈을 갖는다면 그렇게 볼 수가 있는 거죠, 내가 보려고 생각을 한다면.

그런데 그것도 보는 것도 도가 아니요, 듣는 것도 도가 아니요. 뭐, 이 사물의 모든 거를 다, 보이지 않는 데서 마음과 마음이 연결돼서 말을 하는 거를 듣는다 하더라도 그건 도가 아니라고 그랬어요. 보는 거 듣는 거, 남의 속을 아는 거, 어디서 온 거, 또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오는 신족통, 이 모두를 잘한다 하더라도 그건 도가 아니니라. 그 가운데서는, 바로 오신통 가운데서는 누진이라는 열쇠가 있어요. 거기 오신통 바깥으로 벗어나야, 오신통이라는 게 이 진리이니까요. 이 진리를 벗어나야 진리를 굴리죠.
공부를 그렇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사람은 천차만별의, 모두 차원에 따라서 살고 있어요. 여러분도 지금 이 세상 돌아가는 걸 다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은 금방에는 금이 모이는 데지 넝마나 무쇠나 모이는 데가 아니죠? 또 무쇠전에 금이 갈 리 없죠. 넝마전에 금이 갈 리 없고 깡통 공장에 금이 갈 리 없고. 사람 사는 것도 그래요. 모두 차원에 따라서 노동하는 사람들, 또는 상인들, 공무원들, 또 기사들, 또 정치인들, 종교인들 모두가 이게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렇게 자기의 차원대로 모두 살고 있으니까, 그 차원에서 사는 사람들은 누구가 같이 모이지 말라 그래도 같이 모여요. 기사는 기사대로 모이고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모여요. 그렇게 해서 모두가 살죠. 누가 일로 가라 절로 가라 하지 않아도 그렇게 스스로서 모이게끔 돼 있어요.

여러분더러 가르치지 않아도 금반지가 떨어지면 어디로 가져가시겠어요? 금방으로 가져가죠? 그거 보세요. 누가 이래라 저래라 안 해도 그 물질을 봐서, 이게 어느 차원인가 봐서 아주 차원대로 그냥 나누어지죠. 그러니까 이 자연의 법칙이 그대로 우리 생활의 법칙이에요. 그러니 내가 나를 모르고야…. 그래 사대성인들이 다 말씀하셨죠. 모두가 너부터 믿고 너부터 알아라, 이랬거든요. 너부터 모른다면 이 우주의 섭류를 다 모르느니라. 네가 없는데 어떻게 우주의 섭류를 알며 상대성 원리를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있기 때문에 너를 먼저 알고 너의 그릇을 먼저 만들어 놓고, 태양력을 받아서 전력으로, 갖은 각색으로 용도로 다 써라 이런 거나 마찬가지죠. 그러니 배워야 하겠죠? 알아야 하겠죠?

저 같은 범부가 마음을 내도 통할까요
문) 길을 가다가 소 떼가 트럭에 실려 가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파서 아프지 않게 몸 벗고 인도환생 하라고 마음을 냈습니다. 근데 저 같은 범부가 그런 마음을 내도 그게 통할 수 있을까요?

답) 그러니깐 ‘나는 중생이 돼서 몰라.’ 이렇게만 하고 주저앉아 있질 말고 나는 더하고 덜함도 없이 ‘용도에 따라서 닥치는 대로 내가 먹을 것이고 닥치는 대로 할 것이고 닥치는 대로 걸을 것이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라는 그 마음이 투철하다면 지나가다가 남들도 건질 수 있고 지나가다 그 불쌍한 사람 있으면 관해 주면 그냥 그 사람 괜찮아질 거고. 그런데 나는 때로는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너무 몰라서 저거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걸 내버려두는 수가 있거든요. 내버려둬도 그 길을 터득을 하게끔 내버려두는 거지 그게 내버려두는 것도 그냥 내버려두는 게 아니죠.

그러니까 여러분도 그런 마음, 너그러운 마음, 지혜로운 마음, 공심으로서 공체로서 공용을 하시라 이겁니다. 공용으로 공식을 하시라. 우리가 전부 사는 게 일체 만물만생이 다 공생이 아닙니까? 아니, 작게 보시면 여러분의 몸체 속에서도 공생하고 있죠. 그리고 공체죠. 내가 봤다고 나 혼자 볼 수 있나요? 여기의 생명들이 다 뒷받침을 해 주니깐 보는 거죠. 한 군데만 무너져도 그냥 쓰러지게 돼 있는데요.
그러니깐 이거는 현재의 일들이고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다 이겁니다. 현재에 지금 그렇단 얘기예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에 얽매이지 말고 그대로, 그대로 가는 길에 물러서지 않고 그대로 뚜벅뚜벅 갈 수만 있다면, 보이지 않는 데 정신계에서는 바로 보이지 않는 데서 대치해 나가고, 보이는 데서는 당신네들 몸으로, 보이는 육체로 대응해 나가고 이렇게 한다면 걸림이 없을 거 아닙니까? 이 세상에 사는 데 보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진짜 안 보이는 게 문젭니다. 세균 하나가 악성이 들어와서 내 몸에 들어와서 주둔한다면 그거를 어떻게 대치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안에서 하게끔 돼 있는 게 모두 공심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둘 아니게 대치하거든요. 내쫓는 것도 아니죠.

그래서 마음법이라는 게 그렇게 아주 기묘하고 광대무변하단 얘기죠. 여러분의 마음이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변경이 돼서 한번 생각을 했는데 그게 그대로 성립이 됐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두 여러분이 때로는 가만히 보면 여러분이 마음으로 지어 놓고 이거 안된다고 팔팔팔 뛰는 거예요.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어 놓고요. 아프다고 그러고요.
이 몸뚱이는 넉넉하게 그냥, 자기 그냥 가는 대로 가게 내버려두고 그 주인공하고만 하세요. 이 몸뚱이를 가지고 아무리 해 봐도 병만 나고 쓰러지게 되지 소용없어요. 이 주인공을 하나 붙들면 이 몸속에 있는 생명들을 다 붙잡을 수가 있죠. 또 주인공을 믿고 나가는 데는 급하면은 저런, 하다못해 그 녹암주나무라든가 이런저런 저 이파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저 향나무 한 그루만 가져도 그 이파리 숫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이파리 숫자대로 만약에 영혼이 한데 합쳐진다면, 그 이파리 하나마다 영혼이 돼서 다 합쳐 준다면 무슨 일은 못하겠습니까?

예전에 이런 예가 있죠. 옛날얘기 책입니다. 전에 나 아주 어려서 우리 어머니가 박 부인전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얘! 박 부인은 이 세상에 아주 못나디 못나게 태어나서 그냥 시집을 갔는데 장군인 남편이 붙들려서 갇혀 있으니 어떡하면 좋으냐? 그리고 인제 너희 집으로 쳐들어온다 그런다면 너는 어떡하겠느냐?” 하고. 그래서 박 부인이 그렇게 못났는데 그냥 백마를 타고 그냥, 이건 앞뒤를 끊어 버리고 지금 얘기하는 겁니다. 바쁘니까.

그냥 남복을 하고 말을 타고 가서 그냥 포위된 남편을 꺼내 주고선 그 남편이 알까 봐 그냥 막 달려오는 거예요. 급할 때마다 그렇게 어느 장군이 와서 그러니까 하루는 남편 장군이 이거 오기만 오면 한번 누군지 쫓아가 보겠다 그러고 있는데 또 와서 포위가 된 거를 꺼내 주고선 그냥 뭐 비호같이 달아나가거든요. 그래서는 비호같이 또 날쌔게 쫓아온 거예요. 그러니깐 갑옷을 벗지 못한 채 그냥 붙들린 거죠. 못났다고 얼마나 구박을 했는지 그 방엘 안 들어 간 거죠. 그런데 그렇게 됐으니까 그때서야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장군이 당신이구료.” 하고선 “당신은 보통 그냥 여느 대 사람이 아니야. 그래서 일부러 밉게 보이게 했지?” 하면서, 그 사람도 그런 장군으로서 아마 폭이 넓었던 모냥이죠. 그날부터 그 방엘 들어가니깐 그 얼굴 모양이 아주 우스웠었는데 그냥 하얗게 다 그냥 탄생을 했더래요.

또 한 번은 군사가 쳐들어오는데 이 초당 그 언저리에 전부 저런 향나무를 심어서 울타리가 됐는데 급하니까 할 수 없이 그 부인이 그 녹암주나무 이파리 하나하나마다 전부 그냥 군사를 만든 거예요. 저쪽에서는 전부 군사로 보이게끔요. 그러니까 거기를 쳐들어오지 못하고 그냥 후퇴했다는 거예요. 너무 이쪽에 군사가 많으니까. 이게 부처님 법에서는 거짓이 아니지만 여러분에 대해서는 거짓이라고 할 수도 있고 저걸 말이라고 하나 이럴 수도 있고, 저거 할 말 없으니깐 저런 말을 하나, 이럴 수도 있어요. 허허. 그러나 그것이 실지라니까요, 지금도요.
그러니까 99%는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 이런 것이 뭔 줄 아세요? 99%. 그거는 왜냐하면 마음 하나만 까딱 하면은 100%가 된다는 얘기죠.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하면, 사람이라 하면은 고등 동물이기 때문에 부처가 될 자격이 100% 다 있는 거죠. 근데 마음으로 그렇게 수없이 살아오던 그 습이, 관습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관습에 의해서 자기 마음을 자기도 마음대로 못하는 거죠. 그게 탈이에요.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못한다 이런 거. 그런데 내가 생각할 땐 자기 마음을 가지고 왜 자기 마음대로 못하나 이거예요. 그까짓 거 어떻게 들어오든지, 죽든지 살든지 그까짓 거 내팽개치고 하는 건데 왜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못해요?

우리 처음 여기 왔을 때 김장땐 데 그릇이 없어서, 내가 그 말을 가끔 해요. 그릇이 없어서 이런 다라도 하나 없거든요. 항아리도 없고, 그랬는데 그때에 뭐 처음 여기 와서 신도들이 있어요, 뭐가 있어요? 그러니깐 한생각을 내기를 ‘야, 김치는 해 먹어야 될 텐데 다라가 없고 전부 그릇이 없잖아. 항아리도 없고. 알아서, 당신 알아서 해!’ 이러곤 그냥 잊어버렸어요. 그거 여러분이 만약에 배추 뽑아다 놓고 그런 지경이 됐으면 아등바등했을 테지만 나는 김치를 못하든 하든 그거 상관하지 않았어요. 그 김치를 못하면 어떻고 하면 어떻습니까? 못하게 되면 못하는 거지. 안 그래요?
그래서 저거 하니까 아, 그날 저녁에 밤에 말입니다, 어느 할머니가 청량리에서 사셨는데 거기 있던 사람이 별안간에 그냥 여길 오고 싶더라는 거죠. 별안간에 오고 싶은데 뭐 김장 때 그릇도 없을 게다 그러고 다라를 그냥 큰 거 댓 개를 사고 항아리 뭐 이런 거를 주근주근, 지금 시대엔 항아리 왜 잘 쓰지 않잖아요? 그 집도 그냥 항아리 다섯 개 있는 걸 다 싣고 온 거예요, 큰 거를. 그런데다가 쌀 또 두 가마니 싣고. 그래서 밤중에 왔길래 내가 그랬어요. ‘허 참! 있긴 있구먼.’ 허허. 있긴 있구먼.

그래 지금 우리 저기 울산에 집을 짓는데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돈이. 근데 신도들은 하나도 생각조차도 없겠죠. 그러니까 네가 있다면 할 거고 없다면 못할 거니깐 그거 1년이 간들 어떻고 2년이 간들 어떻고 10년이 간들 어떻고 100년이 간들 어떠냐 이겁니다. 꼭 지으라고 너의 꼬리표 붙여 놓은 게 아니잖느냐. 부처님이 계시다면 할 거고 안 계시다면 안 할 거 아니냐.
그게 바로 네 자성불이다 이겁니다. 자성불이 있어야 모두 통하는 거지 자성불이 없으면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그래서 ‘너 알아서 하라.’고 그랬죠. 우리가 돈을 쌓아 두고 남을 도와주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우린 항상 털털이로 살아요. 털털이요! 털털이 아세요? 허허허. 사람이 털털이로 살면은 아무것도 걱정이 없는 거예요.

마음과 기의 관계는 어떤지요
문) 요즘은 제 친구의 권유로 기에 대해 공부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마음과 기의 관계는 어떤지요?

답) 이거 보세요. 기는 마음에 따라서, 그건 따라지에요, 기가. 마음의 따라지. 그건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노곤하고 기운이 없다. 그래서 일어날 기운도 없고 그럴 때에 ‘아이, 의욕이 나지 않고 왜 이렇게 기가 뚝 떨어지게 만들어?’ 하고선 벌떡 일어난다면은 그냥 의욕이 생기고 그냥 기가 생기는 거죠. 기라는 것은 이름이에요. 기운이라고 해도 되고, 기운. 그런데 이거는 기라고 이름을 지어 놓고 온통 욕심이 많아 가지고 뭐, 단전호흡을 해서 기를 갖다가 집어넣는다고 온통 야단을 해 가지고, 정수리로 화가 미치고 귀로 화가 미치고 등으로 화가 미치고, 온 몸뚱이로 화가 미쳐서 병들이 나 가지고 가정 파탄이 나고 이렇게 해 가지고선 슬슬 일로 오는 사람이 많아요.

도대체 기가 뭡니까. 정맥 동맥이 잘 돌아가고 핏줄이 잘 돌아가고 하면은 그대로 그냥 기가 잘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따라지죠. 마음에 달렸다 이 소리에요, 그것도. 전후사가 다 마음에 달린 겁니다. 차가 하나 운행을 하려면 바퀴를 꿴 그 중심과 엔진이 없으면 아예 그건 차라고 할 수도 없어요. 그렇죠? 거기에 달려 있지 않습니까, 차가 굴러가는 것도? 그런데다가 기름 떨어지지 않게 기름 넣으면 되고 말입니다. 그게 기름과 같은 거예요. 아, 내 몸뚱이 차가 기름이 없게 해서는 되지 않잖습니까. 그러니까 항상 바깥으로나 안으로나 그렇게 하고, 또 이 공부를 할 때 너무 스트레스가 끼고 그냥 무슨 일 할 때 너무 이렇게 할 때는, 이렇게 겉으로는 종합비타민 하나 먹는다. 또 간장약이 피로회복제니까 두 개를 하루 한 번씩이라도 먹는다, 그런 때만. 그 시험 보고 애쓸 때 그러면은 그게 벌충이 되죠.

안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이거는 안에서 마음이 그냥 탁 가라앉아 가지고 짐이 무겁게만 되니까, 기를 성하게 할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거죽에서라도 그렇게 먹어서 그때를 메꾸어라 이 소립니다. 이것이 모두가 지혜고 아량이에요. 기가, 지금 그 웃는 얼굴에도 기가 있어요. 기는 딴 데서 오는 게 아니고 딴 데서 생기는 것도 아니에요. 저 나무가 뭐 내가 너를 믿는다 안 믿는다도 없이 그냥 뿌리니까 그냥 무조건 저 지분이라든가 수분이라든가 철분이라든가, 모든 거를 흡수해서 그냥 뿌리가 돼 있기 때문에 그냥 올려 보내는 겁니다.
그렇듯이 또 우리가 한마음이라는 거를 믿고 진짜로 내 뿌리를 믿는다면은 그 믿는 마음이 즉 태양력과 공기력을 해서 내려 보내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정맥 동맥이 돌아가듯 이렇게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기라는 이름을 누누이 생각 안 해도 그냥 저절로 기운이 생긴다 이 소립니다.

그런데 지금 그 배꼽 밑으로 해서 기를 들인다고 합시다. 그런데 기를 모으기만 했지, 무당이 귀신을 몰아만 놨지 내보낼 줄을 모르기 때문에 일이 터지게 돼 있거든요. 기를 모아만 놨지 풀지를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옛날에 너무 몸이 부실하고 그러니까는 그 기법으로서 몸을 풀기 위해서 가르친 거지, 그것이 그냥 기에다가 착을 두게 하기 위해서 한 게 아니에요. 몸이 찌뿌둥하고 아프면은 그렇게 해서 와짝 풀었지 그걸 넣어두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이 한 울이 있으면은 전부 그 울 안에 있듯이, 한마음 안에 있으면은 그 마음으로써 다 대치할 수 있는 거지, 기를 왜 미리 창고에다가 잔뜩 갖다 넣고 딴 거는 들어가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습니까. 그래 가지고서는 외려 병을 더 얻게 되죠. 생각해 보세요. 먹을 때에 무슨 그릇에다가 담아서 먹고 그릇을 항상 씻어서 치우지 않습니까. 고 다음에 또 먹을 때에 또 그 그릇을 꺼내서 담죠? 그런데 만약에 그 그릇에다가 항상 담아 놓으면은 그 그릇을 나중에 무엇을 담으려도 쓸 수가 없잖아요. 그거와 똑같은 얘깁니다. 그러니까 기를 모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마세요. 급하면은 저절로 기가 다 생기게 돼 있으니까.

이 마음공부 하는 사람은 저절로 기가 생기게 돼 있어요. 자동적이에요. 그걸 믿어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못 믿어 봤자죠, 뭐. 자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애탄지탄하고, 기가 없으니까 기를 넣어야지 어쩌지 하면은 ‘허, 너 실컷 해 봐라.’ 속에서 그럴 겁니다, 아마. ‘네가 너라고 이렇게 자청해서 야단법석인데 네가 있으면 네가 알아서 해 봐라.’ 그러고 자기 참자기는 아마 등한시할 거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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