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는 대로 되맡겨 놓아야 훌렁 벗어날 수 있어요

▲ 그림 최주현

관습으로 인해서 내가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입력돼서 컴퓨터에 나오니까
자유스럽게 살 수 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창살 없는 감옥에서 벗어나야 된다 이 소립니다.

이렇게 형제 법우님들하고 같이 한자리를 하게 된 것도 벌써 몇 달 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모든 것을 볼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행으로부터, 그 작용으로부터 발전을 시키고 이 세상을 조절해 나가는 바로 지구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마음 하나 잘 먹으면 이 세계를 다 조절할 수 있고, 또 우리나라를 유지시키고 개발시키고 좀 더 평화롭게 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것이고, 우리가 마음 하나 잘 먹지 못하면 평화가 아니라 괴로움과 여러 가지의 불미스러운 일들을 낳게 되겠죠.
여러분이 더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이것 빼놓고 저것 빼놓고 그런다면 뭐 남는 게 있어서 불법이겠습니까? 불법이라는 것은, 불교라는 것은 바로 여러분 자체가 불교입니다. 여러분 하나하나가, 전체가 다 불교 아닌 게 없기 때문에 우리가 불성을 가진 ‘불(佛)’이라고 하는 뜻이고, 우리가 이렇게 말하고 살아가는 이 자체가 ‘교(敎)’가 되기 때문에 여러분이 불교 아님이 없고 만물만생이 다 불교 아닌 게 없어서 그대로 만나면 만나는 대로 같이 돌아가는 거죠. 오늘도 저 위에서 한 소나무를 만났는데, 어저께 만난 거 따로 있고 오늘 만난 거 따로 있지마는 만나는 대로 달라지는 겁니다. 사람을 만나듯이….

그러니 생각해 보시면 아시겠지마는 일체 보면 보는 대로 둘이 아님으로써 네가 있고 내가 있지만 마음은 이심전심, 둘이 아니어서 그렇게 같이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같이 돌아가는 걸 모른다면 내 집이 빈집이 돼서 그 에너지를 뺏긴다고도 볼 수 있지요. 여러분은 밑지고 사는 분들이 여간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집이 비었으면 항상 에너지를 뺏기고, 뺏기기 때문에 내 몸이 쉬 망가지고, 그러면서도 또 마음이 가난해지고, 떳떳하지 못해지고 이렇게 되니까 집안은 화목하지가 못하고, 뿌리가 성성하지를 못하니 가지와 잎, 즉 가족이 다 성성하지 못하죠.
불법이라는 거, 이 불교라는 자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 일으키는 것이 법이요, 불은 바로 영원한 자기의 불성을 말하니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 되는 거죠. 그 근본은 능력이 있는 거고, 법은 생각을 내면 생산해 낼 수 있는 그 능력을 가진 겁니다. 생각을 해야지 사람이지, 생각이 없다면 무슨 사람입니까? 바로 이 세상, 우주 전체는 모두 에너지 자체가 들고 나고 쓰고 이렇게 활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일체 만물만생의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자기가 돼 버렸습니다. 그건 왜냐? 어떻게 생각하면 부처님께서는 욕심이 많다고도 볼 수 있겠죠. 왜냐하면 모두 긁어모아서 자기 한마음 속에 전부 넣고, 한마음이라는 그 그릇도 없는데다가 그냥 다 넣어 버렸으니 우주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에너지를 다 넣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다가 생각을 내면 법바퀴거든요, 그게. 법이란 바로 생각을 내면 생산을 해내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별성과 같습니다. 인간도 그 몸이 헤져서 망가지면, 옷이 낡으면 벗어버리고 다시 새 옷을 입듯이 별성도 수명이 길고 짧을 뿐이지 옷 벗는 것은 똑같습니다. 우리가 이 옷을 벗었다고 해서 죽는 게 아니라 불성은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火)로 원점으로 가고, 물(水)로 원점으로 가고, 바람(風)으로 원점으로 가고, 흙(地)으로 원점으로 가기 때문에 그것이 그대로입니다. 그러니까 죽는 게 없고, 다시 생산해서 그 옷이 다시 만들어져 나오는 거죠. 여러분이 헌쇠를 넣으면 다시 생산돼서 나오듯이 말입니다. 금도 그냥 닳고 조각난 것을 갖다가 다시 녹여서 반지를 만들고 목걸이를 만들어서 이 세상에 다시 탄생시키지만, 금으로 그대로 있듯이 우리 불성도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불성은 그대로 있는데 우리가 이 공부를 하면 원(圓), (손으로 큰 원을 그려 보이시고) 불바퀴로 하나로 돼 버리죠. 하나로 돼 버려서 법바퀴에 에너지가 배출이 되면서 거기서 내 마음대로 생산이 다시 되죠. 그런데 그 도리를 모르면,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그 자리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의 모습, 물질적인 의식을 그냥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었어도 그 물질적인 ‘나’가 있는 줄 안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서 영혼을 다스리지도 못하고 닦지도 못한 채 그냥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있는 줄 알고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 없는 겁니다. 넘어설 수가 없는 거죠. 다시 되풀이하지마는 이 몸속에 있는 그 인과응보, 악업, 선업이 쫙 깔려서 자기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기 때문에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얘깁니다. 이것이 지금 현실에 우리가 겪고 있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이 마음 자체를 비워라, 비워라 이러는 겁니다. 우리가 평상시의 생활을 하지 마시라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 생활 속에 진리가 있으니까요. 그래, 우리 생명이 어디에 있느냐 그런다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작용에 있지 않습니까? 숨을 들이쉬고 나서 내쉬지 못하면 죽을 것이고, 내쉬고 나서 들이쉬지 못하면 죽을 것입니다. 또 ‘부처가 어딨느냐? 그 생명 근본이 어딨느냐?’ 한다면 우리의 들이고 내는 작용 가운데에 있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들이고 내는 것을 누가 내느냐 이겁니다. 들이고 내는 그 작용을 누가 하고 있느냐 이겁니다. ‘들이는 것도 아니고 내는 것도 아닙니다.’ 할 때는 들이고 내고 한다는 그런 말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말 없이 대답을 하는 그런 습관이 예전에 있었습니다. 그건 왜냐하면 이것이 발현이 됐는지 안됐는지 그것을 점검하기 위해서 그런 말씀들을 했죠. ‘내가 들어가는 게 옳으냐 나가는 게 옳으냐. 들이는 게 옳으냐 내는 게 옳으냐.’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의식과 관습이 죽어서도 남아 가지고는 한 발짝도 떼 놓을 수가 없게 하는 문제가 몇 가지 있죠. 첫 번에는 뭐냐? 그 고생을 하면서 장만해 놓은 내 집, 내 가정, 내 재산이 있다는 의식과, 내가 살던 그 습관이 그대로 있어서 거기서 떠나지 못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몸은 갔어도 마음은 그대로 거기 있으니, 살아서 몸뚱이를 가지고 참섭을 해도 참 귀찮을 노릇인데, 이건 보이지도 않는 데서 집집마다 일일이 참섭을 하고 돌아다니니 이거는 못할 짓이다 이거죠, 자식들이. 그게 자기 이세인데, 그 이세인 자기를 자기가 아니라 자식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귀찮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착을 두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서도 그 관습에 의해서 떠나지 못하는 거죠.
세 번째는, 아까 얘기했듯이 자기가 떠나려고 해도, 집안 재산과 자식들과 가정에 대해 착을 모두 떼었는데도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이 도리를 몰라요. 내 몸의 중생을 제도 못했어요. 내 몸뚱이 속에 있는 인과로써 생긴 악업 선업을 그냥 녹이지 못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아, 죽었는데 말입니다. 아! 떠억 나서서 가려고 하니까 이게 그림자처럼 그냥 헤아릴 수 없이 나타나서 앞을 막으니 어떡하겠습니까? 그 습관에 의해서, 내가 그 도리를 살아 있을 때 몰랐기 때문에 죽은 뒤에 그것들이 모두 나타난 거죠. 야, 하다못해 똥을 봐도 똥 묻으면 어쩌나 하고 가지를 못하는데 여기에 색색(色色)으로 참, 천차만별로 다른 모습들이 질경이같이 그냥 벌어져 있으니 꼼짝할 수가 없는 거죠.

인과로써 인연을 가진 사람은 머리 풀어 산발을 하고 그냥 귀신처럼 들이덤비죠? 눈 없는 게 들이덤비지, 팔 없는 게 들이덤비지…. 온통 과거에 산 대로, 자기가 한 대로, 행동한 대로 그냥 인연이 되어 가지고 내 몸속에 다 있으니, 지금 모습은 다 그냥 사대(四大)로 흩어져서 없어지지만 아, 그 인연에 따라서 쫓아다니는 거는 어디를 가도 쫓아다니기 때문에 붙잡히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죠.
그러니 어딜 갑니까? 그걸 훌렁 벗어 버려야 자유인데, 훌렁 벗어 버리지를 못해서 아주 배어 가지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데, 산을 넘어간들 안 쫓아가겠습니까, 들을 넘어간들 안 쫓아다니겠습니까? 한바퀴 돌아서 이 세상에 다시 생산이 돼서 나온다 하더라도 아마 그것은 똑같이 따라다닐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야 무(無)의 세계에서도 보이질 않을 텐데, 우리가 지금 가지고 다니는 것이 있기 때문에 조금도 틀림없이 벌써 다 알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비유해 봅시다. 지금 정보실에서 정보원들이 정보국장으로부터 쭉 내려오면서 우리를 감시한다고 합시다. 도솔천에서 감시를 하고 그런다고 합시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피할 수가 없어요. 그 증거가 아예 입력이 돼서 항상 통신이 되고 이렇게 영상이 나오니 몇 생을 돌아가도, 오백 생을 돌아가도 뭐, 꼼짝없이 꼭 쫓아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것을 거기에 맡겨 놓으시라 맡겨 놓으시라, 거기에서 나오는 대로 되맡겨 놓으시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한 것이 아니니까, 거기에서 했으니까 거기에서 알아서 일체 만법을 다 작용하면서 나를 이끌었으니 난 심부름만 했지, 내가 주인이 돼서 한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주인이 한 거니까 주인이 해결해라.’ 하고 거기다 맡겨 놔야 그것이 몽땅 벗어지는데, 이건 만날 내가 하는 거야, 내가 해! 그러니 과거에 짊어져서 지금 현실에 나오는 것도 죽겠는데 또 미래에 나올 것을 연방 입력을 해 넣고 있으니 어떡합니까? 그렇게 입력이 되니까, 입력이 돼서 현실에 나오는 대로 거기다가 다시 입력을 한다면 앞서 게 몽땅 지워져서 정보원에서 컴퓨터에 넣어 봐도 증거가 하나도 없어! 그래서 홀랑 벗어지는 거죠.

그러니 우리가 이런 도리를 안다면 하루하루 살면서, 하루하루뿐이 아니죠. 지금 이 시간에도 자꾸 보고 듣고, 듣고 듣고, 보고 보고, 가고 오고, 만나고 그러는 게 하나도 고정됨이 없이 공해 버렸으니까 그것을 알면, 마음으로 알면 누적이 되지 않고 그냥, 우리가 먹고 배설하고 먹고 배설하듯이 그렇게 돼 있다 이겁니다. 이게 하치않은 말인 것 같지만 이 세상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물질에 집착이 없이 현실 속에서 참나를 완전히 알기만 한다면, 세상을 모두 감지하고 조절해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딴말 해 봤자 소용없어요. 그건 이론에 불과하고 우리가 직접적으로 실천을 하지 못하면 목이 말라서 죽는다 하더라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으니까요.
우리 몸이 에너지가 없어서 그냥 비참해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에너지를 넣을 수도 없고 기도 넣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마음 속에서 나온 거니까 한마음 속에서 다 이거를 해야 될 거 아니야? 그래야 종이 주인의 심부름을 건강하게 잘할 거 아니야?’ 하고 한생각만 그렇게 해도 에너지는 저절로 자동적으로 들어가고, 기가 자동적으로 들어가고 그 병이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나가, 헤아릴 수 없는 내가 나를 죽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손가락이 자기 손가락을 꺾을 수가 없듯이….

그래서 얘긴데, 이제 이 말 끝나면 여러분이 또 나한테 튕겨 주셔야 돼요. 허허허…. 그래서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가 없고 어디 먼 데로 도망을 가려고 해도 꼭 잡힙니다. 잡혀요. 그래서 아무 데나 들어가게 돼 있죠. 그러니 모습을 아무거나 가지고 나올 수밖에 없죠, 행동한 대로. 그러니까 여길 뛰어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놓는 작업을 해야 하는 거죠. 거기다가 맡겨 놓고 믿고, ‘모든 거를 들이고 내는 것이 거기다.’ 하고서 믿고 맡겨야 그게 벗어진단 말입니다.
또 그게 벗어졌어도 만약에 그게 찌그럭지라도 조금 남았으면, 나라는 게 남고 그 관습이 그냥 남았다면 강을 건너가야 할 텐데 물이 깊어서 건너갈 수가 있나. 그러니 영혼이 배를 기다려야 한다, 이런 문제가 나옵니다. 물질이 아닌 영혼이 만약에 배를 기다린다 한다면, 오백 생뿐입니까?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저 언덕을 넘어, 강을 건너서 만나리. 넘어서면 영원한 밝음이 있으리.” 하고, ‘아제아제바라아제’ 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넘어가려면 ‘지수화풍, 일체 만물만생이 둘이 아니로구나. 내 몸속에 있는 것도 둘이 아니로구나. 모두가 둘이 아니로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고 수없이 여러분한테 말씀해 드렸습니다. 둘이 아니기 때문에 한생각 끄떡하면 건널 수 있는 거죠. 그것이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알고 있는 것은 죽어서도 알고 있는 겁니다. 그래 꿈이 생시요 생시가 꿈이니라. 그러니 생시에 알고 있다면 꿈에도 알고 있는 거고 죽어서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눈이 밝아지고 귀가 밝아져서 한생각을 하면 그냥 강도 들도 따로 없느니라. 아무리 높은 산이든 낮은 들이든 깊은 강물이든 불 속이든, 어디에 타 죽는 것도 없고 빠져 죽는 것도 없고 멀어서 못 가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거를 뛰어넘었다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남았으면 또 강을 못 건너가서 배를 기다리고 있는 격이 되는 거죠.

그 다음에 또, 이 우주 전체 모든 물질이 불성입니다. 별성도 불성이요, 우리 인간도 불성입니다. 불성이 한데 합쳐져서 돌아갑니다, 지금. 그래서 그거를 블랙홀이라고 그러고 불바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한데 어우러져서 굴러가는데 말입니다, 우리 마음들이 정해 놓는 데 따라서 유성이나 행성이나 조그마한 거, 조금 큰 거, 좀 더 큰 거, 아주 큰 거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쪼개지면서 분배되면서 분류되면서 분신이 되면서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이 자체가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과 같지요. 단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큰 노릇을 못하고 문지기나 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이죠. 만날 떠돌면서도 심부름을 해야 하는 그런 입장이 되지요. 그냥 떠도는 게 아니에요, 심부름꾼이지. 호텔에 가면 문지기 노릇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문 바깥에서 문지기 노릇을 합니다, 사람들 모두 안내하고. 이런 거와 같이 불바퀴를 보면 타 죽을까 봐 그 소용돌이 속을 못 들어가고 그렇기 때문에 영 맛을 못 보는 거지요. 영원한 밝음의 자유를 얻지 못하는 거죠. 살아서 영원한 자유의 밝음을 얻는다면 뭐, 죽고 살고가 없지요, 자유이니까.

그런데 우리가 지금 만날 이렇게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것도 그 마음 빼놓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이라고 이름을 지었으니까 마음인데, 왜 마음이라고 지었을까? 너무 불성이 많으니까, 그리고 생각을 낼 수 있는 여건이 돼 있으니 어떻게 마음이라고 안 짓습니까! 불성은 불성이요, 마음은 마음이지. 불성은 여러분이 인간으로서 태어나게 된 생명의 근본이지만 그 생명의 근본이 있으니 마음을 낼 수 있는 게 있어야 작용이 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내는 것이 생산할 수 있는 법이다. 그래, 법이죠. 불성과 법이, 불과 법이 둘입니까, 어디? 여러분이 생명이 있으면 마음을 낼 수 있고, 마음을 낼 수 있으면 몸을 움죽거릴 수가 있는 게 당연하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관습으로 인해서 내가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입력이 돼서 컴퓨터에 나오니까 안 된다. 자유스럽게 살 수가 없다. 그냥 아무리 멀리 있어도 붙잡아다 자기 한 것대로 일을 시키니까 안 된다. 벗어나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창살 없는 감옥을 벗어나야 된다 이 소립니다. 우리 몸뚱이가 창살 속에 갇히면 꼼짝 못하듯, 이 마음의 그 영혼도 갇히면 꼼짝없어요, 모르니까요. 자기가 지금 물질로 있는 줄 알기 때문에 자기가 잡혀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 잡혀 있지. 여기에 대해서 뭐 여러분이 질문하실 것 없습니까?

내가요, 내려앉자고 그런 것은 여러분하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하자는 거지, 내가 무슨 위라 그래서 위가 아니고 아래라 그래서 아래가 아닙니다. 안 보인다 그래서 위에 앉아 있는 거지 내가 뭐 높아서 여기 앉았겠습니까? 높은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과 같이, 나도 실험을 예전부터 무수하게 해 왔고 지금도 실천을 하고 갑니다. 그런 걸 여러분이 무시해서도 안 되고 몸뚱이, 고깃덩어리만 봐서도 아니 됩니다. 예전의 일체 선사들, 일체 부처님이 다 어떠한 노릇을 했는지 여러분이 아십니까? 지금 말만 듣고 이렇게 올 뿐이지 여러분이 실천해 보셨습니까, 그것을 따라서?
마음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이 도리를 배우게 되면 아주 선지로서, 일체 평등공법(平等空法)으로 대치를 해 나가고, 칠보활궁공법(七寶活宮空法)으로써 마음을 내서 보배로운 생산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서 남을 이익하게 할 수 있고, 저런 혹성이나 뭐 이런 것도 그렇고, 재미있는 일들도 있는데 내가 아는 것을 지금 말을 한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문제도 있을는지 모르죠. 그러니 여러분이 그 모두를 부처님께서 하시듯이, 종지가 원한다면 내가 종지가 돼 줄 수 있고, 그럴 수 있어야죠. 이 도리가 그렇습니다. 마음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과학을 연구하는 분들은 이 말을 들으면 아마 빨리 알아들으시리라고 봅니다. 내 마음 하나에, 즉 말하자면 블랙홀 안에서 나가는 그 에너지가 어디로 나가느냐? 그 에너지도 배출이 되지만 내 마음의 영원한 그 근본 ‘불’이라는 것이 한데 모였다 흩어졌다, 한데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작용을 무수하게 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게 우리네 지금 숨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작용입니다. 그런데 그걸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은 우리 법입니다, 법바퀴.
그래서 이 불바퀴의 에너지가 있다면,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사는 그 에너지가 거기에서 배출이 되면 또 생산이 되고 그럽니다. 두 부부가 생산을 안 해냈다면, 움죽거리지 않고 생각을 안 해서 그렇게 생산을 안 해냈다면 여러분 자손이 어디 나왔겠습니까, 네? 이거 웃을 일이 아닙니다. 별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별성에서는 불바퀴에서 배출되는 에너지가 자력에 의해 저절로 가서 틀림없이 한데 합쳐진단 말입니다. 따로따로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물질로서 그게 아주 거대하게…. 그러니까 줄지도 않고 늘지도 않게 지금 조절을 하니까 그렇지, 만약에 체가 없는 마음이, 별성들이 와르르르 일어났다 하면 그 불바퀴가 얼마나 팽창될 것입니까? 이거는 과학적으로 이름을 붙여서 말하는 거하고는 정반대로,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문제가 나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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