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주인이 없으면 에너지를 다 뺏깁니다

▲ 그림 최주현

자기가 마음대로 가지고 할 수 있는 자기 보배!
그런데 여러분이 원래 주장자가 있어서 보배가 그렇게 나오는데
자꾸 딴 생각이 나오게 옆댕이에서 꿰져요.
그러니까 거기에 속지 마라.
나오는 대로 무조건 거기다 맡기고 살자 이겁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그러니 여러분이 이거부터 알아야 되지 않나…. 내가 벗어나야 아무 데고 가도 간 흔적이 없죠. 그렇죠? 그런데 벗어나지 못하면 흔적이 남죠. 아, 요기 한 발짝만 떼어도 벌써 흔적이 나오는데 어딜 갑니까? 그러니까 ‘창살 없는 감옥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 고에서 벗어나라, 벗어나라.’ 부처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습니까?

거기서 더 말하라는 겁니까? 벽은 쳤는데요, 봇장이 울리는 건 여러분이지 어떡합니까? 그러니 여러분도 좀 더 이것을 잘 생각하셔서 일하면서도 생각이 들면 무조건 거기다 맡기고, 조금 조용한 시간이 있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여건을 가지시란 얘깁니다. 내가 생각을 안 하면 내 마음이 진화가 되지 않아요. 그리고 커지질 못해요. 생각을 아주 안 하는데 그게 목석이지, 생각을 안 하는데 어떻게 진화가 됩니까?

우리 배 속에 있는 모든 걸 보세요. 그게 증거물입니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느냐는 증거물입니다.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여러분, 산에 가도 좋고 물에 가도 좋죠? 여러분네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허허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참, 청산유곡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신선하고 좋고, 또 맑은 물이 쉴 사이 없이 흐르는 걸 봐도, 계곡에 가서 맑은 물이 흐르고 고기가 노는 걸 봐도 싱그럽고 좋지요. 그게 여러분 고향이에요. 수없는 겁을 거쳐서 인간까지 이렇게 모습을 가져왔고 기어 다니다가도 모습을 가져왔고…. 지금도 여러분한테 꽁지가 조금 붙었습니다. 꽁지 안 붙은 분 아마 하나도 없을 거예요. 그 흔적이, 꽁지 떨어진 지가 얼마나 됐습니까? 그러니 이것도 말짱 벗어나야 우리가 어딜 가든지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각으로 살 수 있죠. 생각으로 운전할 수 있고 생각으로 살 수 있는 그 세계를 맛볼 수 있는 거죠. 사람까지 이렇게 맛볼 수 있었듯이 말입니다.

어떤 때는 이렇게 길을 가다 보면요, 기다란 유체 같은 게 가요. 그건 이름도 모르죠, 하도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가다 보면 알을 까서 뒷꽁무니에 질질질질 끌고 가서는, 풀을 갖다가 발로 두껍게 알 밑에다 깔고는 풀로 살짝 덮어 놔요. 그런 걸 하나 보더라도, 야! 요렇게 묘하구나. 요렇게 묘한 것을 우리가 스스로 해 오고 있었다는 거…. 우리가 하다못해 요만한 미생물에서부터 그렇게 스스로 해 왔기 때문에 이렇게 인간까지 돼서도 자식들을 그냥 덮어 주고 입혀 주고 먹여 주고, 이러면서 어디를 나가서 안 들어오기만 해도 안절부절을 못하고, ‘빨리 들어와야지.’ 하면서 걱정을 하고 이러는 거죠. 아마 거기에서는 좀 덜 벗어난 것 같습니다.

알고 보면요, 그렇게 거쳐 오면서 모였다 바람처럼 흩어지고 모였다 바람처럼 흩어지고…, 이 식구가 말입니다. 그렇게 흩어져서 또 딴 식구들하고 또 만나고, 진화를 좀 하면 진화한 만큼 또 같이 모이고 이렇게 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의적으로 본다면 부모 자식이 따로 없다는 얘기죠. 사는 동안에 같이 모여서 살 뿐입니다. 그러니 착을 두지 마시고 그저 사랑으로써 대해야 하는 겁니다. 그냥 뭐 온통 “너 어디서 자고 왔어? 전화번호 대!” 뭐 틀림없죠. “전화번호 대! 어디서 자고 왔어? 뭐를 어떻게….” 이럭하면 애들이 반항해서 더 멀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고 올 수 있는 그런 뭐가 있었길래 그랬겠지. 너 배고프지 않으냐?” 하고 아주 딱 받아서 안아 준다면 나가서 자라고 발길로 차도 나가서 안 자요, 네? 그런데 착을 두고 자꾸 그러고 있어요. 그것도 대접을 해 줘야 하는데, 꼭 내 손에 들어 있는 자기 소유물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자손들도 전부 늙어 죽어서 애가 된 거지. 아니, 허허허…. 여러분도 늙어 죽었다가 또 태어나 가지고 이렇게 나이를 조금 더 먹었다고 해서 자기가 생산해 놓은 것을 자기 거라고 하겠습니까?

자기 소유가 아닙니다. 절대 자기 소유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저 남의 자식이든 내 자식이든, 남의 부모든 내 부모든 평등하게, 그저 보면 보는 대로 들으면 듣는 대로, 있으면 보시하고 없으면 마음으로라도 보시하고, 이렇게 무주상 보시를 해서 그저 남을 이익하게만 한다면…. 그리고 또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내 가끔 그러죠. 여기 우리 학생들이 올 때가 있죠. “스님! 이러이러한데 이건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울 때, 평등하게 내 소유라는 것이 없어야 사랑할 수 있는 거지, 내 소유라고만 하는 마음이 있다면 남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보시를 못 합니다. 요구를 해야 하니까. 요걸 가지고 이것만 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그 생각이 넓게 나지도 못하죠. 그래서 어휴, 가슴이 쓰르르하고, 언제적 내 자식 네 자식이고, 언제적 내 부모 네 부모더냐. 모였다가 바람결같이 흩어지는 것이, 스쳐 가는 것이 인생 아닌가. 우리는 방랑객으로서 한데 캠핑 나와서 살다가 날이 어두워지면은 흩어져야 할 인생이 아닌가.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안 그런가, 그런가? 허허허….

나만 말하게 하지 말고 여러분도 나를 튕겨 주셔야죠. 꽃 한 송이도 풀 한 포기도 내가 볼 때에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때에 따라선 내가 먼저 말할 수도 있지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면 그쪽에서 먼저 말을 할 때가 있어요. 가만히 보세요. 꽃도요, 저녁이면은 탁 오므라집니다. 보지 못하신 분들도 있을 거고 보신 분들도 많을 거예요. 홀짝 오므라들면서 뭐라 그러는 줄 아십니까? “해가 다 졌다. 아휴, 이제 잠자자.” 하거든요. 모두가 잠을 자는 건 아닙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냥, 잠을 잔다 안 잔다 없이 그냥 있는 게 국보로서, 소나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런 게 있죠. 그래서 그것이 표면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푸르름을 가져온 겁니다. 사철나무라든가 이런 것도 그렇고요. 그게 다 마음의 뜻이 있죠. 이 마음이 오고 갑니다.

나무에 맞아 죽을 팔자를 가진 사람이 나무에 목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너도 나하고 벗이요, 영원한 친구지.’ 하니까 목신으로 인해서 죽을 건데 둘이 아니라는 바람에 목신이 그냥 외려 도와주더랍니다. 하하하…, 보세요! 만약에 예를 들어서, 아주 부자 사장이 가난한 직원에게 “얘, 너도 우리 일을 하고 나도 우리 일을 하고 둘이 아니지 않으냐? 그러니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고 먹어도 같이 벌어먹자.” 한다면 고마워서 말입니다, 밤낮을 모르고 일할 겁니다, 아마. 그렇듯이 아니, 자기한테 평등하고 좋게 인격적으로 대해 주는데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자기와 자기가 둘이 아니죠. 그러니 일을 자기 일 하듯 하죠.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도 죽지 않죠. 물신(水神)도 자기요, 목신(木神)도 자기요, 지신(地神)도 자기요, 관세음(觀世音)도 자기요, 지장(地藏)도 자기요 모두 자긴데 누가 뭐, 끌어가고 오라 가라 할 게 없거든. 이거 벗어나십시오. 질문하실 거 있으면 질문하세요. 질문이 아니라 토론이요. 알아도 안다고 생각 마시고 그냥 토론하는 거요, 그냥 말입니다.

질문자1(남): 예, 조금 전에 스님께서 별들도 생명이 다하면 또 옷을 갈아입고 그렇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주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는데 저희 지구도 별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 지구는 생겨난 지가 얼마나 됐는지, 나이가 몇 살이나 됐는지 그걸 알고 싶고요. 그 다음에 두 번째, 사람이 이 지구에 살기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되었느냐? 또 부처님께서 사생(四生)으로, 그러니까 생명이 네 가지 방법으로 태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제일 처음에 어떤 방법으로, 지금은 우리가 물론 태생(胎生)으로 태어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도 처음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그걸 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큰스님: 여직껏 얘기를 했는데도 그 질문을 하시는데요. 보세요, 우리는 태생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우리 속에 들어 있는 것도 태생으로 태어납니까? 모두가 화(化)해서 거기 종합해서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그림자가 붙듯 그 의식이 붙어서 태어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태어나는 바람에 그것도 화해서 자꾸 자랍니다, 거기 같이. 그러니 어떻게 증명이 안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태어난 지가 세 살밖에 안 된다는 거죠. 모두 쳐도 세 살밖에 안 되는 거죠, 지구도 언제 태어났는가 하면 태어난 지 세 살밖에 안 되었다는 거죠, 예? 왜 세 살밖에 안 된다고 하는지 여러분이 잘 새겨 보면 알 겁니다. 인생뿐만 아니라 모두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으니까요.

여기만 별성이 있고 혹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데도 수없이 있으니까요. 왜 그러면 그것은 껍데기를 벗고 그러느냐? 벗고 작용하는 바람에 에너지가 바로 배출되고 하는 걸요? 우리가 운동을 안 한다면 그건 죽은 별이지 그게 산 별입니까? 또 껍데기를 벗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옷 벗듯이 그냥 이렇게 벗어 버리면…, 그것째 다 죽는 게 아닙니다. 삼각형이다 사각형이다 오각형이다 육각형이다, 이렇게도 생긴 별들이, 나이 먹는 대로 우리들이 이렇게 차이가 있듯이, 그렇게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우리 생명,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그 불성하고 둘이냐? 둘이 아닙니다. 다 연결돼 있습니다. 우리 몸뚱이는 여기 살고 있지만 그 별들로서 또 살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미쳤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이 조그마하면 조그만 대로 별도 조그마할 거고 우리의 마음이 크면 별도 클 겁니다. 이 세상에 인물이 태어난다면 큰 별이 났다고 그러죠. 그래서 별똥이 떨어진다 하는 것도 별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이 죽으면 그 옷이 흩어져서 원점으로 가듯이 그것도 역시 옷을 벗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그 거리가 너무도 멀고 공기에 의해서 이게 돌아가니까 그것이 다 망가져서 가루로 될 수도 있고, 중간에서 그렇게 될 수도 있는가 하면 이 지구에 떨어질 수도 있는 거죠. 그럼 그 흙이 어디서 생겼고 그 먼지가 어디서 생겼는가? 보라고요! 그렇게 그렇게 끼리끼리들 되지 않습니까? 우리도 흙 한 줌이 된다고 그러죠. 물 한 점, 흙 한 점, 바람 한 점, 불 한 점 이렇게 해서 다 흩어져서 원점으로 돌아가는 그런 이치가 있죠. 그렇듯이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죠. 그렇다고 여기 지구에 그러한 흙이 있다고 그래서, 그런 먼지가 떨어진다고 해서 그 지구가 무거워서 못 사는 일은 없습니다. 아주 가벼우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일체 만물이 살고 있잖습니까? 흙이 아니라면 또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흙을 누가 갖다 준 겁니까? 우리가 흙을 만들어 놓고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가 죽으면 또 흙이 돼 주고 우리가 또 살고 있고 그런 겁니다. 역시 아래 위 전체가 다 돌아가면서 그렇죠, 주고받고 주고받고.

삼천대천세계가, 전 우주가 한 회사일 것입니다. 한 회사라 그래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회사에서 전부 부서별로 일을 하고 있듯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도 과언이 아니죠. 우리가 지금 여기 앉아서 이럭하고 있지만 우린 땅바닥에 앉아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도 떠 있습니다, 지금. 아마 지구에 붙어서 사는 그런 거라고 볼 수도 있죠. 허허허…. 아니요, 지구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죠. 왜 우리가 붙어서 사는 벌레입니까? 하여튼 막말을 한다면 벌레라고도 할 수 있겠지마는…, 그럼 뭐 때문에 우리가 거기 붙어서 사느냐? 우리는 그 속에서 진화돼서 우뚝 섰기 때문이다 이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물질로 됐기 때문이죠. 물질로 됐기 때문에, 전 세계가 전부 상대성 원리로 ‘내가 뺏는다, 먹는다. 내가 하나라도 더 올라가야지. 뺏어야지, 먹어야지.’ 하는 먹고사는 것 때문에 모두 문제가 일어난 거죠. 그러니까 여기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것도, 우리가 이 공부를 해야 한다 하는 것도…, 지금 별성이나 저런 혹성들 이 자체를 본다면 전부 상대성 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건 자동적으로, 힘이 없으면 절대적으로 뺏기게 돼 있으니까요. 보세요, 여러분도 이 주인이 없으면 뺏깁니다. 에너지를 다 뺏깁니다. 그걸 거짓말로 알지 마세요. 또 자석이라고 하거나 자력이라고 하거나, 자력이 없으면 뺏기듯이 큰 자석이 여기 놓여 있다면 작은 쇳덩어리가 그저 스치기만 해도 그리로 붙어 버립니다. 그렇듯이 이거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무한량 뺏길 수 있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 지구 사람들이 이 도리를 모른다면 지구에서도 에너지가 무한량 소멸되죠.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생물뿐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혹성 별성과 마주친다 하더라도 여기에 주인이 없다면 에너지는 소모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지구라는 데가 사람이 많이 살고 있고 생명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줄어들고 그랬지만 우리가 이 공부를 한다면 에너지를 다시 벌충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지구의 수명은 길어진다는 문제가 나옵니다. 영원히 보존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이런 문제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라, 여러분이 이 공부를 한번 잘해 보십시오. 왜, 목성이나 토성이나 이런 곳이 얼음으로 덮여 있다고 그 옛날 소리처럼 그렇게 해야만 되는지 한번 잘 알아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데에 생명이 없는 게 아닙니다. 생명이 잠자고 있을 뿐이죠. 만약에 우리가 공부를 해서 그 생명을 내놓는다 한다면, 우리가 이런 도리를 완전히 증득하고 난 뒤에는 모르지만 이 도리를 허명무스름하게 해 가지고는 그 잠자는 모든 걸 깨울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잠자는 것을 깨운다면 서로 잡아먹을 테니까요. 진화되지 않은 것도 있고 진화된 것도 있고 그렇겠지만 이 마음이라는 것을, 즉 말하자면 영혼이라는 것을 뺏어다가 막 살 테니까 우리는 껍데기만 남을 거란 말입니다, 이 도리를 모르면. 멀고 가깝고가 없이 말입니다. 엄청난 문제죠.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저 사람 어떻게 조금 간 거 아냐?’ 허허허…. 이럴 수도 있죠. 갔다거나 말거나, 그저 난 누가 뭐래도 관여 안 하고 편안하게 삽니다. 그런다 해도 싱긋이 한 번 더 웃어 버리면 덜 늙죠. 그럴 거 아닙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내 정체를 알고 싶다면, 열심히들 공부하셔서 정체를 알아보세요. 어디 가서 살고 있고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내가 여기만 살고 있는지, 어디 다른 데 또 살고 있는지 그것도요.

여러분이 이 공부를 해서 전 세계뿐만 아니라 전 우주 삼라대천세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서 그 잠자는 모두를 깨운다면, 어느 혹성에서나 생명들이 다 살 수 있고 그럴 수 있는 문제들이 아마 허다하게 나오겠죠. 뜨거워서 못 살고, 차서 못 살고, 얼어서 못 살고 이런 게 아닙니다. 조절하기에 달렸죠. 그래서 부처님이 그 에너지를 나르는 데도 멀고 가깝고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거지요. 이건 물질이라야 나르는 데 멀고 가까운 것이 있는 거지, 물질이 화해서 다른 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날라 갈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운반할 수도 있는 거고요. 아닐 거 같습니까?

나무껍데기 하나가 가공이 돼서 어떻게 종이가 됩니까? 그렇게 나무껍데기로 옮기려면 힘이 드니까 종이로 만들어서 옮기면 좋을 겁니다, 아마. 종이보다도 더 가볍게 할 수 있는 물질이 또 있지요. 여러분이 임신을 하면 물질은 다 없어지고 그 아주 형체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그런 게 딱 그냥 헤아릴 수도 없이 같이 몸속에서 자란다는 걸 아셔야 돼요. 만약에 수천 배 더 가벼운, 형체가 없는 것을 어느 혹성에 갖다가 뿌려 놓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뜨거운 거를 찬 데다 갖다 놓으면 찬 거 녹으니 좋고…. 그런데 지금 그 작업이 문제가 아닙니다. 깨워 놓았을 때 그것이 어떻게 발생이 될 것이냐는 문제죠.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나는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누가 뭐래도 허황된 소리, 허황된 살림, 허황되게 내 인생을 그렇게 팽개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 나와 여러분이 둘이 아닌 까닭에 이 공부를 꼭 해서 앞으로 그 생명들을 건질 수 있어야죠. 이 도리를 모르는 그 생명들과 중생들을 위해서 우리가 이 도리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내 몸속에 있는 이 생명들, 중생들은 나쁜지 좋은지도 모르고서 악으로 내가 무엇을 훔치러 간다고 해도 그대로 따라 줘요. 그리고 좋은 일을 하자고 그러면 좋은 일을 하는 대로 또 따라 줘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중생들이니 여러분의 마음이 이것을 다스리면서 이끌어 가지고 가야 보살로 화하지 않겠느냐 이겁니다. 이거부터, 내 혹성에 들어 있는 것부터 할 줄 알아야 저 딴 혹성에 들어 있는 걸 해결하지요. 내 혹성의 해결도 못하면서 남의 혹성에 있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만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말씀해 보세요. 아니, 질문 하나 하는데 내가 얼마나 길게 말을 했습니까?

질문자2(남): 아까 그 주장자가 없으면 빈집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어서 여쭤 보겠습니다. 그게 마음이 허해서 빈집이 되면 세균도 들어오고, 딴 엉뚱한 생각도 들어와서 정신도 어지러울 테고…. 그래서 생각을 해 볼 때에, 선원에 열심히 다니고 경 읽기도 열심히 해서 뭔가에 가까이 가겠다는 의지가 주장자인가, 아니면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해 가지고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주장자인가. 다시 한번 여쭤 보려고….

큰스님: 시장 바닥에 나가든 여기를 오든, 댁의 안방에 있든 회사를 나가든 흔들리지 않는, 근본적으로 아예 여기서만이 들이고 낼 수 있다는 그 믿음, 그걸로써 주장자가 선다면 그게 주장자입니다. 허허허…. 그 얼마나 좋습니까? 자기 소유, 자기가 마음대로 가지고 할 수 있는 그 자기 보배! 그런데 댁이 원래 주장자가 있어서 보배가 그렇게 나오는데, 딴생각이 나오게 옆댕이에서 자꾸 꿰져요. 그러니까 거기에 속지 마라. 모든 걸 다스리고, 나오는 대로 무조건 거기다 맡기고 살자 이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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