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도리를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 그림 최주현

부처님의마음과 조상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
풀 한 포기의 마음이 둘이 아니게 모두 합쳐서
나의 마음속에 찰나찰나 들고 나시니
어찌 내가 당당치 않으리오.


(지난 호에 이어서)
모두가 그렇게 돌아가는 그 자체를, 즐거워도 즐거워하지도 말고 거기에 착 놓고 ‘이 즐거움도 거기서 즐겁게 나오게 했구나. 또 괴로움도 거기서 괴롭게 나오게 했구나. 모두가 그놈한테서 나온 거로구나!’ 이러면서 지켜보시라 이겁니다. 팥죽 속에서 팥죽 방울이 다 나온 거지 팥죽이 없는데 어떻게 팥죽 방울이 나오겠습니까, 네?

그러니 그렇게 팥죽 방울이 많이 나와서 꺼지고 일어나고 꺼지고 일어나고 꺼지고 일어나고 그러듯이, 여러분의 살림살이가 다 팥죽 솥에서 팥죽 끓듯 하는 살림살이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먹고 싸 버리고, 보면 없어지고 들으면 없어집니다. 여러분이 짊어지고 다니시는 것이 있다면 내놓으십시오. 여러분이 여기 오신 그 발자취가 있다면 내놓으십시오. 그 자취를 걸머지고 다니는 마음이 있다면 내놓으시라고요. 그래서 여러분은 한 사이가 없고 고정됨이 없고 그대로 여여하게, 나쁘든 좋든 울든 웃든 죽든 살든 부서지든 변하든 그대로 여여하게 그냥 끊임없이 지금 흘러 돌고 있습니다, 쳇바퀴 돌듯.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죽든 저렇게 죽든 사대(四大)가 흩어져도 그 의식이 남아서 또 고생할 바에야 살아서 아주 죽어 버려요. 살아서 죽는 것이 열반이지 그냥 죽는 것은 열반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살아 있으면서 마음이 죽어야 하고 그리고 죽은 그 마음이, 바로 살아 있는 것도 아니요 죽어 있는 것도 아닌 가운데서 다스릴 수 있는 그 마음이 한 주먹이 불끈 솟아서 하늘을 받치고 땅을 한 발로 디뎠다는 그 사실을, 그리고 또 한마음으로 모든 수레를 굴린다는 그 자체를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 놓고, 놓는 마음에서 자기가 하는 사이가 없이 한마음 낸다면 그게 법이거든요. 여러분은 몇 번 나오고는 “스님한테 가서, 절에 가서 정성을 지극하게 했는데도 안됩니다. 스님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 안돼요.” 이렇게 말하거든요. 아니, 그렇게 값싼 마음이라면 어찌 마음공부를 하라고 그러겠습니까?
다스리는 그 마음의 보배를 간직하면서, 나오는 여러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그 마음, 다스리면서 거기 놓을 수 있는 그 마음이 있다면 또 굴릴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생활 속에서 병이 났어도 너무 늦지 않았으면 낫게 할 수 있고 너무 늦었으면 몸을 바꿔서 또다시 이 세상에 나와서 두루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자로서 공덕을 펴게 하고…. 이렇게 여러분이 한생각 내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끝간 데 없이 공덕을 받게 됩니다.

악업도 수미산만한가 하면 선업도 수미산만하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악업도 없고 선업도 없이 공덕을 받는다면 더욱더 좋고요. 우리가 이렇게 사람으로서 있지만 이 도리의 공덕을 모른다면, 그리고 무심도법을 모른다면,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른다면 앞으로 이 조그마한 우리나라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만약에 지금 마음공부 하셨다가 이다음에 몸을 원점으로, 사대로 흩뜨려 보내고도 그 마음이 이 세상에 보배 씨로 출현해서 정말 무심도법의 첨단 과학자가 된다면 우리나라는 ‘왔다’입니다. 정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앞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대 능력자가 되고 대 자유인이 돼서 자력과 광력과 전력과 통신력을 자재로이 끌어서 연구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으며, 그런 연구와 그런 기술과 그런 의학과 그런 문화 문명을 꽃피우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지금 여러분이 공부한 도리를 내놓아서 만약에 우리나라의 교과서로 나가게 한다면, 유의 세계 무의 세계 모든 걸, 즉 말하자면 물질세계 정신세계를 종합해서 교과서에 실리게 한다면, 또 그것을 배우면서 우리의 물리가 터진다면 기술과 과학 분야에 첨단을 걷게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많이 배출되어 아마 우죽 쏟아지듯 할 겁니다. 한두 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자라는 것을 어떻게 말로 다 하리까. 그래서 이 한 가지만 대 물리가 터진다면 바로 여러분의 몸과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가 정치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회나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데에는 정말 최고입니다. 또 우리가 우주적으로도 알아야 첨단을 가져올 수 있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지금 모두가 물질로써 뭉쳐져 있는데 그 물질로 뭉쳐져 있는 자체가 바로 바탕이 되고 있으니까요. 바탕이 되고 있어요. 뭐냐? 지수화풍(地水火風) 바탕이요, 그 지수화풍 바탕 때문에 이 컵이 나왔다 이겁니다. 컵이 생겼죠. 네 가지가 모두 한데 합쳤는데, 또 사람이 있어야 되죠. 다섯 가지가 합쳐서 하나가 나왔는데 우리가 이 도리를, 무심의 도법을 정말 캐치한다면 모든 것을 지수화풍의 그 바탕에 의해 광력 전력 자력 통신력으로 능히 들이고 내고 하면서 정신과학으로 일체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첨단의 길을 걷게 될 겁니다.

이게 부처님이 가르치신 산 법문이요, 부처님께서는 바로 실천궁행하는 이런 도법을 가르치신 거지 ‘너는 죽어서 천당에 간다.’ 이런 법을 가르치신 게 아닙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여러분이 물질세계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거기에 끄달려서, 죽었다 해도 여러분 육신 속에 있는 그 생명체들의 의식이 다, 바깥으로 나와서 재생하면 그리로 또 같이 하려고 여러분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내가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허허허…. 그래서 죽게 되면 부처님 성전에 같이 한자리를 할 수가 없다 이 소립니다. 살아생전에 독사한테 물리고 뱀한테 물리고 곤충한테 물리고 짐승한테 물릴까 봐 무서워하던 의식이 있어서 거길 건너가지 못하죠.

우리가 물질 사회에서 살다 보니까 모두가 물질화로 아주 백비가 돼 버렸어요. 그래서 자기 마음이 체가 없다는 그 소식도 몰라요. 그런 인식을 못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런 거를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아주 잠재해 있어요. 그래, 죽으면 체가 없는 혼백인데도 자기가 체가 있는 양, 물을 건너가야 하는데 빠져 죽을까 봐 못 건너가는 거죠. 그리고 배 오기를 기다리며 십 년이 되든 오백 생이 되든 거기 섰으니 아니, 배가 옵니까? 글쎄 빠져 죽을까 봐 못 가는 거예요. 한생각, 한 찰나면 그냥 건너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물질적 의식으로만 살았기 때문에 그렇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걸 다 벗어 놔라 이 소립니다. 물이 깊어서 빠져 죽을까 봐 배 오기만 기다리니 어떻게 부처님 세계의 맛을 볼 것입니까. 그러니까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이러고 있지요.

세 단계의 또 한 가지를 말하자면, 여러분이 타 죽을까 봐 못 건너가는 데가 있어요. 우주의 모든 것이 돌아가는 것도 불바퀴입니다. 우리 마음들이 돌아가는 것도 불바퀴예요. 생명의 근본이 없으면 돌아갈 수가 없거든요. 바로 사대가 무너지면 다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내 마음은 그대로, 자기 그릇대로 차원대로 그냥 가는 거지요. 또 어디 가서 태어나야 하는데, 즉 말하자면 소 부부가 사는 데로 들어가질 않나, 새 부부가 사는 데로 들어가질 않나, 짐승들 곤충들 사는 데로 들어가질 않나. 자기가 모르니까, 귀도 먹고 눈도 멀었으니 어찌 그것을 다 보고 들어가겠습니까. 합류화될 것인가 이거예요.

그러니까 깡통은 깡통대로 한데 모이고 금은 금대로 모이고 무쇠는 무쇠대로 모이죠. 우리 사람 사는 것도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모이고 공업가는 공업가대로 모이고 상인은 상인대로 모이고 이러죠? 그렇게만 얘기해도 알겠죠. 그냥 자연적으로 모이듯이 그렇게 모인단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 마음이 그 그릇밖에 안 되기 때문에 새집에 들어가질 않나, 독사집에 들어가지 않나, 염소집에 들어가지 않나, 개집에 들어가지 않나! 도대체 이렇게 몰라서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물질적인 의식들을 다 놓는다면, 지수화풍으로 흩어진다 하더라도 마음의 그 첨단을 알고 한생각 끄덕하면 벌써 건너가 있고 끄덕하면 저기 가 있고 만 리라도 끄덕하면 가 있고, 내 몸 아닌 내 몸이 수없이 입자가 되고 분자가 돼 가지고 수없는 중생을 건지고, 수없는 중생을 제도하고, 수없는 중생을 이끌어 가고, 이렇게 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다 이겁니다. 자력은 인간의 마음으로 쓰기 때문에 한계가 없지만 자석은 물질이라 쓰는 데 한계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무한계의 도리를 알 때 무심의 도법으로 가만히 앉아서 이 세상만사를 한 주먹에 놓고, 보려면 보고 말려면 말고 가려면 가고 말려면 말고 자유자재하더라 이런 거지요.

그러니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서 자유자재하더라 이거지요. 모두 내 자식 아님이 없고 남의 자식도 내 자식 아님이 없고, 남의 부모도 내 부모 아님이 없고, 내 형제 아님이 없고 나 아님이 없으니 풀 한 포기도 내 생명 아닌 게 하나도 없더라. 이심전심으로, 한마음 한뜻으로 모두 공생·공용·공체·공식화 하고 돌아가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진리가, 끝간 데 없는 진리가 바로 한마음 속에서 나오는 거로구나. 마음 자체의 씨가 바로 보배로구나. 그러면서도 쥘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그 자체가 바로 무엇이냐? 허공을 쥘 수 없고 볼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것처럼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체의 그 마음이 그렇게 쥘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기 때문에 묘법을 이루고 나가는 겁니다. 천지의 근본도 인간의 근본에 바로 직결돼 있고 가설이 돼 있다는 그 사실을 여러분은 직감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마음이요, 아까 얘기를 했어도 가만히 보니까 그냥 희미하게 가는 것 같아요. 허이구, 참!

여러분 육신 속에 들어 있는 그 마음들이, 의식들이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공장이라고 해도 되지마는 세계라고 해도 됩니다. 위라는 세상, 장이라는 세상, 간장이라는 세상, 소장이라는 세상, 이름이 그렇게 많아서 이걸 세계라고 하죠. 그냥 여러분을 해꼬지하게도 나오고 남을 해꼬지하게 마음을 일으키게도 하는 모든 의식들을 침착하게 생각해서 거기에다가 맡겨 놓고, 거기에서 나온 거니까 거기에서 해결할 수 있게끔 다 놓고 나는 종노릇을 하십시오. 몸은 종노릇을 하면서 그 다스리는 마음은 항상 한마음으로 돼 주고 겸손하게 돼 주시란 얘깁니다.

아니, 내 몸속에 있는 진드기가 보기 싫고, 촌챙이가 보기 싫고, 거위가 보기 싫고 이렇다면 어떻게 내 몸을 이끌고 다닙니까? 그러니 그것도 존중해 줘야지요. ‘아! 그것도 나로구나. 나를 끌고 다니는 바로 너로구나!’ 하고서 한마음으로 인정을 해 줘야지요. 여러분이 인정을 해 주고 ‘너희가 모두, 하나도 버릴 게 없이 나로구나!’ 하고 인정을 해 줘야 자기 죽이는 법이 없죠. 자기가 자기 죽이는 법은 없어요.

여러분이 생각하고 말하는 대로 따라가는 거니까 그걸 명심하시라 이겁니다. 자식도 잘못하면 “저 도둑놈의 새끼, 저놈의 새끼 믿고 가르쳤더니 나를 이렇게 한다.” 그러지만 그것도 그렇게 돼 있는 겁니다. 그러니 부모는 주는 게 부모지 받는 게, 달라고 하는 게 부모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주십시오. 거미의 부모도 자식들한테 다 주고 자기는 껍데기로 화해서 그냥 말라서 가루가 돼 버립니다. 어머니는 알을 낳아 놓고 그 자식들을 위해서 다 주고선 떠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아낌없이, 자식이 죽게 되면 생명을 대신해 주리만큼 그렇게 자식들을 귀하게 생각하면서 자기는 껍데기로, 껍데기로 껍데기로 이렇게 차츰차츰 변해 갑니다. 그렇게 자기는 껍데기만 남아서 나중에 함께 가자고 해도 자식들이 안 가지요. 몸뚱이도 가지 않죠. 자기 따라 안 갑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고 아무리 부부지간에 사랑했다, 아무리 재산을 사랑했다, 집을 닦고 깨끗하게 잘해 놨다, 몸뚱이를 깨끗하게 씻고 바르고 온통 귀걸이를 달고 잘했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여러분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캠핑 와서 그저 조금 먹고 살기 위해서, 좀 놀다가 가기 위해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풀잎의 이슬처럼 왔다가도 그냥 스쳐 가듯이 그냥 또 다 버리고 가는 거죠. 애들이 공기를 놀다가도, 내 땅 네 땅 하고 놀다가도 저녁때 엄마가 부르면 으레 다 버리고 툭툭 털고 일어서듯이 인생도 그렇단 말이죠.
여러분이 생각을 깊이 해서 무한의 도리를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현실에서도 남의 뿌리를 싱싱하게 도와주십시오. 뿌리를 도와주면 이파리도 가장구도 싱싱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한마음으로 도와주면서 건져 주면서, 자기가 예쁘다고 뿌려 놓은 씨도 건지면서, 사랑하는 부부지간에도 서로 도와 가면서 조화를 이루고 화목하게 한다면 젊은이들이 아마 스스로 첨단의 심성과학자가 돼서 우리나라를 능히 이끌고 나아갈 수 있는 주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그렇게 할 때, 저 풀 이파리 하나도 한마음 아닌 게 없이 그렇게 될 때 그 한마음 속에서 일꾼이 나온다는 거를 아셔야 됩니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이 나라에 일꾼이 생기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결처럼 스쳐 가는 그러한 논다니로서 정치를 하는 사람만이 생겨서, 부모가 잘못하면 자식이 고생하듯 우리 국민은 서로가 고생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자식들도 부모를 위해서, 부모가 그렇게 잘하도록 만드는 자식들이 되어야만이 우리 국민 속에서 그런 부모가 생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침 종성(鍾聲)에도 있듯이 여러분의 마음들이 모두 그렇게 해 나갈 수 있는 마음이라면 참, 앞으로 이 나라뿐만 아니라 여러분 가정에도 화목한 꽃이, 인꽃이 필 것입니다. 그리고 꼭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두서없이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만, 나는 ‘바담 풍’ 하더라도 여러분은 ‘바람 풍’으로 알아들으십시오. 나는 두서없이 말했더라도 차근차근히 생각하셔서 내 한마음을 그렇게만 한다면 자식들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요 내 부모 조상들도 길을 찾을 것이요 묵은 빚을 갚을 것이요 햇빛을 줄 것입니다. ‘부처님의 그 마음과 조상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 풀 한 포기의 마음이 둘이 아니게 모두 합쳐서 나의 마음속에 찰나찰나 들고 나시니 어찌 내가 당당치 않으리오.’ 하고서 나가실 겁니다.
두서없이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난 그렇게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그걸 양해하시고요, 잘 배우신 양반들이 침착하고 체계 있게 생각하시고 한번 써 놨다가 또 한번 보시고 이렇게 하면서 다스려 나가시기 바랍니다.

사회자: 다음은 오늘 준공법회에 즈음하여 먼저 무애 스님 인사 말씀이 있겠습니다.
무애 스님: 오늘 이렇게 더운 날씨에 큰스님 말씀을 한 시간 가까이 들었습니다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덥지 않은 연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마음도 또한 이렇게 다 밝으니 아마 많은 감응을 얻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찌 이게 공덕이 안되겠습니까.
우리가 알맹이부터 시작하면 껍데기는 저절로 커지지만 껍데기부터 커지면 알맹이가 들지 않듯이 우리 도량도 공부하시는 스님들과 신도 분들이 있음으로써 더 커지게 되는 이런 계기를 갖는 것 같습니다. 복 짓는다고 쫓아다니면서 한 시주는 공덕이 되지 않겠지마는 한마음으로 시주한 것은 참공덕이 되리라고 봅니다.

또 김 선생님께서, 전에도 이곳의 중창 불사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도 겸손한 마음으로 이렇게 시주해 주셨으니 이 도량에서 모든 분들이 수행 정진을 열심히 하신다면 아마 도량이 더욱 빛나게 되리라고 봅니다. 계속 시주를 받고 있는데 다음에는 종각도 세울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뜻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언제라도 찾아 주십시오. 저희는 복 짓는 일이라고 강요해서 하지 않습니다. 진짜 마음으로 우러나서 동참해 주시면 아마 두루두루 공덕이 되리라고 봅니다. 오늘 이렇게 많이 참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공부하는 데 많이 동참해 주셔서 각자가 무량공덕을 지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큰스님: 내가 잠깐 말귀를 잡아야 되겠군요. 여러분이 ‘내가 요만한 시주를 하면 그만큼 나한테 오겠지.’ 이렇게 하지 마시고 지금 여기 무애 스님이 말씀하시는 거하고 똑같이, 우리가 무주상 보시를 한다면 여러분 앞에 무주상 보시로 돌아갈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부산이든 광주든 본원이든 여기든 어디고 간에 불사가 다 있습니다. 다 있는데, 어디든지 무주상 보시로 하시면 무주상 보시로 갈 겁니다. 여러분이 해 놓은 것은 여러분이 갖지 않는 게 없으니 누구를 줬다 안 줬다 할 것도 없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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